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궤적(軌跡) ***
(백제 글모음 발표 - 2005년 10월)
세속에 초연한 상식을 지닌 그대라 할지라도 한 번쯤 이런 생각을 가져 본 적 있었으리라. 암투, 모략, 분노, 증오, 보복, 배덕, 시기, 부정, 부패 등 이렇듯 악마의 주문같이 복잡 미묘한 생존 운용의 방식들이 진리나 정도처럼 통하는 잿빛 모멸의 세계 탈출. 다시 말해서 온갖 오염 물질로 이루어진 현실로부터 벗어나 아담의 땅으로 가고 싶다고.
나는 막힌 나팔 같은 삶 중에도 시시로 흐뭇해한다. 괴이한 허상과 교통하길 즐겨 하는 까닭으로, 자신만의 세계 몰입이라 할까. 이상의 바다 표류라 할까. 그것이 가공할 정신과적 병리현상이든 애련한 몽상가의 말초적 발상이든 어차피 그런 것 아닌가. 여섯 번째 날에 신으로부터 허락 받은 가장 큰 특권. 나는 어쩔 수 없이 밥줄에 끌려 다니긴 했어도, 비록 걸작을 생산해 내지는 못했어도, 창작집과 몇 권의 장편을 상재한 중견 작가이다. 어쨌거나 누군가 그랬잖은가. 죄 많은 자가 신의 저주를 받아 작가로 다시 태어난다고. 소쩍새 피울음처럼 긴 밤을 지새워 고뇌해야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작가의 변이성 유전자를 형벌처럼 지니고 태어난 내가, 그 특별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 어리석게도 범위나 한계를 미리 긋고 어찌 소홀히 하거나 포기할 수 있으랴.
나는 이럴 때 격렬히 흥분하게 된다. 고속버스 터미널 앞이나 철도역 광장을 가로질러 갈 때. 가을 깊은 단풍나무 숲이나 소슬바람에 갈꽃 너울거리는 강가에 서 있다가. 혹은 늦어지는 약속에 지루한 눈으로 카페 벽시계나 장엄하게 서녘으로 침몰하는 햇덩이를 바라보다가도 문득. 나는 발작이라도 일으키듯 자유로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또한, 날씨 변화에도 민감해서, 눈이 부시게 하늘 푸른 날이나 바람 시원하게 얼굴 핥는 날. 아니면 안개비 눅눅히 내리는 날이나 달 밝은 밤에도 그런 반응을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비열 다단한 절차에 의해 아부의 몫으로 영유하게 된 부와 명예. 거렁뱅이 깡통에 던져 적선하기도 쑥스러운 지성과 이성. 십 원짜리 동전 한닢 가치도 안될 견문과 학식. 토악질 나는 이 모순 덩어리들을 인연의 끈 모두 베고 전장으로 말을 몰던 계백처럼 결연히 떨치므로, 곰팡이 기운 칙칙한 곳에 자칫 영원히 영치해 둘번했던 자유를 비로소 찾아 만끽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상 끝이나 그 너머를 꿈꾸며 행복해 하는 것. 빈깡통처럼 요란하게 구르는 시간으로부터 탈출해 즐거워하는 것. 내 영혼은 육체를 이탈해 사차원 세계에 도달해 있었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 철학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라면, 작위적이지 못한 나의 감성적 극치의 실현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나의 흥분은, 폭력적 근원이 아니라 몽정이나 자위행위의 오르가즘처럼 홀로 느껴 일어나는 흥취요 그 절정인 것이다. 보편적 타성과 획일적 관념에 익숙한 그대가 듣는다면, 피식 콧바람부터 튀어나올 일이겠지만.
나는 지금도 나를 조롱의 새처럼 고립시켜 놓은 가을 흔적 심기 사나운 계절로부터 벗어나길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어디론가 무작정 걸어가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장면 집이나 이발소 벽에 걸린 값싼 그림 속에서 본듯한 오두막 앞에 멈춰 서게 될 것이고, 몽혼이나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고개를 기울여 어리둥절해 하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사십 수년 간 지녔던 위선의 탈을 벗지 못해 표출되는 사회적 동물의 영악함일 뿐이다. 곧 어떤 의무나 책임, 무슨 호기심이나 절박성도 갖지 못한 채로 내 집 현관 앞에 선 것처럼 자연스레 오두막 문을 두드리게 될 테니까. 그러면 문이 열릴 터이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퍽 지쳐 보이는 여인이 호롱불을 내밀 것이었다. 나는 여기서 마주치게 될 여인에 대해 꽤 유의하고 있다.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낡은 추억이거나 기구한 인연, 혹은 장롱 깊숙이 처박아 놓은 유행 지난 옷이나 책상 뒤편으로 굴러 떨어진 비밀스런 이야기와 그 중대한 뜻을 담은 비망록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교 시절에 있었던 첫경험 상대인 청량리 굴다리 아래 알코올 중독 증세로 손을 떨던 늙은 창녀일 수도, 순결을 헌납 받고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 울게 만들었던 여동생의 단짝 친구일 수도 있고, 혹은 늘 함께 하기를 동경하여 끊임없이 두통과 복통을 거짓으로 호소하게 하던 양호 선생이거나 내 입맞춤이 싱겁다며 진한 키스를 선보여 주었던 시립 도서관 사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전혀 생경한 이름의 여인이 나를 맞길 희망하고 있다. 그것은 평가 가치조차 없는 -내게는 어떤 기준도 여지껏 준비돼 있지 않았지만- 우울한 삶의 궤적들이 부활해 뇌 속을 미꾸라지처럼 꿈틀꿈틀 헤집고 다니는 게 무엇보다도 소름끼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퍽 애잔한 눈빛을 던져 올 여인은, 왜 이제서야 오셨어요 하며, 다소 투정 섞인 언어를 수줍게 늘어놓을 게 분명하였다. 또한, 곧 내 품으로 무너져 내려 서럽게 울음을 터트릴게 자명하고. 나는 어지간히 당혹해 할 수도 있겠지만, 여인의 귀밑머리에 코를 묻고 느껴 우는 일에 동참하길 주저하거나 야박해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왜냐하면, 그 동안 반복해 꾸어 온 꿈의 여정이 늘 그렇게 끝나던 까닭인 것이다.
