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욱 단편소설] 발가벗은 여자
(단편 소설) 발가벗은 女子.
(2001년 서천신문 발표)
1
늦은 아침이다. 대지는 청녀(靑女-서리맞은 神)가 장악하고 있어 하얗다. 겁에 질린 여인의 얼굴이나, 달빛 아래 펼쳐진 세상을 연상케 한다.
나는 마당을 쓸고 있다. 억겁을 참아 낸 한(恨)인 듯 지면을 들고 일어선 서릿발이 내젓는 싸리비에 서걱서걱 부서진다. 물안개 피듯 분진이 휘날려 얼굴에 묻는다. 산득하다.
찌륵 찌륵 찌르륵......
청아한 소리가 귓불을 쪼아 온다. 늘 곁에서 보고, 들어왔던 멧새의 지저귐이다. 이제는 이골이 난 소리. 그래서 존재 가치조차 하찮게 여겨질 소리였다. 나는 이 소리를 들을 때면, 퍽 거칠고 메마른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황조처럼 맑고 고운 음색이 아니었으므로 무미 건조한 잡음이나 진배없다. 도둑 고양이에 의해 찬장의 놋양푼 굴러 떨어지는 오탁한 파생음쯤으로 치부했을 일이다. 그랬으므로 반해 이끌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다르다. 정겨움을 잔뜩 머금은 채 고막을 촉촉하게 두드려 온다.
나는 비질을 멈추곤 허리를 편다. 소리를 좇아 미혹한 시선을 휘두른다. 마치 헛것에 홀리거나, 마법사의 주술에 걸려든 듯이. 그렇다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반사를 보인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은 여느 때 같았으면 어림도 없다. 나는 이깟 소리에 눈길을 빼앗길 정도로, 소녀 시절의 순수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더구나 지나쳐 온 일상을 되돌아보았을 때, 죽음의 음침한 그림자처럼 어둡고, 벗어날 수 없는 업고처럼 무거운 단어들로 표현되는 칙칙한 시간들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멧새의 지저귐에 마음을 빼앗길 경제적, 정신적, 시간적 등, 그 어떤 면에서든 가량이 넉넉한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의식적이던 그렇지 않던, 내 눈길이, 그 소리를 좇아 오래된 타성처럼 황급히 옮겨간 것만은 부인하지 않는다.
휘두르던 시선은 탱자나무 울 밖 살구나무 우둠지쪽으로 이끌려 간다. 입술에 물려진 환한 미소와 함께 머문다. 떠오르던 태양이 앙상한 마들가리에 걸려 있다. 빛을 잃고. 살결박이라도 당한 양 미동도 없다. 땡볕으로 대지를 후끈 달구던 무소불위의 존재다. 계절의 변화 앞엔 하릴없는 모양이다.
내 시선을 제멋대로 훔쳐 간 놈들이 보인다. 암수 한 쌍이다. 지겹게 느껴질 정도로 붙어 다니는 녀석들이다. 꽁지털을 경망스럽게 꺽죽이는 모습이 앙증맞고, 허물없다. 녀석들은 역광이 연출해 내는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내 시선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슬며시 꾀이어 괴인하려는 듯이.
놈들은 살구나무를 근거지로, 가으내 황금 들녘을 황망히 오고갔다. 새마을 모자를 뒤집어 쓴 논두렁의 허수아비쯤 아랑곳하지 않고, 춥고 배고픈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여문 낱알들을 한껏 포식했다. 여태껏 몸뚱이가 토실토실한 것도, 잘 다듬어진 깃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도 그 결과였다.
나는 은호의 얼굴을 떠올린다. 웃음이 피식 튀어나온다.
은호는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그러나 지나쳐 염세주의에 빠진 듯 했다. 늘 유락하길 좋아하던 그는 술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항상 가슴에 술병을 안고 뒹굴던 그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흐뭇한 표정으로 한 잔 술을 떠올렸으리라. 그는 사물을 보는 시각을 언제나 술과 연계시켰다. TV에 비친 멋진 풍광은, 술을 마실 장소로. 사바나의 동물들을 볼 때면, 푸줏간 앞을. 신비한 해저 모습엔 안주거리를 찾아 수산시장을 서성거리는 것으로 착각하는지, 무의식중에도 입맛을 쩝쩝 다시곤 했다. 은호의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오금이 당긴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멧새의 조그맣고 뾰족한 부리에선 싱그러운 지저귐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나온다. 나는 길을 잃고 어딘가에 있을 새끼들을 부르는 외침이리라 상상한다. 그래서 노래라기 보다는 외침일 것이라 추측한다. 가볍고, 시원스러우며, 무척 빠른 리듬에 경쾌한 몸동작의 지저귐이다. 허나 왠지 싸늘한 느낌을 차마 지울 수 없다. 내 마음은 들떠 있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적 세계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공허한 상태라는 확실한 물증과 같은 것이리라.
나뭇가지 사이를 활달이 오가는 멧새의 모습이 무척 살갑다.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 하던 나와 비교할 바 없다. 녀석들의 모습은 거침없어 좋고, 어지간히 당당하고, 자유 분방해 어여쁘다. 어쩌면 억측해 본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고개를 돌린다. 미풍처럼 일던 미소도 사라진다. 동시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녀석의 부리 끝에선 햇발이 바스러져 망막을 거칠게 공략해 들어왔고, 부신 눈을 하잘 것 없는 인내심으로 견뎌 내기란, 퍽 우습고, 바보 같은 짓이라 느껴졌다.
나는 안면 가득한 미소와 함께 싸리비를 고쳐 잡는다. 다시 마당을 쓸기 시작한다. 지난가을 그 잔재인 낙엽을 쓸어 태웠던 이후, 올해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내게선 어울리지 않는 비음이 새어나온다. 툇마루에 놓인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곡절이 흘러나왔고, 나는 콧노래로 따라 부르고 있다. 은호가 술에 취해 비척이는 걸음으로 집에 올 때, 곧잘 부르곤 하던 노래다. 퍽 별스런 일이다. 나는 이 가락에 진저리를 치곤 했으나, 무의식중에도 뇌리에 입력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대중 음악과 거리가 멀었다. 돌이킬 수 없는 업과처럼, 지금은 모든 걸 아련한 기억 속에 묻어야 했지만, 이곳 한촌 실정이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스트라우츠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나, 비발디의 ‘사계’와 같이 이지적 정서에 깊숙히 길들여진 화려한 지성과 감성이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한없이 고고한 이데아였다. 그렇지만 이곳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 예민했던 감수성은 헛간 구석에 내박친 호미처럼 녹슬고 무뎌졌다. 그래서 그런 기억들은 그늘진 세월의 뒤안길에서 자연적으로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느 날 갑자기 가난한 촌부로 변신한 나를 여태껏 지탱할 수도, 꼿꼿이 땅을 딛고 살아갈 수도 없게 했으리라.
