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악몽에 사로잡힌 남자.
바람이 불어 왔다.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으므로, 임우(霖雨)에 비를 나르던 바람처럼 끈적하다.
침실 창문은 베란다로 통해 나 있다. 삼분의 일쯤 열려 있었는데 커튼이 내려져 있다. 그러므로 바람이 불 때마다 늘어뜨려진 커튼 자락이 조신한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흔들림이 흥미롭다. 따라서 틈새가 벙긋이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으므로, 이를 놓칠세라 베란다 밖을 서성거리던, 13층 아래 주차장 부근 수은등 불빛이 잽싸게 침실로 틈입해 천장을 밝히곤 한다. 허나 실내를 밝히기엔 턱없다. 휴대전화기 충전기에서 발산되는 작은 불빛을 능가하지는 못했으므로, 여전히 설피창이 같은 어둠이 침실을 차지하고 있다.
창문 바로 아래엔 팔걸이 없는 일인용 소파가 있다. 둥글고 낮은 유리 탁자를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있었는데 소파 등받이엔 양복이 아무렇게나 걸쳐 있다. 그 옆으로 붙박이 옷장이 위치해 있고, 앞쪽에는 싱글 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에는 흰색 러닝셔츠에, 자칫 수영복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잠을자고 있다. 남자는 홑이불을 끌어안은 채 엎드린 자세로 잠들어 있다. 훤칠한 키 때문일까. 건장한 체격 탓일까. 아니면 기실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침대는 일반 규격보다 약간 작아 보인다.
남자는 한기 때문은 아니었으나 대지진의 징후처럼 혹간 진저리를 치며 자고 있다. 간혹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잠꼬대를 흘리기도 하고, 자리가 편편찮은 듯 몇 차례 뒤척이기도 한다.
남자가 갑자기 바로 눕더니 고개를 심하게 흔들기 시작한다. 무슨 발작이라도 하듯. 두 팔을 허공으로 뻗는다. 떠다니는 반딧불이라도 잡으려는 듯 세차게 휘젓는다.
다음 순간, 급히 몸을 일으킨다.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에 놀란 멧토끼 반사적으로 도망치듯 허둥허둥 침대를 뛰어내린다.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잠이 덜 깬 것인지, 남자는 놀이 공원의 청룡 열차에라도 탑승해 있는 듯 일순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현기증에 휩싸인다. 그래서 갈대처럼 휘청거렸고, 결국 현기증을 극복해 내지 못했으므로, 허방이라도 잘못 디딘 듯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재개발을 위해 폭파되는 아파트처럼.
남자는 다시금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지칫거린다. 현실의 세계로 탈출해 나왔음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런, 또 그 꿈을 꾸었군. 휴...”
남자가 한숨을 흘린다. 돌기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가느다란 거미줄처럼. 그리곤 안도하는 눈치를 보이며, 침대로 돌아 와 힘없이 걸터앉는다. 숨을 쉴 기력조차 상실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래서 갯바위로 떠밀려 올라온 해면과 같은 모습이다.
남자는 상시 자정이 넘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곤 했었다. 인터넷 광이라 할까, 또는 중독 증세를 보인다 고나 할까. 밤이 이슥할 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채팅방을 기웃거리며 희희덕거리기도 하고, 악마라는 아이디(ID)로 게임 사이트에 접속해 서너 시간 동안 크레프트 게임에 몰입하기도 했다. 십 년째 사귀고 있는 사이버 친구에게 쪽지나 메일을 주고받는 것은 하나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헌데 어젯밤은 그렇지 못했다. 아홉 시 종합 뉴스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소파에 앉아 병 든 병아리 모양으로 졸고 있다가 반쯤 감긴 눈으로 침실로 향했었다. 술에 취한 탓이다. 남자의 주량은, 맥주 한두 잔이 고작이다. 그래서 술자리가 마치 가시 방석과 같았으므로, 의도적으로 어떤 구실이든 만들어 빠져나오곤 했었다. 그런 그가 어젯밤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술을 마셨다. 그것도 혼자 집에서. 지난 스승의 날,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교무실 책상 위에 양주 한 병을 슬쩍 놓고 갔었는데, 병 모양이 예쁘게 느껴져 여태껏 거실 진열장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것을 어젯밤 혼자 홀짝홀짝 바닥내 버린 것이다. 일찍이 없었던 기이한 일로, 깊은 잠에 빠져들려는 저의가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잠을 자는 동안 자갈밭에 누운 듯 편편치 못했다. 소풍 전야의 들뜬 아이처럼, 남자는 줄곧 사로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이유는 우습게도 악몽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헤아릴 수 없이 반복해 꾸어 온 악몽이었다. 그러므로, 한가로운 여정이나 망중한처럼 시작되는 발단과 숨막히는 전개 과정, 그리고 어이없게 치닫는 절정과 우스운 결론 역시, ‘장화홍련전’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디’의 줄거리처럼 낱낱이 알고 있다. 따라서 악몽을 꾸는 중에도, 골리앗과 마주섰던 다윗처럼 담대하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결연해지기를 스스로에게 요구하거나 독려하는 등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너무도 빤한 내용의 악몽이었으므로, 무서움이라든가 두려움 같은 것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절정에 도달하면, 늘 지금처럼 떨게 된다.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는 공포력을 극복하기엔 그의 능력은 몹시 초라했다. 헤진 새마을 모자에 예비군복을 걸쳐 입은 채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지키는 허수아비처럼.