백강(白馬江) 주변은 온통 푸른빛이었다. 뜸뜸이 삭풍을 가르고 사라지는 차량들의 후미등 자리 역시, 옛 궁녀들의 넋이라도 뭍으로 기어 오른 듯 천년이 거듭 되어도 지워지지 않을 그 가슴에 든 피멍 빛으로 바로 메우어진다. 그러하긴 아스팔트 위라고 예외일 수 없어서 바람에 휩쓸리는 노란 은행잎도 제 빛을 잃긴 매일반이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비틀어 문다. 어둠이 찾아올 때나 물러갈 때 그것이 몰고 오거나 남기고 가는 푸른 징후와 그 흔적의 미묘함을 두고 좀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림자를 등지고 동녘과 서녘의 핏빛을 보며 늦은 아침과 이른 저녁을 구별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허나 그것도 맑은 날이나 방향을 알고 있는 집 근처에서만 적용되는 일이었다. 그랬으므로 지금처럼 흐린 날이나 빈 수숫단에 웅웅웅 바람 사위여 가는 소리 심란한 계절엔 그나마 모호해서, 여명과 이내를 구분해 내기란, 애초 무딘 감각의 나로서는 올챙이의 암수를 구별해야 하는 일만큼이나 여간 헷갈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초등학교 시절엔 낮잠에서 깨어 등교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적도, 출판사에 근무할 땐 서해의 낙조 사진을 동해의 일출이라고 책에 올려 편집장에게 질책 당한 적도 있었다. 허나 지금은, 어둠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철퍼덕 주저앉아 세상을 차분히 포식하는 중이란 걸 알 수 있다. 진종일 남창 문틀에 걸터앉아 엉덩이가 배기는 줄도 모르고 단풍나무 이파리 서러운 몸부림 끝에 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집을 나섰으니까.
걸음을 멈춘다. 앞서 가던 수은등 그림자가 급격히 짧아지더니 뒤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고개를 든다. 탐스런 뭔가가 허공에 긴 사선들을 긋고 있다. 눈발이었다.
이런, 눈이 내리는군.
나는 오늘밤과 내일 새벽 사이 첫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조간 신문 귀퉁이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또한, 중서부 지역에 폭설 주의보가 내려져 있다는 사실도 수시로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 특보를 들어 알고 있었다. 허나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반색하고 있었다.
산하가 금세 아득하다. 내 시선은 백강 상류 쪽 고도(古都)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의도한 곳에 채 미치지 못하고 반공중에서 먹이 찾는 박쥐처럼 방황만 한다. 촘촘한 검은 피륙 같이 된 어둠 때문도 있지만, 휘몰아치는 눈발이 그만큼 거세기 때문이다.
나는 안개 속같이 된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문득 하늘에 죄지음으로 고개 숙이고 걷던 날들이 생각난다. 아마 가슴에 고이 적어 품었던 뜻 산산이 무너지던 날이었다. 기운으로 세상을 짓누르려던 문인의 당찬 기상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지던 날의 기억들이다.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어금니로 볼살을 깨물면서 이 길을 따라 걸어가던 날의.
스탠드 불빛이 책상을 환하게 밝혔을 때,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퍽 오랜만의 일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가닥을 알 수 없이 뒤엉켰던 아내 문제도 대충 마무리됐고, 지역 신문에 새로 연재할 소설 초고도 완성 됐으므로, 새로운 에너지 충전을 위해 근 보름 동안 백강 지류로 잉어 낚시를 다녔었다. 결과적으로 잉어 새끼 구경은커녕 있는 에너지도 모두 소모하고 말았지만.
