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작품]/***** 좋은 단편

모닥불 / 잭 런던

소설가 구경욱 2009. 3. 20. 21:56

모닥불

잭 런던(Jack London, 1876-1916)




드넓은 유콘 강을 건너 높은 언덕에 올라섰을 때에는 새벽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는 회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전나무가 무성한 숲 사이로 좁은 길이 동쪽으로 끊어질 듯 말 듯 쭉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그런 길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오느라 숨이 가빠서 그는 꼭대기에 올라 잠시 쉬었다. 시계도 보고 숨을 고르고 싶었다. 아홉 시. 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햇빛이 내리쪼이는 것은 아니고, 해가 뜰 기미도 없다. 맑게 갠 날씨임에도 어쩐지 침울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씨였다. 마치 모든 것이 어떤 꺼풀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것은 모두 해가 뜨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해가 없는 날씨에 익숙해진 것이다. 해를 본 것이 벌써 며칠 전의 일이었다. 해를 또 다시 앞으로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해가 뜬다고 해도 정남향 지평선에 잠깐 그 명랑한 얼굴을 내밀었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는 자기가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폭이 1마일이나 되는 유콘 강이 길게 벌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강에는 얼음이 3피트 두께로 얼어 있었다. 그리고 얼음 위엔 또 그 두께만큼 눈이 덮여 있다. 얼어붙은 얼음 표면의 무늬를 따라 눈도 파도 모양으로 온통 하얗게 물결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하얗다. 북쪽이나 남쪽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 하얀 세상 가운데서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검은 줄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줄은 마치 바다 가운데 섬처럼 여기저기 우거진 전나무 숲을 이어주고 있다. 그 검은 줄 - 그것이 바로 큰 길이었다. 이 길은 남쪽으로 오 백 마일이나 이어진다. 그 길은 칠쿠우트 언덕, 다이어 그리고 바다로 통하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 북쪽으로 70마일 가면 도손으로 통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1천 마일을 계속 가면 누라토에 이르고, 마침내 베링해 연안의 세인트마이클에까지 도착하게 된다. 거기까지의 거리는 모두 1천5백 마일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그 신비한 길, 해가 뜨지 않는 하늘, 무시무시한 추위, 그리고 이 일대의 엄청나게 신비하고 두려운 분위기가 그에겐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상적인 사물인 것이다. 이것은 그가 그런 환경에 오랜 동안 젖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이를테면 '체차크'였다. 이 땅에서 처음 생활하는 사람을 여기선 체차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는 여기 와서 처음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에게 생각을 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일상적인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도 재빠르고 예민하게 대처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그런 일상의 차원을 넘어, 그의 평소 경험을 넘어서는 성격을 지니게 되면 문제가 다르다.

그에게는 영하 50도나 영하 80도나 그게 그것일 뿐, 특별히 다른 의미를 갖는 사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좀더 춥고 불쾌하고 불편한 사건일 뿐이다. 자신이 기온이라는 외부 조건에 의해 심각하게 제약을 받는 하나의 생물이라는 사실, 인간이라는 일정한 더위와 추위 사이의 아주 좁은 영역 안에서밖에 살 수 없는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하나의 생물로서 인간이라는 종류가 갖는 허약함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가 뭔가 명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멸의 존재, 영속적인 것, 이 우주 속에서 인간의 위치가 갖는 의미… 이런 것들은 그의 머리속에 없었다.

영하 50도가 되면 여기 사는 사람들은 심각한 동상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장갑, 귀 덮개, 발을 따뜻하게 하는 모카 신발, 두꺼운 양말 따위 몸을 지킬 수 있는 물건들을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하 50도는 그저 영하 50도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어떤 것이 그것과 관련돼 있다는 것에는 도무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는 방향을 바꾸어 발걸음을 옮기면서 침을 뱉었다. 그 소리가 날카롭게 깨지는 듯한 소리여서 그는 잠시 주춤했다. 그는 또 침을 뱉었다. 이번에도 역시 침은 땅에 떨어지기 전에 공중에서 얼어붙어 깨지는 소리를 냈다. 원래 영하 50도에선 침을 뱉으면 눈에 떨어지면서 깨지는 소리를 내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소리가 눈에 닿기 전에, 이미 공중에서 울리는 것이다.

지금 기온은 틀림없이 영하 50도보다 더 낮다… 그러나 얼마나 더 낮은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온 따위를 지금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다. 헨더슨 크리크의 왼쪽에 있는, 옛날 채굴장에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벌써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동료들은 인디언 크리크에서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길을 이용했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이 우회로를 이용했다. 봄이 되면 유콘 강 여러 섬에서 통나무를 띄울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알아보려고 한 것이다. 여섯 시까지는 캠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좀 어두워지기는 하겠지만 도착할 수는 있다. 그건 분명하다.

