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문화 탐방]/명구승지 탐방

탄금대-충북 충주

소설가 구경욱 2010. 4. 5. 15:15

탄금대-충북 충주

 

  충북 충주시 남한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강이 북쪽으로 흘러들어 남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우륵 선생과 신립 장군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가야금을 만든 악성 우륵이 이곳 탄금대에서 제자에게 가야금과 춤을 가르켰다고 전해진다. 탄금대라는 이름도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 탄금대는 임진왜란 당시 팔도순변사 직을 맡았던 신립 장군이 문경새재를 버리고 이 탄금대 강가를 택해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결과는 조총으로 무장한 십만명의 왜군에게 팔천명을 이끌고 싸우던 신립 장군과 그 휘하 장졸들이 모두 전사한 왜란 초기 비운의 격전지이다.

 

 ▼ 탄금대 풍경

 

 

 

 

▼ 감자꽃 노래비

 

 

 

 

▼ 임진왜란 때 산화한 신립장군의 팔천고혼 위령탑

 

탄금대 전투

  1592년(선조 25) 4월 14일부터 일본군이 조선침략을 감행해, 부산·동래 등을 함락하며 북상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신립(申砬)을 도순변사로 임명해 이를 방어하도록 했다. 신립은 충청도의 군현 병력 약 8,000명을 단월역(丹月驛)에 주둔시키고, 4월 24일 종사관 김여물(金汝岉) 등을 이끌고 조령(鳥嶺)으로 진출했다. 이때 김여물은 조선군의 수가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인 만큼 조령의 협곡을 이용하여 기습작전을 할 것을 신립에게 권했다. 그러나 신립은 일본군이 보병인 데 반해 아군은 기병이므로 기병력을 이용할 수 있는 평지에서 공격할 것을 주장했다. 그날 상주(尙州)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일본군에게 패배한 장수 이일(李鎰)이 단신으로 탈출해왔다. 신립은 이일에게 전공을 세우라고 당부했다. 4월 26일 이른 아침에 군사를 거느리고 충주성과 5리 정도 떨어진 탄금대로 가서 낮은 저습지에 배수진을 치고 적이 진출하기를 기다렸다. 한편 상주전투에서 승리를 한 고니시의 일본군대는 4월 28일 충주에 도착하여 정오경부터 한 부대는 산을 따라 동으로 침입해오고, 다른 부대는 강을 끼고 내려오면서 공격해왔다. 이에 신립은 기병을 출동시켜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대패했다. 상주에서 패주했던 이일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다시 도망쳐 패전사실을 조정에 보고했고, 이에 왕은 급히 한성을 떠났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충주성에 들어갔으며, 이튿날 뒤따라 북진하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일본군과 합세하여 한성방면으로 30일부터 북진하기 시작했다

 

 

▼ 팔천고혼위령탐에 있는 충장공 신립장군 상

 

 

 

 

 

 

 

 

 

 

 

 

 

 

 

 

 

 

 

 

 

 

 

 

 

 

▼ 우륵 선생 소개비

 

▼ 충장공 신립장군 순절비각

 

 

 

 

▼ 공원 내 대흥사 풍경

 

 

 

 

 

 

 

 

 

▼ 국궁장의 궁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