[추천 작품]/***** 좋은 단편

(구인환 단편소설) 동굴주변

소설가 구경욱 2008. 10. 1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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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환(丘仁煥.1929.9.16∼  )

  소설가. 문학박사. 호 운당(雲堂). 충남 장항 생. 1954년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196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197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서울여대 교수, 서울대 사범대 교수, 펜클럽 이사, 한국비교문학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어국문학회 회장, 현대소설연구회 회장 등 역임.

  현재 문학과 문학교육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1960년 [문예]에 <동굴 주변>, 1961년 [현대문학]에 <판자집 그늘>이 추천되어 데뷔.

  대만 문화훈장(1981), 주요섭문학상(1984), 한국소설문학상(1987), 한글문학상(1989) 최우수예술가상(1990), 서울시문화상(1991), 월탄문학상(1992), 예술문화대상(1994) 국민훈장 동백장(1995) 순수문학대상(1996)

 

 

 


(구인환 단편소설) 동굴 주변

사팔이는 멀거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이 개새끼야, 이걸 먹으라고. 아이고 더러워. 튀튀…….”
눈을 부릅뜬 호박이 소리쳤다. 머리는 산발하고 흩어진 채 입에 거품을 품어 가며 악을 쓴다.
또 호박의 욕지꺼리가 시작된 것이다. 아무렇게나 한참 발악하고야 말 거이 지랄에 가까운 욕지꺼리다.
사팔이는 쳐다보지 않드라도 호박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박의 거품이 서린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애당초 궁금증을 갖거나 겁낼 필요가 없다. 날마다 겪는 일이니 또 시작하는군 하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만이다. 허기야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것을 참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저 꾹 참고 발악하는 꼴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으면 제물에 시들게 마련이다.
실은 사팔이도 호박이 악을 쓰고 덤빌 때는 그저 보기 좋게 한 펀치 갈기고 싶었다. 왜 언젠가 청계천 가에서 한 번 멋지게 써먹던 주먹 말이다. 한 번 주먹을 들으면 끽 소리 못하겠지만 그년이 꽁초(基喆)와 좋아 지내니. 뭐 꽁초도 무서울 것은 없었다. 그저 형이라고 부르는 꽁초의 깔치와 싸우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사팔이는 깡통을 내밀었다. 외면한 채로. 그리고 화풀이나 하듯이 침을 탁 뱉었다.
“개새끼! 돼지나 주어라. 이 새끼야!”
또 악을 쓴다. 싫으면 그만이지 악을 쓸 게 뭐야. 땀 흘리고 얻어 온 건데. 계집애도 치사하게. 사팔이는 슬며시 화가 치밀었다. 제까짓 년이 별거라고. 그러나, 화낼 필요는 없었다. 호박은 나중에는 깡통을 받게 마련이다. 괜히 한 번 응석을 부려 보는 것이다.
