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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나성

소설가 구경욱 2010. 3. 7. 22:52

부여나성

 

사적 제58호. 백제 수도 사비(泗沘)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나성이다. 흙으로 쌓았기 때문에 현재는 무너진 부분이 많아 형적을 찾기가 어렵다. 성벽은 부소산성(扶蘇山城) 동문터에서 약간 떨어진 북쪽지점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는 청산성(靑山城)을 거쳐, 다시 남쪽으로 구부러져 석목리·동문다리·필서봉 꼭대기를 지나 염창리 뒷산으로 해서 금강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청산성 동쪽으로 약 20m 정도와 석목리에서 동문다리까지, 그리고 필서봉에서 염창리까지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단면이 드러난 부분을 조사한 결과 황토질 흙으로 토축했으며, 일부에 진흙을 다져서 판축(版築)한 흔적도 있다. 서쪽 나성은 부소산성 서문터에서 현재의 유스호스텔을 거쳐 관북리·구교리·유수지·동남리·군수리·성말리까지 쌓았는데 대부분 파손되었고, 남쪽 나성은 동리·중리·당리를 연결한 것으로 토루(土壘)와 문초석이 남아 있다. 성문터로는 논산으로 통하는 동문터, 공주로 통하는 동북문터, 구아리로 가는 서북문터, 장성백이 남쪽에서 규암리로 가는 서문터가 있다. 이것이 수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이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축성 연대는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로 천도한 성왕(523~554 재위) 때를 전후한 시기에 완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양나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나성 중 하나이다. 

 

※   나성이라는 명칭은 당나라 때부터 사용했는데, 규모가 큰 성을 나성(羅城), 나성 안쪽 작은 성을 자성(子城), 나성 바깥의 토루적 성격의 성을 아성(牙城)이라 한다.

 

▼ 하늘색으로 표시한 곳이 부여나성이고, 붉은 화살표가 필자의 탐방지역인 동나성이다. 분혹색으로 표시한 곳은 청마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