도시 가사는커녕 제목조차 알지 못하는 노래였다. 그럼에도 나는 흥에 겨운 리듬에 맞춰 어수선히 뒹구는 괴꼴들을 쓸어 가고 있다. 리듬이라고 해야 어림짐작으로 반박자 늦게 따라 부를 따름이지만. 이렇듯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 의지에 따라 비질을 해보는 것이, 허술한 이 집에 둥지를 틀고 정착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내 기분은 어제와 확연히 다르다. 흥분에 가까울 정도로 무척 유쾌하다. 고양이 발톱으로 날카롭게 볼을 할퀴듯 스치는 삭풍이다. 허나, 춘풍이 시원스레 얼굴을 핥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능란하게 반복되는 싸리비질은 맹목적이었으나 규칙적이다. 괴꼴들이 쓸려나간 자리엔 싸리비에 의해 생긴 사선들이 무질서하게 그어진다. 새롭게 만들어질 또 다른 추억의 흔적처럼.
나는 갑자기 엊그제 집을 나간 쌍둥이 엄마를 떠올린다. 그녀의 남편은 지난가을 사고가 났다. 타작한 나락을 운반하던 도중 일어난 경운기 전복 사고였다. 결과는 척추 골절이었다. 소식을 듣고 병문안 갔을 때, 하나님 제발 목숨만 부지하게 해주오, 하며, 중환자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그녀였다. 헌데 입원 한달 만에 그녀가 변했다. 화려한 색상의 옷차림이, 짙다 못해 들뜬 화장이, 조신했던 행동거지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다. 이어 춤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역전통 카바레에서, 물항장 근처 무허가 춤방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문이 돌았을 때,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터무니 없는 모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기대를 져버렸다. 가슴 속에 잠재된 화력은, 언젠가는 결국 겉으로 드러나 타오른다 했던가. 어머니가 화냥끼에 집을 나가고, 언니 역시 뜨거운 육체를 억누르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다가 이혼했다더니, 그녀가 가출한 것이다. 사내 없인 못산다면서. 말도 안돼. 그 소식에 나는 실망보다 배신감에 휩싸였다. 잠시 동안 믿었다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져 분노했다.
나는 갑자기 왜,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추측컨대 정든 가정쯤 시장 바구니와 함께 팽개치고, 화려한 조명이 현란하게 돌고 있는 카바레의 훌로아를 얼빠진 듯 맴돌고 있었을 그녀를 떠올렸고, 그녀가 느꼈을 황홀한 느낌이 이런 기분일 것이리라. 창공을 향해 힘차게 솟구쳤다가 역 원추 곡선을 그리며, 건너편 산자락을 향해 깔끔하게 비행하는 까투리가 된 듯한 느낌의.
이런 기분은 어제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오늘 새벽,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전혀 예측치 못했던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은호가 비로소 집을 떠난 것이다. 무슨 까닭에 기존의 완우했던 생각을 화발 허통히 걷어차고 집을 떠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허나 내겐 허공을 날아갈 듯 즐거워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남편이 집을 떠났다는 이유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면,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 생각할지 모른다. 또한, 철따구니 없다며 비난의 욕지거리를 꼴뚜기질과 함께 퍼부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상관할 바 없다. 무에 바람 들 듯 부정끼로 가득한 마음에, 은호의 사나운 꼴을 보지 않게 돼 기쁘기 한량없다거나 하는, 그릇되고 방념어린 해방감에서 나온 해찰 맞은 행동거지가 아니니까.
나는 상시 은호가 집 떠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혀에 쓴맛이 돌도록 반복해서 종용했다. 이번 일은 지긋지긋한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보다 진보된 내일로 탈출하게 된다는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었다. 행복을 예감하고 떠나는 어린 새의 이소와 같은. 은호는 머지않아 낯선 타향 생활에 적응하게 될 것이고, 나는 이를 계기로 이곳을 떠나 새로운 삶의 돌파구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과단히 시도할 것이다. 하다못해 노점상이라든가, 식당에 취직해 설거지라도 할 것이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분명 어깻죽지를 출렁여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천방산 자락이다. 험한 백두대간이 차령의 준령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오다가, 금강 하구언의 탁류와 장항 앞바다의 거친 파도에 치받힐까 급히 멈춰 선 곳이다. 산 줄가리를 따라 내려온 멧토끼와 발을 맞대고, 청노루와 코를 비비며, 온갖 산새들과 입을 맞추어 노래하며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 대기권 밖을 오가는 문명과는 참으로 동떨어진, 궁벽하기 짝없는 한촌이다. 그래서 이웃들의 살림살이란 게 손바닥을 보듯 뻔했다. 우리집 형편은 이웃들에 비해 궁색하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애오라진 살림 그 자체였다. 재산이라곤 결혼하여 살림을 나앉을 때, 부친으로부터 증여 받은 생수받이 자갈논 닷 마지기. 도저히 엽연초밖에 재배할 수 없는 삼백 평 남짓한 박전 한 뙈기. 거기에 쓰러져가는 초옥(새마을운동 당시 생철로 지붕만 겨우 개량한 비좁은 오두막)이 전부였다. 좋게 말해 오두막이지 실상 노천 굴이나 진배없다. 궂은 날이면 퀴퀴한 흙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 나온다. 기둥조차 없는 순수한 황토 벽돌을 쌓아 만든 초라한 토벽집이라서, 가옥으로조차 분류되지 않아 가옥세가 나오지 않는다. 팔자 좋은 사람들은 사정도 모른 채 떠들어댄다. 황토방이, 지장수가 몸에 좋다더라 하지만, 흥! 와서 살아보라지. 나는 짐승들이 사는 토굴 같아 싫었던 것이다. 이웃들은 앞을 다투어 입식으로 말끔히 증, 개축하고, 초현대식으로 새롭게 신축하는 실정이었으나 우리집은 그렇지가 못했다. 행여 가옥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눈에 띈다면, 보존 가치를 운운했을 것이다. 나는 건축물에 대해 문외한이다. 허나 조선 초기, 그 또한 어지간히 찢어지게 가난한 민초에 의해 세워졌을 고가요 누옥임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세기를 살아가는 내가 화려하게 누릴 수 있는 문명의 이기(利器)는 더욱 한심하다. 벌써 폐기됐어야 할 조잡한 색상의 14인치 텔레비전. 상대방의 목소리가 가래가 그렁거리는 탁음으로 들려 와 언제나 싸우듯 목청을 높여야만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 모터 소리가 아파치 헬기를 연상케 하고, 냉동실은 아예 작동되지 않는 150리터 용량의 구형 냉장고. 에이 엠(AM) 라디오만 겨우 수신되는 고물딱지 라디오가 고작이다. 화라지로 군불을 지펴 난방을 하고, 끼니를 짖고 살아가는 처지였으니 오죽하랴.
