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리 태봉산성 - 서천 문산
지원리 태봉산성 - 서천 문산
-. 위치 : 서천군 문산면 지원리 태봉산
-. 서천 문산에서 부여방향으로 3km정도 가다보면 지원 저수지 못 미쳐 우측으로 독립가옥이 있고 그 뒤로 해발 160m의 능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 그곳이 일명 태봉산(은곡리에서는 테뫼라 부름)으로 정상부에 지원리 산성이 있다.
지원리 산성은 산 정상부와 동남향을 포함하여 내력에 의한 백제 테뫼식 토축산성이며, 특히 동,남,서벽은 3계단 형식으로 되어 있어 그 구축형태가 상당히 특이하다. 성의 둘레는 약 200m정도이나 산성 주둔군 규모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달리 운용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은곡리와 지산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에 테뫼 흔적이 남아 있고, 은곡리 골짜기를 육굴(陸~)라 하는데 사장터와 군영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대규모 군사의 주둔이 가능한 곳이다. 따라서 필자는 나당연합군 백제 침공 시, 연합군대총관 당나라 소정방이 이끌었던 13만 대군과 의지왕이 급파한 백제 2만의 기마병 사이에 백제 명운이 걸린 서부권 최대의 혈투가 이 산성과 저령(서천, 부여 군계) 일대에서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며, 흑치상지가 이 전투에서 첫번 째 항복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클릭 시 - 원본 큰사진)
▼ 한실에서 바라본 테뫼
▼ 후암삼거리에서 바라본 태봉산 전경
▼ 여술마을에서 바라본 태봉산
▼ 태봉산을 오르며 내려다 본 지산리 -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산이 벽오리산성
▼ 북동측 성벽으로 3단 계단형 성벽 중 2단 성벽의 모습이다
▼ 지원리 산성에서 바라본 한실 육굴과 지산리 뒷산 봉우리로 정상부에 평탄지와 삭토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나 퇴락이 심한 것인지, 산성을 축성하다 만 것인지 구분이 어렵다.
▼ 1단과 2단 성벽이 만나는 동남측 연결부
▼ 남측 2단 성벽
▼ 제일 하단의 동남측 성벽으로 2단 성벽과 연결된 곳
▼ 제일 하단의 남측 평토지
▼ 산 주인에 의해 무분별하게 파괴된 남서측 성벽
▼ 서측 급경사지역 성벽은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퇴락해 버렸다.
▼ 서측 성벽은 잠목에 휩싸여 있으나 토루가 또렷이 유관으로 확인된다.
▼ 북측 회랑의 모습
▼ 올려다 본 북측 성벽의 모습
▼ 정상부의 서측 토루의 모습
▼ 정상부의 동측 토루의 모습
▼ 정상부의 북측 성벽의 내부모습으로 이렇듯 높게 토축해 적의 접근을 어렵게 해 놓았다.
▼ 정상부의 남측 성벽의 내부모습으로 북측과 마찬가지로 높게 토축해 놓았다.
▼ 정상의 동측 성멱의 모습
▼ 정상의 서측 성벽 - 평토 넓이로 보아 건물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2단 성벽 위에서 올려다본 정상부 성벽의 모습
▼ 성벽의 원형이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는 정상의 북측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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