그때쯤이면 동료들은 이미 캠프에 도착해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을 것이다. 또 뜨근뜨근한 저녁 식사도 준비해 놓았겠지. 그는 문득 점심 식사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자켓 밑 불룩한 꾸러미를 만져보았다. 보자기에 싸서 내의 속 맨살에 닿게끔 해 놓은 것이다. 이것이 여기서 빵이 얼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걸 하나하나 갈라서 베이컨과 함께 먹는다… 두꺼운 베이컨을 튀겨서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그것을 빵과 함께 먹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커다란 전나무 숲 안으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는 길의 흔적이 더 희미하다. 앞서 썰매가 지나간 자국 위로 눈이 다시 1피트나 더 쌓인 것이다. 지금은 썰매를 끌지 않고 가니 걸음이 훨씬 더 가뿐해서 좋다. 사실 보자기에 싼 점심 외에는 아무 것도 지닌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추위는 너무 지독해서 끔찍할 정도다…

그는 장갑을 낀 한쪽 손으로 감각이 없어진 코와 뺨을 부벼댔다. 정말 지독한 추위다. 구레나룻이 수북하게 길렀지만 그것은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혹독한 추위 속으로 쑥 내민 코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코… 공기는 지독하게 차가웠다.

그의 바로 뒤에는 개가 한 마리 따라오고 있었다. 그 지방의 특산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키모 개였다. 털이 잿빛인 순수한 에스키모 개다. 이 놈은 겉모습이나 그 성질이나 모든 점에서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야생 늑대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개는 혹독한 추위에 질린 것 같았다. 개는 지금이 밖으로 돌아다닐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그것은 이성에 의지하는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정확했다.

사실 지금 날씨는 단순히 영화 50도를 넘는 추위가 아니었다. 영하 60도, 아니 70도를 이미 넘어선 추위였다. 화씨로 영하 170도였던 것이다. 빙점이 영하 32도이니까, 그것은 빙점 아래 107도가 된다(지금 이 소설에 나오는 온도는 화씨를 말한다. 이 온도를 섭씨로 따지면 약 영하 77도 정도가 된다- 편집자 주*)

개가 온도계 따위를 알 리는 없다. 개의 머리 속에는 인간이 두뇌로 느껴 아는 것처럼 그렇게 추위라는 명확한 의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다. 막연하게나마 위험을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개는 뭔가 활기가 없이 주춤거리면서 열심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서 개는 그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할라치면 혹시 캠프라도 찾은 것 아닌지, 어디 일시적으로 피난처를 만들어 불이라도 피우는 것 아닌가 싶어서 열심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개는 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불이 피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사람이 불을 피우지 않으면 개는 눈 속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몸을 움츠리고 지독하게 추운 공기를 피해 체온을 유지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었다.

개의 털에도 입김이 얼어서 얼음이 매달려 있었다. 특히 턱과 코 끝, 눈썹이 얼어서 하얗게 되어 있었다. 사람의 빨간 턱수염과 콧수염에도 그렇게 얼음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더 울퉁불퉁했고, 더운 숨을 내쉴 때마다 점점 더 큰 고드름이 나타났다. 더구나 그는 담배를 씹고 있어서 그 침을 뱉을 때마다 당장 얼어붙어 턱에 들러붙었다. 마치 얼음으로 입 마개를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호박(琥珀) 색깔의, 그리고 그 호박처럼 단단해진 수염은 점점 길어졌다. 만일 넘어지기라도 하면 마치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곳에서 씹는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야 항상 감수해야 할 덕목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전에도 그는 두 번이나 혹독한 추위에 밖으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때는 이렇게 춥지는 않았다. 그래도 17마일쯤 걷고 나서 온도계를 보니까 한 번은 영하 50도, 또 한 번은 55도였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평탄하게 계속 이어지는 숲속 길을 그는 몇 마일 계속 걸었다. 그리고 나서 검은 조약돌이 깔린 넓은 평야 지대를 가로질러 조그만 시냇가에 이르렀다. 그는 언덕을 내려가 얼어붙은 시내를 건넜다. 이것이 바로 헨더슨 크리크였다. 그러니까 분기점에서 10마일 떨어진 지점인 것이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열 시였다. 시속 4마일의 속도로 걸은 셈이다. 이대로 계속 가면 열두 시 반쯤이면 분기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예정대로 잘 도착한 다음,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그는 마음먹었다.

크리크의 시냇물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자 개는 뒤로 쳐졌다. 개는 꼬리를 내리고 어딘지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길은 옛날부터 쭉 썰매가 다니는 길이다. 하지만 언제나 보이던 썰매 자국은 오늘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몇 인치 두께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난 한 달 동안 아무도 이 고요한 크리크를 지나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굳세게 계속 걸었다. 그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지금은 그저 머리 속에 분기점까지 가서 점심을 먹는다는 것, 여섯 시쯤에는 캠프에 도착해서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것이란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말을 걸 상대도 없다. 또 상대가 있다 해도 지금처럼 입이 얼음 마개로 막힌 상태에서는 말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저 무덤덤하게 연신 담배를 씹으면서 호박 색깔의 수염을 점점 더 키울 뿐이었다.

그래도 이따금 정말 지독하게 춥다는, 그리고 이런 추위는 아직 겪어본 일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걸어가면서 장갑 낀 손등으로 뺨과 코를 부볐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인 동작이었다. 그렇게 코를 부비는 손을 그는 계속 바꿨다. 그러나 아무리 문질러도 손을 떼자마자 볼은 금방 마비되고 다음 순간 코끝이 얼어붙었다.