계집애가 무엇이 잘 낫다고. 속이 디다보이게 떠들지 말고 순순히 받아 먹을 거지. 이렇게 악을 쓰고 먹어야 시원한 모양이지, 흥 제까짓 년 떠들어 봐야 배만 고프지, 꽁초가 무엇을 가져올까 봐서, 어림도 없지. 계집애 화풀이를 내게다 해, 재수 없게. 이건 꼭 제 무엇주고 뺨맞는 격이지. 체! 호박이 또 소리를 쳤다. 그러나 이미 맥이 풀린 넋두리다. 호박은 분명히 꽁초를 기다리다 못해 화가 난 것이다. 밤새 잠도 못 자게 지랄들을 했으니 몸도 고디겠고, 무엇이 좋아 그렇게 지랄들이었을까. 아침에 호박이 맥을 못 쓰고 쓰러졌으니, 꽁초 놈이 세기는 세거든, 자식이 밤을 새우다시피 야단이었어도 말야. 오도바이(相龍)가 안 들어왔으니 다행이지, 그 자식이 있었더라면 가관이었을 거야. 자식이 나이가 한 살 위이기도 하지만 그 속은 빨러. 허기야 오도바이가 없었으니 그 지랄을 했는지 모르지. 다른 때는 우리가 알까 봐서 눈짓이라도 보더니, 어제 밤에는 아주 공개적이야. 개새끼들, 아니 나를 무시하고 마음껏 놀았지, 새벽에 맛이 있는 것을 가져온다던 꽁초 자식 기분이 났을 거야. 그렇지만 그 약속이 시행돼? 그 약속에 속은 호박이 바보기는 하지만.
“야 이것을 먹어, 이게 뭐야. 시어서 먹겠느냐 말야. 앗튀.”
호박은 깡통을 받아들고 사팔이를 노렸다. 눈 언저리가 쑥 들어간 채, 그러나 너절한 냄새가 호박의 코를 넘식대니, 이제는 더 이상 참고 떠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미안쩍은 듯이 힐끗 사팔이를 쳐다보고는 입을 씰룩거렸다.
흥! 악을 써, 그래도 구미는 도는 게지, 깡통을 버려, 버리지는 못할걸. 뱃속에서 어서 들어오라고 야단일 텐데.
호박은 다시 콧등을 세우지는 못했다. 기세를 더 부리기에는 뱃속에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계집애. 더 성화를 부리려면 부려 보지, 기껏해야 꽁초의 노리개 밖에 더 돼. 그 밥을 얻느라고 얼마나 욕을 봤기에, 아 참, 그 개는 무섭기도 해. 언젠가도 한 번 혼난 기억이 있지만, 오늘은 하마트면 물릴 번 했거든. 그 무서운 톱이, 한 번 물리면 겨우 살을 가린 옷이 찌끼고 상처가 나고, 아이 무시무시하지. 제기랄 그러면 할 수 없지 뭐, 그때는 그 집에서 야단을 부리는 거야. 공갈치며 나둥글면 그 집 꼬마 헌 옷이라도 줄 꺼야. 그 왜 밥 달라던 말에 세수를 하다가 쳐다보던 사내놈의 고리땡 쓰봉이라도 주겠지. 그걸 입으면 근사할 거야. 근사해. 체! 그 자식은 팔자도 좋지.
호박은 벌써 깡통을 거의 다 비우고 있었다. 개천가에서 주운 스푼을 연방 핥아 가며 주둥아리가 터져라고 밥이며 반찬쪼가리를 집어 넣는다. 사팔이는 피식 웃었다. 제기랄, 기왕이 먹을 것 뭐 그리 야단이냐 말이다. 돼지같이 소리를 내면서 집어 삼키는 호박, 살기 위해서 이 푸념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먹어야 하는 것이다. 호박의 낯이 풀어졌다. 배가 불러 온 탓일까.
사팔이는 아무렇게나 흙바탕에 주저앉았다. 호박의 꼴이 보기 싫어서다.
흥! 살겠다고, 처먹기는 돼지같이, 계집애도 돼지지 뭐야, 아니 호박보다는 돼지가 낫지, 돼지지. 아니야 거지의 거지지. 내가 얻어 온 것을 먹는 거지, 그러니 내가 주인이고, 문을 닫고 호박을 내쫓을까. 흥 제까짓 년 꽁초만 없어 봐라, 벌써 날아 갔지. 꽁초새끼, 그 새끼 아주 무심해. 새끼가 재미는 저 혼자 보고 밥은 내가 얻어다 먹여야 하니, 세상이 더러워서, 튀. 호박이 깡통을 내어 놓으면서 피식 웃었다. 이제 배가 찬 것이다.
“얘 사팔아 고맙다.”
계집애가 제법 인사를 한다. 그런데 나를 사팔이라 불러댄다. 어엿이 건삼(健三)이란 이름이 있는데, 허기야 내 한 쪽 눈이 사팔뜨기이기 때문에 모두 사팔이라고 부르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얘 사팔아…….”
호박이 사팔이 옆에 앉는다. 호박의 눈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다. 눈웃음 속에 나를 집어넣으려는가 보다. 또 하는 수작이다. 벌써 몇 번째 당해 본 일이다. 배가 부르고 아무도 없는 이맘 때쯤 되면 호박은 은근히 유혹하는 것이다. 계집애도 배가 부르면 그 생각이 나는 모양인가. 이상하다. 빈 깡통을 들고 일어서려는 나의 손을 잡고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자니 말이다.
