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욱 단편소설) 迷路엔 비상구가 없다.
(단편소설) 迷路엔 비상구가 없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 8:22-
두 평 남짓한 방 안은 침침하였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았으므로, 날이 채 밝아 오지 않은 것같이 느껴진다.
동남향 정면에는 외쪽 여닫이문이 위치해 있다. 나무오리 문살이 듬성듬성 빠져나간 전형적인 한옥 출입문이다. 창호지로 마감되 있었는데 며칠 전 문풍지를 새로 붙이면서, 바깥쪽에는 비닐을 덧대 차가운 기운이 파고드는 것을 막아 놓았다. 낡은 장롱 옆 뒤란 쪽 벽에는 창문이 있다. 가로세로 네댓 뼘 남짓 크기의 여닫이 창이다. 이렇듯 창호가 제자리에 있긴 했으나 겨우 가시광선만 어릿어릿 흘러들고 있을 뿐이어서, 그것들의 실체 가치란 있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왜냐하면, 출입문 창호지가 찢어질 때마다 신문지를 잘라 덕지덕지 덧붙인 데다가, 엊그제까지 폴리에틸렌 방충망이 설치되 있던 창문엔 시월과 십일 월 달력을 한꺼번에 뜯어다가 붙여 바람 새어들 틈 없는 봉창으로 만든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해도, 외부로부터 밝은 빛이 유입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켜 줄 것을 갈망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요 희리산 정수리에 앉아 숭어를 낚아 올리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방 안은 설핏한 회색 빛 분위기가 압착기로 짓누르는 듯 무거웠다. 마치 입구가 봉쇄된 토굴 속에 고립되 있는 것처럼 미묘하다. 그렇듯 분위기가 곳집 내부처럼 몹시 괴괴하였으므로 호젓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이불이 부스럭부스럭 젖혀진다. 잠이 채 덜 깬 부스스한 얼굴이 고개를 내민다. 텁수룩한 수염으로 창백한 얼굴이 거지반 뒤덮인 사내였다.
사내의 표정이 심란하다. 혹 뭔가 마뜩치 않아 이맛살을 잔뜩 구긴 듯 했다. 눈이 부셔 샛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허나 실상은 그런 게 아니다. 그는 애초 눈웃음이 많았다. ‘와이셔츠 단추구멍’이란 별명이 말해 주듯 감은 듯 뜬 듯하여 처음 마주하는 이는 어찌하고 있는 것인지 웬만해선 구별 못할 작은 눈이다. 그러므로 개밥바라기와 함께 뜬 그믐 무렵의 잔월(殘月)을 연상케 한다. 얼굴은 깡통차기놀이에 사용됐던 분유통처럼 우그러졌다 할까. 사십대 초반의 나이가 무색하게끔 온통 푸슬푸슬 잔주름 투성이었다. 새치 하나 없는 머리칼을 지니고 있음에도, 쉰 줄에 들어 선 중늙은이로 착각할 만큼 몹시 겉늙어 보였다. 그랬으므로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샛눈을 떴다거나 고의적으로 그런 표정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내가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연신 씨부렁거린다. 이번에는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무릅쓰더니 다소 목소리를 높이긴 했으나 역시 잠꼬대같이 불분명한 어조로 뇌까린다.
“기어이 떨어진 게로군.”
사내는 보일러의 연료가 바닥났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방 안이 뼛속까지 스미는 냉기로 가득할 리 없었으므로, 오래된 경험이나 동물적 직감 같은 것을 동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젯밤 사내는 읍내에서 이슥한 시간에 돌아왔다. ‘쌀수입 반대’와 ‘추곡 전량수매’ 그리고 ‘농가부채 해결’과 ‘농민 생활보장’을 외치며, 나락 포대를 야적해 놓고 시위를 벌이던 군청 광장에 진종일 나와 있었다.
농산물 개방 반대 투쟁이란 명목으로, 보아란듯이 국도변 종답 닷마지기 수확 포기를 결심한 사내였다. 그랬으므로 애초 집을 나설 때, 야적 시위를 주관한 농민회에 동조해 그들과 무기한 철야 농성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그의 당초 계획도 대폭 수정되었다. 좋게 표현해 수정이지 실상은 계획이 뻐그러진 것으로, 수도 없이 들어 냉소조차 나오지 않는 농담처럼 우습게 되버린 것이다. 한기에 기가 꺾인 시위대는 하나, 둘씩 슬그머니 농성장을 빠져나갔고, 급기야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삭발까지 단행한 농민회 회장단 서넛만이 남아 한숨을 푹푹 쉬며 애꿎은 술잔만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들 역시 안되겠다 싶었는지, 찬바람을 막아 줄 천막과 난로도 준비하고, 삭풍에 어처구니 없이 와해된 조직력도 보다 체계적으로 재정비해 오늘 정오에 다시 집결해 무기한 농성에 들어갈 것을 약속하고 해산해 버렸다. 그랬으므로 사내 역시 집으로 찜찜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사내는 혼자 소주 두 병을 비웠다. 뭔가에 홀린 듯 했고, 왠지 그랬으므로, 멀뚱멀뚱한 맨 정신으로는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요즘 들어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내로서는 이보다 좋은 핑계거리는 없었으리라.
기묘한 술기운에 점령된 몸으로 잠자리에 들려던 사내는, 이틀 전 보일러 수리를 마치고 돌아가던 서비스 센터 직원을 퍼뜩 떠올렸다.
“장담하지만, 오늘밤 기름이 바닥 날 것 같으니 필히 보충하는 게 좋겠네요.”
했던 충고를 그제야 상기해 냈던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툭툭 치며 아차 했고, 깜박 잊고 주유소에 연락하지 않은 사실도 깨달았다. 서비스 센터 직원의 말을 들었을 당시, 곧장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기름을 주문하려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 남새밭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옆집남자가, 어떤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이다. 무슨 특공부대 기습 작전이라도 하듯이.
옆집남자와는 선대 때부터 이웃이란 특수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개와 원숭이처럼 편편치 못했다. 오래 전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난 봄 가뭄 때 물꼬를 두고 언성을 높인 이후 토라진 때문으로, 서로는 길에서 마주쳐도 면식 없는 사이처럼 행동하곤 했었다. 그러므로 사내의 집엔 언제까지 발을 붙이지 않을 것 같았던 옆집남자였다.
