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욱 단편소설] 동백나무 숲의 異邦人
동백나무 숲의 異邦人
봄은 봄이었다.
어느새 삭풍이 잦아들었다. 태봉산 골짜기를 기세 사납게 불어 내리던 바람이었다. 대신 돌섬 쪽에서 불어오는 찝찔한 갯내음이 잔뜩 밴 바람으로 슬며시 바뀌어 있었다. 내 마음을 남실거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훈훈한 느낌의 갈마바람으로.
이때가 되면 항상 그랬듯이 별장 앞뜰의 동백도, 앞을 다투어 화려하게 꽃망울을 툭 터트리기 시작한다. 겨우내 그리움을 참아 내느라 가슴에 든 피멍 같은 꽃망울이다. 그래서 꽃잎을 건드리는 갈마의 손길이 수줍어 그 빛이 설레는 내 마음처럼 마냥 붉었다.
나는 행여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별장이 있는 동백나무 숲 쪽을 흘끔 쳐다본다. 어찌 아닐까, 먼발치에 그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아예 한 걸음 더 내려와 갯바위 위에 앉아 있다. 먹이를 노리는 갈매기처럼 잔뜩 옹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굴을 따던 손끝이 파르르 떨려 온다. 무언가에 놀래거나 끔찍함을 느끼고 전율하듯이.
나는 그가, 내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자그만 손짓에 동작 하나까지 날카롭게 쪼아 보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어 이를 부인하려 애를 쓴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분명 내가 아닐 거야..."
그의 시선이 모닥불을 마주한 듯 따갑게 느껴진다. 그래서 뺨이라도 얻어맞은 듯 얼굴이 후끈거린다. 이 같은 시선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진작의 일로 벌써 달포 전쯤의 일이다. 그랬으므로 화들짝 놀랄 일도,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을 일도 아니었다. 따라서 당연히 받아들일 몸에 밴 일상의 한 부분처럼 여겨질 일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긴장하고 있다.
당시 나는 혼자만의 심한 착각일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래서 짐짓 넉넉한 웃음을 흘렸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볼 때, 결코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 그의 시선 끝은 내게 맞춰져 있었다.
맨 처음 그의 눈길과 마주친 것은,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을 때였다. 잠시 허리 쉼을 하다가 그를 발견했던 것이다.
"별스런 일이네...?"
그는 늘 동백나무가 있는 언덕 위 벤치에 앉아 바다 정취를 즐겼었다. 그랬던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개잡이 아낙들에게 잠시 시선을 뿌리고 있을 뿐이라 생각했으므로, 굳이 우연의 일치 정도로 치부해 버렸었다.
며칠 전 일이다. 선착장에서 하는 어촌계장네 그물코 손질 품팔이 갔을 때였다. 그의 눈길이 갯벌에서 조개잡이를 하고 있는 아낙들로부터 내게로 옮겨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동안 과녁을 향해 날으는 화살처럼 날카로운 그의 시선이 줄곧 내게 던져져 머물고 있었음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세상살이 쓴맛에 익히 길들여진 조그만 어촌의 보잘 것 없는 아낙에 불과하다. 그랬으므로 관심을 보이는 누군가로부터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은 사뭇 기분 좋은 일이며, 가슴 설렐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순박한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흥! 기가 막혀... 꼴에 하릴없는 사내라고..."
나는 고개를 흔들어 그의 눈빛에 젖어 드는 것을 짐짓 떨쳐 버렸다. 흐벅진 속살들을 훤히 드러내 보이는 것도 아닌 상황이었으나, 왠지 수치스럽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어쨌든 그 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었다. 이깟 낯모르는 사내의 예사롭지 않은 눈길에 잠시 노출됐다 하여 난리가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었으므로, 비난의 화살처럼 섬뜩한 눈초리를 그에게 쏘아붙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나를 지켜보는 목적이나 개입된 감정이 어디에 있고 무엇이든, 커다랗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결혼 생활 십 여년 만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그저 사내라면 질려 버려고, 이제는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화냥기가 다분한 구판장 여편네처럼 뭇 사내들 품을 해망쩍게 옮겨 다니는 등, 헤프게 놀아났던 이력이 있어 사내라면 이골이 난다는 얘기가 아니다. 남편의 감때사나운 태거리 하나 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는 얘기일 뿐이다.
나는 살랑이는 봄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다. 그깟 눈길에 어이없게도 마음이 흔들릴 철부지 소녀 역시 아닌 것이다. 아무리 한 쪽 손이 없는 불구의 몸에, 술독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내. 즉 알코올 중독으로 제대로 서방 구실조차 못할망정 분명 바깥 사내가 버젓이 살아 있는 유부녀이다. 그랬으므로, 이런 일은 전혀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더욱이 모두가 먹고 살기에 급급한 갯마을 실정이다. 따라서 내가 이렇듯 행복한 잡념에 사로잡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고 노예처럼 이끌려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겐 시간적 겨를도, 경제적 여력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가 내 모든 행동거지를 틀림없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서부터 모든 게 변하고 있었다. 평소 감정 이입에 늘 인색하던 내가, 난생 처음 차마 얼굴을 붉히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소녀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가슴 속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있었던 본능적 감정을 야릇한 그의 눈초리가 자극시켜 놓았던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얘기지만, 요즈음 나는 뒤척이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의 뇌세포는 그에 대한 생각으로 끊임없이 분열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두개골이 깨질듯한 통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별장 쪽을 흘끔거리는 습관까지 생겨났다. 그가 갈포에 들어온 이후 일어난 놀라운 변화였다.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처럼, 또 다른 습관으로 버젓이 자릴 잡은 것이다.
그가 갈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난 초겨울이다. 첫눈이 내리던 날로, 눈보라가 자못 거칠게 몰아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선착장에 있는 구판장에 다녀오고 있었다. 술에 곤드라진 남편을 질질 끌다시피 부축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그가 탄 검은 색 승용차가 갈포에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제기랄...!! 으시대며 자가용만 타고 다니면 장땡인가?"
나는 그가 눌러 대는 크락션 소리에 부아가 일었다. 비좁고, 미끄러운 눈길이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이끌고 길섶으로 황급히 비켜서야 하는 게 번거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갈포 사람들이 하던 말이 퍼뜩 떠올렸다. 팔자가 좋아 별장이나 오가는... 촌사람 병신 취급하는... 돈 있다고 거만하기만 한 것들... 이란 말들이었다. 그랬으므로 그가 더욱 꼴사납게 느껴졌고, 내 비위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뒤틀리고 있었다.
검은 색으로 짙게 선팅된 차창 속에 그가 보였다. 흐릿하게 윤곽만 보이는 그는 선그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길을 급히 비키느라 호들갑인 우리 부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 거만스럽게 비쳐졌다. 그것이 그에 대한 기분 나쁜 첫인상이다.