전원 스위치를 누른다. 자체 명령으로 파일을 읽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를 끊임없이 갉아 대는 쥐의 새김질 소리와도 같고, 한 번쯤 오락실 앞을 지나다가 들었을 법도 한 전자음이다. 나는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세계를 하나로 묶어 버린 인터넷 아닌가. 혼자만의 비밀도, 둘만의 은밀함도 사라져 버린 무작위 정보가 누구와도 아무렇게나 공유되는 세상. 나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짧은 순간에도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을 향해 날아갔던 밀랍 날개의 인간 이야기나 바벨탑 이야기, 혹은 소돔과 고모라와 폼페이 최후의 날도 떠올려 보기도 한다. 그래서 알 수 없는 공포력에 휩싸여 오줌이라도 지린 듯 부르르 몸을 떤다.
낯익은 모습이 초기 화면으로 떠오른다. 보름달처럼 둥근 얼굴이 둘이다. 결혼 칠 년만에 어렵게 얻은 초등학교 육 학년에 다니는 딸들로 삼 분 차이에 평생 붙어 다닐 언니 동생 호칭이 엇갈린 이란성 쌍둥이였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 것인지 안면을 가득 채운 웃음이 괴이하고도 끔찍스럽기까지 하다. 그 옆으로 십여 개의 아이콘들이 깔려 있다. 세태를 말해 주듯 인터넷 아이콘을 제외하면 모두 게임 프로그램들이다.
갑자기 뒤돌아본다. 사진들로 도배돼 있는 벽이 보인다. 구석의 월드컵 축구 스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추정컨대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 최고인 일명 얼짱 연예인들이리라. 그 아래로 침대 하나가 놓여 있다. 부부 침실에 어울릴 크고 넓은 것이다. 그 위에서 내 유전자와는 상관없이 아내의 얼굴만 닮은 두 딸이 잠자고 있다. 삼 분 먼저 세상에 나와 막내를 모면한 큰딸은, 엽기 토끼 인형을 안고 새우잠을 자고 있다. 간발의 차이로 언니 자리를 놓친 게 억울하다는 막내는 장난감 자동차를 한 손에 쥔 채 활개 친 자세로 잠들어 있다. 모든 것을 적당히 나누어 가졌는데도 성격만은 전혀 다르게 소유했다. 큰딸은 나처럼 감성적이다. 막내딸은 아내처럼 이성적이다. 그래서 한 아이는 잔정 많은 이타적 성격이고, 또 다른 아이는 무척 냉정한 이기적 성격을 지녔다. 중동의 어느 민족처럼 발목을 잡거나 잡히고 나오지는 않았으나 서로 부딪치는 경우가 무척 잦았다. 허나 핏줄과 동심은 위대한 것이라서 일까. 둘은 채 십분도 안돼서 언제 그랬냐 하였다. 어린 시절을 지나쳐 왔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다.
사방을 둘러본다. 온통 아이들 물품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그제야 서재에 있는 컴퓨터가 고장나 잠든 아이들 방에 들어왔음을 인식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잠에서 깨지 않을까 숨소리조차도 조심스럽다.
사실 컴퓨터는 안방에도 있었다. 아내의 온라인 고스톱 전용이다. 나는 아내의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저장 용량이 적거나 기기가 낡아 그런 것이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하는 최신형 펜티엄 컴퓨터였다. 그런데도 나는 사용하기를 꺼려한다. 아니, 의도적으로 안방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 방에 들어온 것은, 각방 살림 즉 별거를 의미하고 있다.
아내는 오 년 전부터 남성 정장 의류 매장을 운영했다. 군청 근처 목 깨나 좋은 곳으로, 무엇을 해도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친정 부모를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는 통에 외동딸인 아내가 가게 건물을 상속받았다. 백강 근처 수만 평의 임야와 집도 그때 함께 물려진 것들이다. 아내의 의류 매장 수입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그랬으므로 아내는 애초 가게를 몇 달간 운영하다가 전세를 놓거나 처분하려던 계획을 바꿔 아예 가족들을 서울에서 이곳으로 내려오게 했다. 따라서 내가 출판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한 정략혼이었지만, 뜻밖에 일찍 찾아온 복권 당첨과도 같은 행운이었다.
지난봄 일이다. 왠지 초조해 보이던 아내가 새벽녘에 이층 서재로 찾아와 노크를 했다. 문예지에 발표할 원고 마무리에 밤을 지새운 나는 폐부를 데워 줄 따스한 헤즐넛향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아내의 서재 방문은 늘 그랬으니까. 허나 예상은 빗나갔다. 침침해진 눈을 비비며 의자를 돌려놓고 앉았을 때,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입술까지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뭔가 억울해 하고 분해하느라 한잠도 못 잔 눈치였다. 나는 그때까지 뇌 속으로 들이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막아내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빙그레 웃는 여유를 보였다. 다음에 이어질 해일 같은 이야기들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아내는 내가 무슨 일이냐고 반복해 물은 뒤에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 가게 옆 공인중개사 사무실 최사장에게 행정 수도 예정지 부근 임야에 공동 투자하기로 하고서 계약금조로 이천만 원을 주었단다. 헌데 최사장은 땅을 계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쌍둥이 딸들이 자신을 닮았다며, 일방적으로 수양딸이라 부르던 최사장의 친근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서 되돌려 받으면 될 게 아니냐 힘없이 웃었지만, 이어지는 얘기에 오기처럼 부리던 여유는 오간 데 없이 돼 버렸다. 아내는 최사장과 몇 차례 땅을 보러 어울려 다녔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입술을 빼앗겼고, 이를 빌미로 돈을 돌려 줄 생각을 않는다는 것이다. 아내는 이야기 내내 실수가 아닌 어쩔 수 없는 물리력만 강조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최사장의 입에서 무슨 더러운 얘기가 나오더라도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당신만 그냥 지켜봐 준다면, 변호사를 선임한 다음 사기죄와 추행죄로 고소해 돈을 받아 내리라는 차후의 계획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나는 아내를 믿고 한때 최사장을 신뢰했었으므로 두 사람의 관계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믿음과 신뢰가 그만큼 크고 강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어떤 강력한 힘의 영향 때문이었다. 당신이 성급하게 나설 경우 가정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아내의 말이 강한 압박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나는 그 말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협박성 양해 요구로 들렸으므로, 그게 무슨 소리지? 하고 신경질적으로 되묻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내의 알 수 없는 당당함에 기가 꺾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여 암묵적 양해를 표현했다.
