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의 비애 ♤♤
♤♤ 구름의 비애 ♤♤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이미 독배처럼 들이킨 실연의 빈 잔인데
농익은 한자락 보리 내음에
봄꽃들의 눈물 자욱 밟으며
허리에 책보 두르고 학교 가던
단발머리 어린 소녀의 잔상마저
그리움으로 가득히 채워 내밀면
이제 와서 날 보고 어쩌자는 얘기더냐.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아름답게 부서지는 햇살과
아름답게 춤추는 상수리나무와
아름답게 노래하는 뻐꾸기며
아름답게 속삭이는 물소리에
융단 같은 들꽃들은 다 그대로인데
눈웃음 고운 어린 소녀는 사라져 버리고
나만 허수아비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구나.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그렇잖아도 세월의 긴 머리카락 펄럭이며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본향 찾아 떠나야 할 끝없는 여정인데
애초 가지 않으려 어깨 들먹이던 고운 한 조각
가슴 찢어 떠나보내 놓고
이제 와서 다시 찾아 떠나라 하니
정말 날 보고 어쩌자는 말이더냐.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이른 더위가 보채는 봄의 끝자락
벚찌가 익어가는 나무 위에 한가로이 걸터앉아
방과후 패랭이꽃 한주먹 꺾어 들고
밤꽃 향깃길 총총걸음으로 뛰어도 오며
종달새마냥 연신 남 모를 얘기 지즐거려 줄
해맑은 미소의 어린 소녀 기다릴 짬도
잔인한 넌 허락치 않는구나.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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