"팔자 좋은 배불뚝이 푸네기..."
나는 그가 동백나무 숲에 있는 별장을 찾아간다는 것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곳 갈포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밖에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이 시대의 화려한 문명의 이기로부터 소외된 변방인 것이다. 그래서 별장을 찾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고급 승용차를 몰고 이곳에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이곳에 들어온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동백나무 숲에 있는 별장 안에서 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별장 안에서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보름에 한 번 꼴로 읍내에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차가운 바닷바람이라 할지라도, 바람도 쐬일겸 운동 삼아 한 번쯤 선착장이 있는 마을까지 내려올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대인 기피증세라도 있는 듯.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짝 잃은 기러기처럼 언제나 혼자였고, 외롭고 쓸쓸한 이방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혹간 이루어지는 그의 외출은, 처음 이곳에 올 때 타고 왔던 검은 색 승용차를 이용했다. 그런 탓에 갈포 사람들이 그와 직접 얼굴을 마주할 기회는 없었다. 물론 그가 아침 저녘으로 오가는 버스를 이용했다 하더라도, 갈포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전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늘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또한, 붉은 색 모자를 깊숙히 눌러 쓰고 다녔고, 거만하기 짝없는 갈색 선그라스를 늘 착용했기 때문에 그랬다. 더구나 챠도르를 두른 아랍의 여인처럼 흰색 털실로 짠 목도리로 나머지 부분을 칭칭 싸메고 다녔으므로, 그 모습이 혹간 만화 속에 등장하는 투명 인간이나 미이라로 표현되는 모습과 흡사했다.
"한여름도 아닌데, 꼴에 선그라스는..."
대부분의 갈포 사람들은, 그의 이 같은 모습에 대해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러한 태도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오만의 산물로 규정했고, 무지렁이 같은 이곳 사람들과 차별화하려는 그릇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에 너그러울 수가 없었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해도 내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가 목도리로 얼굴을 싸매고 다니던, 찢어진 폐 그물을 주워 뒤집어 쓰고 다니던, 그것은 제 멋에 불과하다 일축했으니까.
하지만, 마스크 속에 감춰진 그의 얼굴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저렇게 비싸게 굴고 있담? 하며, 자못 궁금해 하기는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그런 까닭으로 갈포 사람들 중 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이는 오로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그곳을 오르내리는 별장 관리인 개코할아범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궁금한 마음에, 개코할아범에게 다가가 그의 모습에 대해 한마디쯤 넌지시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전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배냇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겨우, 어버버... 란 소리가 전부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단순히 손짓 발짓으로 표현했으므로, 뒤틀린 몸짓을 통해 그의 얼굴 모양새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애초 글러 버린 일이었다. 그래서 신(神)이 아니고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다만 갈포 사람들이 알 수가 있었던 것은, 그가 별장 주인인 읍내 시민의원의 배불뚝이 원장의 외손자라는 것과, 그 역시 서울에서 이름만 말해도 알 수 있는 종합병원의 의사로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그가 왜, 무슨 연유로 이곳으로 들어와 쓸쓸히 별장이나 지키고 있는 것인지에 특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렇듯 짙게 안개 낀 돌섬처럼,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사람이었다. 단지 갈포 사람들이 추측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다니는 그는 틀림없이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모습일 것이라는 것뿐이다. 나 역시 이 같은 의견에 이견이 없었다. 그의 콧날이 볼썽사납게 무너져 있던지, 그렇지 않다면 아예 없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입술이 흉측하게 갈라진 언청이라서 그렇게 감추고 있을 것이라 섣불리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얼굴을 칭칭 싸매고 다녀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어 보였다.그는 날이 해동하면서부터 별장 밖으로 쓸쓸한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봄기운 탓에 흰색 목도리는 이제 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입과 코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마스크가 여전히 씌워져 있었다.
나는 머지않아 기온이 완연히 더 풀어지게 될 것이고, 그쯤 되면 그도, 어쩔 수 없이 상상 속에 묻혀 있는 얼굴을 갈포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척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날이 하루 속히 오기만을 은근 슬쩍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던 그가 이렇듯 날이 해동하면서부터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선그라스 속에 감춰진 그의 반짝이는 눈초리가 내게로 짓궂게 날아오기 시작했던 것이다.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별장이 있는 동백나무 숲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헌데 이번엔 아예 절벽 아래 해변의 갯바위로 한 걸음 가까이 내려와 있다. 그건 분명 나를 가까이 에서 바라보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리라.곁에서 굴을 따던 아낙들이 술렁인다.
"오메 낯 뜨거워라. 저 놈의 사내, 또 갯가에 나와 내 엉덩일 꼰아 보고 있구먼. 꼴사납게시리. 뭔가 맘에 두고 있으면, 몰래 찾아와 슬쩍 옆구리를 찔러나 보잖쿠서 말여... 호호호..."
"누가...?"
"누군 누구여, 저기 갯바위에 앉아 있는 별장 사내 말이지."
"구판장 성님두 참, 저 사내가 어디 성님을 쳐다본다고 그리 야단이슈? 맘 좋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구먼. 안 그런 겨 순례? 호호호..."
"형님도 참, 별 소리를 다하시네. 맘 좋은 게 뭐 어떻다고..."
"몰라서 그려? 옛부터 그렸구먼. 맘 좋은 년 아랫도리 마를 새 �다했구."
"호호호......."
음담에 스스럼없는 아낙들이다. 갯바위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하곤 온갖 난잡한 말들을 만들어 키득거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가 앉아 있는 갯바위를 흘끔 쳐다본다.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 퍽 당혹스럽다. 얼굴이 후끈하더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 맺힌다. 굴을 따는 손길에 쥐가 오르고, 자신도 모르게 도둑질 하다가 들킨 듯 파들거린다. 이내 몸서리가 되어 호수에 이는 파문처럼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그러나 점점 전신은, 마비가 오는 것처럼 경직돼 간다. 그의 시선이 견딜 수 없이 뜨겁고, 따가워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 현실에 걸맞지 않게 설레임에 의해 이렇듯 온몸을 떨고 있는 것 또한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단지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다름 아닌 이웃 아낙들의 험상한 입방아였다.
손바닥만한 갈포의 아낙들은 유난히 말이 많았다. 그가 이렇듯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큰일이 벌어진다. 이유가 어디에 있고, 무엇이던 간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남의 말에, 항상 굶주려 있는 야수와 같았다. 그래서 일단 화잿거리가 생기면, 상대가 누구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물어뜯는다. 세 치의 짧은 혀를 날카롭게 휘둘러 상대방이 만신창이가 되어 일어설 수 없도록 난도질해 놓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무시무시하게 찍고 패는 구설수를 꿈 많은 시절에 이미 경험했다. 그것은 남편과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동기이기도 했다. 그 일은 내 나이 겨우 열 여섯 꽃다운 시절의 일이다.