아내에 대한 나의 믿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러하긴 내게 보였던 아내의 당당함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기어이 최사장을 법정에 세웠고, 심리를 통해 그 동안에 있었던 두 사람의 행적들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최사장은, 이전투구 식의 폭로전으로 사태를 전개해 나갔다. 결혼 전부터 셀 수 없을 만큼 은밀한 관계를 맺어 온 사이라서 사업 자금으로 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당혹해 하며 사실을 부정하던 아내는 결국 검사의 추궁에 네 차례 관계를 갖긴 했는데 그것은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충격이 몹시 컸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허탈감이었다. 나는 이 유쾌하지 않은 사건을 두고 작품에 자주 설정했던 이혼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한 사람에게 네 번씩이나 강간을 당했다는 아내의 진술보다도, 아내에게 또 다른 애인이 생겨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최사장의 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내의 자존심과 그 동안 쌓아 온 명예(비록 아내가 자본이라는 거대한 공룡 같은 능력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만)를 한꺼번에 무너뜨린 아내가 몹시 야속했다. 허나 장고 끝에 도출된 결론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몹시 의외였다. 그냥 묵묵히 지켜보기로, 아니 사건 자체를 망각해 버리기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최선책도, 또 다른 차선책도 아니었다. 단지 비굴함과 교활함의 극대치일 뿐이었다. 아내의 부정 행위를 눈감아 주는 대신 그녀가 소유한 재산 덕에 평생 안위를 영유하리라는 비열한 이중성의 절대값인 것이다. 나는 그 뒤부터 생활 보장의 절대적 의무를 이행키 위해 부로나 창녀처럼 안방을 드나들긴 했어도 다른 이유로 출입하지는 않았다.
전자 편지함을 연다. 낚시를 다니는 사이에 날아온 편지가 백 여통이 넘는다. 문우들의 안부 편지가 서너 통이 와 있을 뿐 대부분 대출 광고나 낯뜨거운 사진의 유료 성인 사이트 광고들이다. 나는 내 신상 정보가 누출된 데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씩 스팸 처리해 나아간다. 그러다가 ‘비 개인 날에...’라는 제하의 편지를 보고서 고개를 갸웃하며, 마우스를 움직여 가볍게 클릭한다.
보내 주신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편지를 읽는 내내 한 줄기 뜨거운 기운이 가슴속으로 흘러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의 보잘 것 없는 그림을 두고서 그렇게 더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해 주시니 보람과 용기를 느끼고 얻습니다.
그런데 어떻하지요? 작가 선생님께 편지를 쓰려니 도대체 손이 떨려서요. 일찍이 그림을 그리면서 한 번도 손을 떨어 본 적이 없었는데...
하여튼 저의 가슴 뒤흔든 선생님의 감동적인 작품평 잘 간직해 두었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 읽으렵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더니 시절이 바뀌어 어느새 가을 초입입니다.
아, 가을! 늘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계절... 이 가을에 들국화 향기처럼 날아온 선생님의 편지에 그리움이 한 자락 바람처럼 가슴에 스칩니다.
-어느 여인으로부터-
그리움이 한 자락 바람처럼 가슴에...?
마무리가 미묘한 편지의 발신인은 전혀 생소한 닉네임이었다. 허나 나는 채연이 보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거기에는 엉뚱한 상상이나 집요한 추리 따위는 별반 필요치 않았다.