아마 별 수 없이 뺨은 동상에 걸릴 것이다. 그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버드가 끼고 다니던 그 기다란 코걸이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 그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가 되니까 그걸 알 수 있었다. 그 물건은 코는 물론 양 볼까지 덮을 수 있어서 볼도 보호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어쨌든 그 따위가 뭐 대수랴. 볼이 동상에 좀 걸리면 어떻단 말인가. 좀 아플 따름이다. 그렇다고 대단하게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속에 별다른 생각은 없었지만 그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크리크가 구부러진 모퉁이나 떠내려온 나무 따위가 쌓여 있는 곳 이런 불의의 사태가 생길 수 있는 곳은 유심히 살피면서 단 한 순간도 발끝에 신경을 집중해 긴장을 풀지 않았다. 크리크가 구부러지는 모퉁이에서는 놀란 말처럼 멈칫하고 길을 빙 돌아 살피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크리크가 밑바닥까지 다 얼어붙은 것은 잘 알고 있다. 이 극지(極地)의 겨울에 물이 고여 있는 크리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산기슭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이 물은 눈 밑으로 스며들어 얼음 사이를 흐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샘물은 아무리 추운 날에도 얼어붙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엄청난 위험이었다. 그 역시 그러한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함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눈 밑에 3인치, 심한 경우 3피트 깊이의 물이 고여 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반 인치 두께의 얼음이 덮여 있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눈이 쌓이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눈이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 한 번 빠지면 우당탕 빠져 들어가 허리까지 완전히 물에 젖는 일도 생기게 된다.
그가 그 때 기겁을 하고 발을 주춤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발이 휘청하면서 눈에 덮인 얇은 얼음이 와자작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런 추위 속에서 발을 적시는 것은 무척 곤란하고 위험한 일이다. 피해가 아무리 사소하다 해도 일단 걸음이 느려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별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불을 피워 몸을 녹이면서 신발을 벗고 양말과 모카신을 말려야 한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시냇물 바닥과 양쪽 둔덕을 살폈다. 물은 오른쪽에서 흘러오고 있다. 그는 코와 볼을 비비면서 잠시 궁리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확인하면서 발을 내디뎌 왼쪽 시냇가로 방향을 옮겨갔다. 됐다, 일단 위험은 벗어났다. 그는 다시 담배를 꺼내 씹으면서 씩씩하게 원래대로 시속 4마일의 행진을 계속했다.

그는 그 뒤 2시간 동안에 그런 함정을 몇 개나 만났다. 물웅덩이를 감추고 있는 눈은 대개 움푹 패어 들어가 있고, 거기에 사탕 과자 모양의 결정이 생겨난다. 그러니까 자세히 살피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또 한 번은 위험해 보이는 장소에 개를 먼저 보내려 했다. 그러나 개는 쉽게 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가 뒤에서 떠밀자 잽싼 걸음으로 아무 자국도 없는 눈 위를 가로질러 갔다. 그러나 갑자기 개는 아래로 푹 꺼지면서 물에 빠졌다. 개는 버둥거리면서 안전한 곳으로 빠져 나왔다.

개의 앞발과 뒷다리가 온통 젖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개는 허둥지둥 혀로 다리에 얼어붙은 얼음을 핥았다. 그리고 눈 위에 주저앉아 발톱 사이에 얼어붙은 얼음을 이로 물어 깨기 시작했다. 그것은 본능적인 동작이었다. 얼음을 그대로 두면 발은 동상에 걸리게 된다. 물론 개가 그것을 인식할 리는 없다.

다만 개는 지금 생명의 내부 저 깊숙한 곳에서 시키는 명령에 복종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인간인 그는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오른손 장갑을 벗고 개가 얼음 조각을 깨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가 장갑을 벗고 손가락을 찬 공기에 드러낸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추위에 얼어붙어 무섭게 빨리 마비됐다. 정말 지독한 추위였다. 그는 서둘러 장갑을 다시 끼고 가슴을 마구 쳐서 손을 녹이려 했다.

낮 열두 시는 가장 태양이 밝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 지방에서 겨울철의 해는 저 멀리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지평선 위로 보일락 말락하는 정도였다. 헨더슨 크리크와 지평선 사이를 솟아오른 땅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낮의 개인 하늘 아래에 크리크를 걸어가는 그의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열두 시 반, 그는 단 1분의 오차도 없이 크리크의 분기점에 도착했다. 그는 스스로의 걸음이 빠른 것이 만족스러웠다. 이대로 간다면 저녁 여섯 시에는 틀림없이 동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켓과 셔츠 단추를 풀어 점심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데는 기껏 15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짧은 시간에 찬 공기에 드러난 손가락은 무서운 속도로 얼어붙었다. 그는 장갑을 바로 끼지 못하고 손가락을 다리에 몇 번씩 세게 두들겼다. 그리고 나서 눈이 덮인 통나무에 걸터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다리를 두드린 손가락의 아픔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이제 빵 한 조각 차분하게 먹을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그는 연달아 손가락을 다리에 두드리고 나서 장갑을 끼고 다른 손의 장갑을 빼고 빵을 먹으려고 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려 한 입 가득 빵을 베어 물려고 했지만 입가의 얼음 때문에 그게 쉽지 않았다.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껄걸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웃는 동안에도 찬 공기에 드러난 손가락이 다시 마비되는 것을 깨달았다.

