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내 詩 속으로

희고 노란 꽃나비 / 구경욱

소설가 구경욱 2017. 8. 13. 08:44


 





희고 노란 꽃나비 / 구경욱



육굴 모퉁이를 돌아

은적사로 넘어가던 오솔길

소나무 숲 그늘에는

이제는 찾는 이 없어 잡목에 휩싸인

외로운 무덤 하나가 있지.

차마 피지도 못한 채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구로공단 쪽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요절한

동구밖 뗏집 소녀의 무덤이지.


초등학교 시절이었어.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던 시절

점심시간 교내방송은

풍금 반주에 맞춰 마이크 잡고

직접 노래 부르던 때였지.

그 자리는 늘 뗏집 소녀 차지였어.

교육청 동요경연대회에서

당당히 이등을 했으니

어느 누구도 여기에

토를 달 사람은 없었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구로공단 공순이로 떠밀려 간

뗏집 소녀는 요절하기 전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어.

엄마들 치맛바람만 아니었으면

아니, 찢긴 고무신에 허줄한 바지 대신

예쁜 치마에 운동화만 신고 있어도

교육청 동요경연대회 때

등상은 내가 받았을 거라고.


이런 기구한 이야기

이제껏 기억해 줄 사람도

더 이상 전해 줄 사람도 없으련만

무덤 아래 뗏집터가 바라보이는

노오란 꽃 흐드러진

배추 채종포

나비같이 짧은 삶

뗏집 소녀가 부르던 노래처럼

희고 노란 꽃나비

오늘도 무리 지어 춤추고 있지.



 

주: 뗏집 = 잔디 뿌리가 붙은 뗏장으로 벽돌을 대신하여 지은 집


  • 소설가 구경욱

     

    1962. 충남 서천 출생   (호랑이띠-황소자리)

    2000.10 월간[문학세계] 단편[푸서리의끝]으로 등단
    2001.10 [제8회 웅진문학상] 현상공모 단편[파적] 당선 

  • 더좋은문화원만들기모임 공동대표
    계간 문예마을 이사
    푸른서천21 자문위원
    뉴스서천 칼럼위원
    서천문화원 이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