더욱이 그 한계나 정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남자가 아무리 강한 심장을 지녔다 할지라도, 결코 악몽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따라서 그가 체감하는 공포력은, 으슥한 산길에서 치한에게 옷고름을 잡힌 여인의 심정이나 진배없었다.
남자가 잠에서 깨어 난 것은, 악몽으로 벗어나려 했으므로 자위적(自衛的) 의지와 절대 깊은 상관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어디론가 달아나려 했던 것은, 전혀 무의식적 반응이다. 따라서 그것은 절대적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는 부정 못할 물증이나 다름없었다.
남자는 이 과정에서 하마터면 차가운 금속성 파생음을 토해 낼 번했다. 그것도 날카롭게 찢기는 여성의 음성으로, 괴기 영화에 몰입해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외마디 비명처럼.
“몸이 허해진 겐가...?”
남자는 이 꿈을 꾸고 난 다음날이면, 생리통에 시달리는 여인처럼 진종일 암울한 기분을 곱씹어야만 했다. 그럴라치면, 할머니께서는 무슨 고민이 있는 게냐? 하시며, 용의자에게 유도 심문을 하는 노련한 형사처럼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 오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 꿈 이야기를 슬쩍 털어놓은 적 있다. 혹시 있을지 모를 할머니의 특별한 지혜. 즉 악몽을 떨칠 수 있는 무슨 해결점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곧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할머니께서는, 니 나이 땐 누구나 다 그런 꿈을 꾸능 겨. 그건 키가 크려는 게야. 하시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시부저기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 남자는 유치한 꿈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꺼내 놓지 않는다. 왠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남자가 눈살을 찌푸린다. 분명 잠에서 깨어났으므로, 악몽으로부터 확실하게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잔상들이 어지럽게 허공에 투영되고 있다. 낡은 흑백 영화 같은 환시였으나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처럼 또렷하다.
남자는 호숫가를 걷고 있다. 언제나처럼 혼자였다. 단 한 차례도 간 적이 없는 곳이지만, 악몽의 시작은 늘 이렇게 시작됐으므로 전혀 낯설지가 않다.
어느새 남자는 알몸으로 물에 들어와 수영을 즐기고 있다. 살갗을 어루만지는 맑은 물살이 감미롭다. 그래서 남자는 오르가즘에 다다른 여인처럼 묘한 눈빛이다. 얼마나 헤엄쳐 왔을까. 남자는 너무 멀리까지 헤엄쳐 왔다고 느낀다. 그래서 되돌아 나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때였다. 심연 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시체가 보였다. 남자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마칠 때 느끼는 통증처럼 가슴이 뜨끔하다. 주위를 황급히 휘둘러본다. 시린 듯 맑은 물은 오간 데 없다. 온통 썩은 물이다. 그래서 기겁할 수밖에 없다.
시체는 수족관의 기포 발생기처럼 부글거리며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남자는 급히 물 밖으로 헤엄쳐 나온다. 뭍으로 걸어 나와 뒤돌아보았을 때, 수면으로 떠오른 시체는 낙엽처럼 둥둥 떠다니다가 파도에 떠밀려 오고 있다. 남자는 마을로 뛰어가 사람을 불러오리라 생각한다.
갑자기 남자가 비명을 지르려 한다. 별안간 시체가, 몸을 도사리고 있던 파충류처럼 꿈틀하더니 벌떡 일어 선 것이다. 검붉은 추깃물을 흘리며, 먹이 사냥에 나선 포식자가 포획물을 막다른 길로 몰아 놓은 것처럼 포효한다. 그리곤 고약한 냄새를 그림자처럼 뿌리며 빠른 속도로 덮쳐 온다. 남자는 쥐를 발견하고 기겁하는 계집아이처럼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시체는 벌써 남자의 팔목을 낚아챘고, 목덜미를 덥석 잡곤 뼈가 바스러지도록 비틀고 있다. 잠시 뒤 그 손은, 거대한 하등 동물의 촉수처럼 변해 춤을 추더니 다시 송곳같이 날카롭게 변해 남자의 두개골을 사정없이 꿰뚫어 온다. 그리곤 뇌세포를 달콤하게 흡입하고 있다.
“끔찍하군. 더럽게 재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남자가 부르르 진저리를 친다. 해부 실습을 위해 가슴을 절개해 놓은 실험용 쥐의 운명처럼.
남자는 물이 써 버린 갯벌같이 삭막한 뇌 속을 더듬는다. 그래서 악몽 속 오래된 주검이 중학교 동창인 K란 사실을 기억해 낸다. 하지만 더 이상 놀라지도, 의아해 하지도 않는다. 이미 공포력은 절정에 도달해 있었고, 왜 이런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았으므로, 마라톤 풀코스를 마지막으로 달려왔으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고독한 완주자처럼 허탈해 할뿐이다.
악몽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남자는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제 딴엔 바짝 숨통을 조여 오는 K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그 자리를 황급히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늘 한 발자국도 도망치지 못한다. 다리는 제련을 마치고 흐르다가 꾸들꾸들 응고 되가는 금속 원소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강력한 자석이나 접착제에 의해 땅바닥에 달라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하긴 입술 역시 매한가지로 언제나 꽁꽁 언 듯 했다. 따라서 목젖에서 맴도는 비명을 기어이 토해 내지 못했으므로, 제멋대로 허청거리다가 잠에서 깨어나곤 하는 것이다.
