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작품]/***** 좋은 수필

오두막집 추억 / 윤병화

소설가 구경욱 2009. 2. 20. 23:46

 

 

 

오두막집 추억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집은, 아주 작고 나지막한 오두막집이었다. 산 밑의 첫 집으로 위치한 그 집 - 큰 바위 너덜이 있고, 뒤뜰로 참나무 커다란 뿌리가 뻗어 내려온 집이었다. 그리하여, 가을이면 상수리 열매가 뜰 안으로 누렇게 떨어져 내리던 집! 다람쥐가 장독대에 와 노는 그런 집이었다.

 오래 전 할아버지께서 지으시고, 아버지께서 덧짖기도 했던 그 집 - 초가삼간 그 집에서 여섯 식구 우리 모두는 살았었다. 사랑방은 할아버지가 쓰시고, 윗방은 곡식 가마니들이 쌓여 있었던 그 집. 그러나 봄이면 뒷산 묘 둥지 옆에 할미꽃이 피고, 들 건너 앞산에 진달래가 마주 보고 웃어주는 집이었다. 그럴 제면 어김없이 뒷산엔 꾀꼬리가 날아들고, 앞산에서 뻐꾸기가 진종일 울어대는 마을이었다.

  집 저만치엔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자그마한 개울들이 조잘거리고, 개똥벌래 깜박이던 밤이 되면 별빛이 밤새 쏟아져 내리던 집! 박꽃이 지붕 위에 하얗게 피어나는 집이었다.

  뒷산에 올라가 가랑잎 깔고 미끄럼 타면, 이내 눈 속에 갇히던  집. 군불 지피던 사랑방 아궁이 앞에 붙어 앉아 할아버지 이야기 듣던 그 시절 - 쌓인 눈에 못 이겨 ‘딱 - 딱 -’ 솔가지 부러지던 소리가 들려오는 마을 이었다.

  우리 집과 아랫집은 담이 없이 지냈다. 여름엔 일부 노란 외꽃이 피는 울이 쳐지기도 했지만, 아랫집의 아랫집까지도 한 우물을 먹고 사는 집들이었다. 아랫집은 오동나무집이라 했는데, 딸들이 많아 ‘오동나무집 딸들’이란 말을 했었다. 아랫집엔 또 동년배인 친구 녀석도 있었다. 막아서는 것 없이 곧장 다가갈 수 있는 곳에 그 녀석의 방이 있었다.

  그 집 뜰에는 말과 같이 두 그루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시집보낼 딸들을 생각해 그 집 아저씨는 나무를 심으셨던 듯 했다. 잠시 목수 노릇도 했었던 그 분 - 순수한 애정에서인지, 돈 을 아끼려는 뜻에서인지 오동나무를 길러 직접 딸들에게 장롱을 만들어 주셨던 분이었다. 동네에서 가끔은 구두쇠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딸들 중 하나가 아버지가 짠 농은 촌스럽다며 가지고 가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린 후론, 그 장롱 만드는 일을 포기했던 것 같던 그 아저씨......

  아무튼, 나는 그 오동나무 푸르른 음영이 좋았다. 햇살 맑은 날이면, 커다란 초록빛 양산을 펼친 듯한 그 그늘 - 멍석이 깔린 그 잎새 널따란 푸른 그늘은 운치가 있었고, 여름 낮 보내기엔 그만이었다. 미끄러운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 매미들을 잡기도 했던 그 자리를 나는 무척이나 가까이 하며 자랐다.

  가을이면 낟가리가 높다랗게 쌓이던 아랫집 - 처마 밑에 곶감이 주렁주렁 달리고, 명절이면 맛난 음식들을 풍부히 해 먹던, 그리하여 조금은 부러워도 했던 그 집이었다.

  그 아랫집인 샘집은 봄이면 늘 우물가에 매화가 피고, 여름이면 우물가에 살구가 누렇게 떨어져 내리던 집이었다. 자식을 얻지 못해 늘 외롭게 살아가던 그들 부부 - 비가 온 후면, 무르익은 살구를 주워 나에게 한 바가지씩 안겨주던 그들이었다.

  작고 누추하기조차 했던 그 집! 그러나 아직 순진했던 내 기억 속에 추억의 첫 둥지로 안존해 있는 그 오두막. 그 집은 아무리 세월 흘러도 잊히지 않는 내 마음의 영원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윤병화

57년 충북 충주 출생

[현대수필] 추천으로 등단

제1회 웅진문학상 수상

제5회 청주문학상 수상

제8회 삼성생명 문예 콩쿨 입상

제3회 충남 동인지 문학상 수상

저서 -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조약돌 - 향암 수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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