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노란 꽃나비 / 구경욱
희고 노란 꽃나비 / 구경욱
육굴 모퉁이를 돌아
은적사로 넘어가던 오솔길
소나무 숲 그늘에는
이제는 찾는 이 없어 잡목에 휩싸인
외로운 무덤 하나가 있지.
차마 피지도 못한 채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구로공단 쪽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요절한
동구밖 뗏집 소녀의 무덤이지.
초등학교 시절이었어.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던 시절
점심시간 교내방송은
풍금 반주에 맞춰 마이크 잡고
직접 노래 부르던 때였지.
그 자리는 늘 뗏집 소녀 차지였어.
교육청 동요경연대회에서
당당히 이등을 했으니
어느 누구도 여기에
토를 달 사람은 없었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구로공단 공순이로 떠밀려 간
뗏집 소녀는 요절하기 전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어.
엄마들 치맛바람만 아니었으면
아니, 찢긴 고무신에 허줄한 바지 대신
예쁜 치마에 운동화만 신고 있어도
교육청 동요경연대회 때
일등상은 내가 받았을 거라고.
이런 기구한 이야기
이제껏 기억해 줄 사람도
더 이상 전해 줄 사람도 없으련만
무덤 아래 뗏집터가 바라보이는
노오란 꽃 흐드러진
배추 채종포엔
나비같이 짧은 삶
뗏집 소녀가 부르던 노래처럼
희고 노란 꽃나비
오늘도 무리 지어 춤추고 있지.
주: 뗏집 = 잔디 뿌리가 붙은 뗏장으로 벽돌을 대신하여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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