여보,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네 식구 굶어 죽어요.
굶어 죽긴, 요즘 세상에 워떤 놈이 굶어 죽는다고 야단이여?
굶주림 해결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들일은 제가 할 테니, 당신은 내 건너 순옥 아버지처럼 공사판에 나가서 돈벌이를 해봐요. 내일 아파트 공사 현장에 간다던데...
몇 번이나 얘길 허야 알아듣겠어? 막노동판엔 죽어도 안 간다고 혔잖여?!
황소 고집 피우지 말고,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요. 지금까지야 대충 되는대로 살았다지만, 큰애가 초등 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작은 애 역시 유치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집어치지 못허능 겨?!
여보?
당신은 왜, 날 못 쫓아내서 환장을 허능 겨? 도대체 뭣땜에...?
은호는 화를 벌컥 내며, 내가 말을 꺼내 놓는 것조차 실뚱머룩 했다. 이렇듯 집을 떠난다는 것은 감히 꿈엔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완강한 고집통머리다. 이웃들은, 은호의 방만한 정신 상태에, 빙충맞은 타태(惰怠)에, 우리집은 머지않아 틀림없이 파산 될 것이란 악담을 스스럼없이 했다. 나는 이런 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귀머거리에 벙어리처럼. 그들의 말은 분명 근거 없는 억설이 아니며, 전혀 그릇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김씨를 따라나선 것이다. 밤새 구판장 골방에서 백원짜리 동전을 두고 화툿방석이 찢어져라 힘차게 두들기다 와서는,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심경에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런 변화가 있었던지 알 수 없었으나, 새벽부터 전화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러더니 급기야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무언가에 이끌리거나 시간에 쫓기듯 허둥대면서.
2
해가 중천으로 떠올랐다. 기온은 이불 속처럼 포근하다. 응달에 남아 있는 잔설을 말끔히 녹여 낼 기세다. 벌써 봄인가? 우수(雨水)도, 정월 대보름도 엊그제 지났으니 성급한 생각은 아닐 성싶다. 그렇지만, 찬장의 식기들을 죄다 꺼내 콧노래로 옹골차게 세척하고 있는 손끝은, 고무장갑이 아니었으면 이미 무감각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따라 무척 부산하다. 때 이른 대청소였다. 그 동안 암울했던 마음처럼, 곳곳에 수북히 쌓인 먼지와 찌든 때들을 후련하게 털어 내고픈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방안에선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뒹군다. 난동에 가깝다. 뚝별난 은호가 없는 절호의 기회를 지나칠 리 없다. 녀석들의 격한 몸동작에 구들장이 들썩한다. 부뚜막의 검은 무쇠솥 뚜껑이 파르르 진동을 한다. 비좁은 방안에 단오 난장의 씨름판이라도 옮겨 놓은 모양이다. 지금은 둘이서 한데 어우러져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진 웃음이었으나, 잠시 후 작은아이가 뛰어 나올 것이다. 무언가 단단히 토라져 이르기 위해서. 그런 일은 생퉁스런 일이 아니다. 녀석들의 요란한 웃음 뒤엔 항상 그랬으니까.
나는 방쪽을 흘끔거린다. 허공에 미소를 날린다. 간사한 내 마음을 탓하는 조소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쀼루퉁해진 내 입에선, 아주 살판이 났군. 조용히 못해? 하며,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불만 투성이인 은호에게 그들먹히 쌓인 앙금을 털어 내는 것은, 언제나 고스란히 녀석들 몫이 되버렸으니까. 미소는 그런 나를 탓하는 냉소였다.
나는 큰아이를 싫어한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을 두고, 그 무슨 허튼 소리냐, 탓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 작은아이를 편애한다. 그것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쉽게 눈에 띌 정도였다. 은호를 빼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선명하게 까푸러진 눈, 사내에게 어울리지 않는 보조개가 그러했다. 갸름하고, 까무레한 얼굴에 훤출한 키는 판에 박은 듯 은호를 빼 닮았다. 감을 잡지 못할 완명한 행동거지에 어눌한 어투. 그것도 모자라 계집아이처럼 소심하고, 편식에, 코알라처럼 눅진하다 못해 게으른 성격까지 그대로 복사해 놓은 듯 했다.
이에 반해 작은아이는 내 모습에 가깝다. 쌍꺼풀 수술 전 밋밋한 눈두덩에, 사과를 떠올릴 둥긋한 얼굴이 우선 나를 닮았다. 아담한 체구였으나 활달한 성격은 사내다워 마음에 든다. 함부로 행동하는 듯하여 묵직한 맛은 덜했으나,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나아질 것이라 흠을 덮어 주곤 했다. 녀석이 특히 나를 사로잡는 것은, 사물을 정리하는 솜씨가 세밀하다는 것이다. 마음씨가 더 없이 자상하며, 여들 없는 큰아이와 달리 부지런하다. 아장거리는 걸음마에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잔심부름은 늘 동작 빠른 녀석의 차지였다. 녀석은 큰아이에게 그런 일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눈물부터 글썽인다. 기어이 자신이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소유한 것이다. 녀석은 오늘 아침에도 늦잠 든 큰아이와 달리 새벽같이 일어났다. 그리곤 집을 떠나가는 아버지를 사립문 밖까지 나가 고사리 손을 흔들었다. 물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따르릉 따르르릉...
전화 벨이 울린다. 동작 빠른 작은아이가 잽싸게 수화기를 집어드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은 여섯 살 나이답지 않게 전화 통화쯤 실수 없이 소화해 낸다.
“동식이 엄마면, 오후에 그리로 간다고 해! 알았지?”
나는 방을 향해 커다랗게 소리쳤다. 이내 노고지리의 지저귐 같은 귀여운 대답이 들려 온다. 내가 어림짐작으로 이렇게 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올 사람이란 오직 동식 엄마뿐이기 때문이다. 잠시 조용하던 방안이 자지러지는 웃음으로 들썩한다. 내 생각이 빗나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와 동식엄마는 서른 세살 동갑 나기였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기 일 년 전에 시집을 왔고, 지금은 서로가 흉금을 속속들이 드러내 놓고 지낸다. 답답한 마음에 가출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는 냄비 끊듯 흥분된 내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지금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온몸에 진저리가 인다. 무수한 솜털들이 일어선다. 지난 일들이 뇌리를 스쳐서 였다.
엽연초 수매하던 날이다. 나는 밤늦게까지 마을 입구에 나가 은호를 기다렸다. 허나 끝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 것은 동틀 무렵이다. 여름내 땀방울을 쥐어 짜 엮어 말리고, 가으내 한숨으로 연초 꼭지를 지었다. 그렇게 거머쥔 피 같은 돈이다. 그날 밤 은호는 수매 대금을 노름판에 달싹 적선하고 돌아온 것이다.