남자는 독기에 찬 고양이와 마주쳤다가 간신히 은신처를 찾아 위기를 모면한 쥐처럼, 동그랗게 뜬 두 눈을 빠르게 굴린다. 방안은 온통 진한 먹빛과 원죄만큼이나 무거운 침체, 그리고 기분 나쁜 정적으로 가득 차 있다. 남자는 죽음에 빛깔이 있다면, 또는 그것에 소리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란 생각을 어뜩 한다.
어둠 속에서 시계 초침 튀는 소리를 들린다. 아련한 언덕 너머에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브라스 밴드의 행진곡과 같다. 큰북의 울림 같은 심장의 고동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들은 무겁게 깔린 정적을 깨뜨리고 있다. 가로등 꺼진 골목길에서 뒤따라오는 긴 그림자의 발자국 소리처럼 기분 나쁘게 느껴졌으므로, 남자는 못 볼꼴을 본 듯 얼굴을 찌푸린다.
남자가 뒷목을 더듬는다. 행여 묻어 있을지 모를 추깃물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끈적한 액체가 느껴진다. 몹시 께꺼름하다. 식은땀이었다. 동시에 역겨운 냄새가 분별력 잃은 후각을 치받는다. 비가 내리기 전날, 맨홀 뚜껑 사이를 뱀처럼 스멀스멀 비집고 나오는 악취와 흡사하다. 전형적인 수챗물 찌꺼기가 부패되면서 풍기는 특유의 악취. 남자는 위부가 뒤틀렸으므로, 입덧이 시달리는 산부처럼 헛구역질을 한다. 공복이었기에 다행이란 생각이 퍼뜩 스친다. 하지만 남자의 체취를 대신하는 체스 스페이스 스킨 향만이 있을 뿐 실상은 아무 냄새도 없다.
남자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를 켠다. 은연한 불빛이 술에 취한 걸음처럼 흔들흔들 쏟아진다. 빛바랜 핑크 빛 도배지가 여느 때보다도 온화하다. 그제야 현실로 분명하게 탈출해 왔음을 확인한 남자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자궁 속에 있을 때와 같은 위안을 얻는다.
남자가 시선을 옮긴다. 벽 쪽이다.
“세 시로군.”
시계는 원심력도, 구심력도 갖지 못한 채 꽁지 빠진 잠자리처럼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남자는 맥이 풀렸다. 그래서 허허롭다.
시계 아래엔 대형 거울이 있다. 땀투성이의 남자가 그 안에 있다. 볼썽사납게 헝클어진 머리칼,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온 듯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 있다. 빈사의 지경에 이른 듯 늘어뜨려진 모습이 궁색하다 못해 몹시 측은해 보인다.
“말도 안돼...”
남자는 키 180cm의 헌칠민틋하고, 헬스클럽에 다니며 다져진 무척 건장한 체격의 육군 병장 출신이다. 에로 영화에 어울릴 하야말쑥한 얼굴이다. 약간의 푸른빛이 감도는 이색적인 눈동자를 갖고 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튀기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시인 윤동주를 동경한다. 그래서 메이저 신문 신춘문예에 십 년째 도전하느라 원고지 깨나 구기며 살아 온 평범한 중학교 국어 교사였다. 서른셋의 나이에 여태껏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이라는 것 이외엔 아무런 문제점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 거울에 비쳐진 남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남자는 성장통에 배앓이 하느라 어머니 젖무덤을 파고들며 밤을 꼬박 지새워 칭얼대는 아이에게나 어울릴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려준다면, 할머니처럼 코웃음을 터트릴 건 뻔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토록 유치하기 그지없는 악몽에,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모 없이 바들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자가 이렇듯 악몽에 얽매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끌리는 데에는 차마 사제에게 다가가 진솔하게 고해성사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온 굴절된 과거가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굴욕적 수치와 무미건조한 기억들이 뇌리에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다가 잠자리에 들면, 악몽이 되어 꿈틀거리는 것이다.
악몽의 시작은 학창시절부터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부터였다.
남자의 사춘기는 남다르다. 삼촌의 낡은 플레이보이 잡지나 누나의 월간지를 훔쳐다가, 늘씬한 모델들의 사진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음밀하게 수음이나 즐기던 또래들과 전혀 색다른 시기였다. 그 시기의 기억은 떠올리는 것조차도 처참하다. 비망록에 메모되어진 것이었다면, 아무리 손때 묻은 물건에 애착이 유별난 남자라 할지라도, 진작에 지우거나 찢어 파기했을 일이다. 그러나 지울 수도 찢어 버릴 수도 없는 암울한 기억들은, 뇌세포 속에 치유 될 수 없이 퍼져 있는 암종의 뿌리처럼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남자가 군에 입대하면서, 고단하게 이어지는 훈련으로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그랬으므로 더 이상 문제 될 것이란 없는 요원한 일이 되버린 듯 했었다.
하지만 열흘 전 다시 부활한 것이다. 그러니까 9월 1일자로, 남자가 D중학교로 발령 받아 교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악몽이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되살아 난 것이다.
남자가 침실을 빠져 나와 욕실로 들어간다. 샤워 꼭지를 비틀고는 옷을 입고 있는지, 아니면 벗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욕조에 들어가 그대로 눕는다. 악몽의 기억들을, 지난 보름간의 기억들을 씻어 내려는 것이다.
