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령(猪嶺 : 돝고개) - 곶감재
-. 저령(猪嶺)에 관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의 대동여지도, 충청읍지 등을 보면 그렇게 표기되 있다.
-. 조선시대의 문헌 舒川邑誌 등을 보면 ... ... 남문으로부터 동헌의 북쪽으로 향하여 판산(板山), 문장(文章), 시방동(時方洞), 두산동(豆山洞)의 사면을 지나 저령(猪嶺) 홍산경계까지 41리, 읍치로부터 홍산읍까지 50리 대로이고... ... 북쪽으로 비인경계까지 부소산(扶蘇山 - 현재의 원통산 일원)이 40리 소로이다. 라고 되어 있다.
-. 원래 돝고개라 하였는데 한문 표기를 하면서 돝저(猪=돼지저)에 재령(嶺)으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 현재 곶감재라 부르는데 이는 곶감장사가 산적을 만나 살해 된 데서 유래하였으나 정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 알 수가 없다.
-. 6,25 동란 때 홍산 오일장이 돝고개 아래로 옮겨 와 열렸는데 미 공군기의 폭격을 받았지만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 서천군과 부여군의 군계에 있다.
▼ 붉은 선이 돝고갯길. 녹색 선은 양지편에서 진등으로 가던 고갯길. 하늘색 원이 6,25 때 홍산 오일장이 일시적으로 옮겨 와 섰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1481~1530)
▼대동여지도 (1861년)
▼충청읍지 (1871년)
▼ 서천 홍산간 611 지방도에서 곶감재(猪嶺 : 돝고개)로 향하는 입구
▼ 곶감재 초입에서 바라 본 검방모탱이
▼ 곶감재 오르는 길 - 십 수년 전, 강릉 유씨 가족묘역이 생기면서 도로가 확장 되었다.
▼ 한실쪽에서 바라본 곶감재 정상부
▼ 정상 부근 홍산 내리막길 풍경 - 10미터 아래부터 시멘트로 포장 돼 있다.
▼ 곶감재 너머 내동 소류지 쪽 풍경
▼ 엿장수가 살던 집 뒷쪽으로 가는 길 - 이곳부터는 옛 모습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당나라의 백제 침공 시(660년, 의자왕 20년) 나당 연합군 대총관 소정방의 13만 대군이 이곳을 밟고 지났으리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오는 곳이다.
▼ 인적이 드문 탓에 이렇 듯 곳곳에 길이 막혀 있다.
▼홍산쪽에서 바라본 곶감재 갈림길 - 좌측이 곶감재 정상으로, 우측이 양지편 뒷산으로 가는 길이다.
▼ 엿장수가 살던 집 옆에 있는 파괴된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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