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 /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 옆에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 화장을 했지만 어린 티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열일곱 아님 열여덟? 아니 열일곱이라면 나보다 고작 세 살 위가 아닌가. 당분간 같이 좀 지내야 되겠는데요. 오빠는 코가 뾰족한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섰다. 남의 집 들어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여자애는 오빠 등뒤에 숨어 쭈뼛거리고 있었다. 오빠는 어서 올라오라며 여자애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둘을 바라보다가, 내 이 연놈들을 그냥, 하면서 방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뛰쳐나와 오빠에게 달려들었다. 최초의 일격은 성공적이었다. 방망이는 오빠 허벅지를 명중시켰다. 방심했던 오빠는 악,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꺾었다. 못생긴 여자애도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계속 당하고 있을 오빠는 아니었다. 아빠가 방망이를 다시 치켜드는 사이 오빠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처럼 아빠의 허리를 태클해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러고는 방망이를 빼앗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빠는 등짝과 엉덩이, 허벅지를 두들겨맞으며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자기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나쁜 자식, 지 애비를 패? 에라이, 호로자식아. 이런 소리가 안방에서 흘러나왔지만 오빠는 못 들은 체하고는 여자애를 끌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물론 방망이는 그대로 든 채로였다.
예상했던 결과다. 아빠는 스무 살이 넘어버린, 혈기방장한 오빠에게 이제는 도저히 게임이 안 된다. 그러면서도 가끔 저렇게 오빠한테 개기다가 두들겨맞는 걸 보면 정말 구제불능이다. 개도 몇 대 맞으면 꼬리를 내린다는데 저 아빠라는 인간은 똥개보다도 지능지수가 낮은 게 아닌가 가끔 의심스럽다. 어쨌거나 오빠가 데리고 들어온 여자애는 그날부터 우리 집에서 살았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며 매니큐어를 바른 기다란 손톱 같은 걸 봐서는 어디 시골 다방 같은 데서 차 나르던 여자인 듯싶었다. 처음에는 말수가 적어서 벙어린 줄 알았는데 안면 트고 나니까 자기 쪽에서 슬금슬금 말을 붙여왔다. 그냥 언니라고 불러. 나한테 거지같은 머리핀 하나를 주며 수작을 걸었지만 내가 미쳤다고 저를 언니라고 부르나. 여자애 이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저기다. 저기, 라고 부르면 지 이름인 줄 안다. 저기, 라면 좀 끓여줄래? 저기, 열쇠는 신발장 위에 있는데. 이런 식이다.
그래도 오빠는 못생긴 여자애가 좋은지 집에 일찍 들어와 여자애와 꿍딱꿍딱 논다. 둘이 뭐 하고 노는지 내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거야 지들 사생활이니까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여자애 온 뒤로 세탁기 속 내 팬티가 없어지는 일이 그친 게 나로선 그나마 수확이다. 여동생 팬티는 갖다가 뭐 하는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지, 오빠지만 한심하다. 그래도 매번 눈감아주는 이유는 그래도 오빠가 우리 집 기둥이기 때문이다. 돈이 나와도 오빠 주머니에서 나오고 밥이 나와도 오빠 주머니에서 나온다. 아빠는,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식충일 뿐이다.
공부만 열심히 해. 뒷바라지는 내가 할 테니, 오빠는 그런 식으로 말하기를 좋아했다. 훈계할 대상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데 한 마디로 가관이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내 팬티는 맨날 훔쳐가면서, 라고 비웃고 있지만 오빠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심각하고 우스꽝스런 얼굴로 떠들어댄다. 그나마 오빠가 아빠보다는 덜 느끼하고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라고 이것저것 챙겨주니까 참는 거다. 우리 아빠야 말로 말 꺼내기 민망하다. 오빠야 욕구가 뻗치는 나이니까 그렇다 치자. 환갑이 다 돼가는 아빠는 뭐냔 말이다. 왜 내 옷장에 있어야 할 교복이 아빠 침대 위에 있냔 말이다. 도대체 그게 아빠가 열네 살 난 딸한테 보여줘야 할 모습이냔 말이다. 좀 흥분했는데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해보면 나처럼 의연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오빠는 나처럼 너그럽지 못해서 언제나 이빨을 드러내고 아빠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물론 대개는 아빠 잘못이다. 예를 들어 여자애가 들어온 다음 날의 일이 그렇다. 오빠한테 몇 대 맞은 걸 갖고 그렇게까지 행동하다니! 정말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었다. 하긴 우리 아빠한테 어른스러움을 기대한다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먼저 방망이를 휘두른 것도 아빠 아닌가.
그러니까 일은 그 다음날 벌어진 것이다. 오빠는 그날도 일찍 퇴근하여 발 닦고는 여자애와 함께 방에 들어가 히히덕대고 있었다. 일견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문을 쾅쾅쾅 두드려 그 평화를 깨뜨렸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제복을 입은 경찰의 모습이었다. 짭새가 찾아오는 일이 드물지는 않았다. 담당 파출소의 몇몇 순경과는 안면까지 있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모두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었다. 정복경찰 한 명과 조금 늙수그레한 사복형사가 서 있었다.