우기의 어느 날처럼 구지레하게 비가 내린다.
남자의 어깨가 자꾸만 움츠려 든다. 날씨 탓도 있지만, 교문의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탓으로 흉가에 들어서는 듯한 음산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자는 갑자기 바뀐 낯선 환경 탓이라 자위한다.
월요일이었으므로 운동장에서 조회가 있는 날이다. 하지만 비 때문에 취소됐다. 그래서 때를 같이해 전근 온 세 명의 교사 소개는 다음 주로 미루어졌다.
교직원 회의가 끝나자, 대부분의 선생들이 각기 담임 조회를 위해 교실로 가느라 분주하다. 남자는 담임 배정이 안되 있었으므로, 책상 정리와 1교시 학과 준비에 바쁘다.
“교감 선생님께서 부르십니다.”
색 바랜 청바지에 바쳐 입은 흰색 티셔츠 차림이 말끔한 여 사환이다. 웃는 모습이 익기 시작한 사과에 묻은 이슬처럼 싱그럽다. 남자는 여 사환이 아리잠직한 체구였으나 여고 이삼 년생 쯤 될 것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남자는 야간 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학생일 것이라 짐작한다.
남자가 급히 교무실 중앙에 있는 교감을 향해 다가간다. 서류 정리를 하던 교감은, 남자를 흘끔 쳐다보며, 용건만을 간단히 꺼낸다.
“2학년 2반 담임을 좀 맡아 줘야겠어요.”
예정에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남자는 의아한 표정이다.
교감이 잽싸게 보충 설명을 덧붙인다.
“담임인 이 선생에게 어젯밤 교통사고가 있었답니다. 부 담임은 이번에 전근을 가셨고...”
“아, 많이 다치셨나요?”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갔을 땐 혼수 상태였는데, 새벽녘에 깨어났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남자의 성격은 무척 세세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선생의 안부에 대해 몇 마디쯤 더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서둘러 출석부를 챙겨 교실로 향했다. 굳이 얼굴조차 모르는 이선생의 일로, 아침부터 가슴 아파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남자는 자신이 냉혈 인간이라도 된 듯한 소슬한 느낌에 놀라고 있었으나 도무지 상관없는 일이다.
남자가 교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에 돌연 힘이 소멸되는 것을 느낀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탓으로, 담임의 사고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렇잖아도 첫 출근에 어색해 하던 남자는 눈살을 찌푸린다. 과히 기분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서먹함을 떼치려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흘린다. 어두운 첫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흑판에 커다랗게 이름 석 자를 적는다.
“반갑다. 이렇게 인연이 닿아서...”
남자는 다른 학교로 전보 발령됐을 때에도 학생들과 처음 대면하는 이 시간이 가장 싫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모든 눈이 자신에게 빈틈없이 던져 오는 것에서,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느꼈을 유폐감, 또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자가 교수대에 선 것 같은 살벌함까지 느껴진 적도 있었다. 왜 이러한 느낌을 받아야 하는지, 대인 결핍증이 없는 남자로서는 알 수 없는 구석이었다.
남자는 비좁은 교실을 콩나물처럼 채우고 있는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것에 흥미가 없다. 그래서, 반장, 결석한 사람 없겠지? 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묘한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대신 학생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황급히 옮겨간다. 남자도 시선을 옮긴다. 심드렁한 눈길이다. 책상 위에 놓인 하얀 국화꽃 다발이 눈에 띈다. 검은 색 리본이 묶여 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키가 작고, 퍽 못생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학생이 슬며시 일어선다. 남자는 웃음이 튀어나올 번했으나 급히 절제한다. 녀석은 이내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침통한 표정으로, 잔뜩 찌푸린 하늘빛이 그대로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장은 죽었어요. 어젯밤에...”
남자가 급히 되묻는다.
“죽다니...?”
“담임선생님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저런, 안타까운 일이로군.”
남자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교감으로부터 이야기를 언뜻 듣긴 했으나 시간에 쫓겨 교실로 들어왔었고, 이렇듯 심각한 사고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따라서 그런 줄도 모른 채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학생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 주지 않았나 싶어 고개가 떨어진다.
“미안하게 됐군. 그런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부임한 담임이란 작자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야...”
출석부 정리를 서둘러 마치고 무심코 접어들던 남자가 미간을 좁힌다. 겉표지에 기재된 담임의 이름을 발견한 때문이다.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남자는 오전 수업 내내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낯선 교정, 한 번도 마주친 적도 없는 무표정한 학생들, 그래서 먼 이국 땅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굴러 떨어져 방황하는 미아가 된 듯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온 남자는 옆자리의 여자에게 가벼운 어조로 말을 건넨다.
“미술 과목을 지도하신다고 했죠?”
“네. 맞아요.”
“브로치가 퍽 어울리네요. 무슨 꽃이죠? 백합 같기도 한데...?”
“맞았어요. 백합... 꽃말은 순결, 그리고 존엄이죠.”
“역시, 예술을 전공하신 분이라서 패션 센스가 다르군요.”
“칭찬으로 들어도 되겠죠?”
“그, 그럼요.”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는 영화배우를 닮은 것 같아요. 이름이...? 제목이 뭐였더라...?”
가벼운 농담 몇 마디 주고받았을 땐 금테 안경 너머에 옹크리고 있던 차가운 여자의 첫 이미지는 금세 사위여 버린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이 선생님은, 과연 어떤 분이셨죠? 함께 상담실을 운영했다고 들었는데...?”