통나무에 걸터앉을 때 발가락이 느꼈던 통증도 벌써 사라졌다. 도대체 지금 자기 발가락이 따스한 것인지, 아니면 마비되어버린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모카신 속에서 발가락을 오므락거리고 나서야 발가락이 이미 마비된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는 부랴부랴 장갑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까처럼 쿡쿡 쑤시듯이 아픈 감각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발을 동동거렸다. 분명 춥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설퍼 크리크에서 왔던 친구가 그랬지… 이 지방은 가끔 지나칠 정도로 추워진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때 나는 그 친구를 비웃지 않았던가!

이것이야말로 모든 일에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증거이다. 그래 맞다! 정말 너무나 춥다. 그는 성큼성큼 여기저기 걸어다니면서 발을 동동거렸다. 그리고 두 팔을 여기저기 두드렸다. 그러자 겨우 온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런 다음에 성냥을 꺼내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 봄 홍수 때 떠내려온 지푸라기들이 덤불 근처에 쌓여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땔나무를 모으고 불을 피우려고 했다. 마침내 조그만 불씨를 잘 살려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불꽃은 이제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그는 몸에 붙은 얼음을 불에 쬐어 녹이고 나서 불을 쬐며 빵을 먹었다.

이 때만은 주위의 지독한 추위도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선다. 개는 좋아라고 뛰면서 몸을 녹이려고 불 가까이 다가왔다. 불에 바짝, 그러나 데지는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서 몸을 쭉 펴고 누워 있었다.

식사를 끝내자 그는 파이프에 담배 잎을 담아 기분 좋게 한 대 피웠다. 그리고 나서 장갑을 끼고 모자를 귀까지 푹 눌러쓴 다음 일어났다. 그리고 왼쪽 지류를 끼고 크리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개는 실망스러운 듯 모닥불을 돌아봤다.

그는 추위라는 걸 모른다. 틀림없이 그의 조상들도 모두 추위라는 것에 대해서 뼈저리게 경험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추위, 빙점 아래로 107도나 내려가는 추위라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개는 알고 있다. 그리고 개의 조상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개는 조상들의 지식을 이어받아 이렇게 무서운 추위에는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개는 지금 이런 시기에는 눈 속에 굴을 파고 기분 좋게 누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가로막아줄, 두툼한 구름의 장막이 드리워지는 그 때를 기다려야 할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사나이와 개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다. 개는 그의 노예일 뿐이다. 지금까지 개가 그에게서 받아온 사랑이란 그저 후려갈긴다고 위협하는 거친 고함 소리 뿐이었다. 그래서 개는 자기가 느끼는 위험을 그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가 안전하건 말건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다.

개가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도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일 뿐이다. 그러나 사나이는 휘파람을 불며 개를 불렀다. 바로 그 후려갈긴다는 위협을 하며 소리를 친 것이다. 개는 움찔하면서 그 뒤를 쫓아갔다.

그는 다시 담배를 씹으며 침을 뱉기 시작했다. 호박 색깔의 수염도 입 주위에 다시 길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누런 입김이 입 근처 수염에, 그리고 윗눈썹과 속 눈썹에 하얗게 달라붙기 시작한다. 헨더슨 크리크의 왼쪽 지류에는 위험한 샘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길을 떠난 지 반 시간 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갑자기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다지 깊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눈이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위로 허둥대며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벌써 그의 무릎은 절반 가량 젖어 있었다.

그는 화를 내면서 재수가 없다고 투덜댔다. 여섯 시 쯤에는 캠프에 도착해 동료들과 만나서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적어도 한 시간 가량은 늦어질 것 같다. 불을 피우고 신을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런 정도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발걸음을 돌려 시냇가 둑으로 올라갔다.

둑 위에는 조그만 전나무 주위에 마른 나뭇가지들이 엉켜 있었다. 아마 홍수 때 떠내려왔을 것이다. 대부분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었지만 그 가운데는 큰 가지도 있었다. 가느다랗게 말라붙은 지난해의 풀도 많았다. 그는 눈 위에 큰 가지를 몇 개 벌려놓았다. 그것이 불의 받침대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게 있어야 불이 타 들어가 눈이 녹아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벚나무 껍질을 꺼내어 성냥을 켜고 불을 붙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종이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불이 잘 살아났다. 그는 받침대에 벚나무 껍질을 놓고 마른 풀더미 몇 개와 제일 작은 마른 가지들을 골라서 작은 불씨를 피우려고 했다.

그는 이제 뼛속 깊이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차근차근 조심해서 불을 살렸다. 차츰 불꽃이 커지면서 이번에는 좀더 큰 가지를 넣었다. 눈밭에 웅크리고 앉아 덤불에 얽혀있는 조그만 가지를 꺼내 불에다 집어넣었다. 지금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영하 75도에서는 단 한 번에 불을 피워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발이 젖어 있다.

발이 젖어 있지 않다면 반 마일 정도 뛰면 혈액 순환이 되돌아온다. 그러나 한 번 발이 젖으면, 그리고 영하 75도의 기온에서는 빨리 달려도 혈액 순환이 회복되지 않는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점점 더 단단하게 몸이 얼어붙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설퍼 크리크의 해안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경험을 쌓았던 그 노인이 작년 가을에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그 노인의 충고를 뼈에 사무치게 고맙게 되새기고 있었다. 발은 벌써 거의 감각을 잃은 상태다. 불을 피우기 위해 장갑을 벗었기 때문에 손가락도 이미 마비되어 있었다.

