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천둥이 / 김 용 우
천둥이가 있었다. 4년 전 모습 그대로 녀석이 있었다.
조금 전의 우울하고 을씨년스러웠던 느낌들이 한순간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은 자세, 쫑긋하게 세운 두 귀, 쳐들지도 수그리지도 않은 곧바른 머리 모양으로 여전히 먼 산을 응시 한 채다. 그렇다면 정씨도 아직 이 곳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반가운 마음에 동식은 잰걸음으로 내려가며 소리친다.
“천둥아! 야! 반갑다. 너 아직 있었구나! 응?”
4년이나 지났지만 마치 어제 저녁 때 본 듯한 모습이다.
T문화관에서 들어오라는 통지가 왔을 때 반가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 4년 전 그곳에서 보냈던 석 달간의 생활을 떠올려 보았었다. 맑은 물이 콸콸 소리 내며 흐르는 계류와 푸른 호수, 앞산 뒷산에서 울어대던 새들과 다투어 피어나던 꽃들, 특히 매화꽃잎을 따다 녹차에 띄워 마시던 매향 차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향기 그윽한 추억이다. 그런데 그곳의 주인마님이었던 P선생은 이제 세상에 없다.
“그대들의 창작실에서는 글이 익어가고 내 장독대에서는 된장이며 간장 고추장이 익어가고, 텃밭에서는 채소가 잘 자라니, 내야말로 즐겁고 행복하다.”
장독대를 손질하거나 텃밭에서 채소를 솎아 창작생들의 식탁을 챙기며 자신의 품속으로 들어와 글을 쓰는 후배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했던 P선생은 작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T문화관을 만들어 글을 쓰는 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자유스럽고 쾌적한 창작의 공간을 제공해 주었던 P선생, 그녀의 부재는 T문화관을 텅 빈 공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에 동식은 갑자기 그곳이 낯설다는 느낌과 함께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저만큼 달아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천둥이는 있을 것이다. 그래, 천둥이! 녀석은 알래스카의 말라뮤트종이 틀림없다. 그것은 며칠 전 TV채널을 돌리다가 개 썰매 경주를 보게 되면서 확인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설원의 혹한 속을 달리는 개들이 한결같이 낯설지가 않았는데 그것들은 모두 천둥이었다. 그래 가자! 천둥이라도 있을 거고, 그리고 영어발음 분명한 늙은 홀아비 정씨도 있을 것이다.
“생일 축하해요!”
동식의 생일을 어찌 알고, 문화관식당에 몸소 내려와 토란줄기가 들어있는 진주식 갈비탕을 끓여주던 어머니 같은 대선배, 바로 P선생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고향집을 찾은 기분이 이럴까, 4년 만에 찾은 T문화관 앞에 선 동식의 첫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텃밭과 장독대에 내리는 3월 초순 따듯한 오후의 햇살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곳에만 아직 겨울이 웅숭그린 채 머물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배정받은 방에 대충 짐을 풀어놓고 동식은 먼저 천둥이를 찾아 나서야 했다. 천둥이 조차 없다면 상당기간을 두고 이곳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시달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천둥이도 동식을 알아보는지, 잘 생긴 자신의 두 귀를 잡고 머리통을 흔들어대는데도 그저 묵묵히 동식이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다. 나이가 더 든 탓인지, 그 푸르고 맑은 눈에 한결 더 깊이가 느껴진다.
“이 녀석, 여전하구나! 야 이놈아! 넌 암만 그래도 개다. 인간인 내가 이렇게 반가워하면 감격해서 짖어대던가, 아니면 펄쩍거리고 뛰며 꼬리를 흔들고 그래야하는 거 아니냐? 니가 아무리 알래스카의 설원을 달리던 조상을 둔 말라뮤트라해도 말이다. 건방진 놈 같으니!”
“난 누구라고? 박선생이 오셨구먼! 글 빚이 또 생긴 거요?”
정씨다. 나이 칠십을 넘긴, 한번도 장가를 들어 본 적이 없는“전설의 쌩총각”이라고 자신을 자랑하는 그다. 그래서 자신이 죽어 화장을 하면 석가모니보다 더 많은 사리가 나올 것이라고 허튼소리도 하는 사람이다. 서울의 한 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 고향인 평양에 돌아갔다가 삼팔선이 막히고, 인민군으로 끌려나와 전쟁 중에 포로가 되었다. 열여덟 살 적의 일이었고, 북으로 올라가지 않고 남쪽에 남은 반공포로다. 그러니까 그의 정확한 나이는 일흔 일곱 살이 된다. 천둥이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그도 여전히 깡마른 체구에 검은 얼굴, 덥수룩한 수염의 4년 전 모습 그대로다. 목소리도 전과 다름없이 걸걸하다.
“오랜만이오. 정씨는 늙지도 않고 여전하네. 공기 좋은 곳에서 사니까 그런 모양이지요?”
객지 벗은 10년차도 괜찮다고, 그들은 4년 전부터 말을 터놓고 지내던 사이였다. 천둥이의 귀를 잡고 흔들던 손으로 동식이 다가온 정씨와 악수를 나눈다. 그의 손은 여전히 거칠고 딱딱하다.
