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지아저씨 구병택님
반가운 얼굴 - 팔지 아저씨
은곡리 문화사랑방에 가면 반가운 얼굴이 있다. 진종일 비닐 하우스 안에서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다 보니 이웃이라 할지라도 마주칠 일이 많지 않다. 그러니 어디 반가운 이가 하나 둘이랴. 허나 내게 반가운 얼굴이 하나 있다. 바로 박상굴 팔지 아저씨 얼굴이 그렇다.
지난 해 초겨울이다. 아저씨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풍을 맞으셨다. 혼자서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겨우내 빙판길을 뚫고 이리에 있는 원광대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야 만 했다.
당시 소식을 듣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 뵙지 못했었다. 뒤늦게 아내와 함께 아저씨 댁을 찾았다. 아저씨는 몸이 자유롭지 못해 사람이 그리웠는지, 내 손을 반갑게 잡으시며, "인제는 사람 노릇하기 영 글렀능게벼. 요강이나 옆에 끼고 살게 됐으니 말여." 고 하시며 눈시울을 붉혔다.
병문안을 마쳤을 땐 착잡한 심정 가눌 수 없었다.
눈 쌓인 박상굴 고샅길을 내려 오면서, 아내에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아저씨가 한참 때는 우스갯소리를 하도 잘 하셔서, 나는 아저씨가 늙지 않으실 줄 알았어." 하며, 웬지 서러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귀농을 하면서 아저씨와 모내기며 피사리, 가을걷이 등을 함께 했었다. 그때마다 아저씨의 재치 있는 우스갯소리에 황굴재로 해 넘는 줄 모르고 일을 했던 게 엇그제 일이었다. 이제는 다 까맣게 지나가 버린 옛날 얘기가 돼 버린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아주머니의 지극 정성의 병수발에 날이 풀리면서 아저씨는 가끔씩 창백한 얼굴을 집 밖으로 내 보였다.
농번기가 되고, 장마가 시작 됐다. 질척하게 이어지는 비에 도래편과 작은육굴에 있는 무 채종 밭의 다 여문 씨앗들이 썩어났다. 얄궂은 하늘은 기어이 아저씨의 바들거리는 손에 낫을 다시 쥐게 만들었다.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니 '바쁠 땐 부지깽이도 쓴다.' 는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농삿일로 잔뼈가 굵은 아저씨이다. 그러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 혔잖여. 어쩌것어, 이렇게들 바쁜디... 죽잖고 사지를 꼼지락거릴 수 있는디 아프다고 방구석에 자빠져 있을 순 없잖여?" 하시며 들로 나오셨다. 썩어 나가는 채종밭에 가슴이 찢어졌던 것이다.
하늘은 그렇게 천상 농삿꾼의 두 팔을 몇 날 며칠 걷어붙이게 만들어 놓았다. 순박한 농심이 어찌 무심한 하늘인들 통하지 않을까. 날이 개이고, 씨앗도 말끔히 거두어졌다. 그런 일을 거치면서 아저씨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셨다. 술 한잔 자시면 늘 "나는 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이 말은 아저씨의 좌우명인 게 분명하다. 이렇듯 건전한 정신과 신선한 노동은, 그 어떤 특효 약이나 무슨 재활훈련보다도 좋았던 모양이다.
아직도 아저씨 어투는 몹씨 어눌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 온 훈장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는 물론 다른 이들과 대화도 가급적 피하신다. 허나 한실 문화사랑방의 단골, 아니 당당히 주인 자리를 꿰차고 계시다. 보아란 듯이 젊은이들과 장기판을 펼쳐 놓고 자웅도 겨루시고, 윷판의 말판 훈수에도 빠지지 않으신다. 어려운 문화강좌 한 시간 내내 꼿꼿이 앉아 가장 진지하게 경청을 하신다. 이것은 스스로 돕는 이를 돕는 하늘의 축복이요 최대 선물, 살아 움직이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절대 특권 아니겠는가. 그러니 내가 문화사랑방에 들어 서다가 아저씨의 얼굴을 마주치면, 마치 그리운 짝사랑이라도 만난 듯 반가워 할 수밖에.*
'[내고향 한실 이야기] > 한실마을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적굴 이원희, 구경환 선생 (0) | 2009.06.26 |
---|---|
은곡리 부녀회 풍물팀 (0) | 2009.05.06 |
문산면 은곡리 노인회 역대 회장 (0) | 2009.04.07 |
♡♡♡ 문산면 은곡리 - 역대 부녀회장 ♡♡♡ (0) | 2009.03.13 |
문산면 은곡리 - 역대 대동회장 (0) | 2009.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