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경욱 2010. 4. 6. 16:57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청명 바로 하루 혹은 이틀 전날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식과 청명을 하나로 합쳐져 청명으로 부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때가 되면 조상에게 제를 지내고, 묘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또 집에서는 대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풍속은 하루 동안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추울 한()’음식 식()’ 즉 찬 음식이라는 뜻에서 한식이라 불리고 있다.

 

한식의 유래

한식은 개자추를 기념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개자추는 중국 춘추시대 사람으로 개지추(介之推), 개자(介子)라고도 불린다.

진문공(晉文公) 중이(重耳)는 왕위에 오르기 전 조정의 박해로 정처 없는 망명의 길에 올랐다. 겨우 5명의 대신이 동행했는데 그 중에 개자추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풍찬노숙의 방랑 길은 장장 19년간 지속되었다. 한번은 길을 가던 중 식량을 산적에게 다 빼앗겼다. 인적이 드문 외딴 곳이라 먹을 것이 없어서 곤궁에 빠질 즈음에 개자추는 칼로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진문공에게 구워줄 정도로 그 충성심이 남달랐다.

후에 진나라로 돌아와 왕위에 오른 진문공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고 중용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개자추만은 빼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개자추는 불만을 토로하고 상을 요구하지 않고 조용히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숨어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시간이 꽤 흐른 후에야 다른 사람의 귀띔으로 개자추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그를 찾아갔지만 개자추는 면산(綿山)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여러 번 권고해도 여전히 나오지 않자 억지로라도 나오게 할 생각으로 산 한 면만 남기고 나머지 세 면에 다 불을 질러버렸다. 하지만 고집스런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설마설마하던 진문공은 그제야 땅을 치며 후회했고 이후 매년 이날만은 전국이 다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것으로 개자추를 기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면산을 개산(介山), 그 지방을 개휴(介休)라 부르게 했다.

개자추와 그의 어머니가 한 버드나무에 몸을 동여매고 죽었다 하여 한식날이면 버드나무를 대문에 꽂기도 하고, 훗날 조상에게 제를 올리고 성묘하는 풍속도 생기게 되었다.

 

(메살메 가족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