그런 그가 그렇게 찾아와서는 의아해 하는 사내를 보고 그답지 않게 잠시 멋쩍은 듯 머뭇머뭇 했다. 그러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얼넘기기 일쑤인 우유부단한 성격의 옆집남자는 특유의 넉살스런 어조로, 두미없는 이야기들을 숨쉴 틈 없이 지껄여 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게거품까지 일으키며. 역전다방 아가씨들이 매혹적인 영계들로 물갈이됐다느니, 시장 뒷골목에 물망초라는 색싯집이 개업을 했는데 해웃값으로 쌀 한 가마니 값만 있으면, 양귀비 뺨치는 여인을 마음대로 골라 기꺼이 상관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뭔가 달라졌을 것이라 잔뜩 기대하고 있던 사내는 어이가 없었다.
“그 얘길 하시려고 오신 겐가요?”
“왜 아니겠어. 세상에 그보다 좋은 얘기가 또 어디 있다고... 그 재미가 세상 재미 중 재일 크거든... 흐흐흐...”
반드레한 얼굴의 옆집남자 나이는 쉰 중반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도 별명 하나가 거창하게 붙어 있었다. 연애조합의 조합장이다. 뒷갈망 생각지 않는 바람기 때문으로, 금강변 어느 카페 여주인과 어찌어찌 상관을 해 오다가, 그녀의 남편에게 덜미를 잡혀 간통죄로 기소된 적이 있었는데 구속 직전에 운 좋게 합의가 이루어져 풀려난 이력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이마에 새겨진 주홍글씨와 같은 불명예스런 별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 별명이나 이력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흡족하는 눈치를 보였다. 사정이 그랬으므로 고대국가의 여전사 같은 튼실한 체구의 집사람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몇 차례 뺨을 얻어맞는 등 호된 망신을 치르기도 했었다. 따라서 구차한 변명 따위의 발언권을 박탈당한 채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제 버릇 개 주랴. 비굴해 보이던 옆집남자는, 군민체육대회 여자부 씨름 우승자인 집사람을 저어하기는커녕 채 삼 일도 못 가 얼없이 행동하곤 했다. 내가 언제 그랬었냐며, 암내 맡은 수캐처럼 읍내 뒷골목을 싸돌아 다녔던 것이다. 도무지 수치심이라든가 자존심, 그런류의 어떤 것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안 보이는 옆집남자였다.
사내는 이에 반해 더없이 순진했다. 학창시절부터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여복이 없었던 그는 맛선 이후 일 년 동안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다. 그는 초야에 비로소 아내의 옷고름을 풀었는데 그일 역시 성에 대한 첫경험이었다. 대중 앞에서 숫기 있는 행동을 곧잘 보였으나 유독 이성에 대해서만은 그렇듯 숙맥이었다.
여자라고는 아내밖에 모르는 사내였으므로, 서로의 인식 차이가 큰 만큼 갈등해야만 했다. 옆집남자의 음탐스런 이야기들은 얼굴 붉혀야 할 은밀한 것이고,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는 너저분한 이야기일 따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웃이란 칡넝쿨 얽히듯 부담 없이 어우러져야 하고, 고무풀처럼 끈끈이 이어져야 할 것이 이웃간의 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핑계 거리를 찾아 그 자리를 피해야 하는가, 아니면 용납할 수 없는 그 이야기들을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가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제 발로 찾아 준 옆집남자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어쩔 도리 없이 솔깃한 척 하다가, 주유소에 전화하려던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때 술기운에 볼품없이 늘어졌던 눈까풀을 걷어올리며, 벽시계를 흘끔 올려 보았다.
“벌써 자정이로군.”
사내에게 있어 벽시계는 별다르게 신기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모습으로 걸려있지 않았다. 시계는 상단에 있어야 할 숫자 12가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숫자 6은 맨 위쪽으로 올라 와 있어 마치 9자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시계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하면, 사내는 시계를 볼 때마다 12란 숫자가 필히 위쪽에 있어야 할 어떤 법칙도, 꼭 그렇게 고정시켜야 할 아무런 강제성도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남들과 차별화 된 시간을 살고 싶다고, 아니 실상 그렇게 살고 있다고 문득문득 생각할 때가 적잖았으므로, 철부지 괜한 반항이라도 하듯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그렇게 하므로 남들과 확연히 다른 위치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농촌 현실이 반전되거나 무슨 특단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쯤 모를 리 없다. 허나 때때로 무능하게 느껴지는 자신이 어떤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사람이나 가정 파괴범같이 흉악한 범법자처럼 느껴져 용서할 수 없었다. 사정이 그러했으므로, 거꾸로 매달린 시계는 스스로에게 형벌처럼 가하는 일종의 자학행위였던 것이다. 또한, 농업이라는 내세울 것 없는 직업에서 비롯된 저급한 열등의식의 산물이었고, 어그러진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성의 발로이기도 했다.
사내가 이같이 엉뚱한 발상을 하게 된 것은,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기 일 년 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대국의 텔레비전 시청률을 의식해 서머타임을 실시하게 되면서부터 였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시계를 한 시간씩 앞으로 돌려놓았으나 사내는,
“제미럴, 모두가 단단히 돌아 버린 게로군. 단군 이래 수천 년을 이어온 고유의 시간까지 내줘야 한다는 데도 이렇게들 아무렇잖다는 듯 태연하게 받아 들이니 말이야. 에잇, 쓸개 빠진 것들. 달밤에 체조를 한다더니 만... 먹고 살기도 어려운 이판에, 얼어 뒈질 올림픽은...”
하며, 보도 듣도 못한 서머타임 실시는 곧 민족적 자존심 말살과 오천년 역사 의식의 부제에 따른 어처구니 없는 결과라며 발끈했다. 그래서 배타적 애국주의자라도 된 양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집요하게 꼬집었다. 그러나 반응은 소 닭 보듯 냉담하였다. 따라서 변할 수도, 양보할 수도 없는 시간을 혼자만이라도 지킬 것이라며, 표준시간을 끝내 고수하기에 이르렀다. 경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동성이라든가 가변성이란 좀체 찾아볼 수 없는, 붙임성이 신통치 않은 사내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결정이었다. 처음엔 혼자만의 시간이 헛갈리어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냥 한 시간 일찍 모든 일이 시작된다고 여기면서 곧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생각해 낸 것이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지켜야 할 주권을 포기한 채 강대국에 빌붙어 줏대 없이 이끌려 다니는 위정자들을, 아무런 저항 없이 무작정 뒤따라가는 속없는 대중들을, 또한 자꾸만 잘못 되가는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편파적 구조 결함을 강력히 비난하려는 저의가 잔뜩 깔려 있었다.