남자는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슬며시 화제를 바꾼다. 동시에 여자의 입가에 흐르던 미소도 사라진다.
“좋은 분이시죠. 다만...”
“다만...?”
“학생들을 너무 편애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남자는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기울인다.
“한 학생에게 나무 집착했거든요. 병적(病的)이었죠.”
“병적...?”
“그, 글쎄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어쨌든 유별났어요.”
“유별...?”
남자가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지자, 여자의 얼굴이 붉어진다. 대답 대신 힐끗 쳐다보며 반문 한다.
“왜, 그렇게 물으시죠? 마치 경찰서에 끌려와 취조를 받는 느낌이네요?”
“미안해요. 제가 알고 있는 어느 선생님과 이름이 같아서요. 제 중학교 시절의 담임이셨던...”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러셨군요. 여기 어딘가에 그 분 사진이 있을 텐데...?”
여자가 책상 서랍을 뒤적인다. 잠시 후 여자는 책갈피에 끼워져 있던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든다.
“봄 소풍 때 찍은 사진이에요. 붉은 조끼를 입으신 분이죠.”
남자가 웃는 낯으로 사진을 받아 든다. 하지만 곧 신음소리를 흘린다.
“이런, 설마 했었는데...”
빨간 조끼 차림의 이 선생은,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나이로 변해 있었다. 허나 남자는 금세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사진을 들고 있는 남자의 손이 흔들린다. 떨고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악몽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 분이 맞는가 보죠?”
여자가 말을 걸어 왔을 때, 남자는 그녀가 옆에 있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으므로, 약간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네. 한다.
“이를 어떡해...?”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급히 시선을 거둔다.
“제 얘기는 은사님께서, 그렇게 되셔서 마음이 아프시겠다는 뜻이에요.”
“은사...? 은사라...? 휴우...!”
남자는 은혜를 입은 스승이라는 뜻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흔들어 부정한다.
남자가 시청 뒤편에 위치한 S병원에 도착한 것은, 사고가 있은 지 삼 일 후로, 퇴근길이었다.
병원 뒤편에 있는 주차장은 그리 넓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비어 있다. 그래서인지 바람이 더 세찬 듯 했다. 남자는 왠지 스산함이 느껴져 어깨를 움츠린다.
병원 현관은 몹시 어수선하다. 의약 분업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고, 찢겨진 유인물 조각들이 바람에 나뒹굴고 있다. 의사들의 파업 사태로 진료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자는 이선생의 병실이 3층에 있었으므로,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계단을 통해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까닭은 없었으나 왠지 그러고 싶었다.
입원 병동 복도는 몹시 적요하다. 간호사실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살벌한 느낌마저 감돈다. 마치 영안실 복도를 걷고 있는 듯하다. 남자는 신문 기사를 떠올린다. 따라서 복도가 이렇듯 조용한 이유가, 의사들의 파업으로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된 환자들이 무더기로 퇴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01호는 복도 끝에 위치해 있었다. 남자가 출입문을 두드린다. 들릴락 말락 가벼운 노크였으나 복도가 울렸으므로, 가슴이 뜨끔하다. 병실 안에서, 네. 들어오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어떻게 오셨죠?”
40대 후반의 넉넉한 체구의 아주머니가 남자를 맞는다.
남자는 이 선생이 결혼을 하지 않았고, 고아 출신으로 가족이 없는 독신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수당을 받고 대신 간호해 주는 전문 간병인일 것이라 짐작한다.
남자는, 제자입니다. 하려다가, 같은 학교 선생입니다. 한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너스레를 떨기라도 하는 목소리로, 마침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나가려고 했었는데... 괜찮겠죠? 한다.
“그렇게 하세요. 제가 대신 이곳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아주머니가 약간 호들갑스런 웃음을 남기고 밖으로 나간다. 그때서야 남자는 무거운 침묵에 휩싸인 병상을 향해 다가간다. 발걸음이 모래주머니라도 찬 듯 무겁다.
잠들었는지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이 선생은, 남자의 생각보다 훨씬 중상이었다. 사고 다음 날 일반 병실로 옮겨 왔다기에 상처가 가벼울 것이라 추측했었다. 하지만 이 선생은, 눈과 산소 호흡기가 착용된 코와 입을 제외하고 붕대로 칭칭 감고 있다. 목과 양쪽 팔 다리 역시 붕대로 흉물스레 감겨 있어 참혹했던 사고 현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의 몸엔 소름이 돋는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남자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무잡하게 스치는 추상 속으로 어느새 빠져들고 있었다. 그 일들은 기억조차 처절한 악몽이었다.
이 선생은 다른 선생들의 숙직을 대신하며, 학교 후원에 있는 숙직실에서 기거했다. 전혀 연고가 없는 군 소제지 학교로 발령 받아 온데다가, 마땅히 하숙할 곳도 없었던 농촌 지역 여건상 독신인 그가 숙소로 사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 선생은 다정하고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 첫 교직을 발령 받아 내려온 젊은 나이였으므로, 특히 여학생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었다. 더욱이 의욕이 넘쳐흐르는 적극적인 교육 자세를 보였고, 따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남자에게 보이는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다분했다. 그는 남자와 줄곧 1등을 다투고 있는 반장 K를 무척 편애하고 있었다. 학기 초, 직접 선거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K를 반장에 임명한 것이 남자는 늘 불만스러웠다. 물론, 계집아이보다 더 예쁘장한 미소년이던 K였던 터라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며 무던히도 참았다.