T문화관에 들어와 글을 쓰는 작가들은 거의 아침저녁으로 호수를 오가는 산책을 하게 된다. 동식도 산책길에서 천둥이와 그 주인인 정씨를 사귀었다. 그런데 그 만남이 아주 특이했다.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함께 산책을 나갔던 사람들 중 여자 시인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에 약간의 찰과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마침 정씨집 앞 개울가 정자에 앉아 쉬면서 무릎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빨강약이나 옥도정끼를 발라야 하는데…”라며 걱정을 했었다. 글을 쓰겠다고 T문화관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그런 약품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T문화관에 의무실이나 양호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누군가 약을 사러 시내에 나가야만 했다. 그 때 그가 나타났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빨강약은 뭐고, 옥도정끼는 또 뭐요? 머큐롬, 그리고 요오드 틴크, 알았소?”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는 머큐롬 약병과 면봉과 밴디지가 들려 있었다. 남의 것을 빌려 입은 것 같은 헐렁한 회색 점퍼와 검은 면바지, 깡마른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 그런 모습의 70객에게서 정확한 영어발음을 듣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 무렵 천둥이를 보았을 때도 개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주인까지도 정확한 영어발음으로 놀라게 했던 것이다.
동식은 천둥이가 그저 독일산 세퍼트의 잡종이거니 했었다. 커다란 몸에 두상도 둥글둥글했고, 튼실해 보이는 다리와 검정과 흰색이 적당히 배분된 털에서 느끼는 바둑이 같은 정감이 어우러져 그냥 좋았었다. 무엇보다도 녀석의 폼이 재미있었다. 짖지도 않으면서 마냥 먼 산을 보며 아주 심각한 표정인 것이 개 같지 않았는데 그 점을 들어 천둥이에게 시비를 거는 재미가 있었다.
“얌마! 넌 개라고! 알았어? 그러니 개처럼 짖고 꼬리치고 앞발로 땅도 파고 그러란 말이다. 니가 부처냐, 공자냐, 아니면 철학자귀신이라도 들인 거냐?”
그런데 녀석이 한번 동식을 향해 컹컹 소리 내어 짖은 적이 있었다.
그날도 동식은 호수에 다녀오는 산책 중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뒤로 걷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뒤로 걷기에 대한 동식의 해명에 따르면, 뒤로 걷기는 운동량을 배가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다지 내 놓을 것도 없는 자신의 지난 인생흔적들을 지우며 젊은 날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마침 천둥이 집이 내려다보이는 비탈길을 뒷걸음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벌 한 마리가 나타나 동식의 얼굴 주변을 윙윙거리며 금방이라도 한방 쏠 기세였다. 섣부르게 손사래나 쳤다가 한방 쏘이면 큰일이다 싶어 동식은 위기를 느끼며 뒷걸음을 멈추고 말벌을 경계하면서 앞걸음으로 몇 발자국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컹컹! 하고 앞 뒷산을 흔드는 소리로 천둥이가 짖은 것이다. 그야말로 제 이름처럼 천둥치는 소리 같았다.
“야! 짖었어! 너?”
그 바람에 동식은 말벌의 위험도 잊고 걸음을 멈추고 천둥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뒷다리를 접으며 앉더니 먼 산을 응시하는 그 특유의 자세로 돌아간다. 마침 옆 밭에서 일을 하던 정씨도 허리를 펴고 천둥이를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정씨! 쟤가 웬 일로 짖은 거요?”
“글쎄! 뒷걸음으로 가던 사람이 제대로 걸어가니, 그러는 거 아니겠소? 허허! 그 녀석! 사람 하는 일에도 시비를 거네!”
“아니! 제깐놈이 내가 앞으로 걷든 뒤로 걷든 시비할 거 없잖아! 도둑이나 보면 시비를 걸든지 물어뜯든지 할 일이지!”
“그게 아니지. 개도 시비 걸 일을 하고 다니는 자신에 대해서 반성해야지! 북쪽으로 치면 자아비판이란 거이지! 개만 나무라면 되갔소? 오랜만에 천둥치는 소리로 꾸짖은 천둥이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이지!”
“뭐요? 건방진 개새끼에 딱 어울리는 주인이구먼!”
“길디말라우! 개새끼라니, 족보가 있는 양반 개야. 거럼! 그러니 견공이라 부르라우! 이따 저녁 때 술 사들고 와서리 사과하기요.”
천둥이는 크게 두 번 짖었을 뿐, 여전히 바위처럼 앉은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이 오랜만에 소리 내어 짖은 것을 가지고 수다를 떠는 인간들과는 달리 의연하고 묵직한 모습이다.
“술이야 백번 좋지만! 저 건방진 놈에게 족보가 있었단 말이요? 난 잡종인줄 알았는데…”
“기러지 말라요. 엄연한 족보가 있다고, 나도 없는 족보를 가진 양반개인 견공이시라고!”
“견, 공? 술맛 떨어지는 소리 마시오. 족보가 있어봤자 개 족보지! 지가 호랑이여, 사자여! 견공 좋아 하시네.”
동식은 그날 저녁 때 정씨와 정자에 마주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와 천둥이와 인연을 들었다. 그는 천둥이를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살게 되면서 알게 된 고향 사람이, 아들네가 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주고 간 것이라 했다.
“내레 무슨 돈 있어서 족보 있는 견공을 모셔 오갔소?”
“그렇다면 천둥이 놈이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간 옛 주인을 생각하느라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짖지도 않고 말이요?”
“글쎄, 그것까지야 모르지만 아무튼 대단히 점잖고 조용한 개지, 족보 있는 양반 개답게 말이요. 헛 허허!”
“허허! 견공이라!”