지난봄엔 어떠했던가. 연초 조합으로부터 출하 선도금을 몰래 대출 받았다. 그리곤 읍내 티켓 다방 아가씨를 여관으로 불러내 하루 진종일 희희덕거리다가 돌아왔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밀한 성욕에서 비롯된 적절치 못한 행위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한 푼이 천금인 실정을 망각한 채 채신머리사납게 행동하는 은호를 볼 때, 산다는 게 서태나무 껍질을 씹는 맛이다. 이럴 때면 우울해 하는 내 곁엔 영락없이 동식엄마가 있었다. 어깨를 다독거려 격한 가슴이 차분해지길 채근하기 위해서였다.
나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애.
그게 뭔 소리여? 밑둥�이...?
한계에 다다랐어.
한계? 그런 소리 당최 말어.
아니야. 은호씰 믿고 더 이상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어... 해도 너무 하거든. 사랑이라곤 더욱이 없고...
허지만 어떻허겄어. 그리고 누군 사랑 땜에 사는 건 줄 알어?
그럼...?
암만 웬수 같은 사내라곤 혀도... 다 어린 새끼들 허고, 고놈에 정 땜에 살지... 떼지 못혀서...
어린 새끼들? 정...?
그려, 죄 없는 새끼들... 살믄서 알게 모르게 훔뻑 들어버린 고놈의 미운 정. 눈먼 우리가 사랑으로 착각 허는 정 말이여.
또 다시 아이들을 볼모로 족쇄를 채우듯 하는 동식엄마였다. 허나 내게 관심을 보이고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은, 그나마 그녀뿐이다.
3
“엄마, 또 시작인 겨?”
이 말은 방으로 들어와 문갑 위를 청소를 하고 있던 내게, 작은아이가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던진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어느새 내 손에는 유리 구두 한 짝이 들려져 있다. 실물 크기다.
“고놈에 유리 구두만 보면,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능 겨? 신데렐라 생각하능 겨?”
눈살을 찌푸린 녀석이 또 다시 말을 건네온다. 유리 구두만 보면, 항상 망연해지는 행동거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그, 그래... 엄마가 청소를 하는 동안 형아와 밖에 나가서 놀지 않을련? 동식이네 가 있던지.”
나는 황급히 정색을 한다. 그리곤 어색한 미소를 흘린다. 술잔처럼 출렁이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어지 빠른 행동이다. 작은아이의 미소는 목화송이처럼 부드럽다. 허나 나는 가시에 찔린 듯 가슴이 뜨끔하고, 그 기운은 심장까지 파고든다. 죄책감일까?
아이들이 묘한 여운의 미소를 남긴 채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나는 시선을 슬그머니 손으로 옮긴다. 유리 구두 바닥에 고정시킨다. 이내 미간은 좁혀진다. ‘K.S.H end L.S.H’ 라 또렷이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성혁이란 이름과 내 이름인 이선희를 나타내는 영문 약자였다.
김성혁. 이름만으로도 가슴은 세차게 뛴다. 가슴을 풍선처럼 한껏 부풀게 만들곤 했던 추억의 이름이다. 숱한 날들을 그리움으로 잠 못 이루게 만들던 장본인. 어쩌면 이 순간에도 장난 같은 운명을 서러워하고, 죄스러워 하고, 어딘가 에서 나를 생각하며 고뇌하고 있을지 모를 사람이다. 내가 이렇듯 섣불리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자신이 남 몰래 그를 떠올리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까닭이다. 유리 구두는 성혁과의 만남이 백일째 되던 날을 기념해 이름의 약자를 새겨 한 짝씩 나눠 가졌던 커플 마스코트였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날, 머리맡에 짝을 맞추자는 굳은 약속이 깃들어 있는 추억이다.
빛바랜 기억들이 뇌리에 통연히 투영되고 있다. 지난날의 우련한 추상의 곡두였다. ‘사쿠라팅’이라 불리던, 벚꽃이 흐드러졌던 창경궁 미팅에서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두 번째 만남은, 여의도 한강 둔치공원에서 였다. 그때 있었던 촉촉하고 달콤했던 입맞춤도 되살아난다. 한강대교 첫 번째 교각에 기댄 채였다. 금세 내 볼과 입술이 홍시처럼 물든다. 그의 체취가 입술에 부드럽고 향긋하게 묻어 드는 듯 하다. 허나 거울에 비친 내 눈빛은 벌써 눅눅해진다. 붉은 입술엔 애틋한 미소가 물려진다. 벌래 씹은 표정이다. 성혁과 나란히 서서 샴페인을 터트리며, 커다란 케이크를 자르던 모습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다. 두 사람이 양가 부모님과 혈친들을 모셔 놓고 혼약하던 모습이다. 생을 통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포함해서.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세월 속으로 스러져 간 기억들을 떨쳐내려는 부단한 노력이다. 이제 와 그것들을 떠올려 어떻하자는 얘긴가. 돌이킬 수 없는 세월 저편 까마득한 너머에 두고, 통탄해 하며 뒤돌아 서야 했던 추억인 것을.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서둘러 미련을 접는다. 그 뒤에 있었던 일들은 차마 잔상을 떠올리는 것조차 혹독한 고문일 테니까. 비록 삽시간에 이루어진 짧은 악몽이었으나, 내겐 죽음보다도 무겁고 어두운 상처였다. 정녕 잊을 수만 있다면, 두개골을 열어 뇌를 들어내 맑은 물에 깨끗이 세척해서라도 지우고 싶다. 그만큼 처절한 기억들이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풍증이나 말라리아에 감염된 듯 심하게 떨고 있다. 현실처럼 펼쳐지는 곡두를 떨치려 부단히 노력했으나, 이미 나는 격랑처럼 밀려오는 처절한 환영에 점령된다.
약혼식이 있던 그날, 성혁과 나는 베낭을 메고 밀월 여행을 떠났다. 남한강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 곳에 텐트를 쳤다. 세상이 어둠에 묻혔을 때, 나는 성혁의 품에 알몸으로 안겨 있었다. 머리맡엔 처음으로 유리구두를 나란히 놓아둔 채였다. 두 사람이 하나되는 날이었다. 그때 텐트의 지퍼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채 소년의 티를 벗었을까. 흉기를 들고 설쳐대는 대 여섯 명의 폭한들의 눈에선 푸른 별빛이 번뜩인다. 100미터쯤 상류에 텐트를 쳤던 학생들이다. 해질녘 조미료를 빌리러 와선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짖던 앳된 모습의. 그들에 의해 머리채를 잡혀 텐트 밖으로 끌려나가는 성혁의 뒷모습이 안타깝다. 푸른 별빛이 쏟아지던 강변의 적막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깬다. 아직도 또렷하게 고막을 울린다. 내가 겁에 질려 앙칼지게 �어내는 절규였다.