“얘 사팔아…… 재미 있어, 야…….”
호박은 제법 눈웃음까지 띄고 있었다. 호박에다 그려 놓은 것 같은 눈에서 요기가 불붙고 있다.
저 계집애가 밤에 그렇게도 지랄하고 또 생각이 날까. 그것은 무슨 밥 먹듯이 하는 건가……. 계집애도.
사팔이는 꽁초와 지랄들 하던 간밤의 일이 머리를 스쳤다. 너 아니면 난 죽어 하면서, 아양을 떨며 낄낄거리던 호박, 그까짓 것 거들떠볼 필요조차 없다. 흥, 제까짓 것 치사하게스리, 더럽다, 더러워, 앗튀! 꽁초 노리개가 이건 알로 먹고 꿩으로 먹을 작정이야, 더럽게 그러면서 호박이 꽁초에 깔려 씨근덕거리면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저것이 알까, 저 고추가, 이 재미를 알아…….”
계집애도 몰라, 시시하게 굴지 마라, 아니꼽게 앗튀!
“너 이러기야 자식 괜히 속타지 말고…….”
호박의 성난 목소리다. 그러나 얼굴은 미소를 머금은 채 씰룩거리고 있다.
사팔이는 매스꺼웠다. 분노의 실마리가 살며시 치밀어 왔다. 무슨 노리개로 일방적으로 덤비는 꼴이 얄미웠다. 간밤에는 숨을 죽여가며 그 꼴을 보고 사타구니를 더듬기도 했지만, 이건 생판 대낮에 어쩌자는 것인지 몰랐다.
홍! 안 되지. 그 유혹에 넘어갈 줄 알고, 어림도 없지, 뭐 밤새 내가 애타서 황송해서 응할 줄 알고, 세상에 계집애 투성인데 그까짓 꽁초 깔치를 건드려.
호박은 거의 노골적으로 대들었다. 아랫도리를 비틀면서 사팔이의 팔을 잡아 당겼다. 이제는 유혹이 아니라 호소의 눈빛으로 변했다. 마구 눈을 흘겨 가며 일어서기를 재촉한다.
제기랄 야단이야. 아무리 본능이라지만 이것은 개돼지같이, 치사하게 굴어, 사팔이는 깡통을 들었다. 어서 나가서 저녁을 얻어 와야 하기 때문이다.
호박은 아주 법석이다. 아랫도리를 만지면서 얼굴이 상기되어 덤볐다.
“개새끼! 어디 두고 보자.”
이번은 협박이다. 계집애란 이기(利己)의 뭉텅인 모양이다. 유혹, 아양, 호소, 협박 별수단을 다 써 봐라. 내가 넘어갈 줄 알고, 더럽게, 체!
사팔이는 일어났다. 더러운 것이나 토해 내듯이 튀 침을 뱉었다. 그리고, 산비탈을 내려갔다. 뒤에서는 호박이 씨근덕거리며 노려봤지만 제 말대로 풋내기인 사팔이에게는 아랑곳없는 일이다. 오도바이 새끼는 어디 갔을까. 오늘도 안 들어오니 자식 어디 가서 혼자 재미보는 게다.
사팔이는 휘파람을 불며, 내려가다가 발길을 돌렸다. 꽁초가 뛰어 올라갔기 때문이다. 얼굴이 홍조가 되어 덤비던 호박을 생각하자 사팔이는 다시 뛰어 올라갔다. 어디 꼴 좀 봐야지. 어디 호박이 또 킹킹대는 꼴 좀 보자.
동굴 앞에 이르자 사팔이는 가슴이 뛰었다. 창문 앞에 더듬어 갔다. 창이랄 게 없지만, 비탈에 파져 있는 굴이다. 밖에서 보이지 않게 헝겊은 쳐 놓은 것이다.
“히히 꽁초 이건…….”
호박의 아양떠는 웃음소리다. 아마 꽁초가 무엇을 들고 왔나 보다. 그 자식 옆에 무엇인가 끼고 있었으니까 사팔이는 가슴이 조였다. 헝겊을 제치고 동굴 안을 살피기까지는 숨이 가빴다. 사팔이는 또 한 번 아찔했다. 년놈의 몸둥아리가 숨가쁘게 물결치고 있는 것이다. 하얀 살덩어리가 딩굴고 가쁜 호흡에 호박이 낑낑대고.
사팔이는 호기심만이 아닌 어떤 충동을 느끼며 헝겊을 아주 제치고 안을 노렸다. 자식들 멋지게 논다. 저것이 그렇게 좋은가. 죽고 못 사니…….
호박의 웃음소리도 끊어졌다. 살덩어리가 얽혀 붙어 가쁜 호흡과 호흡이 물결칠 뿐이다.
흥 저러니 정신을 못 차릴밖에, 개새끼들! 대낮에 무슨 꼴이야, 흥! 마구 소리쳐, 하여튼 멋있기는 해.
사팔이는 골치가 찌릿했다. 호박의 신음 아닌 흐느끼는 소리에 가슴이 탔다. 그리고 몸이 타올랐다.
가자! 저까짓 것 대견하다고, 내가 호박의 손에 끌려 들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지. 지금 저 꼴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꽁초가 속이 뒤집혀 덤볐겠지. 아이 더러워, 체 치사하게.
사팔이는 야릇한 흥분을 느끼며 밖으로 나왔다.