"순례 고것이 바람났댜!"
"얼렐레? 그게 참말여? 열 다섯 그 어린것이?"
"그럼 참말이잖쿠... 벌써 언덕빼기 동백나무 아래서 망칙허게 시리 새콤 달콤헌 그 짓거리를 치뤘다능구먼."
"에그머니나, 이를 어째? 누가 그려 그런 해괴한 소릴?"
"누군 누구여, 순례와 그 일을 치른 그놈이, 좋아서 귀밑까지 찢어진 제 입으로 온 동네 떠들고 다니니까 내가 알지... 호호호..."
아낙들의 신명난 입방아는 전혀 사실 무근의 헛소문이었다. 하지만 그 소문은, 처음부터 그 가공할 위력을 교묘하게 이용하려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평소 틈만 나면 내게 다가와 집적거리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서른이 훌쩍 넘은 노총각이 꾸며낸 고도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나를 데려가기 위해 퍼트린 헛소문의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 조용하기만 하던 갈포를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한 것으로, 과히 A급 태풍과 같은 위력을 보였다. 마을 아낙들은 해괴 망측한 얘기로 깔깔대며, 숱한 말들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 내 몸부림에 동백나무 뿌리가 희뿌옇게 드러났다. 라든가, 희열의 신음 소리에 동백꽃이 죄 떨어졌다는 둥 이어지더니, 급기야 내가 노총각의 아이를 뱄다는 유설까지 나돌았다.
나는 억울했다. 그 억울함은, 난데없이 퍼져가는 헛소문에 반비례 되었다. 그래서 어쩔 줄 몰라 식음을 전폐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밤잠을 못 이루며, 숱한 날을 방구석에 처박혀 울먹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같은 행동은, 오히려 고정하기 짝없는 아버지에게 점점 스스로를 천덕꾸러기로 몰고 갈 뿐이었고, 밤 낮 없는 호된 지청구로 이어질 따름이었다. 철부지나 진배없던 나는 그렇게 노총각의 섣부른 수작에 어이없이 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구설수에 굴복해 손을 들고 말았다. 이왕에 막힌 혼사길 차라리 그에게 시집을 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아낙들이 음흉스런 어투로 키득거리며 말하던, 그토록 새콤 달콤하다는 시집이란 것을 그렇게 가게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지난 십여 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낙들이 말하던 꿀맛 같다는 사랑의 단맛은 커녕, 육모초를 씹는 듯한 쓴맛만 입안에 그득히 남았다. 처음부터 잘못된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의 뻔한 결과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때 죽던 살던 지긋 지긋한 갈포를 과감히 떠나지 못했던 것이 몹시 후회 막급했다. 당시 나는 이곳을 떠나면 곧장 피를 토하며 죽는 줄로만 알았던, 동백꽃잎이 바람에 휘날는 소리에도 금세 울먹거리던 순진한 소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칼바람 같은 아낙들의 입방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일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십여 년이 지난 아직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래서 늘 조신한 행동거지를 보여왔다.
갯내음을 물씬 머금은 갈마바람이 얼굴을 핥는다. 평소 같으면 시원스럽게 느껴질 바람이다. 하지만,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있어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또 다른 두려움이 가져다주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다. 남편 때문이다.
본래 모든 일에 생떼거리를 못 찾아 한하는 남편이다. 팔목을 절단하게 된 이후, 누구보다도 까탈스런 성격을 소유하게 되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남편의 안하무인격으로 밀어 붙이는 악다구니에 배겨날 재간이 없다. 구판장 여편네처럼 남다른 숫기라도 있고, 개차반 같은 그따위 소갈머리쯤 우습게 여길 수만 있다면, 이런 일에 괜시리 주눅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변머리 없는 나로서는 그가 던지는 의미 모를 눈빛에 가슴 설레지 못하고, 그저 바보같이 몸서리 칠 뿐이다. 남편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가 꼬리를 쳤기 때문이라는 억지를 내세워 요절부터 내려고 할 테니까.
나는 퍽 난감했다.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른다. 허나 아무런 소용도 없다. 갈포로 들어가는 버스는 이미 읍내를 빠져나갔으므로, 같이 나왔던 아낙들은 그림자도 안 보인다. 막차를 놓쳐 버린 것이다.
나는 갯벌을 누비고 다니느라 못도 안 들어가도록 단련된 허벅지와 정강이를 지녔다. 따라서 갈포로 돌아가는 사십리 길을 걷는 일쯤 별 문제 될 것이란 없었다. 허나 이미 저물어 가는 날이 문제였다.
하늘을 훑어보던 나는 미간을 찌푸린다. 고양이를 노려보는 개처럼 잔뜩 응등그려진 하늘 때문이다. 금방 때 없는 소나기라도 한 굿 제대로 할 태세다.
"휴...! 미련한 년. 몇 푼이나 더 받는다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한담."
나는 긴 한숨과 함께 넋두리를 주절거린다. 오늘 있었던 자신의 행동이 몹시 한심하다. 낙지 몇 마리 처분하는 일쯤 선착장에 앉아서 해산물 수집상 털부리에게 간단히 넘겨도 될 일이었으나 굳이 읍내까지 끌고 나온 것이 후회스럽다. 물론 결과적으로 막차를 놓쳤기 때문에 괜히 주절거려 보는 푸념일 뿐이다. 그렇다고 기분까지 허공을 상대로 지껄이는 혼잣말처럼 엉망인 것은 아니다.
"흥, 망할 놈의 털부리..."
푸념을 뱉어 내는 나는 실상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퍽 후련하고, 샤워 끝에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낼 때처럼 상쾌하다. 그 동안 뻔한 해산물을 가지고 어떻게든 생트집을 잡아 값을 후리려는 털부리의 어설픈 수작에 넌더리가 났었다. 그럴 때면, 한 번쯤 보기 좋게 배짱을 퉁기리라 벼르고 있었던 나와 아낙들이다. 오늘에야 모두가 투합할 수 있었던 탓에, 읍내로 들고 나와 갑절은 족히 더 받았다. 그 동안 제값을 받지못하고 거저 내주던 것을 생각하면, 치솟는 부아가 용암 분출을 시작한 화산과 같다. 그러나 빈차로 선착장을 툴툴거리며 빠져 나가던 털부리의 벌래 씹은 듯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떠올리면, 못 볼 것을 보고 뒤돌아 선 듯 튀어나오는 웃음을 절제할 수가 없다.
"무정한 여편네들... 내가 막차에 안 탔다는 걸 빤히 알면서, 차가 못 떠나게 붙잡아 주지 않고서... 휴...! 이를 어쩐다?"