두 사람은 소리 내어 웃었다. 개를 가져 올 때 족보까지 받아오긴 했는데 어디에 처박아두었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그날 천둥이의 품종을 확인하는 일은 뒤로 미루어졌었다. 정씨의 말처럼 족보까지 있는 개라면 똥개나 잡종견 부르듯 개새끼라 부르긴 그렇고, 견공이라 불러 주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고 동식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동식이 T문화관을 떠날 때까지 천둥이의 품종을 확인할 수 는 없었다. 정씨는 족보를 찾아내지 못했고, 동식은 게으름을 피우다가 원고 마감이 임박해왔기 때문에 산책도 포기하고 거의 밤잠을 설치는 작업 끝에 겨우 탈고를 했고, 탈고와 더불어 노트북을 들고 도망치듯 T문화관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야 임마! 내가 전에는 너를 몰라보았다. 미안하다. 아직 족보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넌 말라뮤트가 틀림없다.”
동식은 정씨의 손을 놓고 다시 천둥이를 돌아보면서 말한다.
“천둥이 족보는 찾았소?”
“글쎄, 그것이… 박선생 떠나고 나서는 관심 없으니, 그냥 잊고 있었지. 그런데 천둥이가 어떤 개인지 알고 있는 거요?”
“알고말고! 이 놈은 알래스카가 고향이고, 설원을 달리는 썰매 개, 그 중에서도 말라뮤트라는 에스키모 종족이 야생의 늑대를 잡아다가 훈련시키고 사육한 품종이요. 그래서 그 종족의 이름을 따서 말라뮤트종이라고 부르지. 알래스카의 설원을 내달리는 썰매 개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개, 지구력, 힘, 충성심과 친화력 등에서 가장 뛰어난 종이지!”
동식은 그날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기사를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아주 천둥이 박사가 돼서 돌아왔구먼! 그런데 천둥이의 족보도 보지 않고 어떻게 쟤가 그 종이라고 확신하는 거요?”
“그야 눈만 보면 알지요. 저 설원의 푸른빛을 닮은 눈! 우리말로 표현하면 옥색 눈, 뭔가 신비하고 슬픈 설국의 전설을 담고 있는 것만 같은 눈 말이요.”
“소설가 아니랄까 봐 말이 많구먼! 내 열심히 족보를 찾아 낼 테니, 그건 그때 가서 확인하기로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얼마나 있다가 가는 거요?”
“석 달.”
“그거면 글 빚을 갚을 수 있는 게요? 지난번처럼 빚쟁이 야반도주하듯 가지 말고 이번에는 간다는 말이라도 하고 가라요!”
“매화꽃도 피었으니 술도 한잔 해야지?”
“술이야 얼마든지 환영하지, 기분이다. 오늘 내 토종닭 한 마리 잡을 테니, 술은 당신이 들고 오라요. 이따 저녁 때!”
천둥이가 있었고 정씨가 있었다. 반가웠다. 동식은 문화관으로 돌아오면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떠 올린다. 그 경주의 이름은 이디타로드라고 했다. 이디타로드란 알래스카 말로 먼 길을 떠난다는 뜻이란다. 해마다 3월에 열리는 개 썰매 경주, 출발점에서 골인지점까지 자그마치 1,940킬로, 그것도 영하 3,40도의 혹한 속에서 치루는 경기라는 것이다. 거의 2천 킬로를 달리다 보니 시간도 엄청나, 해마다 기록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열흘 이상이 걸렸고, 가장 많이 걸린 시간은 20일이 넘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경주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경주가 바로 이디타로드라고했다. 과연 그럴 것이다. 혹한 속을 개 썰매를 몰고 달리다가 눈밭에서 잠을 자고 다시 달려야 하는, 열여섯 마리의 개와 인간은 어떤 차이도 없어 보였다. 똑같이 설원을 달리는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놈이란 작은 마을에서 출발하여 앵커리지까지의 코스 중에는 커스커크큄이라는 해발 1천 미터의 산을 넘어야 하고, 2백 킬로가 넘는 유콘강의 얼음 위를 달려야 하며, 노튼만의 총빙들을 헤치며 오직 눈밖에 없는 설원 위에서 코스를 찾아가야하는 어려운 경기였다.
디프테리아가 마을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어린이 사망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치료약인 항혈청이 없어서 꼼짝없이 아이들을 다 죽이게 될 처지에 놓였다. 70 년 전 놈이란 작은 마을에 닥친 재앙이었다. 약과 의료진이 있는 앵커리지까지는 아득히 멀고 험한 길이었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어린 생명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앵커리지까지 달려갈 유일한 교통수단은 개 썰매뿐이었다. 용기 있는 젊은이와 노련한 노인과 열여섯 마리의 썰매 견으로 구성된 구조대가 눈보라와 혹한을 뚫고 앵커리지로 떠났다. 성공여부는 차치하고 앵커리지를 향해 개 썰매가 출발을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희망은 현실이 되었다. 한 달여 만에 의료진과 치료약 수송에 성공하여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그것이 이디타로드 경주의 동기가 되었다고 했다.