지금은 그 때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남들보다 늘 뒤떨어진 생활을, 또 그런 생각들만 골라 하며 산다고 여겼으므로, 작년 이맘때부터는 아예 한 시간을 고의적으로 늦춰 놓았다. 행복으로부터 배격 당한 채 살고 있는 자신은 남들과 정상적 시간을 공유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읍내 시계점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반대로 돌아가는 시계를 찾았다. 허나 태양이 서쪽에서 뜰 리 없고, 과거가 미래일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시계를 구할 수는 없었다. 다만 미친놈 취급만 당했을 뿐으로, 어떤 집에서는 아침부터 재수 옴 붙었다며 소금까지 뿌리기도 했다. 따라서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채 표준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돌게끔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어떻게 한다?”
사내는 전화기를 흘끔거리며 망설였다. 거래해 오던 주유소는 상시 밤 열 시를 전후로 영업을 마치곤 했기 때문이다.
주유소는 배불뚝이가 사장이었다. 그는 말이 사장이지 배달 직원이나 다름없다. 고객이 많지 않은 농촌지역 주유소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직원 없이 아내와 둘이서 주유소를 경영했는데 뜨덤뜨덤 찾아오는 자동차 주유와 경리는 아내가 맡아 했고, 주문 배달은 자연스레 배불뚝이의 차지였다.
며칠 전부터 일교차가 심상치 않으면서 난방유 배달 주문이 쇄도해 진종일 바빴을 배불뚝이였다. 그랬으므로 이미 곤히 곯아 떨어졌을 것은 뻔했다. 비록 사내와는 절친했던 초등학교 동창이었고, 개업 이후 십 여년 째 줄곧 거래를 해 왔다는 것을 십분 감안한다 하더라도, 늦은 이 시간에 배달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사내가 선뜻 주유소에 전화를 걸지 못하는 데에는 또 다른 사유가 작용하고 있었다. 정부에서 발행해 주는 면세유 용지만 건네준 채 몇 년째 갚지 못해 누적된 상당 액수의 외상값이 가슴을 은근히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할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골몰해 있던 사내는 농기계 창고 구석에 있는 이십 리터들이 비상 연료통을 떠올렸다. 지난 봄 경운기를 끌고 논에 나아가 로우터리 작업을 할 때 가지고 다니던 것으로, 아마 절반쯤 남아 있으리라. 그것이나마 보충해 놓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사내는 슬몃슬몃 옥죄어 드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본질적으로 헛된 기우일 따름이라 반발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작용해 올 천사성을 띤 긍정적 요인과 악마성을 가진 부정적 요인의 산술적 상수 관계부터 대충 따졌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생각지 않게 긍정적이었다. 서비스 센터 직원이 다녀 간 것은 이틀 전 일이다. 지난 이틀 밤 동안 그가 장담했던 우려는 괜한 기우였던 셈이다. 그러니 그의 말을 비웃듯 오늘밤도 어젯밤처럼 무사히 넘길 수 있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 즉 그렇지 않고 잘못될 수도 있었다. 사내는 그 두 가지 상황의 확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양쪽 모두 동수(同數)이거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대등하게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밤사이 일어날 수도 있는 만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답이 나온다. 생각이 그랬으므로, 실내 온도를 약간 낮추어 놓고서, 매우 독특한 만족감으로 전신을 흔들어 오는 술기운을 핑계 삼아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사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혼잣말을 지껄인다.
“맞아, 누군가 그런 말을 했지. 진작에 죽었다고... 누가? 누군 누구겠어? 전능하신 그분... 신(神) 말이지. 신...”
사내는 반대쪽으로 돌아누우며, 태초에 천지를 창조해 놓고 그 피조물들을 쓱 훑어 봤을 신의 얼굴을 그려본다. 근엄한 얼굴엔 인자함이 깃든 흡족한 미소가 넉넉하게 녹아져 있다.
다음 순간, 조소로 세상을 지켜보고 있을 신을 떠올린다. 그래서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 존재를 새롭게 연역해 내느라 바쁘다. 아무리 부정적 견해를 앞세워 새롭게 조명한다 해도, 편파적 가치관을 동원한다 해도, 본시 기적을 좋아했었다는 것과 이에 따른 신선한 반전을 더할 나위 없이 선호했었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신이 죽지 않았다 하여도, 영영 세세할 것 같았던 곧은 의지는 이미 화대를 받아 든 창녀의 정조처럼 무너진지 오래 전 일이라 생각된다. 어느 순간부터 신은,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 늘 한 발 늦게 행하거나 식상해 했고, 이제는 아예 악마의 전유물인 장난스럽고 잔인한 구석에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됐을 것이라 억측해 버린다. 그러므로 신은, 황소처럼 곁눈 돌릴 사이 없이 우직하게 표방하던 진리와 정의를 슬며시 외면한 채 모든 것을 피상적으로 생각하게 됐을 것이었다. 따라서 일단 변심한 만큼 불합리하게 뒤바뀐 그 가치 기준을 통해 조금이라도 지쳐 보인다던가, 아니면 나약해 보이거나 상황이 불리해 보이는 자의 편엔 절대 서지 않는 그릇된 타성을 지니게 됐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내는 자신이 신뢰했던 상황들을 돌이켜 본다. 농어민후계자 자금을 받아 한우와 돼지를 구입하고 축사를 지었을 때. 시설 자금을 일부 보조 받아 연동식 비닐하우스 지었을 때. 쌀 전업농으로 선정되 농지를 구입했을 때. 손톱만큼도 의심치 않았던 온전한 신뢰들이 늘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어김없이 깨져 버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수입 소에 의한 소값 파동. 엎친 데 겹친 격의 돼지 콜레라와 구제역 파동에 의한 감염가축 살처분. 과채류 과잉 생산에 의해 생산비의 절반도 건질 수 없었던 가격 폭락사태. 그리고 고수할 것으로 여겼던 쌀 시장의 점진적 포기가 바로 사내의 절대적 신뢰의 붕괴였다. 그래서 사내는 이태 전 하우스에 포도나무를 심었고, 야트막한 뒷산까지 개간해 죄 포도나무를 심었다. 부채 상환 능력 부제에 따라 농업을 포기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감행해야 될 야반도주를 막기 위해 새롭게 모색해 보는 마지막 활로요 발악이었던 셈이다. 헌데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잘못된 무역협정으로 칠레산 포도가 무관세로 수입된다는 것이다. 속이 더부룩해 병원을 찾은 이에게 위암 말기를 진단해 주는 의사의 사형 선고를 듣는 것이나 다름없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난 국가간의 무역협정을 반대하는 게 아니야. 그걸 반대한다는 건 욕심이지. 코앞에 큰 감을 놓으려는 것과 진배 없는 과욕... 단지 나같이 경쟁력 없는 촌놈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납득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지... 씨부랄 것들... 이건 비틀거리다가 쓰러진 놈 아예 죽으라고 모가지를 짓밟아 버리는 격이 아니고 뭐겠어?”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신의 그릇된 영향력에 의해 99 퍼센트의 확실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즉 1 퍼센트의 절대 불리한 쪽으로 기울어 그쪽으로 우세하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 아침 일도 그 연장 선상에서 일어난 짓궂은 신의 장난이라 여긴다.