악.....! 성혁씨! 괜찮아?
약혼식의 설렘이 채 가시지 않은 부픈 가슴을 짓밟는 윤간(輪姦)이다. 더없이 행복해야 될 나는 폭한들에 의해 차례로 찢기고 있다. 그들의 잔혹한 몸부림에, 죽탕으로 변해 버린 해빙기의 비포장 길처럼, 내 여린 속살들은 상상조차 못해 본 더러움으로 철저히 오염되가고 있다. 그 끔찍한 일이 저질러지는 순간에도, 이지러진 내 시선는 어이없게 성혁에게서 전혀 뗄 수가 없다. 나는 살갗이 갈갈히 찢기는 아픔과 서러움 보다도, 깊숙한 자상에 선혈이 낭자한 복부를 움켜쥔 채 거꾸러진 성혁을 걱정한다. 호흡조차 힘에 겨워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차라리 어둠 속에 묻혔으면. 묵묵히 고개를 내미는 둥근 달이 저주스럽다. 성혁이 고개를 돌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겁탈 당하고 있는 처참한 상황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미안하고, 그런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럽다 못해 저주스러웠으리라.
나는 기억들을 지우려 황급히 고개를 젖는다. 현실로 되돌아 왔을 때, 악몽에서 깨어난 초췌한 모습이다. 얼굴은 빗속을 뛰어온 듯 온통 식은땀이다. 붉게 상기된 볼을 눈물이 가른다. 의미를 굳이 따진다면, 청조를 앗긴 것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나 서글픔보다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던 성혁을 위해 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 또한, 극한 상황 속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오르가즘일 수도 있는 묘한 느낌에 대한 죄책감이다.
따르릉... 따르르릉.....
전화 벨이 경망스럽게 울린다. 속절없는 내마음을 놀리는 것같아 기분 나쁘다. 뇌리에 남아 있는 처절한 잔영들을 서둘러 지운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쳐 닦는다. 부질없이 되버린 역한 과거를 떠올리며, 괜실히 몸을 떨 이유가 없다.
“여, 여보세요.”
내 목소리는 퍽 가라앉아 있다. 침울한 기억들을 아직도 확실하게 떨쳐내지 못한 까닭이리라.
다음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바짝 긴장한다. 수화기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나 순옥 에민디. 크, 큰 일 났구먼! 큰 일!!
전화를 걸어온 건 내 건너에 살고 있는 서천댁이다. 울먹임에 가깝다.
“큰 일...? 큰 일이라뇨?”
나는 생각보다 침착하게 전화를 받고 있다. 허나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평소 함부로 호들갑을 떨지 않았던, 침착하기 이를 데 없던 서천댁이라서 더욱 그러했다. 그것은 일찍이 경험한 바 있었던 섬칫한 느낌이다. 색정에 사로잡혀 푸른 광기를 발하는 폭한들 앞에 알몸으로 나뒹굴 때 느꼈던 싸늘한 전율이다.
쪼매 전 지서여서 전화가 왔었는디, 우리 바깥양반 허고 자네 서방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능구먼!”
“예... 옛? 교, 교통... 사, 사고...?!”
온 몸이 바들거린다. 서걱서걱 얼 듯 경직되는 것을 느낀다.
그려, 그렇구먼.
순간 맥이 풀린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수화기를 놓쳤다. 동시에 유리 구두를 떨구었다. 쨍그랑 소리가 방안을 가른다. 파편들이 튄다. 발등이 시큰하다. 금세 비릿한 냄새가 콧날을 비틀어 온다.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와 방바닥을 적신다. 피였다.
4
열차는 기적 소리를 길게 토한다. 서러운 내 마음인 듯 힘 없이 철로 위를 미끄러져 간다. 타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실로 어처구니없고 씁쓸한 나들이다. 이번에도 결코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서글픈 외출이다. 9년 전, 눈물과 미몽으로 내려왔던 길이다. 나는 수심으로 가득한 가슴을 끌어안고,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나는 앞좌석에 앉아 연신 눈물을 뿌리고 있는 서천댁을 피해 눈길을 차창 밖으로 급히 돌린다. 그리곤 창문에 이마를 기댄다. 훌쩍이는 그녀를 마주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토해낸 음식물을 맨 손으로 그러담는 것보다 참을 수 없는 고역이다. 짐짓 외면하지 않고서는 격하게 심장을 치받는 억색한 감정을 도무지 가눌 수가 없다.
차창에 비친 나는 쓰러지는 속마음과 달리 무척 초연해 보인다. 열차에 오르기 전, 파출소에 들러 자초지종을 어뜩 들었다. 눈물을 흘린다고 모든 게 해결될 일이 아닐 성싶었던 것이다.
아주머니, 미안합니다. 한 분은 머릴 심하게 다쳐 위독한 상태라 연락을 받았을 뿐입니다.
머릴 다쳤다면, 누가요?
글쎄요? 두 분의 신원 파악만을 의뢰 받은 저희들로선, 그 이상 알 수가 없답니다. 도움이 못 돼 미안합니다.
이 말은, 사고가 자신의 탓인 양 미안해 하던 파출소장의 말이다. 순간 나는, 그가 얘기하던 한 분이 제발 은호가 아니길 간절히 빌고 있었다. 그러하긴 이지러진 눈을 끔벅이며, 나를 흘끔 흘끔 쳐다보던 서천댁 역시 마찬가지리라. 어긋진 우리 부부와 달리 두터운 내외의 정이 근동에 소문이 죄 나 있던 그들이었으니까.
궁박한 나를 외면한 듯 냉정히 돌아선 핏빛 노을이 몹시 삭연하게 망막을 파고든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장 망혜(竹杖芒鞋) 하듯 서울을 맹목적으로 빠져 나올 때에도 이내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서녘 하늘은, 멱 찔린 돼지가 마지막 발악으로 내뿜은 선지처럼 붉었다.
빛바랜 과거의 기억들이 차창에 무잡하게 투영된다. 나는 눈꼬리를 약간 접었다. 착잡한 이 순간, 흘러간 과거를 또 다시 떠올려 어떻하자는 것인지,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 마음이다.