"이경식이, 집에 있나?"
사복형사가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 오빠냐?"
나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오빠와 여자애가 있는 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빠아아. 그러자 오빠는 바지춤을 추어올리며 마루로 걸어나왔다. 여자애도 고개를 빼꼼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이경식?"
사복형사가 묻자 오빠는 그렇다고 했다. 형사는 여자애한테도 나오라고 했다.
"무슨 일입니까?"
오빠가 묻자 늙은 형사는 방에서 나오는 여자애를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신고가 들어왔어. 청소년 성매매 사범이라고."
오빠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요? 그러니까 원조교제라 이겁니까? 스무 살짜리하고 열일곱 살짜리하고 원조교제하는 거 봤어요? 돈을 줘야 원조교제죠. 내가 왜 돈을 주고 쟤랑 잡니까? 미쳤어요?"
형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미성년자 약취 유인이겠지. 어디 다방에라도 팔아먹으려 하는 거 아니냐? 어쨌든 따라와 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따라가려던 오빠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형사를 노려보며 물었다.
"누가 신고한 겁니까?"
형사는 무심한 얼굴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빠는 뭔가 감을 잡은 듯 아빠 방으로 가 문을 두들겼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머리 나쁜 아빠는 문을 잠금으로써 자기가 신고자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놈 그거 얼른 잡아가슈. 아주 나쁜 놈입니다."
결국 오빠와 여자애는 아닌 밤중에 경찰서까지 끌려가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원조교제, 그러니까 청소년 성매매는 오고 간 돈이 없으니 말이 안 되는 거였고 미성년자 약취 유인인가 하는 것도 둘이 합의하에 동거하는 게 분명하였으므로 성립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빠와 여자애는 거의 밤새도록 경찰한테 시달리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도끼를 치켜들고 아빠의 방으로 돌진했다. 문이 잠겨 있자 방문을 찍어댔다. 결국 방문은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부서져버렸다. 아빠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았다. 야전침대 다리를 들고 침대 위에서 기다리다가 오빠가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괴성을 지르며 덮쳤으나 이번에도 역시 오빠의 승리였다. 오빠는 간단하게 아빠를 제압하고는 방 안 구석구석을 때려부쉈다. 철거촌이 따로 없었다. 분풀이를 끝내고 나가는 오빠의 뒤통수에 대고 아빠는 욕을 퍼부었다.
"에라이, 이 탈레반 같은 새끼야."
아빠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오빠가 탈레반이라니, 그럼 아빠는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혹시 그 북부동맹인가 하는 아저씨들? 여하튼 아빠는 오빠가 없는 대낮에 나를 앉혀놓고 오빠 욕을 해대곤 했다. 그런 자식은 군대든 교도소든 담장이 있는 데로 보내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빠가 그러거나 말거나 오빠는 신경쓰지 않았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고 대응을 한다고 아빠가 달라질 것도 아니었다.
여자애는 오빠가 들어올 무렵이면 저녁밥을 차려냈고 아빠도 가끔은 그 밥을 얻어먹었다. 여자애는 내 밥도 차려주었는데 요리 솜씨는 젬병이었다.
"너네 집도 대단하다."
두 남자의 격투를 보고 난 여자애는 부엌에서 열무비빔밥을 우겨넣고 있는 내게로 도망와 말했다.
"병신. 그 정도 가지고 쫄기는."
내가 비웃자 여자애는 발끈해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오빠 봐서 참는 줄 알아. 밤마다 헐떡대는 주제에 큰소리는."
여자애가 어이가 없는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이 나는 혀를 낼름 내밀고는 내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역시 싸움은 초장에 기를 콱 눌러놔야 한다. 남자 맛은 일찍 알아서 오빠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주제에 남의 집 일에는 웬 참견이며 가당찮게도 무슨 언니 노릇을 하겠다는 건지. 오빠는 그래도 그 계집애 덕에 얼굴이 확 피었다. 요즘 들어 오빠하고 아빠하고 잠잠한 건 그나마 그 계집애가 오빠의 뻗치는 성욕을 해소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남자들이란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그럴 경우 쌈박질 아니면 주사, 둘 중의 하나다.
오빠는 열여섯까지 아빠한테 죽도록 맞고 자랐다. 아빠가 오빠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함께 사는 것만도 다행이다. 아빠는 실컷 두들겨패고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오빠를 홀딱 벗겨 집 밖에 세워 놓기를 좋아했다. 그러고는 깡소주에 취해 세워놓은 것도 잊어버리고 고꾸라져 잠들기가 일쑤였다. 옷가지를 챙겨 밖으로 나가보면 팬티만 입은 오빠가 오들오들 떨며 아빠를 욕하고 있었다. 개새끼, 씨발새끼, 좆같은새끼. 내가 가만두나 봐라. 그 예언은 열여섯이 되자 현실이 되었다. 오빠는 술에 취해 달려드는 아빠를 주먹으로 때려눕히고는 줄넘기줄로 꽁꽁 묶어놓고 집을 나갔다. 아빠는 결박당한 채로 아들을 저주하다 모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 후로 4년 동안 오빠는 집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다가 스무 살이 다 되어서, 그러니까 올해 초에, 마치 점령군처럼 당당하게 입성했다. 너 이 자식, 가히 어딜 기어들어오냐며 달려들던 아빠는 오빠의 발길질 한 방에 나가떨어졌고 그때부터 오빠가 법이었다.
