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만기(秋萬基) 추태기(秋泰基) 효자문
충남 서천군 장항읍 옥남동 1구 입구에는 정문이 서 있는데 이 것이 바로 효자 추만기, 추태기 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비각이다.
며칠 전부터 추씨 형제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신지 계속 누워만 계셨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음식 드시는 양이 심상치 않아 두 형제의 걱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두 아들이 방에 들어 오자 아버지가 무겁게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어렵게 입술을 뗐다.
"아무래도 내 명줄 오래 갈 것 같지 않구먼. 그러니 나를 묶어 낼 준비들을 해 놓거라."
그 소리에 추씨 형제는 깜짝 놀라며 사뭇 떨리는 목젖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번님, 왜 그리 약한 말씀을 하세요. 늘 범도 두려워 하시잖던 아번님께서... 하루 속히 몸을 추스리시고, 백수에 백수를 더해 사시면서 번창하는 자손들 훈몽도 하시고, 또 그 어여쁜 모습 보셔야지요."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나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옛말에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했어. 내가 내 다한 운명을 알고 있으니 그리 슬퍼하지 말거라."
추씨 형제는 충격이 적지 않았다. 허나 놀란 가슴을 가라 앉히고, 차분히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 지, 또 무엇이 드시고 싶으신 지 여쭈었다. 그리하여 형은 약제를 구하러 전라도로, 동생은 좋다는 약제가 있다는 입소문을 쫒아 홍주까지 가서 구해 받쳤다. 그리고는 몸보신을 위해 형은 바다로, 동생은 강으로 나가 엄동설한 마다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 봉양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끝내 회춘치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두 형제는 하늘이 무너져라 통곡하며 장례를 후히 모시고 3년 시묘살이를 하였다.
추씨 형제의 이 같은 효행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근동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급기야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됐고, 조정에선 오랜 동안 귀감이 되도록 정려를 내리고 이곳에 효자문을 세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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