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데뷰작) 푸서리의 끝.
(2000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작)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고 택시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원동고개를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회색 공항 택시였다.
한박사는 초조한 듯 등받이에 몸을 밀착하지 못한 채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묵직한 느낌의 산이 멀리리 시선 끝에 무슨 병풍처럼 보였다. 천방산이었다. 지난 세월 한시도, 잠깐 꾸는 꿈에서조차 잊은 적 없었던 고태의연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구름이 산자락을 휘감아 끌어안고 있다. 그러므로 모습을 또렷하게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랬으므로 스카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수줍은 여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한박사가 갑자기 흥분을 한다. 오랜 연구 끝에 예상밖의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 놓고 이를 확인할 때의 표정이다.
하지만 돌연 맥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고개가 떨구어진다. 아스팔트가 무슨 흑백 필름 같이 이어져 있다. 그 위를 낙엽이 바람에 휩쓸려 나뒹굴고 있다. 가을이 황급히 지나쳐 가느라 그 잔재들을 채 지우지 못한 모양이다. 벌써 쓸어 내거나 낚아 냈어야 할 어떤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아 을씨년스럽다. 이를 쓱 훑어보는 한박사의 가슴이 눅눅하다. 조금 전까지의 설레임은 오간데 없다.
그러나 이내 가슴은 끓어 올랐으므로 격앙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보시게 기사양반. 저기 보이는 저 산이 바로 백제의 서글픈 망국의 한이 깃든 천방산이고··· 이곳 문산에서 큰 문인(文人)이 나올 것이라는 전설 때문에, 왜놈들이 다리를 놓아 그 맥을 끊고 도마다리라 불렀던 곳이라네.”
택시는 언제까지나 거침없이 질주할 것만 같았었다. 한박사의 흥분된 어조에 급히 멈춰 선다.
중년의 택시기사가 긴장감 가신 얼굴로 뒤돌아 보며 묻는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죠?”
“글쎄···? 고향을 떠나온 것이 워낙 오래 전의 일인지라, 나 역시 마냥 어리둥절 하이··· 모든 게 너무 많이 변했어. 도로며 집들··· 방과후에 동무들과 어울려 벌거숭이가 되어 멱감던 냇물은 사라지고, 저곳엔 저수지가 들어서 있군. 그저 처음 와 보는 곳 같으이··· 이보게, 저기 보이는 저 높은 봉오리 남쪽 능선 아래로 가야 하는데 모든 게 변해 어느 길로 가야만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군.”
“알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만의 귀향이시기에 이처럼 변한 것을 모르고 계시죠?”
“자네 얼굴 보기 민망할 노릇이구먼. 그러니까 그것이··· 육이오 동란이 일어나기 일 년 전에 이곳을 떠났으니까···?”
“저런, 그럼 오십 년이 훌쩍 넘어버린 까마득한 옛날 일이군요?”
“오십 년···? 휴···! 벌써 그렇게 됐나? 하긴, 내 나이가 벌써 이순 줄이 다가고, 머잖아 고희가 되가니까···! 정말 까마득한 옛날 일이군.”
“......?”
택시기사는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는 양 고개를 갸웃뚱히 기울이더니 차를 출발시킨다. 배우고 잘난 사람이란 모두 그런 것인가 하는 듯한 뇌꼴스러운 표정이 정면 후시경을 통해 흘끔흘끔 비쳐진다.
한박사는 택시기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았다. 아무리 외국에 나가 있었고, 일에 파묻혀 숨가쁘게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결코 오십여 년만에 고향 땅을 다시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너무했다 싶었으리라. 그래서 한박사는 누군가 긍적적인 면만을 골라 변론을 펼쳐 준다 해도 오히려 민망해 사양할 지경이다. 그런데 전후 사정 없이 일반적인 상식만을 갖고 있는 그는 오죽하랴 싶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괴지심(自愧之心)의 복받치는 감정에 타 들어가는 입술이었다. 따라서 입술을 핥는 혀끝엔 쓴맛이 가득히 묻어 난다.