나는 괜한 투정을 한숨과 함께 허공에 뿌린다. 모든 게 같이 나왔던 갈포 아낙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원망을 하고 있었으나, 버스를 놓쳐 버린 것은 분명 내 탓이었다. 막차가 떠나갈 시간이 다 돼가는 시각에, 도대체 시간 관념 없이 화장품 가계에 들렀던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자연 그대로에 길들여진 내 얼굴이다. 그런 내가 화장품 가계에 들른 것은, 퍽 별스런 일이다. 다른 아낙들이 로션이 어떻고, 콜드크림이 어떻다며 수다를 떨 때면, 미친 여편네들 돈이 썩어 문드러졌던가 보네. 그깟 것을 돈 들여 얼굴에 뭣하러 덕지덕지 쳐 바른담? 쥐 잡아먹은 듯한 고양이 같은 그놈에 입술은 또 어떻고? 하며 무단히 목청을 돋구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화장품 가계를 제 발로 찾아갔던 것이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고, 어찌될지 모른다더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평소 분 냄새 휘날리는 구판장 여편네를 세상에서 가장 꼴사납게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화장품을 돈을 주고 사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것도 이전투구(泥田鬪狗) 하듯 개펄을 등골 빠지게 기어다니며 낙지를 잡아 내다 판 피 같은 돈으로 말이다. 더구나 집으로 돌아갈 버스 찻삯만을 달랑 남겨 놓고, 뭉떵 화장품을 들고 나오는 일은 일찍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나는 이 같은 일이 동백나무 숲 별장에 그가 들어오면서 변화된 내 모습이란 것을 새삼 느낀다.
나는 비록 힘이 든다 해도 집에까지 걸어서 가기로 마음먹는다. 화장품을 반품하고, 그 돈으로 택시를 타고 편안히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는 왠지 싫었다. 버스가 다니기 전까지 숱하게 걸어서 오갔던 길이다. 나는 그저 빠른 걸음으로 족히 세 시간 남짓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만을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그랬으므로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집에 도착하면, 우선 미소 진 얼굴로 곧장 거울 앞에 앉을 것이다. 손바닥에 로션을 듬뿍 묻혀 그가 있는 별장까지 들리도록 볼을 사정없이 쇠북을 때리 듯 두드리고 싶었다. 손자국에 얼굴이 벌겋게 변해도 좋고, 피멍이 능구렁이 모양으로 든다 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혼 마저 들이킬 듯한 입술은, 동백꽃처럼 검붉게 색칠할 것이다. 특히나 눈웃음이 예쁜 나였으므로, 초승달 모양의 눈썹도 멋지게 그려볼 생각이다. 그에게 내일부터는 이제까지 보였던 꼬질꼬질한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그는 별장 앞뜰에 핀 동백꽃 같은 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엄청 도도하고 화려한 내 모습을.
벌써부터 초야를 맞는 새색시처럼 가슴이 부푼다. 그래서 가슴을 쓸어 내린다. 이런 내 모습을 두고 말 많은 아낙들이 바람난 화냥년이라 함부로 말하여도 좋고, 허튼 계집이라 제 멋대로 입방아를 찧는다 해도 상관이 없다. 제까짓 아낙들이 아무리 찍고 패고 한다 하더라도, 나는 이번만큼은 전혀 눈 하나도 끔쩍 안할 것이었다.
남편의 억지에 의해 아낙이 되버린 나는 처녀를 의미하는 순수한 순결이란 분명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 가슴에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애틋한 이 감정은, 누가 뭐라 해도 내게 있어서 가슴 설레는 초련(初戀)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처음 맛보는 행복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나는 어둠이 깔리는 읍내 고갯마루를 넘으며, 화장품을 담은 묵직한 비닐 백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젖무덤에 전해진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감정이다. 입술에 수줍은 미소가 흠뻑 물려진다. 허공에 그의 인영이 스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이 사뭇 설렌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몹시 격앙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허파에 바람 든 듯 부앙끼로 가득한 내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갈포를 향해 십리 남짓 왔을까. 먹구름을 이끌고 나타난 거대한 공룡 같은 어둠이 세상을 한 입에 집어 삼켜 버렸다. 따라서 푸른 별빛이 무수히 쏟아지던 자리엔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산 능성이 쪽에서 짝을 부르는 노루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려 온다. 건너편 산자락에서 고라니가 덩달아 서글프게 따라 운다. 들 떠 있는 내 마음과 달리 퍽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밤이다.
어둠이 발목을 자꾸만 허방 쪽으로 밀어붙인다. 길섶의 마른풀들이 옹골차게 발걸음을 붙들고 늘어진다. 발끝은 돌부리에 걸려 눈물 콧물을 쏙 빼놓는다. 허나 발걸음은, 이를 개의치 않고 소풍가는 아이처럼 가볍기만 하다.
한줄기 바람이 거칠게 불어온다. 습기가 잔뜩 머금어진 눅눅한 바람이다. 나는 불길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하늘을 쳐다본다.
"맙소사... 이를 어째...?"
넋두리가 절로 새어 나온다. 갈길 먼 나를 막아서는 것은 비였다. 해질녘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고 얼핏 예상은 했었으나, 굵은 빗방울이 이마를 따갑게 때리고 있다. 대지를 난타하는 후드득 소리가 장엄한 오페라의 서곡처럼 우렁차게 들려 온다. 차가운 빗줄기가 섬뜩한 공포력처럼 등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비는 시작하기가 무섭게 폭우로 변해 쏟아진다.
"이런 망할 놈에 비..."
하늘을 치보는 나의 입술이 이죽여지고, 혼잣말이 힘없이 흘러나온다. 원망이 가득 섞인 어투였다.
내게 있어 비의 여신은 이렇듯 언제나 너그럽지가 못했다. 칼날을 휘두르며 죽음을 부르기 위해 춤을 추고 있는 망나니같이 잔인한 존재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다급한 시기에는 하늘은 늘 지금처럼 비를 뿌려 훼방을 놓기 일쑤였다. 그것도 사납게 폭우를 뿌려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비를 싫어 한다. 업친데 겹친 격으로 짓궂다 못해 잔혹스럽게 쏟아 붓는 이 같은 비는 특이나 싫다. 내 기억으로 언제나 이런 폭우가 한바탕 뿌리고 간 뒤, 짐짓 되돌아 본 내 모습에는 좌절과 슬픔, 치유 될 수 없는 상처의 아픔만 가득했다. 그래서 가냘픈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곤 했다. 처절하게 상처받아 일어설 수 없는 상태로. 결혼 칠 년만에 백일 치성으로 겨우 점지 받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갓난둥이를 잃을 때에도 이렇게 비가 내렸었다. 어린것이 경기(驚氣)를 일으켜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나, 이처럼 폭우가 쏟아져 버스는 죽탕길이 미끄러워 갈포에 들어오지 않았다. 질퍽한 빗속에 어린것을 들쳐업고 눈물로 뛰어 읍내 시민의원에 도착했을 땐, 녀석은 이미 장작개비처럼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또한, 재작년 여름. 남편이 태풍을 피해 배를 뭍으로 끌어올리다가 손을 다쳤을 때에도 어김없이 폭우가 쏟아졌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폭우가 그친 삼 일 후에 병원을 찾았을 땐, 다친 손은 이미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 기어이 팔목 아래를 절단해야만 했다. 그렇듯 신은 언제나 내겐 너그럽지 못한 존재였다.