시속 4마일로 걸을 때에는 심장에서 뿜어내는 피가 온몸 구석구석, 피부와 손발에까지 고루 돌고 있다. 그러나 일단 발걸음을 멈추면 심장의 고동도 약해진다. 텅 빈 허공의 이 추위, 혹독한 추위가 지구라는 혹성의 한쪽 모서리를 혹독하게 몰아치는 것이다. 그 모서리에 서 있는 그에게 추위는 인정사정 없이 밀어닥친다.

몸속을 돌고 있는 피도 이 추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숨을 죽여야 한다. 개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피도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개처럼 추위를 피해 한 구석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시속 4마일로 걷게 되면 피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의 몸 표면까지 흘러든다. 그러나 이제 피는 추위를 피해 몸 속 저 깊이 숨어버렸다.

혈액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이 바로 손과 발이다. 그의 손발은 아직 완전히 얼어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젖은 발은 훨씬 빨리 얼어붙는다. 노출되는 손가락은 그만큼 빨리 마비된다. 코와 볼은 이미 얼어버렸다. 피가 점점 몸 안으로 후퇴하면서 온몸이 그만큼 얼어붙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발끝과 코, 뺨이 동상에 걸려 아픈 정도이리라. 이제 불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손가락만큼 굵은 나뭇가지를 불에 넣는다. 조금만 더 있으면 팔목만큼 굵은 나뭇가지를 불에 넣어 태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신발을 벗어도 된다. 그렇게 손발을 말리고, 벗은 발에 불을 쬘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눈으로 발을 잘 문질러야 한다.

잘 타는구나. 타오른다. 그는 설퍼 크리크의 그 노인의 충고를 머리속에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 노인은 말했다. 영하 50도 이하에서는 그론다이크 지방을 절대 혼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아주 엄숙하게 타일렀지. 그런데 말씀이야… 나는 이렇게 여기 혼자 와 있지 않은가. 물론 어렵기는 하지, 단 혼자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어려움을 빠져 나오지 않았느냐 이 말씀이야…

물론 어려운 일도 있었지. 단 혼자서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래도 난 잘 빠져나왔어. 원래 늙은이들 가운데는 쓸데없이 걱정만 하는 작자들이 있단 말이야.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것은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별일 없을 거야. 사내 자식이라면 누구나 혼자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이다.

하지만 뺨과 코는 너무 빨리 얼어붙고 있었다. 그는 자기 손가락이 그렇게 빨리 마비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완전히 마비된 것이다. 나뭇가지를 집어들려고 해도 손가락을 거의 구부릴 수 없었다. 손가락과 몸뚱이가 자기 자신과 무관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가지를 만져도 자기가 정말 손에 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했다. 자기 자신과 손끝을 연결하는 끈이 끊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제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불이 타고 있으니 말이다. 불꽃이 탁탁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안전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그는 모카신의 끈을 풀었다. 모카신은 완전히 얼음에 덮여 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온 두터운 독일제 양말이 얼어붙어서 마치 강철로 다리를 덮고 있는 것 같았다.

모카신 끈은 엄청난 화재가 일어나 뒤틀린 철근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마비된 손으로 모카신 끈을 잡아당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칼집에서 칼을 뺐다.

그러나 모카신 끈을 칼로 끊기도 전에 재앙이 일어났다. 이것은 어쩌면 그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의 실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나무 밑에 불을 피운 것이 잘못이었던 것이다. 불은 나무 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피워야 한다. 그런데 그는 덤불에서 작은 가지를 꺼내어 불에 넣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만 했다.

그가 불을 피운 그 나무의 가지에는 눈이 무겁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 주일 동안 바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가지마다 눈이 그득 얹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마른 나뭇가지를 잡아당길 때마다 전나무에는 조금씩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물론 그 충격이란 정말 미미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재난이 일어날 수 있었다.

전나무의 높은 나뭇가지에서 눈더미가 우르르 쏟아졌다. 눈더미는 그 밑에 있는 가지의 눈더미와 합쳐져서 계속 내려온다. 전나무의 가지 전체의 눈이 마치 눈사태처럼 커져서 쏟아져내린 것이다. 아무 예고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눈더미는 그와 모닥불 위에 쏟아져 순식간에 불을 꺼 버렸다. 불은 이제 흔적조차 없었다. 불이 타던 자리에 하얀 눈더미만 어지럽게 덮여 있었다.

그는 아찔했다. 마치 사형 선고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불이 타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다시 침착을 되찾았다. 설퍼 크리크의 그 노인이 했던 말이 옳았다. 동행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지금 같은 위기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이 대신 불을 피워줄 테니까.