별로 눈길을 잡아끌지 못할 밋밋한 풍경들이다. 하지만 늘 눈에 밟히던 것들이다. 따라서 골수에 사무치도록 그리하던 고향땅인 것이다. 오랜 세월 이곳을 드나들지 않았던 것은, 정녕 밟고 싶지가 않아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잘난 맛에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는 그런 몰지각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변명을 한다. 하지만 그따위 것들로 자위가 될 리 없다. 그럴수록 가슴만 뭔가에 찔린 듯 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가슴이 이토록 저며 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택시가 검바위 모퉁이를 돌아서고 있다. 한 박사는 수학여행을 떠나온 아이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처럼 들떠 있다. 이곳이 밤나무골 이라는 것을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에서 금세 알 수가 있다. 틈만 나면 낙서광처럼 아무데나 끄적이기도, 허공에 수채화처럼 그려보던 고향이 바로 이곳이었다.
한박사가 홍조를 띤 얼굴로 윈도우를 내린다. 성급하게 고개를 차창 밖으로 반쯤 내민다. 설레는 마음에 알몸으로 뛰쳐나가 우쭐우쭐 춤사위를 벌려도 좋고, 여기저기를 나뒹굴며 비비적거려도 좋을 성싶다. 정녕 꽃보다 향기로운 고향의 흙 냄새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처럼 살가운 풍경들이다.
한박사의 눈빛이 반짝인다. 눈물이 잔뜩 머금어져 있다.
택시가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수령이 오백살은 족히 될까.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 진작부터 한박사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었는 모양으로 여기저기에 지루하게 앉아있던 사람들이 급히 택시를 에워싼다.
그러나 얼굴 표정들이 밝지가 않다. 마치 비극적 사건으로 산화한 영령 추모회장이나 폐잔병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어느 행사장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물리학자인 한박사였다. 오십 년만의 금의환향 치고는 결코 화려하지 않은 쓸쓸한 귀향이었다.
한박사가 차에서 내린다. 누런 상복 차림의 늙은이가 성큼 다가온다. 다짜고짜 한박사의 손을 잡아 흔든다. 낯설지가 않다.
한박사의 직감이 섬광처럼 퍼득거린다. 어떤 동질감에서 비롯된 반사작용이나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자신과 피를 나눈 하나 뿐인 동생 정규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태규 성님!”
“정규야! 오, 네가 내 아우로구나.”
재회의 기쁨이 믿기어지지 않는다. 현실 아닌 어떤 이상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 하다.
눈물을 머금은 채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만 했던 그날 이후, 전화를 통해서 겨우 목소리만 몇 차례 들었던 아우였다. 원동 고갯마루까지 뒤따라오던 때가 떠오른다. 기약 없는 이별이 아쉬워 끝내 울음을 터트렸던 아우의 모습이 현재의 사실처럼 생생하다.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팔이 떨어져라 흔들어 주었던 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우의 검은머리는 온통 흰머리로 바뀌어 버렸다. 팽팽했던 얼굴 역시 그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다. 따라서 한박사는 주름 투성이의 늙은이로 변해버린 아우의 모습에서, 덧없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러나 성에 낀 욕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아우의 얼굴이다. 결국 세상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었던, 끈적한 혈육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것이 그저 감개가 그지없을 따름이다.
“성님! 증말루 보구싶었슈.”
“아우···!!”
마치 격투기라도 하려는 기세였다. 격렬하게 끌어안는 아우의 격앙된 몸동작에, 한박사의 충혈된 눈에선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진한 눈물이 기어이 흘러내렸다. 한박사는 굳이 그것을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부서지는 햇발에 눈이 아려서라 치부한다. 하지만 어떤 논리 정연한 반론이나 변론 따위로 이를 부정하거나 감출 수 없는 끈적한 회한의 눈물이었다. 오십 성상 감히 이 땅을 밟을 수 없었던 서러움이 일순간 돌풍처럼 불어닥쳤던 것이다.