한 달 전 일이다. 문단 선배의 수필집 출판 기념회에 참석키 위해 대전에 갔었다. 시간이 좀 이른 것 같아 행사장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가 시민회관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불우이웃돕기 여백회 판매전’ 휘장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때 일석이조를 떠올렸다. 시간도 벌고 예술 작품도 감상할 수 있으니 이를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듯 우연히 마주한 게 채연의 작품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작품 앞에 섰을 때, 그림 속 풍경이 부소산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만난 화가들 대부분은, 낙화암을 화폭에 올릴 때 백강에서 올려 보는 구도로 그렸다. 허나 채연은 솔밭 사이 벼랑과 그 너머를 화폭에 올려놓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강물과 건너편 전경을 짙은 안개로 가려 놓아 보는 이에게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부소산은 내가 아끼는 산책로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오르내린다. 그렇지만 낙화암 끝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데에는 고소공포증이 한 몫을 하고 있었지만, 백제의 마지막 궁녀들이 떠올라 더욱 그랬다. 눈물로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올라 입술 깨물어 망국한을 삼키던 자리에 우유부단한 내가 감히 서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벼랑 끝 십여 발치 앞에서 멈춰 서곤 했었는데 ‘또 다른 세상’은 바로 그곳에서 스케치한 것이었다. 채연은 강물 자리에 궁녀들이 눈물 사이로 보았을 세상 즉 단순한 끝과 죽음이 아닌 새로운 시작, 그리고 절개에 의한 자조(自助)의 메시지와 버리므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화폭에 올려놓았다. 또한, 자유를 감히 쟁취하려 들지 않고 자유가 없다고 푸념하는 현대인들에게 강한 무언의 질타를 던지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필연적 감성 동감이었을까. 내가 부소산 솔밭에 서면 느끼곤 하던 것을 채연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충동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려고 했다. 서재에 걸어 놓으면 좋을 성싶었다. 허나 이미 누군가에게 팔린 후였다. 무척 아쉬웠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며 작가의 연락처를 수소문하였으나 주최측 관계자는 신상 공개를 꺼리는 여류 작가라서 함부로 연락처를 가르쳐 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명함을 내밀며 이유을 설명하자 관계자는 뒤편의 늙수그레한 누군가와 몇 마디 나누더니 채연의 화실이 부여에 있다는 것을 귀띔해 주며, 그녀의 이-메일 주소를 메모지에 적어 내밀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와 작품 감상문을 간략하게 적어 편지를 보냈던 것이 벌써 한 달 전 일이었다.
채연에게 보낼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이-메일을 확인하게 돼 미안하게 됐다는 말로 시작하는 편지였다. 아내 일로 겪게 된 착잡한 심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모정에 기대고픈 사내의 나약한 감정이 이입된 때문이었을까. 다 쓰고 났을 땐 작가가 쓴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편지가 돼 버렸다. 그래서 대부분의 내용을 삭제한 다음, 산책길에 늘 들고 다니던 창작 노트를 꺼내 거기에 낙서처럼 끄적여 놓았던 메모를 정리해 보냈다.
다음날 오후였다. 서재의 컴퓨터 수리가 끝났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이-메일부터 확인했다. 혹시 채연으로부터 편지가 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허나 답장은커녕 내가 보낸 편지조차 수신하지 않고 있었다. 가슴에 귀하게 품고 다녔던 복권이 한갓 휴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분이라 할까. 아니면 벼르다가 찾아간 친구가 외출 중이었을 때의 느낌이라 할까. 몹시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 후에도 몇 차례 온라인을 드나들며 메일을 확인했다. 허나 스팸 신고했던 광고들이 다른 발신인 이름으로 보내져 있을 뿐 채연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아침이었다. 붉은 기운이 무슨 활화산처럼 동녘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밤새 채연에 대한 생각에 젖어 잠자리에 들 수 없었던 나는 컴퓨터를 끄기 전에 전자 우편함을 열었다. 자정 무렵까지 오지 않았던 편지가 이 아침에 때 없이 와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맥없이 수신 확인부터 했다. 성급한 추측은 늘 비켜 가기 마련인 것이 만물의 이치 중 하나 아닌가. 내가 보낸 편지를 새벽 세 시 반쯤에 수신한 것으로 되어 있다. 빗나간 추측이 이처럼 즐거운 적은 여태까지 없었다. 그랬으므로 황급히 받은 편지함을 연다. 맨 위에 ‘제목 없음’ 편지가 눈에 띈다. 채연의 것이었다. 편지 도착 시간이 네 시가 갖넘은 시간이었다. 추정컨대 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편지를 쓴 모양이었다.
편지를 보내 놓고서 혹여 선생님의 그 곱고 싱그러운 언어가 다시 배달되 있을까 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컴퓨터 앞에 앉곤 했습니다.
참으로 야속하고 무심한 분!! 이 작은 가슴이 까맣게 다 타 버린 이제서야 편지를 주시다니요. 훗날 어찌 보상해 주시려고... 무엇이 그렇게 일상 중에 만남과 이별이, 슬픔과 설음이 교차하게 하였는지요? 까닭을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무겁고 아려 옵니다.
보내 주신 시는 잘 감상했습니다.
아, 어느 여인...! 나를 위해... 나만이... 내 영혼의... 천년을 두고... 선생님의 글은 너무 애틋하다 못해 슬프답니다. 지역 신문에 올라오는 비련의 사랑 이야기도 그렇고...
한 번쯤 만나 저의 그림과 선생님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유익할 텐데... 아무도 어떤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백마강 모래톱 같은 곳에 모닥불이라도 지펴 놓고서 말입니다.
참고로 저의 화실은 궁남지 입구에 있습니다. 질투 많은 남편이 운영하는 백강건설 이 층... 전화는 010-1338-35**번입니다.
방황 중에 오가다가 연락 주세요.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메일 기다리겠습니다.