구급차에 실려 가던 성혁의 절박한 모습이 어수선하게 떠오른다. 병원으로 후송된 성혁은 열 시간이 넘는 대 수술을 마쳤다. 다행히 의식을 되찾은 것은 꼬박 하루만의 일이다. 의식이 돌아온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건 나였다. 중환자실 복도 끝에 초조히 쭈그리고 앉아 기도하고 있던 나는 차마 병실 안으로 들어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서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청조를 잃은 일은,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불가항력이었노라 자위해 보았지만, 돌이킬 수 없이 춥춥하게 더럽혀진 나는 이미 타인이라는 생각을 끝내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병원을 빠져나와 그 길로 홀연히 장항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부모님은 물론, 성혁의 가족과 나를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을 볼 낯이나 뱃심이 내겐 없었다. 그렇게 떠나와 흘러들어온 곳이 한촌의 초라한 교회였다. 학창시절, 봉사 활동 동아리의 연례 행사인 농활대로 찾아와 일주일 동안 땀흘려 바쁜 일손을 거들며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그때 왜 무의식중에 한촌으로 오게 됐는지에 대해선 지금도 의문이지만, 그것은 분명 은호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는 장난 같은 운명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내가 은호를 남편으로 맞게 된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다. 사실 남편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현실 도피의 수단이요, 그에 따른 최선의 방편일 따름이었다. 나는 혼란스런 기억들을 하루라도 빨리 지우기 위해 죄 없는 은호를 내 인생에 끌어들였고, 애정이라곤 반푼 어치도 없는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내가 은호와의 결혼 소식을 집으로 전한 것은, 서울을 바람처럼 훌쩍 떠나온지 불과 한 달 남짓만의 일이다. 어느 한곳 마음을 둘 곳이 없었던 나는 험한 세상살이의 호된 시련을 배겨낼 도리가 없는 절박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기왕에 더럽혀져 의미없는 몸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은호 앞에 함부로 내박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성혁에게 대충 이유를 전해 들어 내가 이같이 해망한 행동거지를 보이는 까닭을 알 수 있었을 터였겠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억지에 가까운 내 결정에 부모님으로선 어지간히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금지 옥엽으로 키워 놓은 딸년이 한 달여 동안 종적 무소식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 와 보도 듣도 못했던 촌뜨기에게 시집간다는 생퉁스런 소식은, 분명 죽 쑤어 개 주는 느낌이었으리라. 내 결혼식에 부모님과 친정 식구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불편하게 뒤틀린 심사를 표현한 무언의 항변일 것이다.
애정 결핍에 축복 받지 못한 결혼 생활이 처음부터 원만히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결혼 초기에 시작한 축산업이 한우 파동으로 거덜난 것에 따른 비관. 여기에서 비롯된 현실을 망각한 은호의 방만하고, 종작없는 생활 태도. 그 보다도 애정과 신뢰 없는 부부 관계는 형편없이 삐걱댔고, 온실 속에서 자라난 내가 촌부의 아낙이 되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더욱이 남편 은호를 금수처럼 달려들던 폭한들의 모습으로 착각할 땐 전기 고문을 당하는 듯 차라리 죽을 맛이었다.
나는 첫 아이를 유산시켰다. 결혼 넉달 만에 홀로 내린 결정이다. 결혼 직전에 분명 생리가 있었다. 의사의 임신 삼개월 소리가 은호의 아이임을 의심치 않게 했으나, 나는 고민 끝에 소파수술을 결정했다. 밤마다 꾸는 남한강의 악몽. 그리고 얼굴이 각기다른 여러명의 아이를 출산하는 환시때문이다.
그 이후 어쩔 수 없이 두 아이가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해질녘만 되면 엉뚱한 일로 바빴다. 잠옷 속에 신축성이 마른 쇠가죽 같은 거들에 생리대를, 특수부대원이 출동하기 위해 착용하는 방탄복처럼 철저히 무장하느라 급급했다. 또한 생리통을 호소하며, 은호에게 보란 듯이 진통제를 한 움큼씩 무단히 복용했다. 그리곤 아랫배를 어색하게 쥐어짜는 연기를 해야만 했다. 물론 이같은 행동은 거짓이요, 진통제라는 것은 비타민제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나는 산부인과에 간다며, 읍내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오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를 핑계거리로 은호의 불타는 애염의 손길을 거부하기 위한 편법이었다.
“우린 워떻허야 좋응 겨?”
서천댁이 벌겋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말을 걸어온다. 나는 몹쓸 짓을 하다 들킨 듯 어수선한 기억들을 황망히 지운다. 이를 감추기 위해 그녀의 손을 덮썩 잡아 다독거리며,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연다.
“염려 말아요. 괜찮을 테니까요.”
“다른 데도 아니고 머릴 다쳤다니께 더 걱정이구먼... 여편네가 서방을 잃으믄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라 혔는디 말여...”
“고래 힘줄보다 질긴 것이 사람의 명줄이라 했어요.”
“허지만, 파리 목숨만도 못헌 게 우리네 명줄이라구 혔구먼.”
“그런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테니까.”
나는 백중 사리에 맞물린 해일처럼, 거칠게 밀려드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잔혹스러울 정도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래서인지 서천댁과는 다르게 차창에 비친 내 표정은 지극히 무덤덤해 보인다. 집을 나설 때 이미 눈물은 말라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갑작스런 사고 소식은 내게도 그녀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마치 청청한 하늘에서 날벼락이 정수리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 그렇지만 나는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대해 여전히 눈물만이 능사가 아니리라 판단하고 있다.
5
회한으로 뒤 돌아선지 거의 십 년만에 올라오는 서울이다. 은호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자발 없던 내 발자국이 무수히 찍혀 있는 신촌 거리였다. 허나 처음 와 보는 곳처럼 몰라보게 변해 있다. 그렇지만, 성혁의 모교 근처에 있는 병원은, 그를 만나기 위해 숱하게 오고가던 길목에 있었으므로, 굳이 지나는 이를 불러 세워 묻지 않아도 지하철을 이용해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지하철 역을 빠져 나올 때,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은호에게 점점 가까워지면서 지금까지 차분했던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일렁인다. 은호의 얼굴을 마주 본다는 것에 두려움 마저 일고 있다. 어쩌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성혁의 처절한 모습을 두고, 쓸쓸히 돌아서던 때가 어처구니없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집 떠나기를 그토록 죽기보다 싫어했던 은호였기에, 늘 이를 비난하며 집 떠나 주기를 종용했던 자신이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죄책감에 빠져들고 있어 더욱 그러했다.
면회 시간이 지난 탓일까. 중환자실 앞은 생각보다 사람이 드물었다. 시동생과 서천댁의 딸 순옥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들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온 이십대 초반의 또래였다. 초조한 표정들이다. 그들은, 허겁지겁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나와 서천댁을 보고 반색했으나, 얼굴은 이내 석고상처럼 굳어진다.
서천댁은 터져나오는 오열로 순옥을 끌어안는다.
나는 망연히 시동생을 향해 다소 냉냉하게 느껴질 어투로 입을 연다.
“삼촌, 형님은 요?”
면회 시간이 아니었므로, 시동생과 순옥을 통해 은호와 김씨의 상태를 들어야 했다. 그들의 입술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나와 서천댁은 뚜렷하게 희비가 엇갈린다. 김씨는 팔 다리와 갈비뼈 등에 골절과 찰과상이 있었으나, 조금 전 의식을 회복해 내일쯤 일반 병실로 옮겨 갈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은호의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비관적이다. 척추 골절과 두개골 함몰, 과다 출혈에 의한 혼수 상태란다. 은호는 서둘러 뇌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시동생이 울먹인다. 수술이 이루어진다 해도 도중에 쇼크사 할 확률이 태반이고, 그대로 식물 인간이 될 수도 있으며, 요행히 의식이 돌아온다 해도 정상적인 행동과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극히 절망적인 얘기였다. 나는 끝내 흘릴 것같지 않았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할 수 있었다.