어차피 누군가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면 아빠보다는 오빠가 나았다. 아빠는 오빠더러 탈레반이라고 욕했지만 탈레반이든 오사마 빈 라덴이든 아빠보다는 낫다. 아빠는 아버지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안 갖춘, 그야말로 나쁜 아빠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간이다. 내가 볼 때 좋은 부모, 아니 평범한 부모라도 되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돈이다. 부모라면 최소한의 돈은 줘야 한다. 교복 살 돈, 학용품 살 돈, 군것질 할 돈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이 인간은 그 최소한의 돈을 잘 안 준다. 뿐만 아니라 아들이 벌어오는 돈도 가끔 쓱싹해가는 눈치다. 둘째는 멀쩡한 직업이다. 이 대목에서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내가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멀쩡하다는 것은 날마다 성실한 마음으로 그 직업이 요구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우와, 내가 이런 말을!)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백화점 앞에서 구두를 닦아도 떳떳할 수 있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모아도 나는 당당할 수 있다. 그러나 고발꾼은 곤란하다. 그렇다. 아빠는 전문 고발꾼이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 동사무소에서 선물 들고 찾아올 정도니까 말 다했다. 박 주사라는 공무원이 아빠 담당인데 손에는 10킬로짜리 쌀포대나 세제 선물세트 따위를 들고는 비굴한 얼굴로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 박 주사라고 자존심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아빠 같은 인간 말종한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아빠가 일년에 수백건의 민원을 제기하는, 그야말로 민원제조공장이기 때문이다. 주차구획선, 공사장의 분진,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태도, 구청 홍보지의 오·탈자, 심지어 구청장의 자동차 모델과 연식까지 문제삼는, 그야말로 지방자치제가 낳은 새로운 인간형이었다. 그러니 박 주사가 명절 때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아빠를 찾아와 굽신거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박 주사를 앉혀놓고 이 나라 정치현실과 지방자치제의 나아갈 바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지만 박 주사가 그걸 열심히 듣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그러지 않으면 언제라도 청와대나 정부종합청사 민원실로 달려가 하루 아니라 열흘이라도 보낼 수 있는 아빠가 두렵기 때문에 잠자코 듣고 있는 것뿐이다.
"내가 말요. 웬만하면 그냥 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다가도 눈에 뵈는 걸 어쩌냐고. 불의가 훤히 눈앞에 있는데, 부당한 일이 저질러지고 있는데, 그런데도 이 땅의 국민들은 청맹과니마냥 그냥 모르고 지나댕기는데, 나라도 나서서 바로잡아야지 하는 마음에 이 엄동설한에 그 오만 서류들 다 작성해가지고 내 돈 들여가며 복사해 가지고 관계 요로에 진정하고 그러는 거란 말요. 이게 정치가 잘되려면 윗물도 맑아야지만, 엉, 우리 민초들을 직접 상대하는 대민접촉부서의 공무원들도 바뀌어야 한단 말씀이야. 내 말이 그른가?"
최근에는 1인 시위라는 새로운 민원제기 방식까지 등장해 그야말로 아빠는 신이 나 죽겠다는 표정이다. 툭하면 샌드위치맨이 되어 정부종합청사 앞으로 나가겠다고 설쳐대니 구청이며 동사무소는 가히 죽을 맛인 것이다. 아빠야 그걸 무슨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시민정신의 총화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지만 딸인 나로서는 그게 직업인 알코올중독자 아빠는 좀 곤란한 것이다. 차라리 서울역쯤에서 노숙이라도 하면 없는 셈 치고 오빠와 오손도손 살 텐데 아마 아빠는 숨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이 집에서, 문짝이 떨어져나간 저 방에서 우리를 괴롭히며 살 것이다. 물론 거기서 자기 아들도 서슴치 않고 고발해대면서 벽에 똥칠하는 그날까지 버틸 것이다.
도대체 아빠는 왜 오빠와 나를 낳았을까. 아니 이 질문은 엄마에게 던져야 되지 않을까? 아니 어쩌자고 나와 오빠를 낳아 이렇게 무책임하게 팽개쳐두는 거예요? 며칠 전 나는 생각난 김에 엄마가 경영하는 함바집으로 찾아가 질문을 던졌다. 대답 대신 국자가 날아왔다.
"시끄러 이년아. 개시부터 재수 없이. 낳아준 것만도 고마운 줄 알고 살어. 네년 낳느라고 밑이 다 빠질 뻔했는데 이년이 이제 와서 뭐, 왜 낳았냐고? 니 그 잘난 애비한테 가서 물어봐라. 그 인간 말종, 개 같은 자식한테."