호박이 해벌떡하게 누워 있는 옆에서 사팔이는 이를 잡고 있었다. 아직 따스한 날씨인데도 어디서 이가 그렇게 생기는지는 모른다. 호박은 점심(사팔이가 얻어 온)을 먹고 오늘은 쓰러져 코를 골고 있다. 몹시 피로하다는 것이다.
사팔이는 단풍으로 물들어진 골짜기를 바라본다. 파란 산에 물들어진 황금빛 단풍이 좋았다. 그러면서 먹으로 그려 놓은 것 같은 가슴의 때를 베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쓰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입 속으로 중얼댔다.
참 그 소복한 아주머니 제일이야, 언제 가도 나를 반가와하고 귀여워 해 주고, 개천 가에 있는 식당 아줌마 말이다.
사팔이는 어느듯 그 아줌마의 정다운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하얗게 소복한 채 사팔이가 가면 언제나 “얘 춥지, 이리 와라.”하고 밥을 주는 정다운 아줌마, 사팔이는 불시에 나도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하고 눈을 감아 보는 것이다.
호박이 코를 곤다. 사팔이는 호박의 자는 얼굴에 눈을 부었다. 누런 이, 해벌떡한 코, 아무렇게 흩어진 머리, 불룩한 젖가슴, 떨어진 옷깃에 내민 살결이 탐스럽다.
흥! 살결이 저러니 꽁초가 오금을 못 쓰는가 보지. 꽁초 그 새끼 아무래도 수지가 맞는가 봐 제법 늘씬한 잠바를 입고, 개자식 나는 이 꼴인데.
그래도 꽁초는 고마운 놈이다. 내가 꽁초를 따라 이 동굴에 온 지도 벌써 반 년, 그때 꽁초가 아니었으면 골로 갔을 거야. 뭇 놈들에게 두들겨맞는 것을 꽁초가 데리고 왔으니까.
처음에 꽁초는 아주 친절하게 사팔이를 위해 주었다. 동생이라면서. (하기야 사팔이가 먼저 형이라고 했지만) 꽁초는 거지는 아니었다. 아니 깡통을 안 들은 거지이기도 하다. 꽁초가 저런 호박에 오금을 못 쓰다니.
아니야, 누구의 말대로 그 맛이 좋은가 보지. 하기야 웃을 때면 호박의 볼이 샘이 파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꽁초만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눈 언저리가 쑥 들어간 호박이 이제 성숙한 처녀가 되었으니.
사팔이는 아무렇게나 누웠다. 파란 하늘이 눈을 덮었다.
오도바이 새끼 오늘도 안 와, 자식 정말 골로 갔나. 자식이 배가 부른 모양이지, 그 새끼 아쉬워야 찾아오니 꽁초가 새끼를 싫어하는 것도 뻔하지. 그 아줌마한테나 가 볼까.
사팔이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 청계천 가의 아줌마만 생각하면 힘이 났다. 사팔이는 일어났다. 산골짜기에 벌써 황혼이 기어들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덮기 시작했다. 가을이라지만 제법 싸늘한 기운이 서렸다. 사팔이는 무거운 깡통을 들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줌마의 술집은 여전히 사람이 뒤끓었다. 조그마한 목노집인데도 갈 때마다 별로 빈 자리가 없었다. 신문지로 아무렇게나 바른 벽, 널판지로 만든 의자. 뭐 별로 손님들이 차분하게 앉아 있을 자리도 못된다.
“이 자식 멀정한 놈이 거지야!”
거지, 이래 뵈두 열하고도 다섯이야. 키는 적기는 하지만.
술이 거나한 친구다.
“아줌마 이리 오슈…… 한 잔 합시다. 아무리 봐도 미인이거든…….”
아줌마는 사팔이를 보자 어서 부엌으로 들어가라는 눈짓이다.
여기저기서 아줌마를 부른다. 꼭 술을 따라 달라는 것이다. 먹어 봐야 쓰디 쓰고 얼굴이 빨개지는 술을 왜들 먹는지 모를 일이다.
“개새끼들, 아니 세상에 돈하구 계집 싫다는 놈은 없드라. 어튀 아줌마 술 좀 더 주슈.”
이제 한참들인가 보다. 그 작자 얼굴이 홍당무인데 술을 더 달래. 별꼴이다. 거나하게 먹었으면 되었지 자꾸 청하기는…….
사팔이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일하던 여인의 눈이 찌푸려졌다. 언제나 당하는 일이다. 기분이 나빠서, 거지가 들어왔다고 그런지도 모른다.
“그애 밥 좀 말아주.”
빈대떡을 부치다 말고 아줌마가 부엌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꼼짝 안했다. 사팔이가 몹시 얄미운 모양이었다.
아줌마는 사팔이를 보고 미소를 띄우며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사팔이는 눈시울이 뜨거웠다.
저 아줌마가 제일이야. 거지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인데, 아니 저 여인이 냉큼 따끈한 국물에다 밥을 말아 주지 않고 무얼 하는 기야.
따끈한 국물에서 김이 맴돈다.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팔이는 여인의 눈을 흘깃거리며 입을 놀렸다. 사팔이는 눈이 사르르 감겼다. 지핀 불 옆에서 한잠 잤으면 시원하겠다. 따뜻한 방안에서 말이다.
아줌마가 부엌에 들어왔다. 고향은 북쪽인데 피난 오다가 사팔이 나이의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너 건삼이랬지. 너 공부하고 싶쟎니?”
사팔이는 놀랐다. 공부라는 말에 가슴이 달아 올랐다. 사팔이는 눈을 감았다. 금시에 책을 볼 자기의 모습이 공중에서 나부꼈다.
글을 배운다. 길가에 멋있게 붙어 있는 영화 광고도 보고 나도 배운다면 문제 없다. 꽁초녀석이 글자 나부레기나 안다고 뻐기거던, 제법, 신문쪼가리나 읽을 줄 알으니 그까짓것 대견해서.
“얘 내가 아는 토굴학교에 보내 줄까.”
아줌마의 목메인 소리가 사팔이의 목구멍에 얽혔다.
토굴학교는 구두닦기나 거지들이 모여서 배운다고 했다. 아줌마는 사팔이의 손을 쥐었다. 사팔이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줌마하고 품 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중얼대고 있었다.
글을 배워, 나는 무서운 개가 있는 집 꼬마보다 잘 할꺼야, 어서 배워서 오도바이를 놀려 줄까, 자식 깜짝 놀랠 거야. 그리고 아줌마에게 편지도 하고. 사팔이는 마음이 설렁댔다. 아줌마의 말을 마음 속에 새기면서 산비탈을 달렸다.