여름 방학에 들어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남자가 제일 자신 없어 하는 과목은 영어였다. 이 선생은 자신의 전공인 영어를 K를 불러들여 집중적으로 사사하기 시작했다. 이 일 만큼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닐 성싶었다. 따라서 남자의 초라한 분노와 고민은 극에 달했다. 1등의 영예를 K에게 영원히 내줘야 된다는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일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 판단됐던 것이다. 결국 남자는 이 선생을 찾아가 항의하기로 했다. 더 이상 K를 불러들이지 말라고.
학교는 남자의 집에서 10분 거리였다. 남자는 마음을 굳힌 김에 부랴부랴 학교로 향했다.
막바지에 이른 장마 비가 몹시 구지레하게 내리는 밤이다. 보안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으나 자정으로 가는 칠흑 같은 어둠을 물리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남자는 괴기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에 혹간 몸을 떨며 걷는다.
남자는 긴 꼬리 같은 그림자를 이끌고, 평소 개구멍이라 불리던 학교 후문 옆 사철나무 사이를 통해 안으로 들어선다.
남자는 이 선생을 만난다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일었으므로, 진저리를 혹간 친다.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약간 든다. 또한, 무어라 말을 꺼내 놓아야 할까 사뭇 조심스럽다.
남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구차하고, 몹시 측은해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기도 했으므로,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발길을 돌릴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남자의 몸과 마음은 집을 나설 때의 격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비를 맞은 탓이라 스스로 위로한다.
숙직실 불빛이 한 뼘쯤 열려진 창문을 통해 밖으로 오롯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내는 무척 조용하다. 늦은 시간이었던 만큼 K는 이미 집으로 돌아간 듯 했고, 이 선생은 독서라도 하는 듯 낙숫물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린다.
잠시 후, 문 앞에 멈춰 섰을 때, 남자가 잠시 망설인다. 벌건 대낮을 두고 늦은 이 시간에 찾아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미 결심이 굳어져 있다. 그래서 남자는 빗물에 흠뻑 젖은 옷깃을 여미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남자가 숙직실 출입문을 두드리려 할 때였다. 방안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남자는 그 소리가 신음 소리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무슨 일이지? 남자는 멈칫하며 귀를 기울였고, 기묘한 기분에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문 쪽으로 숨을 죽인 채 다가간다. 수술실의 메스같이 날카로운 호기심의 발동이다.
남자가 발돋음을 한다. 열려진 창문은 커튼이 내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헛...!”
남자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큰 소리를 지른다. K와 이 선생이 알몸을 한 채 기묘한 자세로 엉켜져 있었던 것이다.
“누... 누구야?!”
인기척에 놀란 이선생의 번뜩이는 눈과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너, 이 새끼! 다 봤지?”
남자는 그 자리에 꼼짝도 못한 채 꽁꽁 얼어붙는다. 이미 이 선생이 얼굴을 알아 본 이상, 남자는 도망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자리에 생명력 없는 피조물처럼 우뚝 설 수밖에 없다.
이 선생이 흐트러진 옷차림을 한 채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온다. 어둠 속에서 남자를 향해 빛나는 날카로운 눈빛이 섬뜩하다.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죄, 죄송해요. 했고, 이 선생은 망할 짜식...! 하며, 남자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남자는 얼얼한 느낌이 가시기도 전에 뒷덜미가 거칠게 낚아채는 손길에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숙직실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숙직실 한쪽 구석에 K가 있다. 급히 옷을 입느라 단추가 엇갈려 채워져 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쭈그리고 앉아 있다. 어깨가 달막거린다. 남자는 K에게 조소를 날리고 싶었으나 온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K는 울고 있었고, 남자는 사위스러움에 떨고 있다.
“넌 불행히도 결코 봐서는 안 될 것을 봤어.”
“선생님, 전 단지...”
“그리고 넌, 오늘 밤 학교에 들어 와 기물을 갖고 나가려다가 내게 들켜 버린 것이고...”
“네엣...?!”
“넌, 내 말 한 마디면, 곧 바로 퇴학 될 걸..?. 아마 일주일 후쯤엔 소년원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고... 후후후...”
이 선생이 웃는다. 남자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비열한 느낌의 웃음이다. 그래서 남자는 배부른 고양이에게 잡혀 놀림을 받고 있는 쥐처럼 떤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남자가 열려진 창틈으로 본 것은 사제지간에 벌이는 추악하기 그지없는 행위였다. 그 것도 여태껏 상상도 못해 봤던, 역겨운 동성애의 변태적 행위였던 것이다. 따라서 남자는 그것을 봤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격에 겨워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상적 성 윤리가 무너진 그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학교에 몰래 침입해 기물을 훔치려다 붙잡힌 절도범으로 전락해 있었다.
순간, K가 울음을 터트린다. 출입문을 거칠게 열더니 빗속으로 뛰쳐나간다.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으리라.
“바보 같은 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 K를 뒤쫓아 밖으로 나갔던 이 선생이, 다시 숙직실 안으로 들어서며 섬뜩한 시선을 남자에게 던진다.
“겁나니...?”
“용서해 주세요.”
“뭘...? 뭘, 용서하란 거지? 네가 뭘 잘못했기에... 응?”
“저, 그 게...”