발에는 버선 같은 신발을 신고 입 주변의 수염에는 더덕더덕 고드름을 매단 채 내달리는 개들, 하루 중 열 시간은 평균이고 특별한 경우 그 이상을 달리기도 했었다. 기온도 상식과는 정반대였다. 기온이 올라 눈이 녹으면 미끄러워서 달리기가 힘들고 얼마 가지도 못해 쉽게 지친다고 했다. 혹한이 도리어 달리기에 좋은 경기라니…! 기온이 올랐다가 내리면 녹았던 눈이 다시 얼어붙으면서 날카롭고 예리한 모습으로 변해 발바닥을 찔린 개들은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뚝이기도 했다. 그런 개는 썰매에서 낙오시키고 썰매는 다시 설원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썰매를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주둥이를 쳐들고 우! 소리 내어 우는 녀석의 푸른 빛 도는 하얀 공막, 그것은 절망이나 외로움, 또는 고통 보다는 머지않아 쫓아가겠다는 시퍼렇게 날선 의지의 빛깔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버려진 녀석은 눈 위에 쪼그리고 앉은 채 발바닥이 낫기를 기다리는 것이었고, 출혈이 멎으면 뒤 따라 오는 경주 썰매를 만나 함께 뛰면서 야영중인 자신의 썰매를 찾아 다시 썰매를 끌고 달리는 것이었다.
동식이 소주 서너 병을 들고 정씨를 찾아 갔을 때는 해가 저문 시각이었다. 3월초순의 저녁 시간은 겨울철에 비해 길어진 듯 하면서도 훌쩍 지나가버리는 허망한 시간이다. 정씨는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동식을 맞아준다.
“이거 영광입네다. 유명한 소설가 선생님을 모시게 돼서리!”
정씨의 방은 커다란 원룸이었다. 방 하나에 주방과 침실과 기타 잡동사니 살림살이를 처박아 두는 공간까지, 홀아비 냄새와 늙은이 냄새가 섞인 묘한 냄새가 났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벽에 붙은 커다란 한반도 지도와 누군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찍은 정씨의 사진이다. 지도에는 붉은 사인펜으로 어떤 지점에 동그랗게 표식이 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그곳은 평양근처의 순천군이란 지명을 가진 곳이다.
정씨가 약속대로 자신이 기른 토종닭 한 마리를 잡아 강원도 특산물인 굵직한 통감자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 놓은 닭볶음탕을 가져왔다.
“저 지도는 뭐요? 사진은 누구고?”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동식은 굳이 확인하듯 정씨에게 물어본다.
“지도는 내 고향을 표시해 둔 거이고, 사진은 6년 전에 금강산에 가서리 형제들을 만난 거지!”
“형제들을 만났군요. 잘했네! 잘했어.”
정씨는 술버릇이 묘했다. 쫓기듯 소주 한 병을 다 마실 때 까지는 단 한마디 말도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술기운이 오르면 천천히 마시면서 평안도 사투리가 심해지는 사람이다.
“소설가 선생, 이걸 보시라요. 천둥이 족보! 그런데 님자레 알지도 못하면서 천둥이보고 뭐라 했소? 말라뮤트? 그거이 뭐 말라비틀어진 소리가? 기딴 소리 걷어 치고 이거나 읽어 보시라요.”
동식은 정씨가 건네주는 봉투를 받았다. 편지봉투 보다 조금 커 보이는 봉투다. 앞면에 정씨의 글씨로 보이는‘천둥이 족보’라 쓴 볼펜 글씨가 보인다. 동식은 돋보기를 꺼내 쓰며 전깃불 아래로 옮겨 앉는다.
“이보시라요! 동무, 동무레 불만이 많구만! 자아비판 좀 하시라요! 천둥이는 족보가 있는데 님자는 족보가 없어서리 그랍네까?”
동식도 북한 사투리로 정씨의 말을 받아낸다.
“기딴 거 없어도 내레 자유스럽게 사는데 불편 없어! 걸치적거릴까 겁나서리 장가도 안 가고 살아온 사람한테 족보 따위가 뭐 필요 하갔시오?”
그런데 살펴 본 천둥이의 족보는 간단했다. 천둥이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말라뮤트의 교배종 1세라는 것을 확인한다는 짤막한 문구와 어린 천둥이 사진이 붙어있을 뿐이다. 그 아비와 어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일체 기록이 없다. 그리고 이를 확인해 준 사람도 강원도종견협회장이라는 직명만 있을 뿐 실제 확인자의 이름은 없다. 쉽게 말하면 족보라기보다는 품종확인서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의 공신력에 대해서도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문서였다.
“아니! 천둥이가?”
시베리안 허스키는 또 뭐란 말인가. 동식은 텔레비전에서 잠깐 보았던 이디타로드 경주 장면을 떠 올려 본다. 하지만 그런 품종의 개에 대해서는 들은 기억이 없다. 오로지 검은 털과 흰털이 잘 섞인 모습과 알래스카의 빙벽을 닮은 푸른 눈을 가진 개의 모습만 떠올랐고 그것이 모두 말라뮤트종의 개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건 족보가 아니라! 천둥이가 잡종 개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확인서야! 뭘 알고 말해야지! 족보는 무슨? 족보라면 말이야, 즤 애비가 누구이고 에미가 누구인가를 기록해야 되는 거라구! 이건 아니야. 아니라구! 그러니 녀석은 똥개 잡종에 불과해! 견공은 무슨…!”
“그러게 함부로 말라비틀어진 소리하지 말라 그거이 아니갔어. 양반 갠줄 알았더니! 견공이 아니로다!”