“야 이 새끼 어딜 갔다 오는 거야.”
헝겊을 제치자 낯익은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오도바이다. 자식이 언제 온 거야. 아니 이건 촛불까지 키어 놓고.
“새끼 재미 좋구나.”
둘은 손을 힘껏 쥐고 내흔들었다. 자식이 멋진 잠바를 입고 있구나, 언젠가, 길가에서 본 깍쟁이 아저씨가 입은 잠바 같다. 가죽은 아니라도 자식 근사한데…….
“야 새끼 멋쟁이구나.”
사팔이는 초라한 자기 꼴과 비교해 본다. 아니꼬왔다. 자식이 피식 웃고 있지 않는가.
자식이 정말 쓰리가 되었나. 쓰리는 돈도 잘 번다는데, 새끼 쓰리다. 쓰리, 하기야 쓰리가 거지보다 낫지. 새끼 낫기는 뭐가 나아, 없으면 없는 대로 얻어다 먹을 거지, 쓰리를 해.
“야 순자다. 인사해 자식아.”
아니 이건 또 뭐야, 깔치다, 제법 얼굴이 되었는데, 아니 자식 어디서 챈 거야.
순자는 본 체 만 체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곱게 뜬 눈이 맑았다.
“야 이제부터 순자가 밥하기로 하자. 우리는 벌구 말이다.”
자식이 까불어. 언제부터 순자를 알았다는 거야, 꽁초와 호박은 어디 가고, 촛불 빛에 뵈는 순자는 제법 어른티가 났다. 젖가슴은 불룩하고, 계집애, 새 옷이라도 입으면 근사하겠는데.
“야 꽁초와 호박이 동부인해서 외출이다.”
오도바이는 제법 떠들어댔다. 이제 한 몫의 쓰리꾼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개새끼들, 어디를 갔다는 거야. 꽁초도 그 따위를 데리고, 아니꼽게 동부인이야.
사팔이는 저번 낮의 일이 눈 앞에서 아롱졌다. 대낮에 지랄들 하던 꼴 말이다.
“야 이 새끼야, 동부인 하하……때러 간거야, 이 바보야.”
“뭣이?”
사팔이는 입을 벌렸다. 순자가 생겼으니까 호박을 어디다 버리러 갔다는 것이다. 사팔이는 깡통을 순자에게 주고 밖으로 나왔다. 촛불 밑에 앉아 있기가 거북스러워서다. 오도바이와 같이 나란히 잔디에 몸을 던졌다. 오래간만이었다. 언제나 같이 다니던 둘이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하나, 둘, 풀벌레가 울었다.
“꽁초자식 말야, 개새끼 혼자 다 처먹으려는 거다. 자식 나보고 파수꾼이 되라는 거야, 개새끼 낮에 네가 보고파서 왔드니 말이다. 참 네가 없으면 오지도 않는다. 이 새끼가, 이래도 오늘 멋지게 깔었지 뭐냐. 호박이 짖통을 내어 놓은 체 코를 골고 있쟎니, 계집애 낮짝은 그래도 그것은 최고야 최고. 에이 바보! 그것도 못해 보구, 히히…… 계집애 그건 좋아하거든, 막 괴를 매는데 꽁초새끼 말야, 저 깔치 데리고 말야, 나보고 파수를 보라면서 호박보고 뭐 나가라는거야. 개새끼 아다라시가 생겼으니 버리자는 거야.”
사팔이는 또 잠바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멋이 있다. 그까짓 계집애는 문제가 아니었다. 잠바가 탐이 났다. 그것을 입고 아줌마가 말하던 토굴학교에 갔으면 했다.
오도바이는 거지보다 쓰리가 낫다고 신나게 늘어 놓았다. 왕초에게 칭찬받았다는 얘기도 했다. 이제 꽁초 같은 것은 문제없다고 했다. 돈을 벌으면 천막을 짓고 같이 살자고 했다.
사팔이는 호박을 생각하고 있었다. 계집애 그래도 마음씨는 고운데, 그 지랄만 아니면, 계집애가 오도바이하고, 자식이 그것을 알어, 새끼 고추를 가지고, 꽁초새끼 언제는 좋다고 지랄들이드니 떼어 놓고 와, 개새끼 골로 가랴! 호박이 떨어질까, 여기 찾아오면 고만이지, 새끼. 염치 없게 좋아하던 때는 어느 때고.