“형수님, 어떻하죠?”
“어, 어떻하다뇨 삼촌...? 빨리 뇌수술을 받아야지요.”
“그, 그게...”
“그게...? 무슨 일이죠?”
정황 설명 중 내내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시동생이 눈물을 글썽거린다. 내 손을 잡아오며 몸을 떤다. 그 진동이 심장까지 울려온다. 비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에는 심한 경련마저 일고 있다.
나는 순옥을 바라본다. 순옥은 애틋한 시선을 흘끔 던지더니 마주치는 눈빛을 피해 서천댁의 팔을 끌었다. 나를 의식해 자리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퍼뜩 스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초연하려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는다. 조금 전에 들었던 얘기보다 극한 상황이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삼촌, 어서 말하세요?”
“낮에 경찰서에 들러서 알아보니...”
“그래서요?”
“사고 차량이 도난 차량에 책임보험조차 들지 않았데요.”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치료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얘기예요. 무적 차량이라서...”
“그, 그렇다면...?”
“그래요. 가해 운전자는 학교에서 퇴학 처분된 미성년자에, 부도 나 잠적한 선배의 차. 그러니까 책임보험조차 기간이 끝난 차를 훔쳐 타고 다니다가 사고를 낸 거래요. 호기심에... 변두리 산동네 무허가 가건물에 살고 있고,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편모 슬하에, 재산이라곤 전무한 처지고요.”
가해자가 사태를 책임질 수 없는 미성년자라는 사실 때문일까. 순간, 희희덕거리며 내 몸을 짓밟던 폭한들이 떠올랐다. 성혁의 얼굴, 은호의 얼굴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오, 이런... 그, 그럼 형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휴...! 그래서 답답한 마음으로 형수님께 묻는 거예요. 형님이 뇌 수술을 받고 의식을 되찾을 때 까진 자갈논 닷 마지기를 몽땅 처분해도 어림도 없다는 게 문제죠. 그러니 이를 어떻하죠? 당장 거금의 수술비도 문제고요. 큰 형님이 혹여 도와준다면 몰라도...”
“아...!!”
가탄의 한숨을 내뱉던 나는 심한 현기증에 몸을 비척인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날벼락이다. 나는 한 가닥의 실낱처럼 가느스레 이어온 희망이 휘휘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형수님, 괜찮아요?”
시동생이 급히 팔을 잡아 부축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너지듯 거꾸러졌을 터였다.
나는 한 손을 시동생에 의지한 채 손사래를 친다. 그리곤 짐짓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전 괜찬아요.”
솟구치던 뜨거움이 볼을 가른다. 어처구니없어 흘러나오는 눈물이다. 온몸을 바들거리며, 어떻하냐, 했던 시동생의 물음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비로소 알 것같았다.
6
나는 밤새 느껴 울었다. 재수 없다는 양 눈을 흘기는 다른 환자 가족들의 빈축에 떠밀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변기 위에 털썩 주저앉아 울고 또 울었다.
왜? 하필 이럴 때... 휴...!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비탄의 넋두리가 흘러나온다. 신당동 친정 집으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했던 어젯밤 기억 때문이다. 나는 결혼 이후 처음으로 불고 염치하고 친정에 전화를 했었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었다. 부모님께 할 수만 있다면, 은호를 살려달라, 비라리를 치기 위해서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마지막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오늘 아침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것이다. 이민 간 손아래 동생 내외가 초청을 해 와 관광 비자를 발급 받아 보름의 일정으로 떠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부 아주머니만이 쓸쓸히 집을 지키고 있었다. 부산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와,
돈 잔뜩 드려 병신으로 살려 놓으면 뭐하겠어...
그래 동서, 뇌수술을 받아 살아난다 해도 사람 구실 못한다면서? 그러니 수술은 받아 무얼 하겠어...
하는, 큰 시숙 내외의 단호하고도 비정한 말을 들은 직후여서, 내 마음은 폭풍우 속을 표류하다가 좌초되는 배에 몸을 싣고 있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차마 큰 시숙 내외가 그렇게까지 잘라 말할 줄 몰랐다. 부친의 손바닥만한 땅덩이를 두고 평소 사이가 껄끄러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앞 뒤 정황 따져 물을 것 없이 뇌수술부터 받아 보자고 말할 줄 알았다. 지레 짐작으로 도움을 청할까 미리 박절하게 입을 막는 것이, 끈끈한 혈육의 정리로 볼 때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이 최고의 양반이란 가치관과 의식으로 중무장한 그들에게, 애당초 최소한의 자비를 구걸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코스닥에 투자해 공돈 수십 억을 건졌다. 며 너스레를 떨던 구정 때가 떠올라 야속함을 금할 수 없다.
내가 굳게 잠궈 놓았던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밖에서 끈덕지게 노크를 해 오는 시숙 때문이다.
“제수씨. 이제 그만 우시고 결정하세요.”
“결정...?”
“지금까지의 치료비는 제가 부담할 테니 걱정 마시고...”
“그렇게 해 동서. 어서 결정을 하라고... 무의미하게 몸 축내지 말고...”
몸이 풀잎처럼 파들거린다. 그들의 결정이란 은호의 퇴원을 종용하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 그만들 하세요.”
“이것봐 동서, 결정은 빠를수록 좋아. 어쨌거나 산 사람이나 살아야지...”
순간 나는 고개를 피뜩 치켜든다. 시숙 내외의 어깨 너머로, 방도가 없어 어깨를 늘어뜨린 채 뒤돌아 선 시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서천댁도, 순옥의 모습도 눈에 띈다. 어지간히 울상들이다.
“어서...”
미간을 좁힌 채 결정이란 과제를 두고 종주먹 대는 시숙 내외의 모습이 야속하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안개처럼 피어난다. 그러나 손에 거머쥔 것이 없는 자의 비애일 따름이다.
초췌한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헝클어진 머리에, 눈두덩은 벌에 쏘인 듯 퉁퉁 불어 있고, 입술이 벌겋게 부르튼 모습이 낯익다. 거울에 비친 처연한 내 모습이다.
나는 결국 울부짖는다.
“이러지들 말아요. 결국 은호씰 퇴원시켜 죽이라는 얘기 아닌가요? 갖은 것이 없으니, 한 시라도 빨리 퇴원시켜 돈이나 절약하자는 소리 아니에요?”
“제, 제수씨 그, 그게...”
