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작품]/***** 좋은 수필

라일락 향기를 따라 / 구인환

소설가 구경욱 2009. 2. 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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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환(丘仁煥.1929.9.16∼  )

  소설가. 문학박사. 호 운당(雲堂). 충남 장항 생. 1954년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196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197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서울여대 교수, 서울대 사범대 교수, 펜클럽 이사, 한국비교문학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어국문학회 회장, 현대소설연구회 회장 등 역임.

  현재 문학과 문학교육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1960년 [문예]에 <동굴 주변>, 1961년 [현대문학]에 <판자집 그늘>이 추천되어 데뷔.

  대만 문화훈장(1981), 주요섭문학상(1984), 한국소설문학상(1987), 한글문학상(1989) 최우수예술가상(1990), 서울시문화상(1991), 월탄문학상(1992), 예술문화대상(1994) 국민훈장 동백장(1995) 순수문학대상(1996)

 

 

 

라일락 향기를 따라 / 구인환

 

라일락 향기가 가득히 번지는 계절이다. 노란 민들레가 방긋 웃는 길목에 하얀 라일락이 짙은 연분홍색의 철쭉꽃과 연두색의 신록이 어울려 가는 봄을 장식하고 있다. 하얗거나 보라색의 꽃망울에서 풍겨 오는 향기가 짙은 연두색에서 푸름으로 변해 가는 산과 가로수를 더욱 생기있게 감싸 창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계절의 변동으로 급히 피었다가 제대로 환하게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린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과는 달리 라일락과 철쭉꽃은 제대로 망울 짓고 꽃이 활짝 피어 양춘가절을 수놓고 있다. 활짝 핀 개나리와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를 굽어보고 고고하게 피어 있어야 할 목련이 계절에 쫓겨 급히 피었다가 꽃을 자랑하지도 못하고 꽃잎이 보기 흉하게 떨어져버려 봄꽃의 수난이 안타깝다. 그 모진 겨울의 추위에도 실낱 같은 줄기로 견뎌내는 인내와 태동의 힘이 이제 자연스럽게 싹이 트고 꽃이 피는 제 계절을 맞이한 것이다.

원래 봄의 꽃은 향기가 없다. 강산에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와 개나리는 물론이요 수줍게 피는 명자꽃이나 민들레도 향기가 없어 정이 없는 겉치레 꽃이 되어 있다. 꿀이 없는 겉만 훤한 꽃이니 벌이 날아 올리가 없다. 라일락에 와서야 비로소 짙은 향기가 그윽하게 풍겨 강한 유혹을 받고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향기가 없는 꽃은 조화와 다를 바 없고, 계절에 쫓겨 제대로 펴 보지 못하고는 스러지는 꽃은 생명력이 없다. 라일락의 짙은 향기는 강한 생명력으로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창조의 향연을 열게 된다.

인간사나 삶의 여울도 이런 꽃과 그 궤가 다르지않다. 괜히 남을 좇아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은 말과 행동이 앞 설뿐 속이 꽉 찬 지적 축적으로 사리를 가리고 의젓하지 못하다. 권력이나 행정의 힘만 내세우고 스스로 편의 이익을 쫓는 경우나 목전의 이익을 위하여 소중한 것을 거침없이 버리는 행동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무에서 대기업을 일구어 내고 한국 경제의 커다란 기둥을 이루면서도 오래된 장갑이나 가방을 그대로 쓴 정회장의 삶은 바로 속이 찬 삶의 한 모습이요, 회를 거듭할 수록 알차고 다듬어져 가는 '동백꽃 주꾸미 축제'가 관광상품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도 한 좋은 예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억지를 쓰고 남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 잘 내려오면서 살고 있는 질서나 관습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어느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겉만 번지르르한 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만이 아니고 개인이나 집단이 상식을 버리고 결과만을 중요시하여 비틀거리는 허울 좋은 형상에 실망하다 못해 외면하여 무관심에 기운 현상을 볼 수 있다. 지자제 선거 투표율이 겨우 27 프로인 것이 바로 그런 현상이다. 여기에 라일락의 향기를 따라서 새로운 생기를 돋아주는 새로운 전기가 절실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덕목과 관습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버려서는 안된다. '돈이라면 중국 사람은 마누라를 버리고 유태인은 부모를 버리는데 한국 사람은 저승까지 쫓아간다'는 말이나올 정도로 우리는 전부는 아니라도 돈을 최고의 덕목으로 아는 것은 물론 사람의 목숨까지 가벼이 여기는 현상이 문제이다.

우리는 올해의 봄꽃과 같이 자나치게 쫓겨 속 빈 강정이 돼서는 안 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전력을 다하여 속이 꽉 차고 힘이 넘치는 삶, 제대로 피는 철쭉이나 작약,라일락과 같이 생명 있고 보람 찬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 다가오는 일을 성실하게 다하고 꿈을 지니고 내일을 오늘을 가다듬는 삶이 바로 라일락의 향기를 따라 자기를 키우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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