“머피의 법칙...? 젠장할, 늘 그놈의 입이 방정이었지. 긍정적인 것 모두 제켜 두고서, 그따위 씨알 없는 법칙을 찾아 내 뭐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떠버릴 게 또 뭐람?”
사내는 이 모든 것이 오직 힘있는 자에게 편파적으로 작용하는 신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했으므로, 힘없는 자신의 우려는 곧 암울하게 다가올 현실이란 등식을 어렵지 않게 성립해 낸다. 그래서 자신의 게으름을 힐책하기보다는 신의 비열한 모습을 찾고 있다. 따라서 예외 없이 괴팍한 성격의 여자처럼 행동하는 신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내는 이불이 들먹거리도록 쿳쿳거린다. 하지만 잠시 뒤, 지금의 이러한 상황은 가능성 있는 숱한 상황 중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모양새의 상황. 즉 항상 최악의 현실로 나타나곤 했었던 암울한 시간의 또 다른 연장이라며 씁쓸해 한다.
사내는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유소에 전화를 하던지 임시 방편으로 연료를 보충하리라 마음먹지만, 여전히 몸을 일으킬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곁에 있다거나 아들놈이 건넌방에서 떨고 있다면, 상황은 분명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허나 곁엔 아내도, 건넌방엔 아들놈도 없었다. 그랬으므로, 자신의 게으름은 당연한 것이라 변명하므로서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또한, 괜스레 아침부터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찜찜한 얼굴 마주볼 일도 없으며,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잠을 물리고 일어나 비상 연료를 보충한 다음 다시 잠을 청해야 될 만큼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 치부해 버린다. 그랬으므로 낭만적이지 못한 모험처럼 편편치 않은 새우잠일 망정 잠시 하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잠을 설친 데다가, 아침부터 손에 기름을 묻히며 부산을 떨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내는 우울증으로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이후 요양차 친정에 가 있는 아내가 보고 싶어진다. 한 달 전 처가에 다녀왔지만, 마치 일 년이 넘은 것같이 느껴진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삭풍이 헤집고 지나는 듯 시리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그리움이다. 그러하긴 아들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내의 뇌리에 얼굴 둘이 헬륨 풍선처럼 떠다닌다. 아내와 아들놈의 얼굴이다. 갑자기 외롭다는 느낌이 바람처럼 훅 스치고 있어 부르르 몸을 떤다.
사내가 반듯이 누우며, 임종을 앞둔 노인의 어조처럼 힘없이 중얼거린다.
“아무리 신이 살아 있다 해도 분명 변했어.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더러운 쪽으로 말이야. 안 그래...?”
사내는 스스로에게 대답을 요구하며,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어났던 아들놈의 오토바이 사고를 떠올린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응급실로 뛰어갔을 때, 아름드리 가로수를 부러뜨려 놓고도 용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아들을 두고 신께 감사했었다. 그래서 다니지도 않던 교회에 나아가 감사헌금도, 지나가던 스님을 불러 세워 두둑이 시주도 했다.
그러나 작년 여름, 녀석은 결국 집 앞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해 버렸다.
“휴...! 무심한 놈.”
사내는 자신의 몸에서 모든 힘이 아련히 소멸됐다가, 가슴 한편에서 뜨겁게 솟구치는 무언가를 느낀다. 그렇지만 가슴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이것이라고 말하기엔 또렷치 않았으므로, 몇 차례 거듭 뒤척일 뿐이다.
사내가 다시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말기 폐암 환자처럼 어렵게, 불규칙하게 호흡한다. 흥분하고 있다는 확실한 물증과 같은 것이었다.
잠시 후 사내는 흥분과 긴장이 가셨는지 초점 없는 시선을 뿌리며 연신 하품을 해댄다. 하얀 입김이 뱉어져 을씨년스럽게 퍼져 나갔고, 턱뼈가 어긋나는 우두둑소리가 방 안을 뚜렷하게 울린다.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단기사병 시절, 군기를 잡는다며 무단히 행해지던 고참의 무분별한 구타에 의해 턱뼈가 탈골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부터 무엇을 씹거나 입을 벌릴 땐 영락없이 이 모양이다.
사내는 훈장처럼 남겨진 그 소리만 들으면, 분기가 자신도 모르게 치솟는다.
“빌어 먹을 짜식...”
고참은 우습게도 그가 졸업한 K농고 일 년 후배였다.
사내는 고교시절 선도부장을 지냈다. 아침이면 교문에 버티고 서서 복장 검사를 했었는데 그런 사내에게 나름대로 위압감 또는 이질감을 느꼈고, 그때까지 유감스런 감정이 후배의 가슴 한편에 남아 작용했던 모양이었다.