엄마는 그래도 아빠보다는 인간성이 좋은 편이어서 욕을 퍼부은 뒤에는 국물에 밥이라도 말아준다.
"먹어 이년아. 근데 니 오빠는 왜 코빼기도 안 비친대?"
"오빠 살림 차렸어. 웬 기집애 손목 잡고 들어와서 눌러앉혔어. 입이 귀까지 찢어졌어."
"니 아빠는 뭐 하고?"
"뭐라 그러다 오빠한테 두들겨맞고는 끽 소리 못 해. 밥도 가끔 얻어먹어. 좀 있으면 맏며느리 행세하겠더라."
"이것들이 정말."
엄마는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국자를 국통에 던지고 앞치마를 벗어던졌다. 마침 들어온 인부들이 국밥을 시켰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않고 함바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장사는?"
"윤정이 엄마 있잖아."
"어디 가는데?"
"며느리 될 년이 들어왔다는데 가서 낯짝은 봐야 할 거 아냐."
"며느리는 무슨. 개날라리야."
"개날라리든 소날라리든."
이건 정말 큰일이다. 우리 집 먹이사슬은 이렇다. 오빠는 아빠를 이긴다. 아빠는 엄마를 이긴다. 그런데 엄마는 오빠를 이긴다. 나는? 엄지공주다. 나는 너무 작기 때문에 누구도 나 따위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싸움은 그 셋 사이에서 늘 벌어진다. 어쨌든 엄마가 출동했다는 건 오빠한테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상하게 오빠는 엄마한테 약하다. 그건 오빠가 데려온 그 계집애도 엄마한테는 밥이란 얘기다.
바삐 걸어가는 엄마 소매를 잡았다.
"이혼하고 집 나간 주제에 우리 집엔 왜 들락거려?"
"내가 뭐 나오고 싶어서 나왔냐?"
"그럼 아빠 쫓아내고 엄마가 들어와서 살지."
엄마는 입을 꾹 다물고 화난 사람처럼 땅을 꾹꾹 눌러가며 걷고 있었다. 나는 응석받이처럼 보챘다.
"응, 그러자. 아빠 내쫓고 우리끼리 살자."
"그럼 니 아빠는? 서울역에 보내고?"
"거기 가서도 철도청 비리 고발하면서 호의호식할 거야. 아니, 그럼 엄마는 지금껏 아빠 생각해서 함바집에서 먹고 자고 있는 거란 말야? 엄마, 열녀야? 아님 바보야?"
"느 아빠, 인생이 불쌍하잖아."
"불쌍할 것도 많다. 우린 안 불쌍하고?"
"이년이 정말 오늘따라 왜 이 지랄이야. 이년아 먼지 들어와. 입 닫고 따라오든지 아니면 니 갈 길 가."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다 무너져가는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마치 아침에 나갔던 사람 모양 당당하게 집으로 들어갔다(알고보면 우리 식구들은 잘난 것도 없으면서 들어올 때는 항상 당당하다). 엄마는 뒷굽이 다 닳은 슬리퍼를 거이 던지다시피 현관에 벗어놓고 마루에 올라섰다. 여자애는 파를 다듬다 말고 갑자기 쳐들어온 엄마를 겁에 질려 올려보았다.
일촉즉발. 두 여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여자애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식칼이 눈에 거슬렸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했다.
"인사해. 우리 엄마야. 그 칼은 좀 내려놓고."
여자애는 그제서야 식칼을 내려놓고 일어나 꾸벅 절을 했다. 영양가 없는 부스스한 염색 머리가 이마로 흘러내렸다.
"너 몇 살이냐?"
여자애는 얼른 대답을 안 하고 쭈뼛거렸다.
"열일곱이래, 엄마."
"넌 가만있어."
엄마는 한참동안 여자애를 노려보더니,
"너 나 좀 따라 나오너라."
여자애가 계속 눈치를 보며 꾸물대자 엄마가 매섭게 재촉했다.
"후딱."
여자애는 위에 카디건만 걸치고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여자애 뒤통수에다 대고 내가 속삭였다.
"넌 이제 죽었다."
엄마는 아직 파냄새도 가시지 않은 여자애 손목을 잡아끌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막상 끌려나가는 여자애 모습을 보니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 데도 없다던데. 팬티도 안 없어지고 좋았는데, 가끔 라면도 끓여주고, 다방 출신이라 커피도 잘 끓이는데, 무엇보다 내 밥인데.......창문을 열고 다세대 주택들 사이로 간신히 비집고 선 골목길을 내려다보았지만 엄마와 여자애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알 수 없었다. 그날따라 아빠도 어디 민원하러 갔는지 뵈지 않았고 할 수 없이 방바닥에다 새로운 장판 디자인이나 구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때가 되자 오빠가 들어왔다. 오빠는 들어오자마자 여자애를 찾았지만 기척이 없자 내게 의문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 왔다.
"엄마가 와서 데려갔어."
"언제?"
"아까?"
