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문화 탐방]/**** 서천 탐방

효자 이임, 열녀 경주이씨 정려 - 화양면 봉명리

소설가 구경욱 2010. 2. 17. 22:41

효자 이임(李稔), 열녀 경주이씨(慶州李氏) 정려

 

-. 서천군 화양면 봉명리

 

[효자 이임(李稔)]

-. 조선 명종 3년(1548)에 태어남. 자는 여실(汝實), 호는 남강(南江), 목은 이색의 후손

    엄격한 가정에서 효를 근원으로 가정교육을 받아 어려서부터 하늘이 내려준 효자라는 칭송을 받으며 자라옴.

-.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병환 중에는 한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고, 지성으로 봉양하였으며 약이나 음식을 드릴 때에는 항시 자신이 먼저 맛을 보고 부모님이 잡수시도록 하였다.

  병환 중이시던 어느 눈 내리는 겨울 수박을 구하려고 온갖 산과 들을 찾아 헤맸으나, 구해 드리지 못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한이 되어 자신도 일생 동안 수박을 먹지 않았으며 수박을 보기만 하여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눈물로 슬픔을 감추지 못하였다.

  또한 묘소 찾는 일을 하루도 거른 일이 없었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여 집 주위를 깨끗이 청소한 후 생전에 부모님께 드리지 못했던 음식을 장만해서 효심으로 제사를 모시었다. 이같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이 담긴 마음을 잊지 않았으므로 선생의 효성 지극함이 이웃은 물론 세상까지 알려져 칭송 소리가 전국에 메아리쳤다.

  또한 신묘년(1891년) 왜구들이 서해안 지방을 침입했을 때 충성으로서 호서 지방을 방어한 공로를 인정받아 군수의 벼슬을 받은 공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열녀 경주이씨(慶州李氏)]

 효자 남강 선생의 여섯째 아들인 유찬의 처 경주 이씨는 어질고 정숙하여 여자의 덕을 갖춘데 손색이 없더니 남편이 일찍 죽자 삼년상을 마치고 약을 먹고 급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