꽁초는 밤늦게서야 돌아왔다. 혼자였다. 제법 손에 무엇을 든 채. 쓰루미와 술이었다.
자식이 잔치를 하려는 건가, 개새끼 기분을 내자는 거지, 어디 꼴 좀 보자.
오도바이와 사팔이는 마주 보고 웃었다. 꽁초의 속이 디다보이기 때문이다. 순자는 새우허리로 잠들고 있었다.
계집애도 고생바가지구나, 저것이 또 못 살게 굴겠지! 튀! 사팔이는 침을 던졌다. 돌벽에 탁 하고 나붙는다.
그 날 저녁 모두 신나게 놀았다. 사이다 병에 들은 소주를 마시고 목이 터져라고 노래를 불렀다. 참 재미 있었다. 셋이 이렇게 놀아 보기는 처음이다. 풋잠을 깬 순자는 졸리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조금도 즐거운 빛이 아니다. 우수(憂愁)와 한탄이 섞인 낯빛이다. 이제부터의 생활에 겁을 먹듯이 사실 공포에 떨지도 모른다. 사팔이에게는 아랑곳없는 일이었다. 그저 밤새 고함치고 웃었을 뿐이다. 오도바이와 같이 웃고 떠드는 것이 그저 즐거웠을 뿐이다.
그러나, 꽁초가 한턱을 낸 것은 허탕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꽁초가 가져온 술을 마시면서 멋있게 논 다음 새벽에 호박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황한 것은 물론 꽁초다.
“아니 왜 길도 모르구 다니는 거야.”
제법 의젓하게 호박을 나무랬다. 사람을 헤치고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고 들이댔다. 역습이다. 꽁초가 호박의 발악이 무서워 선수를 쓴 것이다.
호박은 피식 웃었다. 오히려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한 쪽 구퉁이에 옹소리고 있는 순자를 노렸다. 제법 눈을 홉떠가며 굴 안을 두리번거렸다.
“아니 길을 몰라 바보!”
꽁초 자식이 바보지.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살짝 도망해 왔으니, 때려면 호박을 해치우던가, 순자가 마음이 들면 같이 달아나든가, 자식 약은 체는.
사팔이는 괜히 화가 났다. 식구가 불어 책임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하옇든 식구가 불은 건만 사실이다. 오도바이는 호박이 들어온 날 가버렸지만 사내 둘 계집 둘이 같이 살게 되었다. 누가 보면 쌍쌍이라고 하겠으나 꽁초가 두 계집애 다 눈독을 쏟고 있는 것이다.
호박이 제법 순자 앞에서 으시댔다. 낮에는 꽁초와 사팔이가 집에 없으니 거의 둘이 같이 있었다. 그럴 때면 호박이 텃새를 했다. 더구나 꽁초가 밤에 시원찮게 굴으면 그 화풀이를 순자에게 했다. 순자는 그저 양지를 찾아 앉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뭉게 뭉게 떠 있는 구름을 보고 힐쭉 웃기도 했다. 눈동자만이 맑게 가을 하늘을 닮아가고 있었다.
호박은 순자를 바보라고 했다. 얼굴이 이쁘다는데 더 앙가슴을 가지고 구박을 주었다.
그 날도 사팔이는 깡통을 들고 산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무거웠다. 몸에 땀이 빚었다. 호박만이 있을 때는 반 통이면 되던 것이 순자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깡통으로 가득히 얻어 와야 했다. 식구가 늘었다고는 하나 꽁초 놈은 밤에 잠자리가 좀 불편하다 뿐이지 별 일이 없었다. 꽁초도 꽤 주의하는 눈치였다. 호박이 응석을 부려도 시치미를 떼는 것이 순자에게 눈독이 들은 까닭이다.