오빠는 가방만 던져놓고 바로 집을 나섰다. 대문 바로 앞에서 아빠와 마주쳤지만 둘은 아무 인사도 하지 않고 서로의 갈 길을 갔다. 오빠는 아마도 엄마의 함바집에 갔을 것이다. 구경삼아 오빠 뒤를 따라 함바집으로 달렸다. 셀룰로이든 필름이 너덜너덜 붙어 있는 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가니 엄마가 국통에다가 통양파를 던져넣고 있었다.
"남매가 웬일야?"
"소연이 어디 갔어요?"
"소연이가 누구야?"
"엄마가 아까 데리고 갔다면서요?"
오빠는 엄마가 여자애를 국통에 넣어 삶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엄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엄마 역시 정말 여자애가 국통에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무심한 얼굴로 국통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이, 아주 엄마 잡아먹겠네. 이놈아. 지 발 달린 년이 알아서 다니겠지. 왜 나한테 눈 부릅뜨고 난리야? 그것도 눈이라고 달고 어디 가서 밉상 기집애 하나 끼고 들어온 주제에 어디 와서 행패야 이놈아."
오빠는 거의 울상이었다. 그래도 뭐라고 한 마디 더 하려는 찰나 문이 열리며 여자애가 들어왔다. 여자애는 오빠와 나를 보더니 잠시 어리둥절해했다.
"뭐야?"
어리둥절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애는 그새 입성이 달라져 있었다. 엄마한테 손목 붙들려 끌려나갈 때의 후줄근한 카디건 대신 꽤 그럴듯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부숭부숭한 털 상태로 봐서는 새것이 분명했다. 구질구질한 동대문제 청바지 대신에 꽤 괜찮아뵈는 채크무늬 스커트도 받쳐 입고 있었다. 그러고 나니 제법 부모 잘 만난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너 그 옷 뭐야?"
여자애 스웨터 소매를 잡아당기며 묻자 엄마는 긴 국자로 내 머리통을 때리며 말했다.
"이년아. 나이도 너보다 세 살이 위고, 오빠 안사람이니까 언니라고 불러."
"언니는 무슨."
입을 샐쭉거리는 사이, 두 번째 국자가 날아왔다.
"입어봤으면 어여 옷 갈아입고 일루 들어와."
'네."
여자애는 화장실로 갔다. 오빠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도대체 뭐야?"
집에 있음 뭐 하냐. 여기 나와서 일이나 거들라고 그랬다. 월급은 일 하는 거 봐서 줄게. 왜 너 밥 안 해줄까 봐 그러냐? 밥은 여기 와서 먹으면 되잖아."
"잠은?"
아마 그게 오빠 입장에선 가장 절실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동거녀를 시커먼 인부 드나드는 함바집 가겟방에서 재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이 녀석아. 내가 데리고 자면 뭐할 거야. 때 되면 들여보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돈 벌 걱정이나 해."
"알았어요."
그제서야 안심한 오빠는 실쭉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엄마가 나가려던 오빠의 뒷덜미를 잡아 세웠다.
"네?"
"엄마도 들어간다. 오늘."
이번에는 나도 깜짝 놀랐다.
"뭐?"
"이것들이 엄마가 간대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썩을 놈들. 다 웬수야. 그래도 들어갈 거야."
"어디서 잘 건데?"
"너랑 같이 자지 이년아. 그럼 누구랑 자겠냐?"
좋은 시절 종쳤다. 엄마는 내 방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그럼 내 사생활은? 울상을 조금 더 지었다가는 또다시 국자가 날아올 것이었으므로 나는 몸을 홱 돌려 함바집을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돌멩이 하나를 힘껏 걷어찼다. 에이씨.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그 좁아터진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거야. 돌아오면, 아빠와의 그 지긋지긋한 싸움이 새로 시작될 텐데. 아,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이젠 오빠의 권위가 섰으니 예전처럼 아빠가 길길이 날뛰지는 못할 테지만.
엄마는 자기 말대로 정말 밤이 되자 보따리 하나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장장 오 년 만의 귀환이었다. 이번에는 아빠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엄마는 아빠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체포된 게릴라 지도자처럼 비장하게 말했다.
"거 되도록 말 섞지 맙시다."
"한 지붕 아래서 어떻게 그렇게 사나."
"살기 싫음 나가든가."
오빠가 눈을 부라리고 옆에 서 있었기에 그쯤에서 둘 사이의 기 싸움은 끝났다. 엄마는 내 방에 집을 부리고는 텔레비전을 켰다.
아빠는 은근히 엄마가 다시 돌아온 것을 반기는 듯한 기색이었다. 엄마가 나간 뒤로 여자 구경을 거의 못 했을 테니까. 엄마야 함바집에 있으니 그래도 이 남자 저 남자 품에 몇 번쯤은 안겨도 봤겠지만 아빠 같은 무일푼의 고발꾼을 누가 거들떠본단 말인가. 아빠는 밤 11시쯤에 날 불렀다.
"너 어디 안 놀러 가니?"
"이 밤중에 어딜 놀러 간단 말이에요?"
"그럼 엄마더러 내 방으로 좀 건너오라고 할래?"
"말해봤자야."
"말이나 좀 해봐."
