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기축년 새해를 맞아
서예가이자 문인화가,
그리고 수필가이신
천산 최명규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연하장입니다.
천산 형님,
기축년엔 더욱 빛나소서...!
▼ 천산 최명규님의 문인화
(수필) 집
천산 최명규
집을 지었다. 삼십년을 별러서 지은 집이다. 여덟 번째 이사할 때 다시는 옮기지 않는 내 집으로 아주 이사를 하리라. 그리고 분재들도 더 이상 집주인 눈치 보는 일이 없는 그런 곳으로 정착시키기로 모진 마음을 먹었었다.
집이 좀 작으면 어떻고. 흙집이면 어떻고 초가집이면 어떠랴. 마당이 좀 넓어 분재화분을 백여개 놓을 곳이면 되겠다. 담장에 대문 두를 일 없으니 삽살개 한 마리 기르고 장독대 옆에 국화나 심고 벌통이나 두어통 치며 살고 싶었다.
삼십대엔 먹고살기 급급해서 엄두도 못 내고 사십엔 애들 대학교에 정신이 없었다. 오십에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면 그나마도 지을 경제적 희망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었다.
열심히 절약하여 저축해 봤지만 집 지을 만한 땅은 모아지는 액수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었다. 가진 것 모두 털어서 짓기로 하고 땅을 매입했다. 아무 쓸데없는 황무지도 필요해서 사려하면 시세보다 곱절은 달라 한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불문율처럼 시골에선 집을 짓는다 하여 어느 땅이 필요하다면 땅 주인은 언제고 어느 땅이고 간에 가격을 불문하고 내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이런 아름다운 풍습을 오늘 내게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필요를 약점으로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게 서운했다. 어떻든 간에 필요하면 그만큼의 댓가가 지불되어야 했다.
집을 짓는 과정 또한 사람으로 치루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모두 치뤘다. 집 짓는 일에는 이해관계가 직접 부딪치는 친구나 지인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여 느꼈다.
우여 곡절 끝에 사개월여 만에 집을 완성 했지만 계획보다 일천만원이상 더 들었다. 몸도 마음도 지처 이제는 집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 조차도 싫었다.
집을 지으면서 자신도 급한 마음으로 우를 범한 점이 많았다. 토담집을 지으려면 주변의 권고나 조언은 뒤로하고 결심한대로 밀고 나가야 했다.
예로부터 “길가에 농사 못 짓는다.” 는 말이 있듯이 지나가는 사람마다 기왕 짖는 거 조금 보태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등 묘안이 백출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 권고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건축비가 추가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특히 귀가 얇아서 남의 이야긴 곧잘 듣곤 하는데 이번에도 시련을 겪었다.
또 직장에만 다니고 글이나 쓸 줄 알지 건축에는 문외한이다. 나중에 보면 모르는 나를 이용하여 건축비를 줄이는 방법을 알았는데 그처럼 사람을 이용하여 결국 불신하는 인간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살면서 집을 세 채 지어 봐야 잘 지은 집을 가질 수 있다는데 그 말은 맞는 말일 것 같다.
이젠 평생 한번 지을까 말까 한 집을 지었으니 다시 지을 일도 없지만 집을 지을 마음이 있으신 분들을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 하나는 아는 사람에게 집을 맡기지 말란 이야기다. 집을 짓는 사람은 건축비를 아껴야 하고 집 주인은 튼튼하고 좋은 자재를 써야한다.
서로 상반된 길을 가야 하는데 어찌 분란이 없을 수 있겠는가. 행여 지금까지 도타운 관계가 불편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욕심을 버리고 맨 처음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좋게만 지으려면 한이 없다. 가지고 있는 돈과 규모를 맞추어 결정 했다면 누군가 곁에서 “기왕 평생 한번 짓는 거 ”
“나중에 고칠 수 없는 거니까 아예 처음에 나은걸루”.
라는 둥의 조언은 듣지 말라는 이야기다. 지금 시중에 나도는 건축자재의 종류만도 한이 없다. 부족한 듯 모자란 듯이 좋다.
세 번째는 조급히 입주하려 하지 말란 이야기다. 세월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껏도 살았는데 뭐 그리 급할게 있겠는가. 내가 아는 사람은 터를 닦고 돈과 시간이 생기면 기초를 다지고 또 돈이 생기면 벽돌을 쌓고 이렇게 삼년이 넘게 집을 지었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 나도 역시 직장에만 억 매어 있지 않다면 그렇게 내 마음대로 지었을 텐데...
하여간 굳고 말리는 시간 등 여유를 주며 깊이 생각해보고 천천히 지어야 한다.
두 번째 집을 짓는다면, 이제는 잘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또 잘 지어 무었하랴. 그저 비가 새지 않고 세간이나 들여 놓을곳 그리고 피곤한 몸뚱이 하나 뉘일 곳이면 족 한데 모두 과욕이다 .
조선시대 송순 선생님의 시가 생각 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 내어
달 한간 나 한간에
청풍한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일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얼마나 멋진 시인가 ! 어렵게 십년을 모아서 초가삼간을 지어 달빛이 들어오면 한간 내어주고 경치는 들여올 수없으니 욕심없이 살겠다는 선비정신이 그대로 나타난 시 이다.
이런 집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살면 무슨 걱정이 생기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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