한박사의 몸이 술에 취한 듯 휘청인다. 몸을 가눌 수 없다. 지난날들이 떠올라 눈앞을 스쳐 현기증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결코 고향과 피붙이를 생각하며, 감히 눈물조차 함부로 흘릴 수 없었던, 통한이 가득 서린 잔혹스런 세월의 아련한 기억들이 해일처럼 거칠게 밀려왔던 것이다.
한박사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던 흐느낌이 차츰 오열로 변해 갈 즈음이다. 누군가 그의 등을, 다소 통증이 느껴질정도로 두드려 온다.
“이보게 한박사. 아니 태규! 날 알아 보것능가 이사람아?”
한박사가 아우를 부둥켜안고 있던 팔을 풀며 고개를 돌린다. 말을 붙여온 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바라보고 있다. 다정스레 말을 건네 온 것으로 미루어 자신과 무척 긴밀했던 사이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혀 알아 볼 수 없는 주름 투성이의 촌노였다.
“이 사람아 날쎄, 예전날 자네가 딱부리라구 불르던···”
한박사가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쓱 닦아 낸다. 상대가 구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밝혔으나 잠시 머뭇거린다. 세월 속에서 연기처럼 흩어졌던 기억들을 더듬고 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질 무렵, 촌노를 바라보던 한박사의 눈빛이 반짝인다. 마치 백사장에 떨어트린 좁쌀을 발견한 듯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서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눈빛이다.
“눈딱부리···? 오 이런, 그럼 자네가 살구나무 안집에 살던 눈딱부리 최두성이란 말인가?”
“그려, 왜 아니것어. 내가 그 눈딱부리 두생이구먼··· 이 사람 날 잊잖구 여지껏 기억허구 있능겨?”
“이보게, 내가 어찌 자넬 잊을 수가 있을까. 죽어 모골이 진토 된다면 모를까··· 내 워낙 오래간만에 만나 보는 자네라서, 옛 모습을 찾을 길 없어 잠시 머뭇거렸네. 자네 정말 많이 변했군.”
“태규, 죽잖으니께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능구먼. 반가우이.”
“두성이···!”
한박사는 악수를 청해 오는 백발의 촌노의 손을 미끄러운 물고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힘껏 움켜잡는다. 최노인은 젊은 날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그런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듯 머리를 몇 번인가 흔들다가 거칠게 끌어안는다.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절로 새어나온다.
“성님, 예서 이러실 게 아니라, 얼릉 집으로 가십시다유. 부친 거상중(居喪中)에 상주가 밖이 나와서 오랫동안 이러구 있다능 게 남 보기 볼썽 사납쑤.”
“그래 아우, 그러게 하자구나.”
한박사는 그제야 잊었던 부친의 상중이란 사실을 깨닫고는 상봉으로 들뜬 가슴을 추스린다.
부친의 주검이 모셔진 방문은 철옹성의 성문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한박사가 고개를 들지 못한다. 면구스런 마음 뿐이다. 아우의 손에 의해 방문이 열리자 느슨했던 세포들이 움츠려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얀 마포가 걷히고, 부친의 주검이 드러났다.
한박사는 기억속에서 꿈틀대던 살벌한 부친의 모습을 찾고 있다. 하지만 찾을 길 없다. 지난날 자신을 향해 살기 어린 험악한 표정으로 파문(波門)의 뜨거운 불호령을 내뱉던 부친의 모습을 어쩌면 가뜩이나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십여 년만에 배알하는 부친은,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더구나 장남의 임종 참관조차 없이 떠난 쓸쓸한 죽음 앞에서 오열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서럽다는 느낌이 전신을 마비시키고 있다. 아직도 생생한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 싸늘한 죽음으로 묵묵히 누워 있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서러운 일인 것이다.
“아버지, 어서 몸을 일으켜 이 천하의 몹쓸 것을 호되게 나무래 주세요···! 어흐흑··· 아버지···!!”
종문에서 자신을 추방하고, 부자(父子)이기를 선언하셨던 야속한 부친이었다. 하지만 지난 세월 일찍이 찾아와 석고대죄 하지 못했던 자신이 오히려 밉다 못해 저주스럽다.