남자가 말을 더듬거리며, 이 선생을 흘끔 쳐다본다. 이선생의 얼굴이 조금 전과는 다르다. 환한 미소로 뒤덮여 있다. 평소와 변함없는. 아니 더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러나 남자는 그 미소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느껴진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 하지만 절대 차갑지만은 않은 미소였다.
이선생의 입술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염려 마, 아깐 그냥 해본 소리니까. 넌 오늘 밤 아무것도 본 것이 없어... 단지 악몽을 꾸고 있을 뿐이거든. 안 그래?”
“고맙습니다.”
“후후후... 고맙긴... 아직은 일러...”
“이르다니요?”
“옷 벗어... 비에 흠뻑 젖어 떨고 있잖아?”
“네...?”
“이제 너 역시, 나와 같은 배를 타는 거야. K처럼. 흐흐흐...”
남자에겐 길고도 끔찍한 밤이었다. 그날 밤 변태적 성도착증에 빠진 이 선생에게서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았다. 남자는 그의 품에 안겨 창문 틈으로 어뜩 보았던 광경을 공포에 떨며 직접 체험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어이없이 도둑으로 몰릴 게 뻔했기 때문에, 남자에겐 선택의 여지란 있을 수 없었다.
비가 그치고 먼동이 터 올 무렵, 남자는 이 선생의 부드러운 손길에 초라하게 지쳐 있었다. 따라서 남자는, 간밤에 K와 이선생과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감히 말할 수 없는 그의 부로(俘虜)가 되어 있었다.
남자는 급히 처참한 곡두를 급히 떨친다. 이 선생이 잠에서 깨어나 몸을 약간 뒤척였기 때문이다.
“절 아직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 선생이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눈을 깜박인다. 남자를 알아보겠다는 눈치였다.
“여전하시네요. 하지만, 제물로는 그날 밤 숙직실을 뛰쳐나가 저수지에 투신자살한 K나, 여태껏 악몽에 시달려 온 바보 같은 저로 충분했습니다. 선생님과 차를 같이 타고 있었던 반장이 죽었다는 사실은 물론 알고 계시겠죠?”
이 선생이 반장의 죽음을 알고 있지 않은 듯 약간 놀라더니 동그랗게 뜬 눈을 슬며시 감는다.
“당신은 쾌락에 겨워 신음 소릴 내뱉었을 진 몰라도, 내겐 끔찍한 오욕의 시간이었죠. 피가 거꾸로 흐를... 그 일이 있은 후, 전 모든 뇌세포가 성장을 멈췄지요. 난해한 작업 끝에 치유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고... 그때 그 충격으로, 전 서른셋의 나이가 되도록 여태껏 결혼을 할 수가 없었죠.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해야 할 성을 가장 더러운 것이라 치부하게 된 거죠. 그것도 가장 존경해야 될 스승의 역겨운 짓거리로 인해...”
이 선생이 경련처럼 몸을 떤다. 감긴 눈 아래가 반짝인다. 눈물이었다. 업과에 대한 자성의 눈물이리라.
반장이 한줌의 재로 변해 흐르는 강물에 뿌려진 것은, 남자가 S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남자는 그 이후 이 선생이 있는 S병원엔 얼씬하지 않았다. 겉잡을 수 없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오열하는 반장의 부모와 친구들의 눈물에, 남자의 감정은 몹시 격앙되 있었다. 그러한 심정으로 이 선생을 만나게 된다면,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짓밟아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일주일 만에 S병원을 찾았다. 모든 감정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도 찾지 않는 그의 병상이 애처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남자가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섰을 땐, 착잡한 심정만큼 어둠은 세상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자동차의 물결을 따라 늘어선 네온사인이 현란하게 반짝거린다. 환락가였다.
남자는 또 다른 변조된 성문화와 그릇된 윤리관을 만들어 내고, 또한 그렇게 되기를 부추기는 것 같아 몹시 서글프다. 그래서 아랫입술을 깨문다.
남자가 병원으로 진입하기 위해 우회전하려 할 때였다. 전조등 불빛에 급히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여자의 모습이 어뜩 보였다. 급히 차를 세우고, 여자를 큰 소리로 부른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종종걸음으로 바삐 오가는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간다.
남자는 잘못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황망히 차를 몰고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뒤쪽에서 앰뷸런스가 사이렌 소리를 요란스레 울려왔기 때문이다.
남자가 병원에 들어섰을 때였다. 누군가 어깨를 툭 친다.
“어머, 오셨어요?”
“아, 아주머니...”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요?”
“그런 게 아니라, 제 꼴이 우습게 느껴져서요.”
“우습게 느껴지다 뇨?”
남자는 대답 대신 그냥 미소 짓는다. 아주머니가 괴이하다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따라 웃는다. 그래서 남자는 큰 소리로 웃을 번했다.
남자는 고작 3층을 오르는데 굳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는 둔팍하게 게으른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이기의 노예로 전락해 가는 초라한 인간이 되어진 느낌을 차마 지울 수 없어 씁쓸하다. 허나, 그 까닭을 알지 못하는 그녀 역시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남자는 어뜩 무한한 표현 방법 중 하나가 소리 없이 짖는 미소라는 것을 발견한다. 행복한 마음, 어색한 마음, 무언가 이루어 놓고 흡족해 하는 마음에서부터 조소까지, 무한정한 그 표현 범위에 잠시 놀라며, 짧은 순간에도 슬프고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의 의미와 잠시 견주어 비교 분석해 본다.