어두운 빗속을 걷는 나는 몇 번인가 셀 수 없이 질퍽한 진흙탕으로 나동그라진다. 그래서 진흙 투성이의 볼썽 사나운 꼴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넘어질 때 무릎에 상처가 생겨나면서 느끼는 아픔보다도, 비닐 백 속의 화장품이 깨지지 않을까 더 가슴 조인다.
몸이 흥건히 젖은 탓에 한기가 밀려온다. 그래서 사시나무처럼 바들거리고 있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운 빗속. 조금 전까지 들 떠 있던 내 마음은 초조해졌고, 점점 초라하게 오그라 붙고 있다.
심장까지 꿰뚫어 오는 한기에, 내 몸이 처량하게 지쳐 가고 있을 때였다.
"오, 무심찮은 하늘..."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상기된 표정으로 혼잣말을 지껄인다. 몹시 격앙된 어조였다. 대낮같이 훤한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읍내 쪽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것은 차가운 빗속을 헤매고 있는 내겐 한 줄기 서광이요 구세주의 손길임이 틀림없다. 갈포까지 가려면 아직도 족히 삼십 리도 더 남았다. 나는 앞 뒤 상황을 가릴 것 없이 반사적으로 뒤돌아 선다. 그리곤 두 눈을 감은 채 팔을 벌려 길을 가로막는다. 낯모르는 사람 앞에선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던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이리라.
나를 발견하고 차는 코앞에서 급히 멈춰 선다. 갑작스레 막아서는 꼴사나운 내 모습에,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가슴이 철렁했으리라. 틀림없이 내 모습은, 미치광이나 납량극에 나오는 으스스한 정령(精靈)쯤으로 보였을 테니까.
차가 멈춰선 것은, 내가 길 한복판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만약 길섶으로 비켜서서 손을 들어 세웠다면, 모른 척 지나쳤을 것이 자명하다. 축축한 이 밤에 비를 맞고 정신없이 나다니는 심기 사나운 모습에, 어느 누가 감히 차를 세워 태우려 했응까.
잠시 후 눈을 떴을 땐 운전석쪽 차문이 열리는 것이 눈부신 전조등 너머로 보인다. 우산을 펼쳐 든 검은 그림자가 내게로 급히 뛰어온다. 금방이라도, 이런 너갱이 빠진 미친 년! 재수 없게시리 길을 가로막고 난리야! 하며, 뺨이라도 호되게 후려칠 것만 같다. 허나 예상은 빗나갔다. 퍽 뱀뱀이가 있어 보이는 다정스런 어조가 속삭이듯 들려 온다.
"이런, 세상에... 괜찮아요?"
"... ...?"
나는 전조등 불빛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본다. 근심 어린 표정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 얼핏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말쑥한 차림의 사내였다. 전혀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다.
사내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접니다. 언덕 위 동백나무 숲 별장의..."
"그, 그럼... 아...!!"
내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는 다름 아닌 내 모습을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변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는 언제나 깊숙이 눌러 쓰고 다니던 붉은 색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또한, 갈색 선그라스도 착용하지 않았다. 더구나 벗을 것 같지 않았던 마스크도 이미 벗어버린 상태여서, 도무지 낯선 모습이다. 궁금한 마음에, 허공에 멋대로 그려보던 그가 내 앞에 서 있다. 입가로 살며시 흐르는 미소가 사뭇 따스해 보인다. 그는 나와 갈포 사람들의 억측과는 달리 코도 멀쩡하고, 입도 역시 정상적이다.
그가 한 걸음 바짝 다가온다. 받쳐든 우산이 따갑게 때리던 빗줄기를 가려 준다.
나는 얼굴을 붉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떨군다. 설렘이 갖는 반사적인 행동이 아니다. 물에서 방금 건져 놓은 생쥐 꼴을 그에게 보이고 있다는 것이 왠지 그랬다.
빗방울이 흘러내리는 턱 밑으로, 빗물에 젖어 흉물스럽게 되버린 자신의 초라한 하반신이 눈에 들어온다. 밀려오는 한기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 측은하다. 그의 눈에도 내 모습이 그렇게 비춰질 것이란 게 서글프다.
나는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몸을 숨기고 싶다. 길을 막아섰던 것이 몹시 후회스럽다. 그가 탄 승용차라는 것을 알았다면, 차라리 걸어서 갈지언정 막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같이 심기 사납게 변해 버린 모습을 정말 그에게는 보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에겐 오로지 예쁘게 치장된, 동백꽃처럼 화려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나는 손에 든 비닐 백을 가슴에 안는다. 비에 젖어 젖무덤의 풍만한 곡선을 따라 청둥호박 같은 엉덩이에 꼴사납게 달라붙은 흉한 옷맵시를 차마 그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어지간히 당혹스러워 하는 내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그가, 잠시 생그레 짓던 미소를 급히 거둔다.
"이런, 옷이 젖어 몹시 추운가 봐요?"
그가 갑자기 점퍼를 벗어 든다. 나는 그것으로 나를 감싸주려 한다는 것쯤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는 바보 같은 언어를 흘리며, 어색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역시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도리짓 하고 있다. 안쓰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는 흉물스럽게 떨고 있는 모습을 감추려 애를 쓴다. 허나 오한은 이미 진정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이런 상황에 굳이 태연한 척 해야 될 여유가 없었다. 실상 나방처럼 불 속이라도 뛰어 들고픈 절박한 심정이었으나, 계속해서 바보스러운 꼴만 자아내고 있다. 그런 자신이 밉게 느껴진다.
"괜찮긴요. 이렇게 떨고 있는데... 자 이걸 어깨에 걸치세요."
"정말 괜찮은 데..."
난 대답과 달리 기다렸다는 듯 그의 점퍼 속으로 잽싸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오한 때문이 아니라 흉물스런 꼴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점퍼 깃을 여며 준다. 낯선 그의 체취가 이내 훈훈하게 살갗에 묻는다. 포근함이 금세 심장까지 스민다. 아울러 향긋한 레몬향이 나의 폐부를 눅눅하게 적신다. 처음 맡아보는 낮선 남자의 황홀한 향기였다. 내게 있어서 사내의 체취란, 남편의 입에서 풍기는 마늘 안주에 탁주가 뒤섞여진 역겹기 그지 없는 퀴퀴한 냄새가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처음 접하는 낮선 사내의 향기에 몹시 어지럽다. 주체 할 수 없는 기운이 저돌적으로 밀려와 내 몸을 점령한다. 따라서 꿈을 꾸듯 몽롱하다. 그가 급히 내 팔을 잡는다. 비척였던 모양이다.