부친은 무언가 할말이 있었던지 입술을 채 다물지 못하고 있다. 호된 욕지거리 섞인 지청구가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만 같다. 그러지만, 끝내 침묵하고 있는 싸늘한 모습이 한박사를 서럽게 만들고 있다.
오열을 내뱉는 한박사의 통곡 소리가 어눌해질 즈음이었다. 뒤편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지켜보고 있던 아우가, 기어이 코를 훌쩍거리더니 사뭇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님, 고만 고정허구 이것 받으슈. 아번님이 운명허시던 그날, 아무두 몰래 베개 밑에 감춰 두고 보시던 성님의 이 사진을 내게 내밀으셨다우. 모든 걸 다 용서헌다구 허시믄서···”
아우가 사진 한 장을 건넨다. 한박사의 손이 수전증이라도 있는 듯 떨린다. 열 일곱 학창시절 까까머리의 사진이다. 오랜 세월 동안 부친의 손길에 닳아 버려 그 형체만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빛 바랜 사진이다. 부친의 체온이 전해지는 것 같다.
“아버지··· 어흐흑···!”
“그리구 우리 문산 한씨(文山韓氏) 가문을 빛낸 성님이 자랑스럽다구까징 허셨쑤. 마지막 절명 허실 땐, 눈물을 흘리시믄서 성님 함자를 몇 번이구 되뇌이믄서 가셨다우.”
아우가 어깨를 들먹거린다. 울컥 치미는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 이를 어째···? 아버지···!”
한박사가 부친의 주검 위로 쓰러져 실신한다. 부음을 받고 단숨에 태평양을 날아온 피곤함. 구곡 간장에 그득히 쌓인 죄책감. 결하지세(決河之勢)로 엄습해 오는 슬픔의 반사적 허탈감이 그의 몸을 도저히 가눌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찾아오는 조문객들이 쑤군거렸다. 아흔 다섯 수(壽)로 생을 마감한 부친의 죽음을 두고 호상(好喪)라 위로하기도 한다.
한박사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물리학계의 거두였다. 이를 둔 부친의 죽음은, 분명 호상이라 하여도 크게 잘못된 것이 없었다. 천방산 정기를 받은 그가, 홀홀 단신 태평양을 건너가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룩해 낸 업적들을 되돌아본다면, 사뭇 자랑스럽고 부러웠을 일이다.
그러나 한박사는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외형으로 드러난 화려한 모습 이면에 가려진 자과부지(自過不知)의 흉측한 몰골을 끄집어낸다면, 통한의 피눈물이 절로 흘러나온다.
다음날, 발인제(發靷祭)가 끝나고 상여는 천방산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한박사의 한 맺힌 곡소리가 뒤를 따르고 있다. 절규에 가깝다. 상여꾼들은 차마 눈시울을 붉히느라 요령 소리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울지마라 우리상주 눈도붓고 목도쉰다.
어허어하 어허어하......
두고가는 나도섧다 우지마라 우리상주.
가세가세 어서가세 북망산천을 어서가세.
허망허다 허망허다 인간 세상 허망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서러마라.
명년삼월 춘삼월에 너는다시 피련마는.
우리인생 한번가면 다시올줄 왜모르나.
이제가면 언제오나 올날이나 기약하소.
까마귀머리가 희거든오시나 말머리뿔나면 오시려나.
병풍에다 그린닭이 훼를치면 오시려나.
금잔디랑 울을삼고 떼장으로 이불삼어.
심신산골 홀로누워 과거지사 생각허니.
허망허네 허망허네 인간세상 허망허네......
상여가 나가기 전까지,
“행상(行喪)에 돈냥이나 두둑허니 걸어 놓잖으믄 출상은 어림두 옵꾸먼!”
하며, 소리 높여 장난 섞인 으름장을 늘어놓았던 상두꾼들이다.그러나 한박사의 애절한 곡소리에 덩달아 통곡했던 것이다.