가을도 깊어 가는지 짙어진 단풍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굴에는 마침 순자 혼자 뿐이었다. 호박은 아침에 나갔다는 것이다. 순자는 사팔이를 보더니 반갑게 일어났다. 눈이 분 것이 혼자 울었는지도 모른다.
사팔이는 괜히 마음이 이상해졌다. 굴 앞에서 햇빛에 옹소리고 있던 그녀가 무슨 꿈을 그리는 여인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나자 깜작 놀라 쳐다보는 것이 무슨 비밀이라도 탄로되어 당황하는 모습같이 보였다.
“얘 순자야 너 무슨 꿈이냐!”
사팔이는 가슴이 이상했다. 친숙한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손이라도 쥐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순자의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듣고 싶었다. 순자는 그저 깡통을 긁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사팔이도 아랑곳없다는 듯이.
참 계집애도 별거야, 호박은 너무 발러 놔서 걱정이고 이건 너무 바보 같아서, 무슨 계집애가 그런데 입술은 예뻐, 코도 좋고…….
사팔은 가슴이 뛰었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얘 사팔이 미안하다!”
순자가 깡통을 내어 놓았다. 사팔이는 고개를 돌렸다. 순자가 비시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팔이는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나 놀랄 필요는 없었다. 호박과 같이 이상하게 눈이 빛나지 않고 다만 웃고 있기 때문이다.
사팔이는 따뜻하게 가슴이 치밀어 왔다. 아줌마를 대했을 때와 같은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긴 기분은 아니다. 사팔이도 같이 웃었다. 별다른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는 순자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사팔이는 순자의 손을 끌었다. 순자도 눈을 떼지 않고 일어났다. 양지받이 잔디 위에 앉았다. 손을 마주 잡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노랗게 단풍이 우거지고 하늘은 드높고 푸르렀다.
“얘 순자야 저 하늘에 올라갈 수 있을까?”
“얘는 하늘보다 구름이 낫다 얘, 구름을 타고 날으면 좋겠지!”
순자는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은 아까 사팔이가 올라왔을 때와 같이 멍하니 뜨고있다. 초점을 잃고 허공에 시선을 던지고 마음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사팔이는 순자의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닫힌 순자의 가슴의 문이 가만히 열리어 사팔이의 심금(心琴)을 흔드는 것만 같았다. 사팔이도 꿈을 꾸고 싶었다. 꿈! 꿈은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니까.
“얘 사팔아! 우리 어디 가서 둘이 살까?”
순자가 사팔이의 손을 꼭 쥐면서 말했다. 사팔이는 그 말에 기겁해서 순자를 바라봤다. 순자는 여전히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어디 가서 살아? 싱거운 말이다. 아니야 순자와 둘이 있으면 재미 있을 거야. 호박도 꽁초도 없는 곳에 가서. 그렇지 언젠가 한 번 간 대학 옆에 있는 굴에 갈까, 지금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사팔이는 순자의 말을 되씹고 있었다. 순자는 사팔이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어디 가서 살까? 꽁초가 순자를 노리지 않는 곳에 가야지, 자식이 요새 괜히 신경질을 부리거던, 허기야 자식이 근심거리가 생겼지, 체! 개자식.
그러자 며칠 전 날 밤에 호박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야 꽁초야 이것 좀 봐라. 배 좀 만져 봐. 얘 무엇이 움직이지.”
자식이 그래서 요새 맥을 못 추지. 그때 “뭐?” 하고 놀라던 표정을 봐도 알 일이지. 자식이 못나서, 그까짓 것 싫으면 죽이든가 살리든가 결판을 내야 할께 아냐.
“사팔아! 너 구름 좋아 하니?”
이건 이상한 얘기다. 순자는 뭐 그렇게 어려운 얘기를 할까, 그녀는 여전 무엇인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팔이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사팔이는 가슴이 이상해졌다. 호박에서도 더구나 아줌마에서 느낄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 그녀의 손을 가슴에 꼭 안았다.