망아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아무런 깨달음도 없이 누워 있던 사내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약간 몸을 옆으로 비틀어 팔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는다. 과음 뒤 쓰릿한 공복이 가져다준 일시적 수전증일까. 알코올 중독과 대뇌의 니코틴 부족에 따른 금단 현상일까. 손끝이 한기 때문만은 아닌 듯 했으나 사시나무에 이는 바람처럼 떨린다. 더듬거리는 손끝에 빈 소주병이 쓰러져 재떨이와 부딪힌다. 병은 날카롭게 부서지는 소리를 냈으나 깨지지는 않았고, 떼굴떼굴 구르더니 벽에 부딪히면서 멈춘다. 사내는 본능적으로 움찔한다. 허나 곧 개의치 않는다는 눈치를 보이며 감각적으로 아래쪽을 훑고 있다. 그래서 손아귀에 들어온 라이터와 담뱃갑을 한꺼번에 집어든다. 베개 위에 한 손으로 팔베개를 하여 머리를 높인다. 다른 한 손으로는 필터가 밖으로 삐쳐 나오도록 담뱃갑을 흔든다. 담배가 반쯤 튀어나왔을 때, 입술로 직접 빼문다. 그 와중에 다른 한 개피가 딸려 나와 이불 위로 떨어진다. 또한, 적지 않은 엽연초 부스러기가 턱과 흉곡으로 떨어졌다. 허나 아직도 잠에서 채 깨어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제멋대로 떠올리던 몽상에서 분명하게 탈출하지 못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며칠째 면도를 하지 않아 텁수룩해진 수염에 가려져 감각 자체를 상실하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리곤 담뱃갑과 라이터를 방바닥에 내려놓더니 꽁초가 수북히 쌓인 재떨이를 집어 가슴에 올려놓는다. 주저함 없는 사내의 이 같은 행동은, 진종일 밭에 거름을 내고 들어 와 양말을 벗고 난 뒤, 코에 바짝 갖다 대고 고약한 냄새를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에이, 설마 진종일 신고 일했던 양말에서 향긋한 아카시아 향기가 날까?”
하던 아내의 비아냥거림이 아닐지라도, 스스로조차 버려야 될 천박한 습관 중 하나라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나 사내는 방금 전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사내가, 뭔가에 쫓기거나 심각한 사태에 초조함을 느낄 때처럼 다소 경망스럽게도 보일 수도 있는 모습으로 연신 담배를 빨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린다. 사내는 약간 움찔했을 뿐 일어나 수화기를 들려 하지도, 눈길 역시 주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온 이가 군청 계장으로 있는 사촌형일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이다.
“내 목줄 자르려고 작정을 한 게냐? 네놈 때문에 창피해 고개를 들 수가 없어.”
하며 수확 포기시위 철회, 즉 종답의 타작을 종용하느라 매일같이 이 시간에 전화하곤 했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아 보았자 뻔하다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때문인지 전화벨 소리가 얄궂게 느껴진다.
얼마가 지났을까. 전화가 끊긴다. 사내가 콧방귀를 뀌더니 미소진다. 거만한 패자를 물리친 승자의 조소였다.
반공을 떠돌던 사내의 시선이다. 천장 모서리에 초점이 맞춰진다. 도배지의 꽃무늬를 세고 있다. 도배지는 오래된 것이었으므로, 유년의 꿈이나 그 기억만큼이나 몹시 퇴색되 있다. 그래서 꽃무늬의 경계는 안개 속을 걷고 있을 때 마주친 사물이나 흔들린 카메라의 사진처럼 희미하다.
하지만 그쯤에 방해받지 않고 또렷한 목소리로 세어 나간다.
“하나, 두울, 세에엣...”
문득 꽃무늬가 무슨 꽃이었던가를 생각한다. 장미일 수도, 목단일 수도, 그것도 아니라면 국화일 수도 있었다. 허나 추측만 난무할 뿐 이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사내는, 그런 게 지금 무슨 상관이 있지? 하면서도, 복잡하게 연결된 미로 여행을 한다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수학적 조합을 새롭게 만들어 내려는 듯 꽤나 진지한 자세를 보이며 기억을 더듬는다. 그래서 뇌리 저편에서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맴돌고 있던 도배지에 대한 기억들을 결국 찾을 수 있었다. 좀이 슬고, 틈틈이 쥐가 갉고, 그것들이 각기 짝을 만나 구석진 곳에 보금자리를 틀어 새끼들을 퍼질러 낳고, 운동회라도 열린 듯 난동해 다니며 여기저기에 오줌 똥 가리지 않고 배설해 누렇게 변색되 흉물스럽게 늘어진 천장을 뜯어낸 뒤. 합판을 이용해 새롭게 반자를 하고, 깔끔하게 도배를 마치던 날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날밤 풀 냄새가 가시지 않은 천장을 흐뭇하게 올려 보다가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편액 걸린 가로측 꽃무늬 숫자에, 장롱이 있는 세로 측 숫자를 승산(勝算)해 그것들의 전체 숫자를 어렵지 않게 알아냈었다. 그렇지만, 그때 왜 갑자기 그것들의 숫자를 계산했었는지에 대해선 알 수가 없다. 또한, 지금 역시 왜 할일 없이 그것들을 세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그 까닭도 명백히 몰랐다.
평소 숫자에 대한 사내의 관념이란 자못 안타깝고 기가 막힌 상태였다. 벌써 십여 년째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번호판에 적힌 네 자리 숫자의 단순한 배열도, 아내가 우울증이 악화되기 전까지 이 년 동안 다니던 읍내 식당의 전화 번호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숫자 개념이나 사고 응용력이라곤 없었다. 이에 대해 사내는 스스로의 사고력은 참으로 우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느껴질 때면, 반격에 가까운 변설을 자신을 향해 늘어놓곤 했다. 0으로부터 시작되 9에 이르고, 거기에서 다시 무한대로 이어지는 아라비아 숫자는 어느 정신나간 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래 세상 모든 이의 두뇌를 혹사시키는 성가신 존재이고, 이를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완성된 복잡한 운산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찮고 골치 아픈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사내가 살아오면서 가산과 감산을 해야 될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설령 있다 해도 퍽 보잘것없고 우습기 그지없는 것들뿐이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두뇌를 깨워 부지런히 움직여야 될 일이라고는 고작 담배를 산다거나 소주를 구입한 뒤 그 값을 지불키 위해 하는, 오직 뇌의 마비를 막기 위해 하는 단순한 보건체조와 같은 계산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뇌에 복잡성을 증가시켜 스트레스 받아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고 치부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가겟집 주인이 알아서 내미는 거스름돈을 받아 호주머니에 그대로 쑤셔 넣곤 했으므로, 겉도는 머리를 짜내며 계산해야 될 상황이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내는 자신의 머리가 결코 남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정이 그랬으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숫자를 가지고 움직이는 능력이 심해어의 눈처럼 잠재적으로 퇴보된 것이라 자위한다.