중천의 해가 서산으로 한 뼘쯤 기울어 갈 무렵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친 곁에 부친을 모셔놓고 모두 산을 내려갔다. 따라서 한박사만 어버이 묘소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지닌 채 떠난 양친의 넋을 눈물로 위로 하려는 듯 오열을 토하고 있다. 부친의 죽음도 물론 커다란 슬픔이었다. 하지만 모친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몸을 가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오십 여년 전 자신이 문산 한씨 문중에서 파문되어 내쫓기던 날, 그때 그 충격으로 쓰러져 화병을 얻게 되 유계(幽界)로 떠나간 모친이었다.
한박사의 뇌리에 지난날이 스친다. 새삼스럽다. 부친 모르게 아우 정규로부터 모친 부음을 받고 찾아왔던 때의 기억이었다.
지엄하기로 소문난 부친이었다. 태규에 대한 노여움은 몹시 매몰찼다. 모친의 부음을 받고 찾아왔을 땐 부친은 이미 자신의 호적에서 태규의 이름 석자를 깨끗이 지워 놓은 상태였다. 말로만의 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변명의 여지란 없었다. 하소연할 곳은 더욱 없었다.
문전에서 내박치던 자신의 인영이 안타깝게 뇌리를 스친다.
“요런 천하의 몹쓸것! 내 늬늠을 파문허구, 엄연히 남남이길 주장 혔거늘?! 워찌 비렁뱅이츠름 넘이 집 문턱을 감히 얼쩡대능겨 이늠아?! 고것두 슬픔으로 가득헌 상갓집 앞을 꼴사납게 떠돌이 개츠름 말여?! 퍼뜩 물러가거라 이늠아! 그렇잖으믄 내 늬늠의 배를 째 오장육부를 꺼내 들구 조상님께 죄를 다시 고할 테니께 말여?!”
“아버지···!”
“저, 저 쳐쥑일! 늬늠이 시방 워디다 대구서 아버지라 함부루 주둥일 나불거려?! 내 늬늠츠름 인륜과 도덕을 파렴치허게 저버린 금수같은 늬늠을 자식으로 둔 적이 웁다는 데두···?! 정규야, 저 몹쓸 것을 싸게 내치거라! 얼릉, 저 버러지 같은 것을 말여···!”
한박사는 결국, 모친의 마지막 길을 모시지 못한 채 까마귀 서럽게 울고 있는 느티나무 아래를 쓸쓸히 걸어 나와야만 했었다.
한박사는 지금에 와서 땅을 치며 서러워 한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의지 없이 흘러나오는 곡소리는 멈출 줄 모르고 천방산에 메아리 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뒤편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굵직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 온다.
“이보게 태규, 이제 그만 허이.”
한박사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오, 두성이 자네였군.”
최노인이 서 있다. 모두가 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멀찌거니에서 서글픈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최노인이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한박사의 입술을 닦아준다. 손수건에서 니코틴 냄새가 풍겨나와 폐부를 자극한다. 하지만 따스한 정이 느껴져 그런 냄새를 중화시킨다.
최노인의 하얀 손수건이 붉게 물들어 있다. 피였다. 한박사는 그때서야 목젓이 따갑다는 것을 느낀다. 목젓이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최노인이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내 놓는다.
“슬퍼허지 말게. 피를 토하믄서 통곡허는 자네의 슬픈 심정 짐작치 못 허는 바 아닐쎄 마는, 다 부질웁는 일이구먼.”
“······!”
“사람이든 미물이든, 한 번 이 시상으로 굴러오믄 반드시 저 시상으로 굴러가야 허는 벱인디 그리 �게 곡 헌다구 가신 분들이 되돌아 올 순 웁는 일 아니던가 말여?”
“하지만 내가 오열하는 의미는 그것이 아닐쎄··· 난 말이야, 부모님께 그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업과를 남겼으이···”
“아닐쎄. 결국 부친께서두 자넬 용서허셨다구 허잖든가? 잊게나··· 그 일은 덧웁는 바람이구먼.”