-어느 여인으로부터-
나는 트레이닝복을 찾아 걸쳤다. 동녘에서 들려 오는 햇발 부서지는 소리가, 손끝에 금세 라도 묻을 듯 투명한 가을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는 것 같아 서재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일찍이 경험치 못했던 격렬한 충동이었다.
어느새 집 앞 고샅길을 빠져나와 들길을 걷고 있었다. 참새들이 허수아비 팔에 앉아 깃털을 고르며 무어라 골려 대고 있고, 고추잠자리 코스모스 대가리를 물고서 기도하고 있는 길이다. 나는 우습게도 궁남지 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두 팔을 벌려 쪽빛 하늘을 끌어안으며 맴돌아 보기도, 커다랗게 탄성을 내뱉어 보기도 한다. 멀리 비닐 하우스에서 일을 하던 농부가 고개를 내밀어 흘끔한다. 나는 흠칫했으나 그것도 잠시 뿐이다.
한 줄기 바람이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하게 얼굴에 묻는다. 백지처럼 되버린 머리 속에 흉허물없이 된 단어들이 휘리릭 휘리릭 날아들어 수를 놓고 있다.
나는 급히 호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볼펜을 손에 잡았을 때, 창작 노트를 들고 나오지 않은 사실을 깨닫고 난감해 한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며, 어떻하지? 하다가 입고 있는 흰 셔츠 앞자락에 아무렇게나 끄적이기 시작한다. 이 같은 느낌을 채연에게 전해 주고 싶어서였다.
푸르름이 지워져 가는 소리
올곧은 코스모스 길을
혼자 터덜거리며 걸으면서도
나 외롭지 않은 것은
내 마음에 존재하는 당신 향해
걷고 있어 그렇습니다.
얼굴 할퀴는 싸늘한 바람 속에서도
옷깃 바짝 여미지 않아도
모닥불 지펴 놓은 것처럼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몰래 훔쳐 볼 수 있는 당신이
들녘 끝 언덕 위에 있어 그렇습니다.
옷을 벗어버릴 채비하는
가로수 아래를 지나치면서도
나 우울하지 않은 것은
당신으로부터 전해지는 기운이
종교보다도 더 충만하게
가슴을 채워 놓아 그렇습니다.
바스러지는 허공의 햇발이
깨질 듯 파아란 하늘빛이
손끝에 묻어 가슴까지 번져 드는 것은
해맑은 미소 흘리며 오고간
당신의 고운 발자국 자리
사뿐히 밟아 보려는 설렘 탓입니다.
가을 길을 무작정 나서게 만든 당신은
내 안에 존재하는 하늘같은 사람
눈부신 햇살 닮은 당신은
스산한 이 가을에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
사랑의 빛 영롱한 그리움이랍니다.
아, 가을이여
행복한 가을날이여
나를 바보로 만든 당신이여...!
나는 그날 이후 하루에 한두 통씩 채연에게 편지를 보냈다. 좋은 하루 보내시라는 둥 행복한 시간 되시라는 둥. 급격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체할 수 없어 그랬다.
하지만 채연으로부터의 답장은 없었다. 또한, 내가 보낸 편지조차 수신하지 않고 있었다. 바쁜 일이 있는 게야 하면서도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여 조바심이 나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아내 몰래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번호를 누르지는 못했다. 사이버 세계라는 가상 공간으로부터 뛰쳐나가 그릇된 만남으로 진전될까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으므로 혹 오고가다가 옷깃 스치거나 그 앞을 엇갈려 걸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궁남지 부근을, 부소산 길을 괜스레 히히덕거리며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떠오르는 느낌이 있으면, 창작 노트에 적어 놓았다가 집에 돌아와 채연에게 전송했다.
푸르름 꺾인 갈참나무 사이
시리게 가슴 헤집는 바람길을 걸으면서도
당신 향한 속된 마음조차
고결하게 여기려는 것이
죽음이 세상 인연 갈라놓는 날에
천상의 죄지음으로 남을지라도
나는 결코 주저하지 않으렵니다.
체온이 채 식지 않은 호흡 사이
그토록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다정히 부를 수 없는 당신의 이름
성스럽게 가슴에 새기려는 것이
하늘이 서로를 갈라놓는 날에
천주의 노여움으로 다가올지라도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으렵니다.
먼지보다 가볍게 지나쳐 온 시간들
처연한 몸부림으로 헤엄쳐 온 나날들
십자가에 대한 신뢰조차
여백 없이 메말라 버린 틈
순백한 하늘빛으로 메워 놓은 당신은
이미 나 죽어서도 지워지지 않을
사랑이 돼 버린 까닭입니다.
일주일이 그렇게 흘렀다. 채연에게선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역 신문 편집장에게서 원고 독촉 전화가 왔지만, 집에 급한 일이 있다며 펑크를 냈다. 아내 일을 익히 알고 있는 편집장인 터라 더 이상 아뭇소리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문예지에서 원고 청탁이 왔을 때에도 매한가지였다. 그럴듯한 거짓 핑계를 앞세워 다음 호로 미뤘던 것이다.
