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씨와 크레커 **
어느 오후
아가씨가 공원 벤치에 앉아
고즈넉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신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남아 있는 책을 마저 읽고 갈 참 이었다.
아가씨는 방금 전 가게에서 사온 크레커를 꺼냈다.
그리고는 크레커를 하나씩 집어 먹으며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쯤 흘렀을까.
아가씨는 크레커가 줄어가는 속도가 왠지 빠르다 싶어
곁눈질로 보니,
곁에 앉은 그 노신사도
크레커를 슬쩍슬쩍 빼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노인네가...?’
아가씨는 화가 은근히 났지만 무시하고 크레커를 꺼내 먹었는데,
그 노신사의 손이 슬쩍 다가와 또 꺼내 먹는 것이었다.
아가씨의 눈은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신경은 온통
크레커와 밉살스러운 노신사에게 잔뜩 쏠려 있었다.
그렇게 크레커가 든 케이스는 그 둘 사이 벤치에서 다 비어갔고,
마지막 한 개가 남았다.
아가씨는 참다못해 그 노신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뭐 이런 웃기는 노인네가 다 있어?'
하는 강렬한 눈빛으로 얼굴 쏴 보았다.
그러자 노신사는 그런 그녀를 보고 부드럽게 씨익 웃으며
소리없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별꼴을 다 보겠다고 투덜대며
자리를 일어 나려던 아가씨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사가지고 온 크레커는
새 것인 채로 무릎 위에 고스란히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아가씨는 자신이 그 노신사의 크레거를
집어 먹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오히려 자기 것을 빼앗기고도 부드럽게 웃던 노신사.
하지만 그 노신사는 정신 없는 그 아가씨 에게
크레커를 빼앗긴 게 아니다.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제 것도 아닌데 온통 화가 나서
따뜻한 오후 햇살과 흥미로운 책의 내용 조차
잃어버린 그 아가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눔
즉, 인간애를 빼앗긴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오백원 짜리 크래커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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