엄마에게 말을 전하자 엄마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텔레비전 볼륨을 높였다.
"안 가볼 거야? 아빠도 나름대로 오래 굶었어."
당장 꿀밤이 날아왔다.
"어린 년이 어떻게 못하는 말이 없어."
"사실인데 뭘."
"넌 안 자?"
"자야지."
나는 이불을 눈썹까지 끌어올렸다. 텔레비전에서는 탈레반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 오빠가 탈레반인데......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뒤척이는 사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두런두런 사람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둔중하면서 격렬한 울림이 방바닥을 통해 전해져왔다. 앞으로 스테레오로 시끄럽겠군. 오빠 방에서도 나직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나오고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간단하군. 우선 부모를 제압할 만큼 힘을 기르고 짝을 찾아 집으로 쳐들어오는 거야. 그럼 만사 오케이다. 나도 어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추악한 두꺼비 모자에게 납치된 안데르센 동화 속의 엄지공주는 이리저리 떠돌다 딱 저만한 사이즈의 왕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그리하여 엄지공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엄지공주라니 가당치도 않소. 당신을 앞으로 마야라고 부르겠소. 얼마나 멋진가. 앞으로 내 이름도 마야다. 언젠가 내 짝이 나타나면 나를 마야라 부르라 명해야겠다. 경선이 같은 촌스런 이름보다는 마야가 제격이다.
엄마가 들어온 지 일주일 되던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와 여자애가 김밥을 말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런 장면은 처음 본다. 이건 일일드라마에나 나오는 장면 아닌가? 현실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나? 나는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갔다.
"뭐 하는 거야? 누가 보면 다정한 고부간인 줄 알겠네."
"이년아. 보긴 누가 본다는 거야. 너도 뻘쭘히 서 있지 말고 와서 다꾸앙이라도 썰어."
"다 썰어놨구만 뭘."
나는 오이 한 쪽을 들어 씹으며 마루를 둘러봤다.
"근데 엄만 어제 어디서 잔 거야? 자다 보니 없던데?"
여자애가 보일 듯 말 듯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이년아. 이빨이나 닦고 떠들어."
칫. 입을 삐죽거리며 화장실에 갔지만 이미 거기엔 아빠가 있었다.
"다 쌌다. 좀만 기더려라."
아, 이 두꺼비 하우스에서 아름다운 언어란 함부로 기대할 수 없는 사치다.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자니 아빠가 바지춤을 추어올리며 나왔다. 잽싸게 화장실에 들어가 이 닦고 세수하고 나오니 오빠도 이미 마루에 나와 있었다.
"오빠, 일요일인데 일찍 일어났네?"
그러자 오빠는 대뜸,
"너도 가자."
"뭐?"
내가 '어디?'라고 묻지 않고 '뭐'라고 물은 이유는 '너도 가자'라는 말이 너무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선 도대체 '너도 가자'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도'라는 주격조사와 '하자'형 어미는 우리 집에서 여간해서 발견되지 않는 일종의 사어라고 할 수 있다.
"야유회를 가기로 했다."
오빠는 자기도 멋쩍은지 어깨에 내려앉은 비듬을 털어내며 말했다.
"야유회? 이렇게 모두?"
그러니까 술주정뱅이에 고발꾼인 아빠와 그 아빠를 작신작신 두들겨패는 택배회사 직원인 아들, 그 아들의 미성년자 동거녀, 오피스텔 건설현장의 함바집 아줌마, 마지막으로 그 아줌마의 전남편이 탐내는 교복의 주인, 중학교 1학년짜리 소녀가 야유회를 간다는 거다.
"난 안 가."
오이를 잘근잘근 씹으며 내 방으로 홱 들어가버렸다. 엄마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너 이년. 엄마 들어오는 거 싫어? 엄마가 함바집에서 연탄가스 마시고 콱 죽어도 좋아, 이년아? 엉?"
"누가 엄마 들어오는 거 보고 뭐래? 야유회 가기 싫다는 거지. 도대체 아빠랑 야유회 가서 뭐 해? 술이나 진탕 퍼 마시고 해롱대다가 사람들 줘팰 텐데."
"이젠 오빠가 다 커서 아빠도 옛날처럼은 안 해."
"하여간 난 싫어."
그래도 야유회는 강행되었다. 엄마는 이번에 야유회를 못 가기라도 하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처럼 난리를 쳤다. 고기도 구워 먹고 노래방에도 가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가족이란 그런 거라는 거다. 세상에 오 년 동안을 코빼기도 안 비치고 함바집에서 인부들 밥해주며 살던 엄마가 난데없이 쳐들어와서 야유회를 가야 한다고 우기다니. 가족이 그렇게 좋으면 왜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지 한 마디 설명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밤에 슬그머니 빠져나가 아빠 품에 안기고 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모르겠다. 심히 걱정된다. 오빠는 이번 야유회를 틈타 자기 동거녀를 은근슬쩍 우리 가족(이런 게 있다면!)으로 편입시킬 야욕이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당분간 엄마가 하자면 뭐든 할 태세였고 그 남자 밝히는 여자애야 오빠가 하자는 데 이견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야유회가 결정되었다. 우리는 각자 되는 대로 준비를 끝내고 현관 앞에 모였다. 엄마는 중국 소수민족축제에서나 볼 수 있을 촌스러운 진달래색 한복을, 아빠는 정부종합청사 민원실 들락거릴 때 입는 낡은 감색 양복을, 오빠는 삐끼 노릇 할 때 입던, 양복인지 교복인지 분간이 안 되는 옷을, 여자애는 어제 엄마가 사준 스웨터와 스커트를 입었다. 나는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엄마와 피터지게 싸운 끝에 결국 청바지에 점퍼를 입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서커스 가두홍보단 같은 꼬락서니였다.