나는 도무지 채연에 대한 생각으로 원고지 앞에 앉아 있을 수 없었으므로, 수도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도, 온라인과 오프 라인을 반복해 넘나들기도 했다. 허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나만 그렇게 애가 탔다. 그러다가 채연에게서 이-메일이 온 것은 소식이 끊긴지 열흘만으로, 내가 보내 편지가 스무 통에 가까울 무렵이었다.
바람 한 점 머리를 훑고 지난다. 애처롭고 가련한 나를 닮은 가을 바람이다. 그가 보고 싶다.
사방을 둘러보는 습관이 새롭게 생겼다. 찻집에서, 길을 가다가, 아니면 모임 장소에서, 대인 기피 증세에 가까운 내성적인 내가 낯모를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길 꺼려하지 않게 됐다. 그가 어딘가 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를 찾는 것이다. 눈만 마주치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번 주말엔 그가 잘 다니는 부소산 바람길에, 궁남지 연꽃 길에, 백강 둑성이 코스모스 길이나 갈대밭에 나아가 보련다. 어쩌면 그곳에 그가 산책 나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그를 만날 용기가 없다. 마주치면 흔들려 그의 가슴에 안겨 울음부터 터트려야 할 테니까. 나는 그런 내가 어쩌면 두려운 것이다. 언제나 깊은 곳에 깊숙이 빠져들곤 하던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행인 것이 있다. 내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무척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인영이 뇌리를 스쳐 미쳐 버리고 말았을 터인데...
-어느 여인으로부터-
밤이 깊어지면서 눈발은 더욱 거세졌다. 마치 최면이라도 걸려는 듯 어지럽게 흩날린다.
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코끝을 베무는 삭풍이 얄궂다. 바바리 코트 깃을 바짝 세워 코를 묻지만, 한기가 심장까지 파고든다.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이, 젖은 운동화 발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그래서 내 눈에 물기가 촉촉해지고, 몸은 온통 닭살처럼 돼 버렸다. 돌연 어릴 적에 끼우고 둘렀던 목도리며 벙어리장갑, 혹은 덧버선이나 털장화가 그립다. 허나 나는 어떤 추억을 찾아 바보처럼 좇긴 해도 그따위 것들 때문에 울지 않는다. 그래서 야무진 걸음으로 보란 듯이 눈보라를 헤쳐 나아간다.
얼마를 걸었을까. 고개를 비껴 들었을 때, 나는 백강건설 앞에 서 있었다. 이런 날씨에, 이 늦은 시간에, 궁남지나 백강 둑성이 길에 아무도 있을 리 없었던 것처럼 채연은 화실에 없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입구 철문은, 감옥 문이나 폐가처럼 굳게 잠겨 있고, 건물은 차갑고 두꺼운 어둠에 휩싸여 있다. 바람에 덜컹거리는 채연의 온기 없는 화실 창문이 왠지 사슴의 눈처럼 서글퍼 보인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연기 속에 한숨을 감춰 내뱉으려는 것이다. 사실 이곳으로 오면서 아, 내사랑... 얼마나 추웠을까 하며, 내 머리며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 줄 채연을 고대했던 것은 아니다. 허나 기대가 무너진 뒤 느끼는 무기력함에 휩싸인다.
나는 의미 없이 돼 버린 시선을 거두려다가 갑자기 진저리를 친다. 내 삶이, 내 사랑이 서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수직의 창이 에돌다가 부딪는 눈발을 감히 담지 못하듯이 부르주아지적 습성에 익숙한 채연 역시, 결국 마지막 남은 나의 우수나 낭만이며 열정과 애탐들을, 불행을 무릅쓰고 어디에도 담지 못하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문득 뒤돌아본다. 궂은 날씨 개의치 않고 어금니를 악물어 걸어 온 발자국들이 거지반 지워져 버렸다. 아마도 인생이란 그런 것이리라. 그래서 행복했던 과거들을 시시콜콜 불러모은다. 허나 온통 결과적으로 서러운 것이 돼 버린 추억들뿐이다. 나이가 어려서, 도발적이지 못해 시시하다고, 조용히 귓불을 물으며 속삭이던 여인이며, 몸과 육체적 인내를 더 키워야 되리라던 여인의 초라한 추억과 같은. 그래서 고개를 흔들어 떨쳐 버린다. 허나 잉크 냄새에 절은 손으로 눈물을 지우던 모습이며, 한 세상 밝힐 밝은 빛을 찾아 고독의 벽을 즐겨 더듬던 모습. 혹은 담배 연기 깊게 밴 번뇌의 시간이나 그런 대로 괜찮은 세상이라 증명하기 위해 깨끗한 척 하다가 허청허청 술병을 들고 시장 뒷골목을 개처럼 구를 수밖에 없었던 모습들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있다. 그래서 담배 연기만 연거푸 들이켰다가 내뱉는다.
