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흥산성(聖興山城) = 가림성(加林城) - 부여
-. 성흥산성은 충남 부여군 임천면과 장암면에 걸쳐 세워진 산성으로 백제 동성왕 23년인 501년에 세워졌다.
-.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가림성을 성흥산성에 비정하는데 이 지역의 옛 이름이 가림군이었기 때문이다. 부소산성과 부여읍으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10km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금강 하류 요충지로서, 금강 하류 일대를 관측할 수 있다.
-. 이 성은 백제 시대에 확실한 축조 시기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며, 사적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위직인 위사좌평이 이 성을 담당했다고 하는데, 이는 이 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 기록에 따르면, 이 성을 쌓은 위사좌평 백가가 성을 쌓은 후 동성왕이 이곳을 지키게 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동성왕을 죽였다고 하며, 무령왕이 이 반란을 진압했다.
-. 백제부흥운동이 펼쳐졌던 성흥산성은 산세가 험한데다가 견고하여 나당연합군 대총관 소정방조차 뚫지 못했다. 당시 모든 장수들이 부흥군의 가림성부터 치자고 하자,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병법에는 강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고 하였다. 가림성은 험하고 튼튼하므로 공격하면 군사들이 상할 것이요, 밖에서 지키자면 날짜가 오래 걸릴 것이다. 주류성은 백제의 소굴로서 무리들이 모여 있으니, 만일 이곳을 쳐서 이기게 되면 여러 성은 저절로 항복할 것이다.] 라며 가림성의 견고함을 두려워했다.
▼ 성흥산성 전경
▼ 1913년 성흥산성 모습
▼ 충혼사(忠魂祠) - 나,당연합군과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하게 산화한 수천명의 백제 부흥군 무명장졸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그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1978년부터 매년 임천 충혼제를 올리고 있다.
▼ 산성 남문 협곡의 돌계단
▼ 복원된 남문 쪽 성벽
▼ 산성의 남문
▼ 남문지 복원 전 모습
▼ 남문 쪽에서 바라본 서문 쪽 성벽
▼ 원형 그대로 칡넝쿨에 뒤덮혀 있는 서문 쪽 성벽
▼ 서문 쪽 망루가 있었던 곳
▼ 서문에서 동문을 향해 가면서 내려다본 풍경
▼ 다시 되돌아 산 정상으로 향하며 바라본 성벽 모습
▼ 산 정상에 있는 봉화제단 - 이곳에서 채화된 불씨가 백제문화제 성화로 쓰인다.
▼ 산성 정상에서 바라본 사비(부여) 쪽 풍경
▼ 강경 쪽 풍경
▼ 정상부의 평토지 - 백제군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 정상에 있는 성흥루
▼ 이 지역 출신 전 국무총리의 (김종필) 친필 편액
▼ 고려 건국공신인 태사 충절공 유금필 장군의 유적비 및 사당
▼ 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 5,000 여 백제부흥군 장졸들의 타는 목 적셨을 우물
▼ 산성의 동문 쪽 풍경
▼ 동문지 복원 전 모습
▼ 서문 쪽에서 바라본 동문 쪽 성벽
▼ 서문 쪽으로 이어진 성벽
▼ 동문과 서문 사이에 있는 군영 터의 우물
▼ 남문 위 느티나무
▼ 남문 앞 암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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