어쨌든 그날밤 얼결에 산출해 냈던 꽃무늬 숫자는 그 어떤 목적이나 필요성. 또는 그 당위성이 갖는 종요로움에 의해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했던 고단한 작업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숫자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잠자리에 눕거나 잠에서 깨어나면, 으레 지금처럼 세곤 했다. 그랬으므로 뇌 속엔 방위병 시절 어깨에 새겼던 무궁화 문신처럼, 그 숫자가 또렷하게 각인되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꽃무늬 숫자를 또 다시 하나씩 세는 일은, 마루 앞에서 대문까지 징검다리처럼 놓인 보도블럭의 수가 열 다섯 개이며, 대문 앞 돌계단의 수가 중간의 꽤 넓은 계단참을 포함해 열 셋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일처럼 몹시 번거롭고 성가신 작업과 같았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들을 늘 세곤 한다.
위태롭게 붙어 있던 담뱃재가 이불 위로 떨어진다. 사내는 그것도 몰랐으나 손톱을 태울 기세로 뜨겁게 타 들어오는 열기를 느끼고 잽싸게 재떨이에 비벼 끈다.
다시 담뱃갑을 집어든다. 이번에도 조금 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담배를 꺼내 문다. 그러나 라이터를 만지작거리기는 했어도 불을 붙이지는 않는다.
재차 전화벨이 울렸다. 방금 전 전화를 걸어 왔었을 이, 즉 사촌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이번에 전화를 걸어 온 것이 내 건너에 살고 있는 농민회 총무일 것이라 짐작한다. 오늘 함께 읍내에 나가기로 어젯밤 같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농민회 간부들과 합류한 다음, 어제처럼 방송국과 각 신문사에 연락해 기자들을 부를 것이고, 타작을 하지 않은 종답을 트랙터로 갈아엎든지, 아니면 신나를 뿌려 불을 질러 태우는 극단적 시위에 돌입하자 했었다.
사내는 과격한 언조를 날리던 어젯밤과 달리 퍽 느긋해 보인다. 울리는 전화벨에 상관없이 시선이 장롱과 반자의 어름 부분에 머물러 있다. 미간이 점차 좁혀진다. 담배 필터를 송곳니로 질겅질겅 씹고 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기묘한 모순의 벽에 부딪친 것이다. 그래서 깊은 수렁 같은 고민에 빠져든 것으로, 필터를 씹고 있는 것은, 그가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사내의 고민은 이러했다. 장롱에 가려진 서른 두 개의 꽃무늬를 인정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부정할 것인가 였다. 또한, 가로측 모서리를 따라 사 분의 삼쯤 잘려 나간 스물 다섯 개의 숫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두고 결론 없는 고민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사내는 자신이 찾았던 것들을 떠올린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언제나 제자리에 없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찾지 않았을 땐 전적으로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어 거리끼기 일쑤이던 사실도 기억해 냈다. 그랬으므로 미소 질듯 말듯 입술을 씰룩거린다.
“젠장할, 내겐 늘 그랬어...”
장롱에 가려진 꽃무늬는 분명 보이지 않았다. 현 시점에선 유야무야한 존제인 것이다. 그래서 사내는 그 꽃무늬들이 농사꾼인 자신의 처지처럼 느껴진다. 선거 때만 되면 그릇되 위정자들을 통해 정략적으로 이용당할 뿐 이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자신이 바로 꽃무늬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중국과의 협상 중 마늘이 장롱에 가려진 꽃무늬처럼 취급됐고, 칠레와의 무역협정 중 포도가 잘려 나간 꽃무늬처럼 되 버렸다. 이런 것들이 아닐지라도 그 예는 이것저것 부지기수였다. 늘 공산품 수출을 위해 농산물은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꽃무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이지 않는다고, 잘려 나갔다고, 그 가치를 너무 쉽게 무시했던 것이다. 못났다고, 배우지 못했다고, 선산을 지키며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늘 외면 당하고, 늘 무시당하며 살아온 자신처럼 꽃무늬 역시 자신에게 외면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사내는 갑자기 서글퍼진다. 꽃무늬의 존재 가치를 자신이 부정했다는 사실이, 자꾸만 이 사회의 외진 곳으로 떠밀려 가는 초라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라 여긴 까닭이었다. 그래서 꽃무늬 역시 세상의 변방에서 허우적거릴망정 필히 살아 남아야될 자신의 운명과 너무도 흡사했으므로, 잘려나가고, 보이지 않는 꽃무늬 숫자를 전체 숫자에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채 일 분도 못되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농사꾼인 자신은 엄연히 이 사회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었고, ‘신자유주의’ 라는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비켜 가고 있었으므로, 보이지 않는 꽃무늬 존재란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번복한 때문이었다.
그랬으므로 사내는 여전히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깨닫지 못한 채 완전치 못한 꽃무늬 숫자를 두고 와전과 탈락을 반복하다가 다시 시발점인 가로측 모서리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세고 있다. 왜냐하면, 다시 세어 가는 동안 새로운 해법이, 특별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방 안이 잠잠하다. 사내가 갈등하는 동안 어느새 전화벨은 멈춰 있다.
그러나 그의 갈등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 퍽 끈질긴 자로군. 고무줄이나 고래힘줄처럼...”
짜증 섞인 어조를 내뱉던 사내가 전화기를 흘끔 쳐다본다. 눈살이 험하게 구겨진다.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황급히 몸을 일으킨다.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또 다시 걸어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짧은 순간에도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 올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한다. 농민회 총무가 아니라면, 옆집 남자일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엊그제,
“이것 봐, 화해한 기념으로 내가 한 잔 살 테니 물망초에 함께 가지 않을 텐가? 오랫동안 굶주린 자네로서는 상상도 못 해봤던 멋진 아가씨를 붙여 줄 테니... 자고로 섹스(SEX)란 말이야 신께서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주신 축복이지. 지친 삶의 애너지 재충전. 사람은 그것으로 새로운 힘을 얻지. 그 행위는 단순한 종족 번식의 수단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예술이자 최고의 철학이지. 자네 혹시 사마귀 숫컷이 사랑을 나누며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걸 지켜본 적 있나? 그 장엄한 광경을 봤다면, 아마 내가 추구하는 죽음보다 아름다운 철학이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어쨌던 자넨 아직도 그걸 모르는 것 같애. 어때? 물망초에 같이 갈꺼지?”