갑자기 부소산에 가고 싶다. 고란사의 목탁 소리도 잠들고, 어둠과 눈, 그리고 차가운 삭풍에 묻혀 있을 낙화암이다. 사각 초롱 모양의 가로등이 삼충사까지만 켜져 있어 야간엔 한 번도 그곳까지 가 본 적도, 가볼 엄두조차도 내지 못했었다. 허나 오늘밤은, 백제의 마지막 궁녀들처럼 낙화암 끝에 서 보리라. 미끄러운 눈길에, 눈보라 사나운 이 밤에, 왜 갑자기 그곳에 가고 싶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자석처럼 끌고 있는 어떤 기운을 감당키 어려웠다.
나는 스스로에게 아, 이건 미친 짓이야 하고 길을 막지만,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니던가? 하고 되묻는다. 그리고는 더욱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래서 삶이란 그냥 지나쳐야 하는 간이역과 같은 것이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내 사랑도, 이에 따른 가슴앓이도, 스치는 바람과 같은 것 아니던가? 채연은 더 이상 미동도 없을 것인데 나만 이 밤에 괜스레 미쳐 날뛰고 있으니, 이게 다 미친 짓이지... 아내가 싫다고 미워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랑한다고 더 뜨거워지거나 가까워지지 못할, 그래서 적당함으로 잔을 채워 허공에 들 우리들이 아니던가? 그냥 저 쏟아지는 눈발처럼 아무렇게나 휘날리다가 내려앉으면 그만인 것을... 나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고 있어. 이 지구에 여행 온 기분으로 살면, 한결 좋아진 나를 발견할 것을... 한다.
나는 목젖 치받는 기이한 느낌을 꿀꺽 삼킨다. 쏟아지는 눈발과 뒤섞여 펑펑 울고 싶은데 눈물은, 이미 지난날에 거짓과 위선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해 다 써 버렸다. 그래서 눈만 깜박이고, 한숨을 담배 연기에 숨겨 불며, 몽유병 환자인 양 인적 끊긴 시외버스 터미널 앞을 지나 맹목적으로 부소산을 향해 걸어간다.
부소산성 고샅길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였다. 맞은 편 신호등 아래에 한 여인이 눈을 흠뻑 맞고 서 있다. 한 눈에도 나처럼 우울한 기운에 잔뜩 젖어 있고, 심하게 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인은, 아이보리색 모자 달린 롱코트에, 역시 같은 색의 털모자와 목도리를 깊숙이 눌러 쓰고 칭칭 둘렀다. 바람에 간헐적으로 나부끼는 코트 자락 사이로 청바지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부츠가 퍽 이지적이다.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 왔다. 나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 지나거나 멈춰 선 차량은 없었다. 단지 건너편에 서 있는 여인이 길을 건너오지 않고 고개만 떨군 채 서 있었기 때문이다.
눈보라가 훅 몰아쳐 왔다. 여인의 몸이 약간 흔들렸다. 나 역시 조금 흔들린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대로 서 있다.
신호등이 몇 차례 바뀌고, 파란 불이 다시 들어 왔을 때였다. 패트롤카가 체인 소리를 툴툴툴 내며 다가와 멈춰 섰다. 경찰관이 가볍게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는 차창 유리를 내리더니 어떤 큰 배려라도 하듯 나와 여인을 향해 길을 건너라고 수신호를 한다.
언제까지 자리를 뜰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여인이었다. 그때서야 나무늘보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 듯 횡단보도를 천천히 건너오고 있다. 나 역시 인도를 내려간다. 그리고는 의도적으로 여인 앞을 엇갈려 지나며 코트 자락을 스쳤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돌연 증기 기관차의 동력같이 시끄러운 소리가 심장에서 들려 왔고, 현기증이 휑하니 일었다. 여인에게서, 여백회 전시회장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수묵 담채화 특유의 담향이 거리에 흩뿌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 도로 한가운데에 그러고 계실 건가요?”
나는 움찔한다. 경찰관이 농담을 건네는 듯한 어투로 말을 걸어 왔기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제 길을 가야겠지요. 제 길을...”
웃고 있는 경찰관을 흘끔 본 나는 황급히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리고는 뒤돌아 선다. 어지럽게 휘날리는 눈발 사이로 여인의 뒷모습이 아득하게 보였다. 종종 걸음으로 내가 지나쳐 온 길을 따라 멀어져 가고 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눈 위에 찍힌 여인의 발자국 옆을 몇 걸음 걸어 본다. 그리곤 멈춰 되돌아본다. 사랑하는 연인이 팔짱을 끼고 걸어간 듯한 발자국이 선명하게 도로에 찍혀 있다.
고개를 되돌려 들었다. 하지만 여인의 모습을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별안간 어떤 뜨거움이 두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슴속에 타인의 여인을 담고 한평생 침묵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쩌지 못해 밥줄에 끌려 다녔다는 핑계와 앞으로 내가 이 더러운 세상에서 챙기고 말 아부의 몫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서러웠던 것이다.
나는 침울한 어조로 조용히 뇌까린다.
잿빛 하늘 갈아대다 지친 구름 같은 난데, 이 땅덩어리 모두 먹으로 갈아댄들 가슴 속 사연 다 쓸 수가 없는 난데... 아, 한 번만이라도 좋다. 이 세상을 길들여 봤으면... 아, 단 한 번만이라도 좋다. 내 마음속의 여인을 힘껏 끌어안아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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