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84호 부여장하리삼층석탑(扶餘長蝦里三層石塔) -부여 장암
-.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
-. 고려시대
-. 충청(忠淸)·전라(全羅) 양도 백제(百濟)의 옛 영역에는 백제계(百濟系) 석탑이 몇 개 전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부여(扶餘) 정림사지석탑(定林寺址石塔)(국보(國寶) 제(第)9호(號))의 양식을 조형(祖型)으로 삼고 있다. 이 탑도 그러한 계열에 속하는 탑으로, 기본 양식에서 정림사지탑(定林寺址塔)을 따르고 있다. 이곳은 부여(扶餘)에서 멀지 않은 남쪽 백마강(白馬江) 건너에 있어, 지리적으로도 부여탑(扶餘塔)의 양식을 모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기단은 건축 기단이 아닌 거칠고 긴 판석(板石)으로 지대석(地臺石)을 깔고, 그 위에 같은 돌로 너비를 좁히면서 3단을 쌓은 위에 다시 1단을 마련하여 탑신을 받치게 해 놓았다. 기단 수법으로는 매우 엉성한 편이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을 각각 몇 장의 돌로 구성하였는데, 1층 옥신은 네 모서리의 모기둥을 딴 돌로 세우고, 그 사이에 긴 판석(板石)을 세웠다. 모기둥은 위가 좁고 밑이 없는 언터시스가 있으며 그 위에 1장의 판석(板石)을 얹고, 너비가 넓고 소로 (小累) 모양의 판석(板石)을 더 얹어서 옥개석을 받치고 있다. 2층과 3층도 같은 수법이지만 길이와 너비가 급격히 줄어 들었을 뿐 아니라, 모기둥의 아래위 너비가 같아져서 엔터시스 수법이 없어졌다. 3층 옥신 북쪽 면에는 높이 18㎝, 너비 9㎝, 깊이 4.5㎝의 감형(龕形)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3층 옥신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둥 모양의 표시가 밑에까지 내려오지 않고 위쪽에만 표시되어 각 면의 표면이 요(凹)형을 이루고 있는 일인데, 이것은 하나의 퇴화한 형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각 층의 옥개석은 매우 얇고 넓어서 주목되는데, 추녀는 아래위가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轉角)에서 아래위가 같이 반곡(反曲)을 이루고 있다. 낙수면(落水面)의 경사는 매우 완만한데, 2단의 탑신 굄이 마련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 같아 보이는 정4각형 돌이 하나 있을 뿐이다.
이 탑은 탑신이 높은 데에 반하여 옥개석이 지나치게 넓어 안정감을 잃고 있다. 부여탑(扶餘塔)을 모방하였지만 조형감각이나 결구(結構)수법에서 훨씬 떨어지는 작품이다.
1931년에 1층 옥신에서 범문다라니경(梵文陀羅尼經) 조각·은합(銀盒)·목합(木盒)·상아불상(象牙佛像)·목제소탑(木製小塔)·수정옥(水晶玉)·은환(銀環) 등이 발견되었고, 1962년 8월의 해체 수리 때에는 2층 옥신 중앙에 둥근 사리공(舍利孔)이 있어, 금동제(金銅製) 외호(外壺)와 은제(銀製) 내호(內壺) 및 사리(舍利) 41알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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