좋다, 어쨌든 내가 직접 다시 불을 피워야 한다.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다. 아마 지금은 불을 잘 피운다 해도 발가락 몇 개 잃는 것쯤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발은 이미 심각하게 얼어 있는 상태다. 게다가 불을 새로 피우려면 시간이 좀 더 걸려야 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주저앉아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흘러가는 동안 그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무가 사람 뒷통수를 때려 불을 꺼트리는 일이 없도록 탁 트인 넓은 곳을 골라 불을 피울 받침대를 놓았다. 그리고 나서 홍수에 휩쓸려 내려온 무더기에서 마른풀과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모았다.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그 물건을 집을 수 없어서 그는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긁어모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썩은 가지와 파란 이끼 부스러기 따위 불 피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도 많이 섞이게 된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체계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나중에 불이 잘 피워지면 집어넣을 굵은 가지들까지 한 아름 모아놓았다.

이러는 동안 개는 옆에 앉아서 어떤 안타까움의 표정을 눈에 드러내면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개에게 불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지금 불을 피우는 것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의 표정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준비를 모두 마치고 그는 다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벚나무 조각을 찾아 뒤적였다. 호주머니 속에 벚나무 조각이 들어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손가락에 감각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버스럭거리며 계속 뒤졌다. 손에 쥐려고 해도 도무지 잡히질 않는다. 이러고 있는 동안 점점 발이 얼어간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는 점점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래도 냉정을 잃으면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공포에 맞서 싸웠다. 장갑을 입에 물고 손에 끼운 다음 두 팔을 흔들면서 옆구리에 손을 갈겼다. 앉아서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일어나서 손을 옆구리에 계속 때렸다.

그러는 동안 개는 눈 위에 앉아서 그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여우처럼 풍성한 꼬리로 따뜻하게 앞발을 덮고, 여우처럼 뾰족한 귀를 쫑긋 세운 채 도사리고 앉은 모습이었다. 저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따뜻한 옷을 입고 나와 포근하고 안전하겠지… 그는 팔을 흔들어 손을 몸에 때리면서 이 짐승에 대해 부러운 생각이 마음속으로 뭉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한참 그렇게 때리자 손가락에 희미한 감각의 신호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점점 심해져서 찌르는 것처럼 아파졌다. 하지만 이 아픔이야말로 그에게는 반가운 것이다. 그는 오른쪽 장갑을 벗고 벚나무 껍질을 꺼냈다. 공기에 노출된 손가락은 다시 순식간에 마비된다.

그는 유황 성냥 다발을 꺼냈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에 얼어붙어 손가락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성냥을 하나 꺼내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성냥 다발을 눈 위에 떨어트렸다. 집어올리려고 해 본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마비된 손가락으로는 만질 수도, 집을 수도 없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발, 코, 뺨… 어느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모든 마음을 성냥에 집중한다. 촉감 대신 이제 시각에 의지한다. 손가락이 성냥 다발 양쪽에 가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런 다음 손가락을 오므린다 - 이를테면 오므리려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그 끈이 끊어져 있어서 손가락은 말을 듣지 않는다. 오른손에 장갑을 끼고 무릎에 탁탁 쳤다. 그런 다음 장갑을 낀 두 손으로 듬뿍 눈과 함께 성냥을 긁어 올려 무릎에 놓았다. 그러나 이걸로 일이 다 된 것은 아니다.

몇 번이나 계속 시도한 끝에 장갑을 낀 두 손목으로 간신히 성냥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간다. 억지로 입을 벌리는 바람에 얼음이 버석버석 깨진다. 성냥을 아래턱에 붙이고 입술로 성냥 꼴을 하나 빼내려고 윗니로 성냥 다발을 긁었다. 성냥 꼴이 빠져 나왔으나 그만 무릎에 떨어지고 말았다.

도무지 잘 되는 게 없다. 그 성냥 꼴을 도무지 집어 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성냥 꼴을 이빨로 물어서 빼낸 다음에 다리에 부비는 것이다. 스무 번 이상 부빈 다음에야 겨우 불이 켜졌다. 불이 켜지자 이빨에 문 그대로 벚나무 껍질에 갖다 댔다. 그러나 유황 연기가 타오르면서 코를 통해 폐로 들어가는 바람에 갑자기 기침이 터져 나왔다. 성냥은 다시 눈에 떨어져 꺼져버렸다.

설퍼 크리크의 그 노인이 말한 것이 맞았어! 그는 절망하는 그 순간에도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별로 당황하지도 않고 계속 생각했다. 영하 50도 이하에서 밖을 돌아다니려면 반드시 동행이 있어야 한다. 그는 다시 두 손을 때렸지만 이제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불현 듯 이빨로 장갑을 물어 빼고는 두 손을 다 차가운 공기에 드러냈다. 두 손목으로 성냥 다발을 꼭 끼어 잡았다. 아직 팔의 근육은 얼지 않았다. 그래서 두 손목을 다 쓰면 성냥 다발을 꼭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성냥을 다리에 부벼댔다. 불꽃이 확 일어났다. 유황 성냥 70 개비가 한꺼번에 불타오른 것이다. 바람이 없어서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젖혀 숨이 막힐 것 같은 성냥 연기를 피하면서 불이 붙은 성냥 다발을 전나무 껍질에 갖다 댔다. 그렇게 하고 있노라니 손에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아픔으로, 그리고 다시 찌르는 것 같은 격심한 통증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는 아픔을 참고 성냥불을 계속 벚나무 껍질에 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손이 불 기운을 흡수하는 때문인지 벚나무 껍질에는 쉽사리 불이 붙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두 손을 놓아 버렸다. 타고 있던 성냥 다발이 치익- 소리를 내며 눈 위로 떨어졌다. 그래도 벚나무 껍질에는 아직 불이 붙어 있었다. 그는 서둘러 마른풀과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그 불 위에 놓기 시작했다.

