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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출생 1899년 7월 21일
사망 1961년 7월 2일
출신지 미국
직업 소설가
데뷔 1923년 단편집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
경력
1936년 공화정부군 가담
1919년~1928년 1928년 토론토 스타지의 특파원
수상
1954년 노벨문학상
1953년 퓰리처상
[헤밍웨이 단편] 깨끗하고 불빛 밝은 곳
늦은 시간이어서 카페에는 노인 한 사람 밖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노인은 전등 불빛을 받아 나무 잎사귀가 드리우는 그늘 속에 앉아 있었다. 낮이면 길거리엔 먼지가 날렸지만 밤이 되면 이슬이 내려 먼지가 가라앉았다. 노인은 귀가 어두웠는데 밤이면 주위가 조용해져서 이렇게 늦게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노인은 그 차이를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카페 안에 있는 두 웨이터는 노인이 약간 취한 것을 알고 있었다. 노인은 좋은 고객이긴 하지만 너무 취하면 돈을 안 내고 나가버리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노인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지난 주에 저 영감 자살을 기도했더랬지."
한 웨이터가 말했다.
"왜요?"
"좌절감에 빠졌던 게지."
"뭣 때문에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아무 것도 아닌 줄 어떻게 알아요?"
"돈이 많으니까."
그들은 문 근처 벽에 가까이 놓인 테이블에 함께 앉아, 바람에 살랑대는 나무 잎사귀 그늘 속에 노인이 혼자 앉아 있는 그 테이블을 빼고는 모든 테이블이 텅 비어버린 테라스를 바라보았다. 한 여자와 군인 한 사람이 길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가로등의 불빛에 군복 칼라에 붙은 놋쇠 숫자가 반짝 하고 반사했다. 여자는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고 군인 옆에 달라붙어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저 군인 친구 헌병한테 걸리는데."
한 웨이터가 말했다.
"하고 싶은 일 하고 나서 걸리면 어떤가?"
"저 친구 어디로 들어가는 게 좋을 텐데. 헌병한테 걸릴 거라구. 오분 전에 헌병들이 순찰을 돌았는데."
나무 그늘 속에 앉아있는 노인이 술잔으로 받침잔을 두드렸다. 나이가 더 젊은 웨이터가 그에게로 갔다.
"뭘 드릴까요?"
노인은 웨이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브랜디 한 잔 더 주슈."
"취하실 텐데요."
웨이터가 말했다. 노인은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웨이터는 노인의 테이블에서 돌아와서 동료 웨이터에게 말햇다.
"저 영감 밤새 저러구 있을 모양인데요. 아이구 졸려 도대체 세 시 전엔 잠자리에 들 수 없으니 원. 저 영감쟁이 지난 주에 죽었어야 하는 건데."
웨이터는 카페 안에 있는 카운터에서 브랜디 병과 받침잔 하나를 더 가져와서 노인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는 받침잔을 내려놓고는 술잔에 브랜디를 가득 채웠다.
"영감님은 지난 주에 돌아가셨어야 했다구요."
웨이터는 귀먹은 그 노인에게 말햇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잔을 가리켰다.
"좀 더 따르슈."
웨이터는 브랜디가 술잔의 굽으로 흘러내려 겹쳐놓은 맨 위의 받침잔에 고일 정도로 철철 넘게 가득 부었다.
"고맙소."
노인이 말했다. 웨이터는 브랜디 병을 카페 안에 갖다놓고는 동료 웨이터와 함께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저 영감 이제 취했어요."
"매일 밤 취하지."
"저 영감 왜 자살하려고 했을까요?"
"난들 어떻게 알겠나?"
"어떻게 자살하려고 한 거죠?"
"끈으로 목을 매달았지."
"누가 줄을 끊은 거예요?"
"영감의 조카지."
"왜 줄을 끊었을까?"
"영감의 영혼이 구원을 못받을까봐 두려웠던 게지."
"돈은 얼마나 가지고 있죠?"
"아주 많을 걸."
"여든 살은 되었을 걸요, 아마."
"어쨌든 여든 살이 넘은 건 틀림없어."
"저 영감쟁이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군. 세 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어가 보질 못하니. 도대체 그 시간에 잠자리에 들다니 말이나 돼요?"
"저 영감은 자고 싶지 않으니까 저러고 있는 거야."
"자기야 외롭겠지만 난 외롭지 앟아. 나한텐 잠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마누라가 있다구요."
"저 영감도 한때는 마누라가 있었지."
"이제는 마누라가 있어봐야 아무 소용도 없죠."
"그거야 알 수 없지. 마누라가 있다면 지금보다 한결 나을 지도 모르지."
"지금은 조카가 돌보구 있죠. 아까 조카가 줄을 끊었다고 말했잖아요."
"그랬지."
"난 저렇게 오래까지는 살고 싶지 않아요. 노인이란 역겹고 지저분한 거라구."
"항상 그러는 건 아니지. 저 영감은 깨끗하잖은가. 술 마시면서 흘리지도 않구. 지금처럼 취해있는데도 말이야. 좀 보게."
"보고 싶지 않아요. 저 양반 제발 집에 좀 갔으면 좋겠군. 일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은 도대체 생각질 않는단 말야."
노인은 술잔에서 눈길을 들어 광장 저쪽을 향하더니 다시 웨이터들을 바라보았다.
"브랜디 한 잔 더 주슈."