우리는 오빠가 운전하는 택배회사 봉고차에 올라탔다. 불행히도 그 봉고차의 짐칸엔 창문이 없었다.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조수석에 타기로 하자."
"아빠가 제일 먼저 조수석에 올라탔다. 우리는 어두운 짐칸에 올라탔다. 공교롭게도 짐칸에는 여자들만 타고 있었다. 어색했던지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요담 곗돈 타는 대로 식 올려줄게. 경식이 손이 잘 나와서 그렇지 애는 착하다."
"식은 됐어요. 언제 사진이나 찍어주세요."
"못생겨가지고 사진은 무슨."
내가 퉁박을 주자 엄마가 마치 유원지의 두더지 잡듯 강력한 꿀밤을 매겼다.
"언니라고 부르랬지!"
"싫단 말야."
"됐어요 어머니."
여자애가 아양을 떨었다. 오호라. 예쁜 스웨터랑 스커트 얻어입고 신이 났구나. 얄미운 것. 나는 여자애 발이 있음직한 곳을 겨냥해 발을 내질렀다. 정통으로 발등에 적중했는지 여자애가 신음 소리를 냈다. 참고 있는 모양이 고소해 다시 한 번 발로 발등을 콱 밟아주었다. 이번에는 여자애도 가만있지 않았다. 내 옆구리를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꼬집어왔다. 나도 집히는 대로 여기저기를 꼬집어댔고 여자애도 지지 않고 내 허벅지살과 뱃살을 꼬집어댔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아팠다. 해보겠다는 거야? 나는 그녀의 머리통을 잡고 귀밑머리를 한 움큼 뽑았다. 내 머리핀과 그 근처의 머리털도 그녀의 우악스런 손에 의해 왕창 뽑혀 나갔다. 팥빙수를 갑자기 삼켰을 때처럼 골이 띵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안 엄마가 달려 들었다.
"뭣들 하는 거야?"
그러나 우리 둘은 이미 누가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 새 우리는 교미중인 뱀처럼 엉겨버렸다.
"못 떨어져?"
엄마가 뜯어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침 봉고차가 우회전하는 바람에 우리는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여자애가 짐승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잘 들어보니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엉엉 울고 있었다.
"왜 나한테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구. 엉엉. 나 잘못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가 얼마나, 내가 얼마나, 엉엉, 겁도 많고, 무서운데, 지들 집이라고 막 유세하고, 막 무시하고 막 괄시하고, 엉엉."
못된 계집애. 울긴 왜 운담. 누가 절더러 우리 집에 들어오래? 나는 여자애를 내버려두고 일어나 운전석 쪽 벽을 두들겼다.
"차 좀 세워줘."
운전석 쪽에는 안 들리는지 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여자애는 계속 엉엉 울어대고 보아하니 엄마가 토닥거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함바집 사장님과 종업원 둘이서 잘 해보라지. 나는 심통이 나서 짐칸 구석에 처박혔다. 이런 놈의 가족이 야유회는 무슨 야유회람.
잠시 후, 휴게소에서 조수석에 앉아오던 아빠와 자리를 바꿨다.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아빠가 짐칸으로 갔다. 여자애가 약간 걱정됐다. 캄캄한 데서 아빠가 더듬을지도 모르는데, 아빠는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런데도 오빠는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싱글이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남이섬."
"그럼 바다로 가는 거야?"
"아니 강에 있는 섬이야."
"좋아?"
"나도 안 가봐서 몰라."
"근데 오빠, 저 여자애 졸라 칙칙해."
"왜?"
"몇 번 꼬집었더니 막 울어."
오빠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언니를 왜 꼬집어?"
"자꾸 언니라고 부르라잖아."
"부르면 되잖아."
"싫어."
"너 그럼 학교도 안 보내고 옷도 안 사준다."
정말 치사해서, 막판엔 꼭 돈 얘기다. 나는 항의의 표시로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었다. 봉고차는 말없이 경춘국도를 달렸다. 경치는 좋았다. 하늘은 쾌청했고 들녘은 누렇게 물들어 이미 가을이 지나갔음을 일러주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오빠는 차를 세운 후 뒤로 돌아가 짐칸을 열었다. 갑자기 밝은 빛이 들어오자 눈이 부신 듯 손차양으로 햇볕을 가렸다. 동물보호소에 끌려온 떠돌이 개들처럼 주춤거리며 한 사람씩 환한 세상으로 걸어 내려왔다.