“시숙 어른. 제가 왜? 그런 결정을 해야만 하는 거죠? 제가 왜? 은호씨의 명줄을 끊으라 허락해야 되죠?”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더 이상 나를 그렇게 다그치지 말아요. 고우나 미우나 은호씬 제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예요. 제게 그 말을 꺼내 놓았을 땐 시숙께서 이미 결정하신 일이잖아요. 아니, 교통사고가 났을 때, 은호씨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 아니던가 요?”
“그럼 치료 중단에 동의한다는 말인가요?”
“이러지들 말아요. 알몸인 날 더욱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요. 난 시숙 어른이, 하는데 까지는 해보자고 말할 줄 알았어요. 어흐흑...!”
나는 기어이 오열을 터트렸다. 가로막는 시동생의 손을 뿌리치고 병원 문을 빠져나왔다. 그 자리에 있다가는 복받히는 서러움으로 심장이 멈춰 버리거나, 이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밖은 없는 자의 서러운 눈물인 듯 비가 내린다. 나는 섬칫하게 온몸을 후려치는 빗속을 뛴다. 살려줘! 뒷덜미를 휘어잡는 은호의 허상에서 벗어나고픈 까닭이다.
나는 처음 와보는 골목길에 서 있다. 모퉁이에 허름한 미장원이 눈에 띈다. 나는 문을 세차게 밀고 들어선다. 바닥 청소를 하고 있던 미용사가 깜짝 놀랐으나 이내 긴장을 늦춘다. 나는 쓰러지듯 의자에 앉는다. 미용사에게 사뭇 촌스러운 퍼머 머리를 자르라 한다. 꿈 많은 여고 시절의 짧은 커트 머리로. 호주머니에 만원권 지폐 열 장 남짓 갖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선택의 여지란, 단지 시숙 내외가 말하는 결정밖에는 없다. 오직 어수선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잘라 내며, 먹구름처럼 밀려오는 암울한 시간을 초연히 기다릴 따름이고, 묵묵히 입술을 비틀어 깨물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길뿐이다.
7
정오 무렵이다. 은호와 김씨는 중환자실 문을 빠져나왔다. 김씨는 형제 자매들과 서천댁의 친정 오라비들의 환한 미소에 둘러싸여 위층 병실로 옮겨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은호는, 안�니다. 동의할 수 없어요. 이 환자는 뇌사가 아니라 혼수상태예요. 하며 극구 퇴원을 만류하는 담당 의사를 외면한 채 비통한 마음으로 내젓는 내 고갯짓에 의해, 다시는 돌아설 수 없는 서러운 길을 떠나가기 위해서였다.
8
잿빛 하늘이다. 때없이 눈발이 날린다. 허공에 그어지는 맹목의 일직선들이 을씨년스럽다. 나는 남한강 사건 이후, 눈발이나 빗방울이 긋는 일직선을 한 번도 따라 긋지 못했다. 이럴 때면, 언제나 내 시선 끝은 허공에서 표류한다. 지금도 가로막는 눈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내 시선은 멀리 가지 못한다. 미망과 미몽 사이에서 초점 없이, 의식없이 떠돌고 있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있다. 곁엔 두 아이도 함께 있다. 상복 차림이다. 녀석들은 구술과 딱지를 한 움큼씩 쥐고 있다. 철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끝도 없이 희희덕거린다.
마당엔 굴참나무를 베어 지핀 화톳불이 벌겋다. 피시식 소리가 요란하다.
수면 부족일까. 초췌한 모습으로 불을 쬐는 시동생이 보인다. 고뇌에 차 있다. 안쓰럽다.
열기 너머로 조문객 몇이 보인다. 마을의 연존장(年尊長)들이다. 은호에겐 노름 벗이요, 술 친구들이다. 그들과 마주앉은 시숙 내외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술기운 탓인지, 직심스럽지 못한 성격 탓인지, 간헐적으로 내뱉는 차가운 금속성 웃음소리가 얄궂다. 그들의 과장된 몸짓에, 진실되지 못한 어투에, 차츰 비위가 거슬린다. 며칠째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으나 토할 것만 같다.
나는 그들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망념에 사로잡혀 멀찌기 물러난 감정을 바짝 끌어당겨 훌쩍이지도 않는다. 나는 이미 피와 눈물 모두 말라 있었다. 그래서 무겁게 침묵한다. 나의 침묵은, 밀려오는 운명에 대항해 언제나 처음과 마지막 순간에 선택하곤 했던 것이다. 내게 있어 침묵은, 곧 무기와 방패 같은 존재였다. 철저히 계산된 전략 무기와 같은. 하지만 더 이상 무기일 수도, 방패일 수도 없다. 나는 지쳐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
은호에게서 산소 호흡기와 링거 주사를 제거하면, 그에겐 아무런 고통도 없는 평화가. 내겐 더 이상 심장을 옥죄는 슬픔도, 모든 세포를 수축시키던 긴장도 없는 평온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예측은 잘못 놓아버린 시위처럼 빗나갔다. 빗나간 만큼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 은호가 질곡한 이 세상을 떠나가는 데에는 꼬박 일주일이란 잔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헝클어진 타래실을 풀기보다도, 약속 없는 기다림보다도 지루한 몸부림의 시간. 차마 눈을 뜨고 지켜볼 수 없는 또 다른 악몽이었다.
찌륵 찌륵 찌르륵...
시선을 살구나무 우둠지쪽으로 던진다. 눈발은 어느새 소담스러워졌고, 굵은 사선을 허공에 그어댄다. 그 사이로 잔뜩 옹크린 멧새가 보인다. 암컷 한 마리였다. 항상 붙어다니던, 그래서 그림자 같았던, 화려한 깃털의 수컷이 보이지 않는다. 잘 정리되고, 윤기가 흐르던 깃털 자리엔 듬성듬성 붉은 맨살이 드러나 있다. 경망지게 흔들던 꽁지털은 죄 빠져 볼품없다. 떨고 있다. 한마디로 비참해 보인다. 지난 며칠 사이 심상치 않은 일을 당한 것이 자명하다. 나는 녀석의 지저귐은 노래가 아니라 비명, 또는 절규라 여긴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무슨 주문이라도 외듯 주절거린다.
너 역시 짝을 잃었나 보구나? 나처럼... 타인... 타의에 의해... 선택의 여지없이... 또 다시 알몸인 채 세상 속으로 내쳐진 나처럼 말이야...
나는 녀석을 급히 외면한다. 눈을 감는다. 성혁과 은호의 얼굴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그들과의 추억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허나, 분명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유기적 연관 관계가 있다. 나는 천사로부터 배격 당했다. 잔혹하고 사악한 뱀이 경영하는 운명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모든 것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잠재된 의식 속에는 밖으로 비어져 나오려 꿈틀거리는 억색한 노래가 있다. 나는 그 노래를 대신 부르고 있는 멧새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