거나하게 취해서 술판이 끝났다. 네 병의 소주를 다 마시는 동안 그들은 오로지 천둥이의 혈통에 관한 이야기로 입씨름을 벌였다. 정씨는 천둥이가 순종이 아니고 잡종이란 사실에 배신당한 느낌이 든다는 말까지 했다. 동식도 마찬가지였다. 이디티로드에서 눈 덮인 산과 강변을 달리던 그 훌륭한 개들이 모두 천둥이의 형제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이 잡종이라는 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식이 돌아가기 위해서 밖으로 나오니 어둠 속에 희끗희끗 철 늦은 눈발이 보인다. 낮부터 두터운 구름들이 낮게 떠 다녔었다.
“뭐야! 삼월 초순인데 눈이 내리다니!”
“여긴 4월에도 눈이 오는 곳이야! 서울하고는 다르다구! 많이 내릴 것 같구만! 잘 올라 가자요!”
마당으로 나오자 저만큼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은 채 눈을 맞으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천둥이의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의젓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왠지 역겹다. 동식이 휘청거리며 천둥이 곁으로 다가간다.
“야! 천둥아! 넌 누구냐? 넌 뭐냔 말이다? 말라뮤트와 시베리안 허스키의 교배종 1세! 그러니까 잡종이잖아? 그런데, 그런데 무슨 폼만 그렇게 잡는 거냐? 니깐 놈이 그래봤자 알래스카의 설원을 보기나 했겠냐? 못난 놈아! 난 그것도 모르고 널 그 훌륭한 말라뮤트로 알았잖아! 짜식 같으니라구…”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보니 세상이 온통 눈 속에 파묻혀 있다. 그러니까 간밤 정씨 집을 나설 때부터 내리던 눈이 밤새 계속 내린 모양이고 아직도 끊이지 않고 내리고 있다. 동식은 식사와 아침산책을 위해 방을 나서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적어도 종아리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야했기 때문이다. 라면을 끓여먹기로 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에 가면 간단한 주방기기와 전자렌지가 있다.
라면을 먹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다. 강원도 영서지방에는 눈이 더 올 것이라면서 설화방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미 영서지방에 내린 강설량은 평균 30센티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잘 됐다. 산책이고 뭐고 다 그만 두고 푹 파묻혀서 글이나 쓰자. 차라리 잘 되었어! 펑펑 내려서 꼴불견들 다 묻혀버려라!”
동식은 정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푹 파묻혀서 오로지 글만 쓰게 된 것이 너무도 좋았다. 면도도 하지 않은 채 파묻혀서 열심히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겼다. 오직 하루에 두 번 식당을 오가는 것 말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젊은 날의 열정적 글쓰기로 돌아간 것 같아 젊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1주일을 보내고 났을 때였다. 봄눈은 쌓여도 쉽게 녹기 마련이다. 찻길이 열리고 창밖 신작로 위로 버스가 오가는 소리도 들리더니, 오후에 뜻밖에도 정씨가 찾아왔다. 그는 왼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아! 정씨. 웬 일이오? 팔뚝은 왜?”
공동방으로 그를 안내하고 마주 앉으며 동식이 묻는다.
“천둥이가 사라졌소.”
“천둥이가 사라지다니? 무슨 소리요?”
“그날 밤! 녀석이 날 밀치고 달아났소. 당신이 너무 모욕적인 말을 많이 한 것 같아! 그래서 달아난 거야!”
“저런! 그러니까 천둥이 녀석이 정씨를 밀어서 넘어뜨리고 줄을 끊고 눈보라 속으로 달아났다. 그 말이요? 잡종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 분해서 눈보라 속으로 뛰쳐나갔다? 헛! 허허허! 그놈이 드디어 제정신이 든 모양이군! 비록 잡종인긴 해도 말이오?”
“그렇다니까!”
“그렇다 치고, 정씨 팔은 뭐요?”
“넘어지면서 짚은 것이 근육이 놀라고 인대가 조금 늘어났다더군! 늙은이 뼈 부러지면 잘 안 붙는데 다행이지!”
“그런데 천둥이가 그러니까, 1주일이나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면 그야말로 잡종 똥개지! 돌아오면 내 당장 잡아다가 보신탕집 가마솥에 쳐 넣을 거요. 그 정도로 모욕을 당했으면 가다가 죽어도 알래스카를 찾아 가야지! 그래야 천둥이지!”
정씨의 이야기로는, 그날 밤 동식이 돌아가고 난 뒤에 천둥이가 평소 안 내던 소리를 내며 여러 번 울더란다. 그래서 나가 보았더니 고개를 하늘로 향해 쳐들고 늑대처럼 우! 하고 우는데,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푸른 인광을 쏘아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풀쩍 정씨를 향해 뛰어 오르면서 힘없이 줄이 끊어지고 정씨를 넘어뜨린 채 눈보라치는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내달려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어때? 멋진 놈이지? 당신 잡종이란 말 취소하라고 왔수다래! 놈은 역시 견공이었수다.”
“아니, 그럼 정씨는 천둥이가 사라진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요?”
“당연하지! 그놈은 나보다 훌륭해! 비록 족보는 아니지만 출생증명서를 가진 개답게 행동했어! 거럼! 지놈이 그러고 앉아서 먼 산만 바라보다가 속절없이 늙어 죽으면 끝이잖아! 늙어 죽으면 다행이지만 어느 날 내가 맘이 변해서 개장수에게 팔기라도 하면 보신탕집으로 끌려가 가마솥으로 들어갈 거 아니갔어? 나보다 훌륭한 개야! 거럼! 잡종 개란 말 취소하시라요. 내레 분명히 말했수다!”