노인은 자신의 술잔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말했다. 조바심을 내고있는 그 웨이터가 건너왔다.
"파장이예요."
무식한 사람들이 술취한 사람이나 외국인에게 말할 때 그러듯이 웨이터는 짤막하게 줄여서 말했다.
"오늘 밤은 더 이상 안 됩니다. 이제 문을 닫아야죠."
"한 잔만 더."
노인이 말했다.
"안 됩니다. 파장이라니깐요."
웨이터는 타월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훔치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노인은 일어서서 천천히 받침잔 수를 세고는 주머니에서 가죽 동전 지갑을 꺼내 술값을 지불하고 반 페세타를 팁으로 남겼다.
웨이터는 몹시 늙은 그 노인이 불안스럽게, 그러나 위엄을 잃지 앟은 걸음걸이로 길을 따라 걸어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왜 좀 더 앉아서 술을 마시게 내버려두지 않았나?"
조바심을 내지 않은 다른 웨이터가 말했다. 그들은 셔터를 쳤다.
'두시 반도 안됐는데."
"집에 가서 자고 싶어 그래요."
"한 시간쯤 무슨 대순가?"
:그 노인한테 한 시간보다는 나한테 한 시간이 더 중요하다구요."
"한 시간이면 같은 한 시간이지."
"마치 노인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시는군요. 아니 술 한 병 사가지고 집에 가서 마시면 되잖아요?"
"그게 같은 게 아니지."
"물론 같지야 않겠지만."
마누라가 있는 그 웨이터도 동의했다. 그는 노인한테 부당하게 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조바심이 나서 서둘러대는 것일 따름이었다.
"자네는 어때? 평상시 귀가 시간보다 더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게 겁나지 않는가?"
"아니 누구를 모욕하려는 거예요?"
"아닐세 이 사람아, 그저 농으로 그래 본 거지."
"난 겁나지 않아요."
철제 셔터를 내리고는 일어서면서 조바심하는 그 웨이터가 말했다.
"난 자신있게 믿죠. 자신만만하다구요."
"자네는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지."
"아니 못 가지신 게 뭐가 있어요?"
"일자리 빼고는 다지."
"내가 가지고 있는 거 다 가지고 있잖아요."
"아닐세, 나에게는 자신감도 없고 난 이제 젊지도 않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 집어치우구 문이나 잠그자구요."
"나도 카페에 오래 남아있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들과 마찬가지야. 잠자리에 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말야. 그리구 밤에 밝은 불빛을 원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나이가 더 든 웨이터가 말했다.
"집에 가서 빨리 잠자리에 들고 싶어요."
"우리 둘은 아주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로군."
나이가 더 든 웨이터는 그렇게 말하면서 집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었다.
"젊음과 자신감의 문제만은 아니지. 물론 그것들은 아주 아름다운 것들이지만 말이야. 나는 매일밤 누군가 카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을 닫기가 꺼려진다구."
"아니 밤새 여는 술집도 많잖아요."
"자넨 이해를 못하는군. 우리 카페는 깨끗하고 아늑한 카페가 아닌가. 불빛도 아주 밝구 말이야. 불빛이 아주 쾌적하고 또 저처럼 나뭇잎 그늘도 있구 말이지."
"내일 또 보죠."
젊은 웨이터가 말했다.
"잘 가게."
나이가 더 든 웨이터는 전등 불을 끄면서 혼잣말을 계속했다. 물론 불빛이 중요하지, 하지만 깨끗하고 아늑한 곳이어야지. 음악은 없어도 돼. 그래 음악은 없어도 괜찮아. 이처럼 늦은 시간에는 그런 곳 밖에 없긴 하지만 바 앞에서는 위엄을 갖추고 서 있을 수가 없어.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다. 그가 너무나도 잘 아는것, 그것은 허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무일뿐, 인간도 무일 따름이다. 인생은 오직 무일 뿐이며 우리가 필요로하는 것은 그저 빛, 그리고 어떤 청결함과 어떤 질서 같은 것일 뿐이지. 어떤 사람은 무 속에서 살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지. 하지만 모든 것이 허무하고 허무하고 또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무에 계신 우리 무여, 이름을 무하게 하옵시고, 나라에 무하옵시고, 뜻이 무에서 무해진 것처럼 무에서도 무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무를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무를 무한 것 같이 우리의 무를 무해 주옵시고, 우리를 무에 들지 말게 아홉시고, 다만 무에서 구하옵소서. 허무로다, 오 무로 가득찬 무여, 무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반들거니는 증기 압착 커피 기계가 있는 바 앞에 섰다.
"뭘 드릴까요?"
바텐더가 물었다.
"무요."
"미친 녀석 또 하나 나타났군."
바텐더는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을 돌렸다.
"작은 잔 하나 주시오."
웨이터가 말했다.
바텐더는 잔을 채웠다.
"불빛이 아주 밝고 아늑하긴 하지만 램프를 닦지 않았군요."
웨이터가 말했다.
바텐더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화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작은 잔 하나 더 드릴까요?"
바텐더가 물었다.
"아니오. 그만 됐습니다."
웨이터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를 나왔다. 그는 바나 대폿집은 싫어했다. 깨끗하고 불빛 밝은 카페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래, 이제 그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우면 결국 동이 터올 때쯤이면 잠이 들겠지. 어쩌면 그저 불면증에 지나지 않은 것일 거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게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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