"이런, 괜찮아요?"
"아, 예..."
그가 잡고 있는 팔목 쪽에서 묘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감전이 된 듯도 싶고, 소름이 끼치는 듯한 느낌의.
나는 짐짓 큰 동작으로 팔을 뿌려 거둔다. 심장 밑바닥에서 발산되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떨어 보는 괜한 내숭일 뿐이다.
그가 우산을 고쳐 잡으며,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자, 이러고 있지 말고서, 어서 차에 오르세요. 감기 들겠어요."
"하지만, 난... 온 몸이 진흙투성이 인 걸요?"
"걱정 말아요. 차 시트가 좀 젖는다고, 세상에 잘못될 것이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차가 더럽혀질 텐데요."
"걱정하지 마시라는 데도요. 차가 더럽혀지면 어때요? 난 상관없으니 염려 말아요. 닦아 내고, 햇볕에 말리면 그만인데... 그보다도, 난 당신이 차가운 비를 맞고 그렇게 떨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가슴 아파요."
"하지만..."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차를 세울 때 심정이라면, 타지 말라고 밀쳐 낸다하더라도, 안하무인격으로 차에 뛰어오를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 앞에 서 있는 지금 괜실히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다.
"그렇게 부담스럽다면...? 내가 이렇게 하면 되겠어요?"
갑자기 그가 일렁인다.
"......?"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가, 우산을 내게 건네더니 빗속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곤 구둣발로 흙탕물을 철벅거린다. 백지처럼 얄따랗고, 차력사의 원숭이처럼 꽤 경박하기 그지없는 몸동작이다. 삽시간에 그의 모습은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린다. 내 꼴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비 맞아 늘어진 허수아비 꼴이다.
"이젠 됐나요? 나 역시 당신 모습과 똑같아졌으니까. 이제 우린 동격이 된 셈이죠? 남 보기에 볼썽 사납기가요."
"아...!!"
나는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몹시 의아해 했었으나 그 의문은 벅찬 가슴으로 돌아오는 걸 느낀다. 특별한 배려에 눈물이 찔끔 한다. 남편에게조차 받아 보지 못했던, 난생 처음 받아 보는 친절이다. 그래서인지 만감이 교차한다.
비를 맞아 우습게 돼버린 그의 모습에, 심하게 경직되 있던 내 얼굴에는 비로소 어색한 미소가 흐른다. 자신을 위해 의도적으로 비를 맞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곁들여 있다.
"이것 봐요. 내 꼴이 그렇게 우스워요?"
"......!"
그가 멋쩍어 하며 물어 온다. 그 모습이 사뭇 우습다. 난 까르르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있었다. 허나 고개만 간신히 끄덕인다. 객쩍어 하는 그의 모습은 곧 내 모습일 테니까.
"어때요? 이쯤 되면 부담 없이 차에 오를 수 있겠어요?"
"......!"
나는 작은 미소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그 것은 차를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의 뜻이 아니다. 배려의 고운 마음에, 쏟아지는 빗속을 스스럼없이 뛰어 들었으나 이내 한기를 느끼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가 고맙다. 아니, 퍽 안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짧은 순간에도 언제나 칼날처럼 날카롭고, 섬뜩한 남편의 감 때 사나운 태거리와 새털처럼 부드럽고, 무엇보다도 포근한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비교하고 있다. 잡자기 왜 그런 비교를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약간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좁힌다.
"이런... 이 정도로 안된다면, 진흙탕을 뒹굴면서 발작이라도 할까요? 그렇군요. 그래야만, 부담 없이 차에 오를 수 있겠군요."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 내 모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눈치다.
"아, 아니예요. 더 이상 그러지 말아요."
나는 급히 그의 옷깃을 잡는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죽탕 길을 미친 듯이 나뒹굴 태세였다. 그래서인지 버거운 행복감이 전신을 후려친다.
승용차에 오른 것은, 한참의 시간이 침묵으로 흐른 뒤였다.
나는 앞좌석 그의 곁에 앉아야 했다. 왠지 어색해 뒷자리에 타려고 했었다. 허나 그곳엔 시장이라도 본 듯 부식거리를 비롯해 몇 가지 물건들이 실려 있어 비좁았다. 따라서 나는 그와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야만 했다. 싸늘한 내 체온을, 거칠게 요동하는 내 심장의 고동 소리를, 그가 또렷하게 느끼고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조심스러움에 오금이 당긴다.
상큼한 레몬 향이 진동하는 차안은, 처음 들어보는 발라드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체온처럼 무척 훈훈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이내 온몸을 장악하고 있던 한기를 멀찌거니 몰아내기에 충분하다. 나는 그 이유가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춥지 않아요? 히터를 더 강하게 올릴까요?"
그가 말을 걸어 온 것은, 차가 갈포를 향해 미끄러운 도로 위를 서서히 출발하면서 였다.
"아니예요. 따뜻해요. 봄볕을 쬐고 있는 것처럼..."
그가 피식 소리를 내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막차를 놓쳤던 모양이죠?"
"네, 엉뚱한 짓을 하다가..."
"읍내에서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죠? 차가 떠나가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을 보면...?"
".......!"
나는,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당신 탓이예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대신 정곡을 찌르는 듯한 그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떨군다.
무릎 위에 놓인 화장품이 담긴 비닐 백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것을 끌어안아 감추며,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 그가 막차를 놓친 이유를 알게 된다면, 껄껄 하며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스쳐서 였다.
"처음부터 제게 시선을 줬던 건가요?"
나는 궁색한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막차를 놓친 이유를 굳이 숨기려는 돌파구였고, 언젠가 그를 만나면 필히 묻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아, 저런. 이미 알고 계셨군요. 제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요."
"네, 동백나무 숲에서 바라볼 때부터 느꼈어요."
"그, 그랬군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리기 위한 짓궂은 장난이었나요?"
"아, 아닙니다. 장난이라뇨...? 그건 결코... 전 그저......"
"......?"
그가 얼굴을 붉힌다. 몹시 당혹스럽다는 눈치다.
나는, 장난이 아니었다면? 하며 되묻고 싶었지만, 입술을 가볍게 깨문다. 그는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얼굴로 변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음악이 끝이 났다. 그래서 차안은 묘한 분위기가 급격히 흐른다. 무거운 침묵이랄까. 지루한 고요라 할까.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단순한 동작을 반복할 뿐 아무런 말도 잇지 않는다. 어색한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 나는 그가 갑자기 침묵하는 까닭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약속 시간이 지난 기다림처럼 초조해 한다.