정씨가 돌아가고 동식은 멍하니 앉아 그의 말을 되새김질 해 본다. 줄을 끊고 달아나기 전 천둥이의 눈빛, 푸른 인광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과연 천둥이는 정씨의 말처럼 자신을 모욕한 말에 분노를 느끼고 알래스카의 설원을 찾아 떠난 것일까, 하긴 사람의 말을 가장 많이 알아듣는 짐승이 바로 개이긴 하다. 그리고 길을 찾아 가는 능력 또한 우수한 동물이다. 수년전 서울로 팔려갔던 진돗개가 1년도 더 지나 진도의 옛 주인을 찾아 온 사건도 있었다. 그러니 천둥이도 알래스카를 찾아 떠났을 수도 있다. 제 조상이 언제 각각 알래스카의 설원을 떠나 남쪽으로 유랑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그 몸속에 깊이깊이 잠재되어 있는 유전자의 힘으로 멀고 아득한 길 , 대륙을 종단하고 바다를 건너는 험한 길을 달리고 달려서 알래스카에 도달할 수도 있는 일이다. 다만 치명적 장애는 남북이 총을 들이대고 맞선 휴전선일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알 수 없는 것은 이 사건을 대하는 정씨의 태도다. 자신에게 부상을 입히고 달아난 개를 칭송하고 나서다니, 아니, 칭송을 넘어 자신보다도 훌륭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무엇이, 어떤 점이 자신보다 훌륭하다는 것일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동식은 오랜만에 산책에 나섰다. 그 많던 눈은 응달진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녹아서 길은 전과 다름없었다. 정씨 집 부근 내리막길에서 내려다보니 과연 천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떠난 것이 틀림없다. 호수를 돌아서 오는 길에 개울가 정자에서 정씨와 만났다.
“천둥이 보내고 서운해서 어떡해? 강아지라도 한마리 들이시지!?”
“팔뚝이나 나으면 그럴려고! 그런데 천둥이녀석 잘 간 모양이지! 낮에 잠깐 잤는데 꿈에 보이더군!”
“어떤 꿈이었소?”
“눈 덮인 높은 산 위에 올라서 푸른 눈을 빛내며 우! 하고 울더라구!”
“그리고?”
“그 뿐이오!”
“나한테 안부는 안 합디까?”
“후훗! 안부 합디다. 당신 탓에 정신 차려 고향 찾아 가노라고…! 구박할 때는 언제고 안부는 듣고 싶은 거요? 사람이 아주 못됐어!”
“그래요. 내가 아주 못됐지! 허허허! 그래서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도 있잖소.”
“개만도 못한 인간들 많지! 나도 보았어! 저 골짜기에 가면 지금도 살아! 김영감이라고, 나이 여든 다섯인데, 영감이 나갔다 돌아오면 그 집 강아지는 꼬리치며 반갑다고 하는데, 아들도 며느리도 모두 본숭만숭한다고!”
“허어! 정말 개만도 못하군! 그런데 그 정도는 약과야. 개만도 못한 인간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엄청난 쇼를 벌인 적도 있어.”
“대한민국이 쇼를 벌여?”
“음! 80년대에 있었던 사건이야. 그때 나는 신문기자였는데, 그날 마침 야근 당직을 하고 있었지. 늦게 저녁밥을 먹고 편집국으로 돌아와 보니 당직 기자들이 술렁이고 있더라고, 당시 대통령이 전두환이라, 또 무슨 놀랄 일을 저질렀을까, 하고 국장석으로 가보니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 경상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술에 취해 저수지에 빠진 주인을 개가 살려 냈다는 기사였지. 당시는 언론통폐합이 있고나서라, 지방주재기자를 둘 수가 없었어. 오직 연합통신과 국영방송국인 KBS만 주재기자를 둘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연합통신기자가 올린 기사가 텔레타이프를 통해 각 신문사에 들어 온 거야. 그 기사는 엄청난 사건이었지.”
“그게 무슨 엄청난 기사요? 당연한 거지.”
정씨는 정말 당연한 일이라는 표정이다. 오히려 호들갑을 떠는 동식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신문을 모르는 정씨로서는 뉴스의 비중에 대해서 분석하는 능력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식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정씨를 위해 더욱 열심히 그날 밤의 상황을 설명해 나간다.
“아무튼 그날 밤 서울에 있는 모든 신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기사를 1면 톱기사로 끌어 올린거야. 주먹만한 대문자로 제목을 달고… 생각해 봐요. 신문이란 게 기사 한 꼭지 가지고도 서로 사운을 걸고 경쟁하는 사이인데, 개가 사람을 살렸다는 통신기사를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1면 톱기사로 올렸으니, 놀라운 일 아니오?”
그 정도에서도 정씨는 동식의 말을 별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일들을 알리는 신문의 1면 톱기사의 주인공이 개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놀라운 사건은 불과 두 시간여 만에 그 사건은 오보로 판명되었다. 신문을 보고 놀란 방송국에서 현지기자를 불러 낙종의 책임을 물으려 하자, 그가 현장을 찾아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통신기자가 술 취해서 중얼거리는 사람들의 소문만 듣고 어설픈 기사를 썼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감동적인 기사로 1면을 장식했던 신문들은 맥이 빠졌다. 모두 기사를 내리면서 독자들에게 사과문을 게재하였다. 그런데 유독 C일보만 그 기사를 내리지 않고 이튿날 새벽 최종판까지 몰고 갔다. 그리고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1면의 한쪽 귀퉁이에 실렸다. 그 편지에, 이미 오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자신들은 동화 같은 아름다운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기사를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개만도 못한 세상을 향한 통곡이었고 질타였다.