라며, 성 예찬론을 펼치하던 옆집남자의 제의에,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던 사실이 퍼뜩 떠올라 난감하다.
뭐라고 거절한다? 사내는 옆집 남자의 얄궂은 얼굴을 떠올리며 수화기를 집어들었고, 별로 좋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한다.
사내의 예상은 빗나갔다. 전화를 걸어 온 것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갑자기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마치 불륜의 현장에서 목덜미를 잡혀 알몸으로 끌려나오는 기분이다. 그래서 목소리를 차분하게 깔아 감정을 감춘다.
“이런, 사랑하는 당신이로군. 몸은 괜찮아? 장모님과 처남 내외는 잘 있겠지?”
늘 감정 표현에 인색한 사내였다. 대충 속마음을 감추려 계속 얼러맞추기에 급급하다.
사내는 반갑다는 생각보다도, 왜 아내일 것이란 생각을 안했는지, 왜 아내를 보고 싶어하면서도 찾아갈 것을 생각지 않았을까 의문이 앞선다. 조금 전 시리도록 그립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런 생각은 없었다. 지난 번에도 그 전번에도 월초에 어떤 피할 수 없는 의무처럼 아내를 만나러 갔었던 사실을 지금에야 처음으로 깨닫는다.
사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법 낭랑한 목소리의 아내는 싸움이라도 걸어오듯, 왜 전화를 그렇게 받지 않느냐 하더니, 종답의 타작을 왜 아직도 안 했느냐 묻고 있다. 이어 사촌 시숙이 찾아와 곁에 있으며, 모든 실정을 낱낱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더 이상 공무원 신분인 사촌 시숙을 난처하게 하지 말라고 했고, 지난 가뭄 때 어떻게 해서 지어 놓은 농사인데, 당신 정말 미쳤어? 라는 말까지 주저함 없이 덧붙인다. 모든 것이 사촌형의 레퍼토리였다.
사내는 사촌형에 대해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지난 가뭄 때 벼 한 모슴을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양수작업을 하던 모습이 떠올라 당혹스럽다. 그래서 어정쩡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아내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 온다. 먹을 것을 수확하지 않고 갈아엎어 버리면, 신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란다. 아내는 다소 흥분하고 있는 듯 했으나 무척 차분하려 애를 쓰는 어조였다.
사내는 아내가 사촌형의 부추김에 의해 자신을 설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이라... 죄...?”
사내는 피식 소리가 나도록 웃을 번했다. 허나 튀어나오려는 것을 급히 입술을 깨물어 막는다. 아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상기한 것이다. 사촌형이 처가에까지 찾아간 사실은, 요양 중인 아내에겐 더 없이 커다란 충격일 것은 자명했다. 따라서 함부로 비웃어 신경을 자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내는 몸을 지탱하게 하고 있던 모든 힘이 돌연 소멸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쓰러지듯 이불 위로 눕는다.
“그래, 적당한 시기에 거둬야겠지. 그러니 당신은 걱정 그만하고 몸조리나 잘해...”
아내는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전 말한 ‘적당한 시기’를 두고서 무슨 말인가를 계속하고 있다. 사내는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전화가 혼선이 됐다거나 하는 잡음 때문도, 아내의 어투가 주정뱅이처럼 어눌하다거나 어느 개그맨처럼 빠르기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휭하니 현기증이 일었으므로, 통화 내용을 정리하지 못하는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내는,
“나 독감에 걸렸어. 머리도, 목도 많이 아프거든... 다 났으면, 곧장 당신을 찾아가리다. 그 문제는 그때 얘기하자고... 그러니 지금은 전화를 끊는 게 좋겠어.”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이런 상태로 더 이상 통화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 느꼈으므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다. 물론 독감에 걸렸다는 말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거짓이었다.
사내가 갑자기 두 눈을 번뜩인다. 아내의 얼굴이 허공에 떠돌고 있다. 그래서 그의 눈이 이를 쫓느라 빠르게 구르고 있다. 갑자기 눈물이 핑그르 돈다. 주체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숨결이 더욱 거칠어진다. 눈물 속 희뿌연 허공에서, 컷트머리의 수줍은 아가씨를 발견한 까닭이다. 그의 나이 스물 넷 추석 다음 날에 있었던, 맞선을 보기 위해 역전다방에 들어서던 이조 백자같이 질박한 아내의 모습이었다. 몸뻬 차림의 땀방울과 흙으로 범벅된 시골 아낙도 보인다. 유별나게 일 욕심 많았던 아내가, 축사로 하우스로 논으로 숨가쁘게 뛰어다니던 모습이었다. 이맛살을 구긴 채 고뇌하는 여인의 모습도 보였는데 아들놈의 죽음과 융자금 독촉장을 받아 들고 참담해 하던 아내의 얼굴이었다. 겉옷을 벗지 못한 채 이불 위로 쓰러지는 여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막막한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읍내 식당에서 일하다가 밤늦게 돌아오던 아내의 그늘진 모습이었다.
휴...! 사내가 눈물을 훔치며, 휘파람 뒤섞인 한숨을 길게 내쉰다. 몸은 끔찍하다는 듯 진저리를 치고 있다. 고단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우울증 증후를 보이던 아내는 결국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다가 농약을 음독하는 일을 저질렀다. 아들놈의 죽음 이후, 죽음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던 아내의 어이없는 자살 기도였다. 바로 그때 앰뷸런스에 실려 가던 아내 얼굴을 찾아내는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마신 농약이 제초제나 유기인제였더라면, 과연 지금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벼랑 아래를 흘끔 내려다보는 듯 아찔하다.
사내가, 왜 갑자기 이런 것들을 떠올려야 하는가 하며 뒤척일 때였다. 가시에 찔린 듯 움찔한다. 어느새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무의식적인 행동을 곧잘 보이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사물에 대한 주의력이 떨어지고, 어떤 관점을 헤쳐 가는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걱정과 불안은 극에 달해 있고, 이제는 대인 기피 증세를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런,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 게지? 혹, 나 역시 아내처럼 우울증인가...?”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리모컨을 누르고 있다. 역시 의식 없는 행동이었다. 사내는 무의식적인 행동에 스스로 놀란다.
텔레비전에 불이 들어오고,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떠오른다. 누운 채 머리맡을 향해 치켜 뜬 눈이었으므로, 화면이 거꾸로 보인다.