겨울이 다가서자 추위가 밀려왔다. 거지의 수난의 계절이다.
모두 겨우내 집거할 준비에 바빴다. 개구리나 뱀도 동면(冬眠)하고, 매서운 바람만이 산비탈을 울렸다. 이때보다 개구리나 뱀이 부러운 때도 없다. 그것은 사팔이와 같은 거지만이 갖는 심사는 아닐 것이다. 가파로운 세상에서 삶에 허덕이는 자들의 체념(諦念)에 겨운 소원일지도 모른다.
동굴에서도 이렇다할 일 없이 세월을 보냈다. 변화가 있다면 호박의 배가 눈에 띄도록 부풀어 왔다는 것뿐이다.
사팔이는 날이 추워 갈수록 아줌마의 신세를 많이 졌다. 추우니 돌아다니기도 싫고 아줌마의 잔심부름을 하고 밥을 얻어 왔다. 그러나 매일같이 아줌마네 집을 갈 수가 없어 바람이 전신줄올 울리는 거리를 헤맸다. 그러나 하루에 꼬박 두끼는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호박이나 꽁초 몰래 순자에게 줄 떡가래도 잊지 않았다.
아줌마는 아주 동굴에 가지 말고 잔심부름이나 하고 밤에 토굴학교에 나가라고 했다. 사팔이는 여러 번 그 말을 되씹고 있었다. 그러나 사팔이가 동굴에서 나오면 순자가 문제다. 호박은 꽁초가 있으니 문제 없고, 사팔이가 가면 웃으며 뛰어나오는 순자, 그 순자가 사팔이가 나오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호박은 이제 꼼짝 못하고 씨근덕거리고 있다. 바가지를 배에다 엎어 놓은 것같이 개구리가 되어 있다. 그럴수록 꽁초의 얼굴도 피지 않았다. 말로는 걱정하면서 속수무책인 것이다.
며칠 동안 꽁초가 앓은 뒤다. 무슨 결심을 했는지 호박을 끌고 일어났다. 사팔이는 꽁초의 눈빛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 말인즉슨 여기서는 추워서 해산을 못하니 딴 데다 마련했다는 것이다. 사팔이는 그 속을 빤히 디다보고 있었다. 자식이 해치우려는 것이 분명했다.
아줌마하고 토굴학교에 다녀온 날이다,
사팔이는 제법 가슴을 내밀고 산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몸에 맞는 옷이 마음에 든다. 사팔이는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면서 돌을 걷어찼다. 세상이 그저 즐겁게만 보였다.
아줌마는 정말 고마운 분이다. 나 같은 거지가 뭐 대견하다고 정성을 다할까. 몇 년인가 묵은 가 본 때를 베끼어 주고, 헌 옷이나마 사다가 입히고, 아줌마는 집에 있던 것이라고 하지만 사온 것이 분명해. 참 고마와. 나도 이제 글을 배운다. 개 있는 집 꼬마보다 잘 해야지.
사팔이는 아까 가 본 토굴학교를 생각해 본다. 토담으로 싼 집이나마 한 이십 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하던 학교, 불빛 아래 보이던 애들의 눈빛, 무슨 글자가 가뜩이 써 있던 칠판, 내일부터 거기에서 공부할 것을 생각하니 사팔이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동시에 아줌마가 안다던 교장(교장이라고는 하지만 젊은 청년이다.)의 말이 떠올랐다.
“애가 아주 영리하겠읍니다. 내일부터 보내십시요.”
그러나, 사팔이는 걱정이었다. 순자 말이다. 그녀를 두고 나갈 것 같지가 않았다. 꽁초도 나간 뒤에 안 들어오고, 아줌마는 아주 눈 감고 내일 아침에 오라고 했다.
아니야, 말을 하지 말고 살짝 나와 버릴까. 안 돼, 순자를 속이면 안 된다. 아주 말하고 같이 가자고 할까. 그렇지만 아줌마가 받아 줄까.
사팔이는 벅차는 가슴의 한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을 억제하면서 산비탈을 올라갔다. 동굴 앞에 거의 갔을 때다. 무슨 비명소리가 동굴 안에서 흘러 나왔다. 사팔은 동굴 안으로 내달았다.
우선 꽁초가 시야에 들어왔다. 몹시 당황한 빛이다. 사팔이는 눈을 흡떴다. 순자가 한 쪽 구퉁이에서 가슴을 손으로 가린 채 떨고 있었다.
“순자!”
꽁초가 가로막았다. 사팔이의 눈에서 불이 났다. 순자는 옷이 다 찌겨져 있었다. 저고리는 송두리째 없어져 젖통이 불룩하게 보였다. 아랫도리도 거의 내다보여 허벅다리가 허옇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 개새끼 같은 자식!”
사팔이는 꽁초에게 달려들었다.
“뭣이! 이 자식이 까불어.”
보기 좋게 꽁초의 억센 손이 사팔이의 뺨을 갈겼다.
사팔이는 눈이 번쩍했다. 그 순간 오돌오돌 떨고 있는 순자의 얼굴이 스쳤다. 가슴에서 무엇이 콱 하고 치밀었다. 사팔이는 깡통으로 꽁초의 면상을 갈겼다. 기습이었다. 불의의 강타(强打)에 꽁초가 얼굴을 가렸다. 순간 사팔이의 주먹이 꽁초의 배를 힘껏 갈겼다. 사팔이는 악을 쓰며 갈겼다. 피할 틈도 없었다.
“이 개새끼야, 순자를 건드려!”
코피가 흐르는 꽁초가 배를 안고 쓰러졌다. 사팔이의 눈에 순자의 아랫도리가 허옇게 보였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목구멍이 콱 하고 치밀었다.
사팔이는 쓰러진 꽁초를 발길로 재겼다. 힘껏 걷어찼다.
“뒤져라, 이 도둑놈아!”
꽁초는 마구 고함을 지르며 나둥그렀다. 자식이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사팔이는 그저 힘껏 걷어찼다. 눈이 충혈된 채 쓰러진 꽁초는 피가 문졌다. 피할 틈도 없이 소리치며 나둥그렀다.

사팔이는 달리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옷을 걸친 순자의 손을 끌고 힘껏 달렸다. 그리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자! 우리 둘이 가자, 토굴학교가 아니고 아줌마가 아니라도 좋다. 어디든지 우리 둘이 가자.***

 

출처: 스토리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