“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소. 그렇다면 그 무렵에 그만한 사건이 있었나 보군!”
“그랬지! 우선 정권 자체가 정당성이 없었지. 그러니 세상의 모든 정당한 가치는 버림받고 방법과 술수만 시퍼렇게 살아났지. 뭘 하든 방법과 술수를 동원하면 된다는 그런 비뚤어진 가치관이 팽배한 세상, 그런 풍조가 세상에 만연하기 시작했지. 그것은 이른바 5공화국의 출발이념 같은 거였어. 그런 판국에 개 사건이 터지기 1주일 쯤 앞서서 참으로 부끄러운 사건이 터졌지. 두 가지야. 한 가지는 전라도 남원인가 하는데서 군에 갔다가 휴가 나온 아들이 아버지를 낫으로 찍어 죽인 사건이야. 범행 동기는 간단해.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였지. 술 취해 돌아와, 아버지가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논두렁 밭두렁의 풀을 베고 벼를 베고 보리를 베는데 썼을 그 낫을 들어 서슴없이 아버지를 찍어서 죽였어!”
“저, 저런! 정말 개만도 못한 놈이로군! 그럼 그런 사건이 또 있었단 말이야? 두 가지라며?”
“있었지. 이번에는 서울이었어. 지금은 그 장소가 동부순환도로니, 무슨 도로니 해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지만 80년대 초에는 벌판이었어. 그 중랑천 변 벌판에 낡은 담요에 덮인 채 죽어 있는 병든 50대 중반의 남자시체가 발견되었지. 경찰조사결과 그 시체는 사체유기가 아니라, 생사람을 추운벌판에 버려서 죽인 사건이었고, 범인은 바로 죽은 이의 아내와 아들로 밝혀졌지. 결핵에 걸려 오랜 동안 병석에 있어 가족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모자가 함께 담요에 싸서 내다버린 거였어. 그 사람의 직접적인 사인은 얼어 죽은 것으로 밝혀졌어!”
“그렇군! 그럴 때에 개가 사람을 살렸다는 기사가 올라 왔으니, 신문들이 발칵 뒤집힐 만했구먼!”
“뒤집힐 정도가 아니야! 이건 완전히 천지개벽의 새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드디어 하느님의 계시가 여기에 이르렀구나! 개만도 못한 놈들의 세상아! 너희들은 이것을 보고 참회할지어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사건이었어. 감격하여 몸을 떠는 기자들도 있었으니까!”
석 달이란 시간은 처음 시작할 때는 충분하고 남는 시간 같았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지난 4년 전 보다 더 허망하고 빠른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동식은 채상위의 달력을 만지작거린다. 그의 손끝에는 5월의 마지막 날들이 만져지고 있다. 이제 봄도 지나고 초여름이다. 지난 3월의 폭설과 그 뒤에도 서너 차례, 4월 초순에도 내렸던 눈은 다 녹아 없어지고 주변의 산들은 신록으로 눈부시게 새 치장을 하고 있다. 저만치 아래로 보이는 호수도 한 뼘이나 될 듯한 얼굴에 흠뻑 신록을 담고 있다.
동식은 한 열흘, 작품의 마무리를 하느라 산책에 나서지 않았었고 그 덕에 집필을 마칠 수 있었다. 그동안 산책을 다닌 다른 작가들의 전언에 의하면 정씨 집에 새로 강아지가 한 마리 들어 왔다고도 했다.
이번에는 빚쟁이 달아나듯 하지 말고, 떠날 때는 간다고 말이나 하고 가라던 정씨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정씨는 보고 가야지. 탈고기념으로 그와 소주도 한 잔해야 하고…,
저녁 산책길에 소주병을 챙겨들고 나선 동식은 호수로 내려가기 전에 술병을 맡길 요량으로 정씨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천둥이가 살던 자리에 갈색 털의 주먹만한 푸들 견 잡종개가 앙칼지게 짖어댄다. 방문 앞에 이르러 정씨를 불러 본다. 대답이 없다. 문을 밀어 본다. 힘없이 문이 열린다.
“정씨!”
어둑한 방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씨! 어디 간 게요? 나 박가요!”
여전히 아무 소리도 없다. 어두운 방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보고 있던 어떤 빛을 보았다는 느낌이 스쳐갔다. 동식은 다시 방문을 활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점점 시야가 밝아지면서 저만치 방구석에서 반짝이는 눈이 보였다. 힘없이 앉아 이쪽을 보고 있는 정씨의 모습이다. 퀭한 눈에 이상하리만치 광채가 나고 있었다.
“아니, 왜 그러고 있는 거요? 어디 아픈 거야?”
동식이 방안으로 들어와 더듬거려 전등을 켠다. 정씨는 여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벽에 기대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빈 소주병 서너 개가 뒹굴고 있다.
“술 마신 거요? 한발 늦었네. 이별주나 나누고 떠나려고 왔더니!”
여전히 말이 없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왜 그래! 정씨?”
그때 정씨가 대답대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들어 동식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얼핏 보아도 개의 목줄이었다. 순간 동식은 천둥이를 떠올렸다.