두 손목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잘 탈만한 나무를 고를 수는 없었다. 썩은 나뭇가지나 가지에 묻은 푸른 이끼 따위는 되도록 이빨로 떼어내려고 했다. 조심스럽게, 볼품없는 동작으로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불을 살렸다. 이것은 바로 생명의 끈이라고 해야 한다. 절대 꺼트려서는 안 된다. 이미 피부에는 피가 돌지 않는 것 같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그는 점점 더 겁에 질렸다.

그때 커다란 푸른 이끼 조각이 불 위로 똑바로 떨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 이끼 조각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몸이 떨리는 바람에 그 조그마한 불씨가 온통 흐트러지고 말았다. 타고 있던 마른풀과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사방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다시 긁어모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몸이 떨려서 모을 수가 없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은 결국 다 흩어져버렸다. 가지에 붙은 불은 하나씩 하나씩 연기를 내면서 꺼졌다. 불을 공급해야 할 사람이 결국 자신의 역할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는 망연자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득 개가 눈에 띄었다. 개는 타다 남은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며 눈 위에 앉아 있었다. 개는 앞발을 번갈아 조금씩 들어가면서 몸의 중심을 이리저리 옮기는 동작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굽혔다 펴는 동작을 계속하면서 개는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었다.

개를 본 순간 그의 머리에는 무서운 생각이 번득였다. 엄청난 눈보라를 만나 데리고 있던 소를 죽이고 그 시체 속에 들어가 목숨을 건졌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개를 죽이고 아직 그 시체에 온기가 남아 있을 때 두 손을 거기에 넣는다. 그러면 손의 마비도 사라지고, 불도 다시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개를 불러 가까이 오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 개는 어떤 공포를 느낀 모양이었다. 아직까지 개는 주인이 그런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수상하다… 개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깨달았다. 어떤 위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개의 머리 한 구석에서 그에 대한 경고음이 들려온다.

개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귀를 늘어뜨리고 몸을 굽혔다 펴는 동작, 그리고 앞발을 번갈아 들어올리는 동작이 더욱 빨라졌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오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엎드려서 개에게 기어갔다. 이 이상한 모습이 더욱 개의 불안감을 부채질한 모양이다. 개는 옆으로 슬쩍 몸을 피했다.

그는 눈 위에 앉아서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서 이빨로 장갑을 물어서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밑을 내려다보고 자기가 정말 일어섰는지 확인해야 했다. 두 발의 감각이 사라져서 사실상 그는 대지로부터 격리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그렇게 우뚝 서 있는 모습만 보여줘도 개의 마음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의심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단호한 모습으로 매질을 한다며 소리를 지르자 개는 언제나처럼 순순히 그에게 다가왔다. 개가 손이 미치는 거리에까지 다가오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개에게 손을 불쑥 뻗었다. 그러나 손가락이 쥐어지지도 않고 이미 감각이 다 사라진 것을 알고 그는 속으로 소름이 끼쳤다.

두 팔도 이미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잠깐 동안 자기의 손이 이미 마비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개가 도망가지 전에 얼른 두 팔로 개의 몸뚱이를 꼭 붙잡았다. 개는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그렇게 눈 위에 주저앉아서 개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개 몸뚱이를 안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다. 도저히 죽일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그의 손으로는 칼을 뺄 수도, 쥘 수도 없다. 개의 목을 조를 수도 없다.

손은 이제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그는 개를 놓아줬다. 개는 다리 사이에 꼬리를 감추고 울부짖으며 뛰어 달아났다. 그리고 나서 40피트쯤 떨어진 곳에 멈춰서 귀를 날카롭게 쫑긋하며 그를 이상하다는 듯 지켜봤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기의 손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두 팔 끝에 여전히 손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자기 손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기묘한 일이었다. 그는 팔을 휘두르면서 장갑 낀 손을 옆구리에 때렸다. 5분쯤 그렇게 하자 피가 심장에서 몸의 표면으로 흘러나오면서 오한이 그쳤다.

그러나 두 손의 감각은 역시 살아나지 않았다. 두 팔 끝에 손이 추처럼 매달려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둔하고 무거운 죽음의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이미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동상, 손발을 잘라내야 하는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걸 깨닫는 순간 죽음의 공포가 불현듯 그의 폐부를 찔렀다. 그는 희미한 자국을 따라 시냇가 길을 뛰었다. 개도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는 아무 목표도 없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무작정 뛰었다. 이런 공포는 난생 처음 느끼는 것이다. 눈을 헤치며 허둥지둥 뛰어가는 동안 그의 눈에는 별의별 것이 다 보였다. 크리크의 둑, 오래 전에 떠내려와 쌓인 나무조각들, 잎이 다 떨어진 백양목, 저 하늘… 그렇게 계속 뛰자 몸에 열이 났다. 오한도 멎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뛰면 발은 더워질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얼마 동안 뛰어가면 캠프에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료들도 만날 수 있다. 손가락 몇 개, 그리고 얼굴이 망가질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캠프에까지 가기만 하면 동료들이 돌봐줄 테니까 다른 곳은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머리에는 다른 생각도 떠오르고 있었다. 과연 캠프까지, 동료들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까. 몇 마일, 몇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 않은가.

