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리 시루산성 - 부여 충화
가화리 시루산성 - 부여 충화
※ 가화리 시루산성은, 백제부흥운동에 관한 자료를 찾고 있는 필자가, 지도상에 표기된 시루산이란 지명을 보고 혹 백제 테뫼식 산성이 있지 않을까 탐방하던 중에 만났으며, 현재 이에 관한 공식 자료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동안 관계기관과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거나 보고됐다 하더라도 조명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잊혀진 백제 유적이 아닌가싶다. 따라서 [가화리 시루산성]이란 명칭은 필자가 타 산성과의 구분을 위해 임의로 붙인 것이며, 추후 전문가의 고찰이 요구되어 이 사실을 행정기관에 보고하였다.
-. 충남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 00번지(시루봉)
-. 가화리 시루산성은, 충화면 가화리와 양화면 족교리 경계의 시루산 지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려 산단을 이루고, 그 정상부에 테뫼식으로 토축한 산성이다. 산성의 축조 형태나 정황 등으로 미루어 백제시대에 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둘레가 대략 300m 정도이다. 성은 내부의 흙을 삭토해 성벽이 지나는 토루와 회랑을 형성해 놓았고, 북측 성벽이 남측보다 높게 토축했으며 그 흔적이 비교적 뚜렷이 남아 있다. 남측과 북측 성내 편탄지의 넓이가 인근 타 산성에 비해 매우 넓은 편이고, 성문터는 동쪽 문지가 가장 뚜렷이 남아 있으며 남서, 북서쪽에도 문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측 평탄지에 우물터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다.
산성 서쪽으로는 한산의 월성산성. 마산의 벽오리산성과 가깝고, 북쪽으로는 논티리산성. 북동쪽으로는 임천의 성흥산성과 가깝다.
(클릭 시 - 원본 큰 사진)
▼ 충화면에서 양화면로 넘어가는 외트래미재에서 바라본 가화리 시루산성
▼ 북측 성벽의 모습 - 외트래미재 능선으로 올라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높게 토축해 놓았다.
▼ 북동측 성벽의 모습
▼ 북측 평탄지에서 바라본 북축 성벽
▼ 동북측 성벽 위에서 바라본 북쪽 평탄지 - 건물이 잇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동측 회랑부로 삭토한 흔적이 역력하다.
▼ 동북쪽 토루의 모습
▼ 동북측 성문터 모습 - 아래로 내려가면 양화면 족교리가 나온다.
▼ 동측 회랑부의 모습 - 좌측이 성벽 쪽으로 높게 토루를 형성했었음을 알 수 있다.
▼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동측 회랑
▼ 동측 회랑의 모습
▼ 동측 성벽 위에서 바라본 금강의 모습
▼ 양화중학교 모습
▼ 양화초등학교 쪽 풍경
▼ 동측 토루의 모습 - 남측으로 갈수록 낮게 형성했다.
▼ 남쪽의 평탄지는 이중으로 되 있는데 윘쪽 평탄지 모습 -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동측 토루의 모습
▼ 동측 성벽과 남측 성벽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 - 좌측이 외성벽이고 우측이 내성벽이다.
▼ 동측 토루에서 바라본 성안 평탄지 모습 - 남측 능선을 의식해 성벽을 상당히 높게 토축해 놓았다.
▼ 남측 성벽의 모습
▼ 되돌아본 남측 성내벽
▼ 성 내부의 평탄지에서 바라본 내벽의 모습
▼ 남측 성벽의 모습
▼ 강우에 유실된 남측 성벽의 모습
▼ 남측 성안에 민묘가 들어서면서 중장비가 성벽을 무너뜨리고 올라왔다.
▼ 남측 평토지에 들어 선 민묘
▼ 남서측 모서리 부분 - 능선을 의식해 높게 토축하였을을 알 수 있다.
▼ 서측 토루의 모습 -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높게 형성해 놓았다.
▼ 서남측 성벽은 간벌 폐목들이 토루를 뒤덮고 있어 관찰이 곤란하다.
▼ 서북측 성벽은 잡목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관찰이 곤란하다.
▼ 되돌아 본 서북측 성벽의 모습- 유실이 가장 심한 곳이다.
▼ 북쪽 평탄지 모습 - 약간 높게 평토작업을 한 것으로 미루어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북측 편탄지의 우물터 모습으로 깊게 패인 웅덩이가 보인다.
▼ 되돌아본 서북측 성벽의 모습
▼ 북측 성벽과 이어진 서북측 토루의 모습
▼ 능선 아래에서 올려다 본 북측 성벽의 모습
▼ 시루산 자락에서 바라본 가회리 시루산성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