앵커의 모습이 보였다.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도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화면이 바뀌더니 기자가 나온다. 다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를 연신 뱉어 내고 있다. 두 여중생이 미군 궤도차량차에 깔려 사망한 사건 재판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궤도차량 운전병이 무죄란다. 화면에 절규하는 이가 비쳐진다. 여중생의 가족들이리라. 미군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보인다. 엊그제까지는 여중생의 학우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연관없는 시민들인 것 같다. 별스런 일이라는 듯 긴장감 없는 미군의 모습도 보인다. 뒤이어 정치인들의 상기된 모습이 나타난다.
사내는 올 연말에 대통령 선거가 있음을 인식한다. 이번에 대권을 잡을 자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일시적으로 가슴이 설렌다. 막연한 기대감이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그에겐 처음 있는 묘한 기분이었다.
화면 분위기가 바뀐다. 모래 바람이 거센 사막이 나타난다. 기자는 일촉즉발의 중동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쟁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란다. 또 다시 화면이 바뀐다. 손목 아래가 절단되 붕대로 칭칭 싸맨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나타난다. 사장이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며 울먹이더니, 이 땅엔 사장님의 하나님만 있고 노동자의 하나님은 없단다. 화면이 아름답게 변한다. 저녁 노을이 비춰지더니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어제 열린 쌀 개방 반대 야적 시위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사내는 분명 방송 기자와 인터뷰까지 했었다. 헌데 그 화면은 어디론가 실종된 것이다. 방송국에선 생존을 위한 농민들의 울부짖음보다는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사내는 거꾸로 보는 세상 이야기라서 그런 것인지 온통 뒤죽박죽이란 느낌을 채 감출 수 없다.
“젠장, 웃기는 세상이로군.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내가 텔레비전 위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벽시계가 눈에 띈다. 거꾸로 매달려 있던 벽시계였다. 정상적으로 보인다. 사내는 흐흐흐 소리를 내며 웃는다. 누군가 지나다 듣는다면, 소름이 돋을 기묘한 웃음소리다.
“그래, 나는 거꾸로 봐야만 제대로 보여지는 시계, 거꾸로 봐야만 정상인 세상에 살고 있는 거야. 흐흐...”
사내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으나 알 수 없는 뜨거움이 가슴을 치받고 있어 더 이상 텔레비전을 지켜볼 수가 없다. 신경질적으로 텔레비전을 끈다. 리모컨을 집어던진다. 리모컨은 벽에 부딪치면서 산산이 부서졌고, 파편들이 이리저리 튕기친다.
사내는 무엇 때문이라 꼬집을 수는 없었으나 돌연 속이 뒤틀려 이불에 얼굴을 박고 헛구역질을 해댄다. 모든 것을 토했으면 좋으련만, 어찌된 일인지 잠이 쏟아질 뿐 게워지지가 않는다.
사내가 눈을 감는다. 조금 전 텔레비전에서 봤던 사람들이 뒤엉켜 있다. 그 위로 아내의 얼굴이 겹쳐진다. 옆집 남자의 얼굴도 보이고, 삭발하던 농민회 간부들도, 아름다운 가창오리떼의 군무도 보인다.
사내는 성장통에 울먹이는 아이처럼 몸을 비튼다.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런데 병자의 신음소리와도 같고, 망자의 한을 달래는 곡소리 같이 설음 섞인 음률이 비집고 나온다.
“아,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은들... 나락에 불을 붙인들 뭘 어쩌겠다는 겐가? 괜스레 내 가슴만 아프게 쥐어뜯는 것일 뿐이고... 나만 미친놈 되는 게지... 가령 내가 쌀 개방 반대를 외치며, 군중 앞에서 영웅적으로 분신한다 치자.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고, 세상 또한 끝날 것 같애? 그렇지 않아. 세상은 결코 그대로 끝나지 않아. 여기에 땅이 있고, 그 위에 하늘이 있고, 신께서 이를 주관하시는 한, 암울한 이 땅에 태양은 또 다시 떠올라. 어김없이...”
사내가 잠시 말을 멈춘다. 뒤척임도 멈추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후, 얼굴이 비통하게 일그러지더니 볼멘소리였다.
“어떤 연못에 포식자가 있어... 난폭하지만 이미 배부른 포식자... 헌데 과연 재미로 사냥할까...? 아니냐. 먹고 살기 위해서만 사냥을 하지. 그리고 아무리 잔인한 습성을 지닌 짐승이라 할지라도, 영역을 침범했던 도전자가 도망치면, 더 이상 쫓아가지도 않지. 그래, 그런 거야. 그게 강자의 여유지... 나 같은 놈은 꿈도 꾸지 못할 절대적 여유... 잘난 놈과 못난 놈이 어쩔 수 없이 뒤엉켜 사는 이 둥그런 연못은, 어떤 경쟁논리나 힘의 논리가 전부가 아니지. 바로 우리에겐 도덕이란 게 있어. 비록 인위적인 것이긴 하지만, 절대 인위적일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 내가 너를 신뢰하고, 네가 나를 배려하며 지켜야 할 윤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 어쨌든 그게 한시적으로라도 사라지면, 이 둥근 연못의 평화도 함께 깨지게 되 있지. 힘없는 놈이 요동치거든. 살기 위해... 그럼 힘있는 놈은 어쩌겠어? 뻔하지... 그래서 연못은 힘없는 놈의 시체가 부패해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 버리지. 힘있는 놈도 살 수 없는... 공멸... 그게 자연의 이치 아니던가? 안 그래...? 응...?”
사내의 말꼬리는 유난히 높았다. 스스로에게 무슨 말인가를 묻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유발시킬 수 있는 감정적 발언일 수도, 자신의 쾌락 추구권에 대한 차분한 이성적 강변일 수도 있었다. 허나 사내는 침묵하고 있었으므로 회색 빛 정적만 차갑게 흐르고 있다.
사내는 다시 몸을 뒤튼다. 불편한 듯 새우처럼 몸을 사렸다가 펴기도, 경기를 일으킨 아이의 몸동작을 보이기도 한다. 그때마다 이불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리고 정전기도 일어 타닥거린다.
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대문 밖에서는 인기척이 들려온다. 숨 넘어갈 듯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 잠긴 철문을 긴박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방 안을 메운다. 사내는 뒤척일 뿐으로, 그 소리들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내의 그런 움직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미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지쳐 버린 것인지, 인식 범위 밖으로 멀찍이 이탈해 버린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