동상에 걸리고서 시간이 너무 지났다. 얼마 못 가서 곧 몸이 뻣뻣해져서 쓰러질 것이다. 그리고 죽게 된다. 이런 생각을 그는 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물리치려고,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뒤로 물러섰다가 어느새 다시 나타나 그에게 속삭였다. 그는 다시 이런 생각을 물리치고 억지로라도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다.

발이 대지를 차고 있다. 그리고 몸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도 발은 완전히 얼어서 전혀 감각이 없다. 이렇게 얼었는데도 뛸 수 있다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몸뚱이가 땅 위를 낮게 날고 있는 것 같다. 대지와는 맞닿아 있지 않다. 어딘가에서 희랍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머큐리를 본 적이 있다. 대지를 낮게 스치며 나는 머큐리도 지금 이런 기분일까?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동료들이 있는 캠프까지 뛰어간다는 그의 방법에는 허점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체력이 그걸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몇 번 발을 헛디디고 비틀거리다 마침내 엉거주춤 쓰러졌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앉아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쉬지 말고 줄곧 그냥 걷기만 하자.

눈 위에 앉아서 숨을 돌리자 온몸이 후끈한 게 여간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오한도 가시고 따뜻한 기운이 가슴과 배에까지 퍼져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코와 뺨은 손으로 만져봐도 여전히 아무 감각도 없었다. 이렇게 얼어붙으면 아무리 뛰어도 언 것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손발도 아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몸의 얼어붙은 부분은 점점 더 커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꽉 눌러버리고 잊어버리려고 했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해 보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는 그런 기분, 그런 공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그 생각은 악착같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머리에는 완전히 얼어죽은 자신의 시체의 모습까지 환상처럼 떠올랐다.

이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길을 따라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좀 느리게 걸어보기도 했지만 자신의 몸에서 얼어붙은 부분이 점점 확대되는 상상을 하게 되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러는 동안 개는 줄곧 그의 뒤를 따라서 뛰고 있었다. 그가 두 번째로 넘어지자 개는 꼬리를 말아 앞발 위에 걸치고 안타깝게 그의 앞에 마주앉았다. 그 눈초리가 어쩐지 이상하게 보였다. 그 따뜻하고 안전한 모습을 보며 그는 화가 치밀었다. 그가 욕을 퍼부어대자 개는 귀를 내려뜨리며 마치 용서를 빌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오한이 전보다 더 빨리 닥쳐왔다. 이제 바야흐로 그는 추위와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방에서 추위가 사정없이 몸으로 스며든다. 쫓기는 심정으로 그는 또다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처 백 피트도 가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다시 고꾸라졌다. 이것이 그의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숨을 돌려 바로 앉았다. 그는 이제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물론 그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이렇게 거창한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머리에 처음 떠오른 비유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목을 잘린 닭처럼 파닥거리고 버둥거리는 것 같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 자기가 지금까지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 어쨌든 얼어죽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좀더 점잖은 모습으로 그것을 맞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마음속에 새로운 평화가 깃드는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희미하게 졸음이 찾아왔다. 이건 좋은 생각이다. 잠이 들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마취제를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얼어죽는 것이 그다지 끔찍한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소름끼치게 죽는 일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동료들이 이튿날 자기의 시체를 발견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자기 자신도 동료들과 함께 이쪽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서 자기의 모습을 찾고 있다. 여전히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자기가 눈 속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건 이미 자기 자신이 아니다.

왜냐 하면 자기 자신은 그 몸뚱이를 벗어나 동료들과 함께 서서 그것이 그렇게 눈 속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춥다… 미국 본토에 돌아가면 정말 추운 것이 어떤 것인가를 사람들에게 확실히 얘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문득 설퍼 크리크 노인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훈훈해 보이는 모습, 여유있는 자세로 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 노인의 모습이 아주 뚜렷이 떠오른다.

"말씀하신 것이 맞았어요. 어르신, 그 말씀 그대로라구요…" 그는 설퍼 크리크의 노인을 향해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잠에 빠져들었다. 개는 그의 앞에 마주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길고도 느릿느릿한 황혼 가운데 짧은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도무지 불을 피울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저렇게 눈 위에 주저앉아서 불을 피우지 않는 일을 개는 아직 경험한 적이 없다.

어둠이 주위를 덮어오자 개는 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개는 앞발을 번갈아 들어올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다가 주인이 호통을 칠까 두려워 금방 귀를 숙이곤 했다. 그러나 그는 도대체 아무 말도 없다. 이윽고 개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조금 더 있다가 그의 옆으로 기어가 시체의 냄새를 맡았다.

개는 털을 쭈뼛 세우며 뒤로 얼른 물러났다. 싸늘한 하늘 아래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뛰어노는 것 같다. 개는 거기서 그렇게 울부짖으며 서 있었다. 그러다가 몸을 돌렸다. 캠프가 있을 것처럼 짐작되는 방향으로 개는 뛰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먹을 것과 물을 공급해줄 다른 인간을 찾아 개는 빠르게 길을 따라 뛰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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