"미안해요."
아무런 말도 없이 운전에 몰입하고 있던 그가, 끝내 열 것 같지 않았던 입술을 뗀 것은, 차가 갈포 선착장의 가로등이 내려다보이는 태봉산 고갯마루에 올라서면서 였다.
그가 차를 세운다. 전조등을 끄더니 실내등을 켠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나는 급히 그에게서 눈길을 뗀다. 그리고는 황망하게 움직이는 윈도우 와이퍼 너머로 옮겨 놓는다. 왠지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미안해요. 당신을 훔쳐 본 것 말이예요."
"아니예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장난 삼아 그런 것은 결코 아니예요."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럼...?"
"더구나 당신을 놀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요. 단지 전... 허무하기 짝없는 내 삶을... 질척한 개펄을 뒤적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아름답게 생동하는 모습에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찾고 있었던 거예요. 세상 모두가 외면 해 버린 저주받은 허무한 내 삶의 의미를요."
"그게 무슨 뜻이죠? 저주를 받다뇨...?"
알 수 없는 말이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자신에게서 쏟아지는 빗속으로 옮겨 놓고 있다. 나는 조금 전 그의 눈빛을 피했던 나처럼 그 역시 의도적으로 내 눈빛이 부단스러워 피하는 것이라 짐작한다.
그의 얼굴 표정이 몹시 쓸쓸해 보인다. 소슬바람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낙엽을 보고 있는 느낌이 돌연 스친다.
"전 의사였어요."
"알아요. 얘기 들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
"네, 한 순간의 부주의로 돌보던 환자로부터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거든요."
"바이러스? 저런...!"
"휴...! 전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생명체를 무수히 복제할 수 있는 현대 의학으로도 아직껏 치유할 수 없는 몹쓸 병에 걸린 거죠."
"......?"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에, 몸을 약간 뒤튼다.
"두렵지 않아요?"
"뭐가요?"
"바이러스를 당신에게 옮겨 놓을까 말입니다?"
"아뇨. 무섭지 않아요. 절대...!"
나는 감염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의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절대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짧게 끊어 대답했다. 나는 스스로 놀랜다. 이미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일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목젖이 떨려 온다. 갑자기 울고 싶어진다.
뜻밖이라는 듯 그의 고개가 갸웃이 기운다.
"정말 두렵지 않아요? 조금 전 치명적인 바이러스라고 말했는데?"
"솔직히 약간은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것도 주어진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저런... 그렇게 말을 해주니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요."
"아닙니다. 정말 고마워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벌레 취급했거든요. 같이 일하던 동료 의사들도... 심지어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장담하던 아내까지도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염려하지 말아요. 이렇게 얼굴을 마주 한다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옮겨 다니는 그런 병은 아니니까요."
"......?"
나는 궁금한 마음에, 대체 무슨 병이죠? 하며, 성급하게 묻고 싶었다. 허나 우수에 찬 그의 눈빛을 보고는 급히 말을 아낀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트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비극은 계속 이어졌죠. 아내가 감염됐거든요."
"저런, 이를 어째...?"
"그렇게 되면서 제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내가 나를 부정한 놈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거예요."
"부정한 사람...?"
"왜 있잖아요. 바람을 피웠다던가 하는..."
"쯧쯔쯔..."
그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 젖고 있는 나를 쳐다본다. 의외의 표정이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그늘진 모습이 아니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 놓고 있는 그였으나 얼굴엔 평화스러움이 서려 있다. 나는 그의 이 같은 얼굴 표정이 체념이 가져다주는 허탈감의 반작용에서 오는 여유로움 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아내는 결국 날 저주하는 글을 써 놓고..."
"그, 그래서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렸어요.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에, 언젠가 찾아오게 될 죽음의 공포를 일찌감치 죽음으로 해결한 셈이죠."
"아...!"
"난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죽음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었죠. 하지만, 아내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알 수 있었어요. 나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설 곳이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요. 또한, 시시각각 다가오는 끝없는 죽음의 공포도 비로소 느낄 수 있었고요."
"......!"
그의 눈이 반짝이는 듯 하더니, 진한 액체가 볼을 가른다. 눈물이었다.
그가 갑자기 차를 출발시킨다. 나는 그가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것쯤 쉽게 알 수 있다.
내리막길을 벗어난 차는 금새 갈포 구판장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그와 함께 차를 타고 왔다는 사실이 구설수에 오를까 모습을 숨기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아직도 구판장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태거리 사나운 남편이 대폿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은 뻔했다. 남편이 갑자기 밉게 느껴진다. 여느 때 같았으면 황급히 내려 남편을 부축해 집으로 돌아갔을 터였으나, 오늘은 왠지 싫었다.
차가 집으로 올라가는 고샅길 입구에 멈춰 섰다.
그가 미소 진 얼굴로 말을 건네 온다.
"미안해요. 초면에, 괜한 얘길 심난하게 지껄여서..."
"아니예요. 그런 아픔이 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 걱정 마세요. 용기도 잃지 마시고요."
"고마워요. 이해를 해주셔서..."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그리고, 날 위해 진흙탕 물을 뒤집어 써 준 친절은, 정말 한없이 고마웠어요. 아마 평생 못 잊을 꺼예요. 남자로부터 처음 받아 보는 코끝이 찡한 친절이었거든요."
나는 차문을 열려던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본다. 우수에 찬 그의 눈빛이 촉촉하게 느껴진다. 나는 피하지 않는다.
"아까 저에게 물으셨죠?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막차를 놓쳤느냐고요."
갑작스런 말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내 솜털같은 미소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난처한 일인 것 같은데..."
"그래요. 말하기가 퍽 난처한 일이죠. 치부를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처럼... 하지만, 꼭 말하고 싶어요."
그의 고개가 갸웃이 기울었다.
"혹시 비웃으실진 모르겠지만, 저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그는, 무슨 일 때문이냐, 하며 물어 오지는 않았다. 허나 어색하게 바뀐 미소가, 그 답을 요구하고 있는 듯 했다.
"저를 매일 같이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우스운 얘기지만, 며칠 전부터 그 눈길에,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됐어요. 내 처지에 걸맞지 않게... 비로소 이 나이에... 사랑의... 그것도 첫사랑의 감정을... 그래서 설레는 맘으로 화장품 가게에 들렀어요. 붉은 색 �스틱을 사기위해서...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춥춥한 모습 대신에... 도도하고, 화려한 동백꽃처럼 보이고 싶어서..."
"저런, 저기, 저...."
