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내 詩 속으로

♤♤ 구름의 비애 ♤♤

소설가 구경욱 2017. 6. 18. 14:46

  



♤♤ 구름의 비애 ♤♤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이미 독배처럼 들이킨 실연의 빈 잔인데

농익은 한자락 보리 내음에

봄꽃들의 눈물 자욱 밟으며

허리에 책보 두르고 학교 가던

단발머리 어린 소녀의 잔상마저

그리움으로 가득히 채워 내밀면

이제 와서 날 보고 어쩌자는 얘기더냐.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아름답게 부서지는 햇살과

아름답게 춤추는 상수리나무와

아름답게 노래하는 뻐꾸기며

아름답게 속삭이는 물소리에

융단 같은 들꽃들은 다 그대로인

눈웃음 고운 어린 소녀는 사라져 버리고

나만 허수아비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구나.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그렇잖아도 세월의 긴 머리카락 펄럭이며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본향 찾아 떠나야 할 끝없는 여정인데

애초 가지 않으려 어깨 들먹이던 고운 한 조각

가슴 찢어 떠나보내 놓고

이제 와서 다시 찾아 떠나라 하니 

정말 날 보고 어쩌자는 말이더냐.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이른 더위가 보채는 봄의 끝자락

벚찌가 익어가는 나무 위에 한가로이 걸터앉아

방과후 패랭이꽃 한주먹 꺾어 들고 

밤꽃 향깃길 총총걸음으로 뛰어도 오며

종달새마냥 연신 남 모를 얘기 지즐거려 줄

해맑은 미소의 어린 소녀 기다릴 짬도

잔인한 넌 허락치 않는구나.


아, 바람아

짓궂은 높새바람아.





  • 소설가 구경욱

     

    1962. 충남 서천 출생   (호랑이띠-황소자리)

    2000.10 월간[문학세계] 단편[푸서리의끝]으로 등단
    2001.10 [제8회 웅진문학상] 현상공모 단편[파적] 당선 

  • 더좋은문화원만들기모임 공동대표
    계간 문예마을 이사
    푸른서천21 자문위원
    뉴스서천 칼럼위원
    서천문화원 이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