“아니 그럼? 이건 천둥이의!?”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정씨의 눈에서 순간 후드득! 주먹만한 눈물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천둥이가 어디선가 죽었고, 그 목줄만 돌아왔다는 이야기인가, 죽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죽었을까? 개장수의 덫에 걸려 보신탕집 가마솥으로 들어가는 참담한 운명을 겪은 주검이었을까, 그런데 목줄은 어떻게 돌아와 정씨 손에 들려 있다는 말인가. 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빠르게 떠올랐다. 개 썰매로 남극을 탐험하던 사람이 갑자기 닥친 폭풍을 피해 본국으로 가면서 기지에 남겨두고 간 여덟 마리의 개들이 1백일 넘게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개들은 쉽게 자신의 목줄을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천둥이도 어디쯤에선가 목줄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알래스카를 향해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된 건지 말 좀 해봐, 정씨!”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입을 연다.
“아까 낮에 갑자기 군수사대에서 다녀갔소.”
“군수사대? 왜?”
“휴전선 최전방 작전구역을 수색하던 군인에 의해서 천둥이의 목줄이 발견되었다더군!”
동식은 정씨로부터 목줄을 받아들고 살펴본다. 천둥이의 전 주인 전화번호와 이름, 개의 이름 등을 새긴 알루미늄 명패가 달려 있다.
“최전방 군작전 지역에서 발견된 개의 목줄은 혹시 개와 함께 월북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고, 경계초소의 근무에도 허점이 들어나는 사건이라서 철저한 수사지시가 내려졌지!”
“그래서?”
“그래서는 뭐!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해줬지!”
“그럼, 뭐야? 천둥이가 휴전선 부근에서 목줄을 벗어 던지고 북으로 올라갔다! 알래스카를 향해서? 우와! 그 녀석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데 왜 우는 거야, 감격해서?”
동식은 손뼉까지 쳤다. 그런데 정씨는 길게 한숨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비틀거리며 정씨가 일어난 벽에는 전에는 없던 세계지도가 붙어 있다. 지도에는 빨강색의 사인펜으로 굵은 라인이 구불구불 그려져 있다. 작은 고추만큼 밖에 안 보이는 한반도의 중간 쯤, 그러니까 원주를 출발점으로 하여 휴전선을 넘어 원산, 함흥, 청진, 나진, 블라디보스토크, 나홋카를 거쳐 타타르해협을 따라 올라가다가 어딘가 낯선 이름의 도시를 거쳐 캄차카반도와 알류산열도를 지나 알래스카까지 붉은 라인으로 이어져있다. 출발점에는‘3/7’이라는 글자가 보이고 알래스카에는‘5월말?’이란 글자도 보인다. 그러니까 천둥이의 알래스카행 이정표를 상상해서 표시해둔 것이었다. 정씨의 예측대로라면 천둥이는 지금쯤 알래스카의 설원에서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우! 우! 소리 내어 울면서 자신을 잡종이라고 모욕 준 사람들을 비웃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헛! 허허. 이건 천둥이의 귀로역정(歸路歷程) 이로구먼!”
“틀렸소! 그랬으면 내가 왜 울겠소!”
“아니, 그럼?!”
소주병 나팔을 불며 돌아온 정씨는 방바닥에 뒹구는 붉은 사인펜을 집어 지도의 한반도 휴전선 부근에 부들부들 손을 떨며 X자를 그었다.
“국방군은 들으라우! 어제께 밤에 보내준 커다란 가이새끼로 우린 오랜만에 단고기를 배불리 먹었어야. 자주 좀 보내 주라우!”
“무슨 소리요. 그게?”
“군수사관들이 그럽디다. 정확하게 3월10일 밤 10시경, 눈보라 속에 늑대 같은 커다란 개가 거침없이 철책을 뛰어넘어 북쪽으로 갔고, 잠시 후 총성이 들렸고, 그리고, 우! 긴 울음소리를 들었고…, 다음 날 잘 먹었노라는 방송을 들었고…, 천둥이는 그래도 나보다는 났다!”
동식은 벽에 붙은 지도로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정씨가 그은 X자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그 지점에 불이 들어왔다. 불은 점멸하면서 천천히 움직인다. 원산 함흥을 지나 청진, 나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알래스카에 이르는 정씨가 그은 라인을 따라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 달려라, 천둥아! 마구 달려라…!”
소리치며 동식은 정씨의 손에서 거칠게 술병을 낚아챈다. ***
소설가 김용우는 194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고향에서 졸업한 이후로는 대전과 서울 등지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중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는 것으로 교육을 마쳤다. 독서신문의 기자를 출발로 한국경제신문과 부산매일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소설가협회, 그리고 국제펜클럽 회원이며 가톨릭문인회 회원이기도 하다. 1974년 숱한 신춘문예 낙방의 쓴잔을 마셔온 그는 <새시대문학>지에 <바람의 잔해>를 발표, 황순원 선생의 추천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소설쓰기는 아직도 길이 멀었었다. 그는 기왕 언론계에 들어 온 이상, 논설위원의 자리에 오른 뒤에 본격적인 소설을 쓰겠다는 고집을 갖고 있었다. 1992년 마침내 논설위원이 되었고, 그는 3년간의 논객노릇을 마감하고 돌아와 소설과 대좌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쓴 소설들은 장편소설<남사당>과 <붉은 여름의 흔적>이 있으며 중편소설<碑鳴>과 단편소설로 <마르크스를 위하여><세렌게티 통신><발바닥 아픈 여자><풀각시에 관한 두 가지 기억><샛강><혼숙여행><악동클럽><밴딩스나이퍼><釣翁><멧새 날아가다>등 십 수편이 있다. 창작집으로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번역서로 Ken Follett의 과 Robert Ludlum의 등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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