그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집을 향해 뛰었다. 너울치는 부끄러운 마음에, 그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따갑게 얼굴을 후려친다. 부정스런 내 마음을 질책하는 것같다. 사내에 미친 화냥년! 어디선가 남편의 손아귀가 튀어나와 뒷덜미를 잡아 끌 것만 같다. 빗물이 입으로 흘러든다. 미지근 하고 찝찔하다. 나는 그때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눈을 떴을 땐 늦은 아침이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어느새 멎었다. 해는 펄쩍 떠올라 반공중을 차지하고 있다. 벙긋한 창문 틈을 통해 부드러운 햇살이 흘러든다. 커튼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도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내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같이 보였고, 그렇게 느껴진다. 꿈 속에서 젖무덤을 파고들던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처럼.
벽시계를 쳐다본다. 그제야 꽤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긴 시간 동안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처럼 누려 보는 평안의 시간이었으므로,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옆자리를 확인 한다. 나 혼자서 외롭게 누워 있다. 남편은 구판장에서 술을 마시느라 밤을 지세웠고, 그것도 모자라 아직도 그 곳에 있는 모양이다.
허겁지겁 일어난다. 거울 앞에 앉는다. 립스틱이 떠올랐던 것이다. 배시시 웃는 얼굴이 거울 속에서 나를 마주본다. 갯벌을 기어다니느라 검게 그을려서 그렇지 꽤 괜찮은 여인이다. 나는 곰살궂은 미소를 잔뜩 머금어 보기도, 못마땅하다는 듯 한동안 입술을 이죽거려 보기도 한다. 잊었던 천진스런 내모습을 발견한다.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갖다 댄다. 처음이라서 그런 것인지, 손끝이 떨려서 그런 것인지, 설레임 때문인지 생각처럼 멋지게 그려지지 않는다. 몇차례 지웠다가 그리길 반복한 끝에, 마음에 차지는 않았으나 한결 화려해진 여인의 요염한 미소를 볼 수 있다.
"망할 놈에 여편네! 시치미를 떼기는..."
밖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쳐나간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남편은 술에 젖어 있기는 했으나 생각했던 것만큼 취해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치미를 떼면, 누가 모를까 봐? 흥...! 난 다 안다고..."
남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뭔가 몹시 기분이 상했다는 눈치다.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어젯밤 기억이 퍼뜩 스쳤던 것이다. 허나 죄책감이나 자괴심에 휩싸여 고개를 떨구지는 않는다. 오늘 따라 왠지 비굴해지고 싶지가 않다.
마루에 오르려던 남편은, 미간에 힘을 준 채 나를 흘끔 바라본다. 그리곤 특유의 험상한 어투였다.
"이것 봐. 구판장 여편네가, 끝까지 자기가 아니라고 박박 우기잖아!? 그러면 누가 모를 줄 아나?"
뭔가 잘못되 갈 때처럼 분위기가 묘했으므로, 나는 급히 되묻는다.
"여보 그게 무슨 소리예요? 구판장 형님이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저기 동백나무 숲 별장의 사내 있지."
"벼, 별장...?"
"그래 별장 사내 말이야."
"그, 그사람이 왜요?"
" 글쎄 말이야. 그 사내가 어젯밤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는데 말이야..."
"예, 엣?! 여보. 그, 그게 무슨 말이예요? 자, 자살이라뇨?!"
충격적인 말이다. 믿을 수가 없다. 현기증이 인다. 휘두르는 망치에 정수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다. 그래서 나는 휘청였고,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릴뻔 했다. 허나 급히 정색을 한다. 남편의 심상치 않은 눈초리 때문이다.
"이 사람이...? 별장 사내가 죽었다는데 당신이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난리야?"
"아, 아니... 사람이 주, 죽었다는데 놀랄 수밖에요."
"난 또... 그래서 경찰서와 군 보건소에서 사람이 나와 그러는데, 그 사내가 글쎄 에이즈 환자였다는구만."
"예? 에, 에이즈? 여보, 에이즈라면...?"
순간 어젯밤을 떠올랐다. 그가 소슬한 표정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막연히 말했던 사실도, 아내가 자신을 부정스런 사람으로 저주하며 죽어 갔다는 이야기도 상기해 낸다. 그래서인지 고뇌하던 그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스친다.
"그래... 후천성 면역 결핍증인가 뭔가 하는, 그 더럽고 재수없는 병 말이야. 나 참 기가 막혀... 그런데 그놈이 죽으면서 유서에다 이렇게 썼다더라구."
"뭐, 뭐라고 썼는데요...?"
"사랑해선 안되는 줄 알면서, 갈포의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 였다나?"
나는 얼굴이 후끈했다.
"그, 그래서요?"
나는 남편에게 말을 재촉하면서도, 과연 무슨 말이 이어질까 바짝 긴장한다.
"그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안타깝고 서러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고 썼더라더군. 차마 사랑하는 그 여인을 범하여 에이즈로 오염시킬 수가 없었다고 말이야."
" 저, 저런...!!"
"미친놈! 결국 죽을 놈이 죽는 마당에 별 걱정은... 그런데 말이야. 그놈이 사랑했다는 갈포 여인이 대체 누구겠어? 뻔하잖아? 안 그래? 구판장 여편네 말고 또 누가 있다고... 에잇 제수 없어... 그러니 내 술맛 떨어져 거기에서 다시 술을 마실 수 있을까."
남편은 연신 투덜거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어쩔줄 몰라하던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물론 신발을 신지 않은 정신없는 걸음으로.
멀리 해변 도로에 앰뷸런스와 패트롤카가 나란히 서 있다. 별장 절벽 아래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들 사이로 하얀 천으로 덮인 들것을 든 경찰관들이 보인다.
나는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져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다. 고개를 떨군다. 울먹임을 삼키려 애를 쓰나 허사였다. 액체가 턱끝에서 끊임 없이 가슴으로 굴러 떨어진다. 젖무덤이 뜨겁다. 나는 무수히 볼을 가르는 눈물이었기에 앞으로는 그 무엇보다도 끈적해 다시는 흘리지 않을 줄로만 알았었다. 허나 너무도 쉽게 흐르고 있다.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러 닦는다.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이 된 립스틱 자욱이 손등에 묻어 난다. 붉게 타는 내 마음의 빛으로.
앰뷸란스가 을씨년스런 싸이렌 음을 남기고 갈포를 빠져나간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린다. 그가,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피앙새처럼 느껴져 미웠고, 그래서 외면한 것이다.
습관적으로 갯바위 쪽을 바라본다.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어야할 자리엔 적막만 흐르고 있을 뿐,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붉은 동백 꽃잎이 갈마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나는 저미는 가슴을 부여잡는다. 그리곤 비어져 나오려는 넋두리를 조용히 삼킨다.
무심한... 아니, 나쁜 사람... 차라리, 사랑한다는 말이나 남기지나 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