“저녁 식사를 하고 오시는가 보죠?”
“네. 맞아요. 저 역시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두 번째 만나는 사이였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듯하다. 허물없는 아주머니의 미소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301호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설 때였다.
“악...!!”
앞서 병실로 들어서던 아주머니가, 창문 유리가 깨지듯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왜 그러시죠?”
“저, 저기...”
남자 병실로 들어선다.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이 선생이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 있다.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선혈이 바닥에 흥건하다.
“어서, 의사와 간호사를...?!”
“아, 알았어요.”
아주머니가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간다.
남자는 급히 이 선생에게로 뛰어간다. 손목부터 잡는다. 섬칫함이 손끝에 전해졌고, 그의 맥박은 뛰고 있지 않다.
남자가 이선생의 죽음을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릴 무렵, 침대 아래쪽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급히 집어 든다. 브로치였다. 순결과 존엄을 상징한다는 백합 문양의 브로치. 남자는 그 것이 여자의 가슴에 꽂혀 있던 장식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이 왜? 이곳에 떨어져 있어야 하고, 혼자서는 기동하지 못하는 이 선생이 침대에서 어떻게 굴러 떨어졌을까 하는 의구심보다도, 병원 앞 횡단보도에서 만났던 여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신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사라져 간 것은 결코 우연스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남자가 눈을 뜬다. 차가운 물이 욕조를 넘쳐흐르고 있다. 남자는 욕조 속에서 흉물스레 바들거리고 있었다. 그랬으므로 냉기가 심장까지 스민다. 그 것은 냉탕 속에 들어 있어 체온을 급격히 빼앗겼기 때문이 아니라 무잡하게 스쳐지나 간 곡두에서 깨어난 일시적 해방감, 또는 그 허탈감에서 오는 오한이었다.
남자는 욕실을 빠져 나와 주방으로 향한다. 오한을 녹여 줄 진한 한잔의 커피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따르릉 따르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달콤한 헤이즐넛 향에 마음이 다소 안정되어 갈 무렵이다. 누구지? 남자는 습관적으로 거실 벽 상단의 시계를 흘끔 바라본다.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다.
남자가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전화를 걸어온 것은 여자였다. 남자의 아파트 앞에 와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트레이닝복을 대충 걸치고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간다.
밖은 언제부터인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왠지 오늘 밤이 18년 전 그 날과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여자는 서슬하게 내리는 가을비 쯤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놀이터 벤치에 오롯이 앉아 있다. 분홍색 엷은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이미 흠뻑 젖어 떨고 있다. 남자를 발견하고 애잔한 눈빛을 던져 온다.
남자가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어 어깨에 거쳐준다.
“가을비는 몸에 해로워요. 너무 차갑거든요.”
“제 모습이 추해 보이나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다만 몹시 추워 보일 따름이에요.”
여자는 그녀의 말처럼 몹시 초라한 모습이다. 하지만 남자는 짐짓 고개를 저었다.
“술을 마셨어요. 밤새... 그것도 많이... 취하고 싶었어요. 이 밤이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랬을 것 같군요.”
“어젯밤 S병원에 갔었어요.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사고가 나던 날, 상담실로 반장이 절 찾아왔었어요. 죽고 싶다면서...”
“아...!”
순간, 남자가 휘청거린다. 지난날, 비참했던 자신의 모습이 스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할 말도... 그렇다고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 선생님이 상담실로 뛰어 들어 와 나와 상담 중인 반장 끌고 나갔지만, 난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죠. 난,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어요. 그저 어처구니없어 할 따름이었어요. 이 선생님의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진실들은, 반장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여자의 어깨가 흔들린다.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지만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그때 난, 지난봄에 결혼하기로 되 있었던 약혼자의 죽음을 떠올렸어요.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인 사건이었죠. 알고 보니 가해 운전자는 그의 대학 동기였고, 동성애자였어요. 저의 약혼자와는 그렇고 그런 사이... 저와 결혼하려던 그에게서 배신감을 느끼고 살해한 것이었죠.”
남자는 여자의 턱에 방울져 떨어지는 것이 빗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젯밤...”
남자가 급히 말을 막는다.
“그만해요. 전 조금 전 커피를 마시려다가 나왔어요. 들어가 커피 함께 마시지 않으실래요?”
“커피...?”
“네... 그리고 브로치는 제가 가지고 있어요. 교무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다행히 제가 주웠어요.
“교무실...? 하지만 전...!”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여자의 벤치에서 일어나 남자의 가슴으로 안겨든다. 갑작스런 일에 남자가 약간 움찔한다. 술 냄새 때문도 있었으나 난생 처음 맡아보는 진한 여인의 향기 때문이다. 살갗을 통해 심장까지 따스하게 스며오는 타인의 체온을 남자는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여자가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더니 울음을 터트린다.
남자가 얼굴이 붉힌다.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무슨 말이던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울지 말아요. 아무리 예쁜 숙녀라 해도, 그렇게 울면 추해 보여요. 당신은 단지 내가 꿨어야 할 악몽을 대신 꿨을 따름이에요.”
남자가 여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초연한 척 애를 쓴다.
하지만 남자는 떨고 있다. 뇌리 속을 헤엄치고 있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이선생의 곡두가 심장을 거칠게 치받고 있었고, 여인의 애처로운 눈물이나 진한 향기, 또는 심장까지 전해지는 이성의 따스한 체온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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