"여기야?"
아빠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강가를 둘러보았다.
"여기서부턴 배 타고 들어가야 돼요."
아빠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많은 양의 가래침을 뱉으며 말했다.
"배는 무슨. 여기도 좋은데. 매운탕집 같은 거 없나? 어 저기 한 집 있네. 쏘가리 붕어 매운탕. 이런 날씨엔 뜨끈한 매운탕에 소주 한 잔이 최고지."
알코올중독자 아빠야 술 생각이 간절하겠지. 그 생각에 모든 걸 참고 저 짐칸도 마다 않고 여기까지 온 거겠지. 그치만 나도, 그리고 엄마도, 배를 타고까지 가야 할 어떤 곳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그 초라하고 허름한 쏘가리 붕어 매운탕집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철 지난 강가라 손님이 귀했는지 주인은 반색을 했다.
"한 마리 더 넣었습니다."
주인은 매운탕을 가져오며 생색을 냈다.
"수제비도 좀 더 넣어주세요."
오빠가 부탁했다.
"예에. 알겠습니다. 수제비야 얼마든지 드립죠."
주인은 그때쯤엔 이미 돈을 낼 사람이 누구라는 것쯤은 알아차린 눈치였다. 그건 오 분만 우리 가족을 지켜보면 누구라도 알게 되는 진실이다. 주인은 감자 수제비를 더 가져와 매운탕에 넣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여자애는 뭐가 그렇게 맛있는지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허겁지겁 매운탕 국물을 제 입으로 퍼넣기 바빴다. 하여간 근본이 의심스럽다니깐. 그런데도 오빠는 그런 여자애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엄마는 그러는 오빠의 숟가락 위에 살점들을 발라 얹어주었다. 아빠는 아무도 따라주지 않는 소주를 자작으로 부어 벌써 두어 병째 마시고 있었다. 대화는 잘 이어지지 않았고 서로가 자기 이야기를 조금씩 하다가 말문이 막히면 매운탕에 코를 처박는 식이었다.
"엄마, 그럼 재결합하는 거야?"
이런 말 꺼낼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게 우리 집의 불행이다. 나는 어영부영 은근슬쩍 뭐 하는 거 딱 질색인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가 들고 있는 소주병을 빼앗아 자기 앞에 있는 잔에 따르고 나머지는 오빠 잔에 따랐다. 그리고는 술잔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재결합은 안 한다. 왜냐? 내가 함바집 해서 번 금쪽 같은 돈을 거저 느이 아버지한테 갖다바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오빠와 잔을 부딪치고는 말을 이었다.
"살기는 같이 산다. 왜냐?"
이렇게 말을 쉬는 게 엄마의 버릇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오래 쉬었다. 게다가 뭐가 쑥스러운지 씩 웃기까지 했다.
"왜긴 왜야. 니들 불쌍해서지. 어이구 내 새끼들."
엄마는 내 옆에 앉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뭔지 안다. 뻔하지. 남자 품이 그리웠던 거지. 흥!
아빠는 엄마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자기 앞에 있는 소주잔만 열나게 들이켜다가 결국 매운탕집에서 뻗어버렸다. 오빠는 아빠를 눕혀놓고 여자애와 둘이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나하고 엄마만 밥상 앞에 앉아 생선 눈알을 빼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좋지?"
엄마가 생선뼈를 발라내며 물었다.
"좋기는 개뿔이 좋아? 심심하기만 하구."
"으이구, 이 심통하고는."
엄마가 내 머리통을 쥐어박고는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오빠네를 불러와 아빠를 짐칸에 실었다. 오빠는 호기롭게 지갑에서 만원짜리 넉 장을 꺼내 계산을 했다. 여자애가 팔짱을 끼고 자랑스런 얼굴로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모두 차에 오르자 매운탕집 주인과 그 마누라가 길가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그거 하나는 기분 좋았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오빠가 어느 여고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더니 우리 모두 차에서 내려 기념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오빠는 스티커 사진 부스를 가리켰다. 엄마는 얼굴이 큰 데도 맨 앞에서 찍어서 얼굴이 타이어만 하게 나왔고 오빠와 여자애는 뒤에 서 있다가 쪼다처럼 나왔다. 나는 좀 예쁘게 나왔는데 여자애는 그게 조명발 덕이라고 궁시렁거렸다. 바보, 조명은 나한테만 비추나.
그럼 아빠는? 아빠는 그때까지도 술이 안 깨 짐칸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아빠는 그대로 집까지 실려와 문짝이 부서진 자기 방에 부려졌다. 오빠와 여자애는 자기들 방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함바집에 나갔다. 나는 내 방에서 생선 눈알을 괜히 먹었다고 후회하고 있다. 에이, 그런 건 고양이가 먹는 건데. 아참, 슈퍼 아줌마가 자기 집 고양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면서 한 마리 주겠다고 했는데. 내일은 만사를 제쳐두고 고양이 새끼나 데리러 가야겠다. 야옹아, 하루만 기다려라. 언니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