“바람···? 그렇겠지···! 허무히 스쳐 지나간 바람이었겠지. 하지만, 내게 있어 그 바람은, 훈풍도 건들마도 아닌 돌풍이었네. 내 존재의 모든 것을 한 입에 집어삼키고,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고 지나간 잔혹한 회오리바람이었어.”
“그럴 게야. 그러 허긴 인애두 마찬가지 일꺼구...”
순간, 한박사의 눈빛이 반짝인다.
“인애? 인애··· 아···! 그래··· 인애··· 그 이름이 인애였지···!”
한박사가 인애란 이름을 끊임없이 되뇌고 있다. 짧은 순간에도 운명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떤 예정성이라든가 천명 사상에 대한 논리보다는 죄책감이 한 발 앞서 운명에 대한 정의를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위눌림 당하는 듯한 암담함과 그 뒤에 느끼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정말 새삼스럽군.”
한박사가 인애의 얼굴을 떠올린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단 한 번도 커다랗게 불러보지 못했던, 멍에요 족쇄와 같은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최노인을 바라보던 한박사의 눈길이 먼산 바래기로 던져졌다. 허공에 요원한 기억 속에 묻혀져 있던 인애의 흐릿한 인영이 풋풋하게 그려지고 있다. 인애와의 마지막 순간들이 현실처럼 또렷하게 떠오르고 있다. 벌써 오십 여년이 지나버린 한박사의 나이 열 일곱 살의 까마득한 때의 일들이었다.
만월이 자발 없이 구름 사이를 제멋대로 드나들고 있다. 불여귀가 처량하게 울고, 풀벌레 소리가 적막을 메우고 있는 어스름한 달밤이다.
천방산 성황당 고라당이다. 늘 그랬듯이 달그림자 속에서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사뭇 은밀해 보인다. 이윽고 마을 수호신이 모셔진 당집에 도착한 그들은 머뭇거림 없이 당집 안으로 급히 들어 선다. 태규와 인애였다. 분위기가 여느 때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인애···!”
“태규 오라버니. 왜 이래? 이러지마.”
태규는 당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인애를 와락 끌어안는다. 거친 숨결을 내뿜으며, 입술을 뜨겁게 탐해 나간다.
“사랑해 인애···”
“오라버니, 이러면 안돼. 이건 안돼는 일이야· 이러면 다시는 오라버닐 만나지 않을 꺼야? 이러면 정말 싫어 오라버니.”
“인애, 난 널 사랑해··· 그리고 너 역시 날 사랑하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지만···”
“그럼 됐어. 인애 내 사랑···”
“그렇지만, 이것만은 절대 안돼. 이건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짓이야. 절대 해서는 안될 몹쓸 짓이라고···”
인애는 거칠게 파고드는 태규의 본능의 손길을 짐짓 뿌리치고 있다. 하지만 몸동작엔 말처럼 절대라는 관념은 이미 허물어져 있다. 사실 처음부터 인애의 손길엔 밀치려는 방어 본능보다는 태규의 애염에 사로잡힌 거친 몸부림을 더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태규의 손길이 애욕으로 뜨겁다. 인애의 옷고름이 풀려진다. 하얀 속곳이 삽시간에 벗겨져 나가고 있었지만, 인애의 저항은 그저 혀끝에서 작게 맴돈다. 그래서 태규에겐 속삭임 같이 느껴질 뿐이다.
“오라버니, 이러지 말래도···”
“염려마. 내가 모든 걸 책임질 거니까. 오늘부터 넌 내 사람이 되는 거야. 영원히 말이야.”
“어떻게···?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것이지?”
“이곳을 멀찌감치 떠나가는 거야. 아주 멀리··· 아무도 우리들을 알아 보지 못하는 곳으로 말이야. 그리곤 매일같이 같은 꿈을 함께 꾸는 거야.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아···! 하지만··· 이건··· 아···”
“사랑해 인애···”
“아···!!”
두 사람의 희뿌연 속살이 바라지를 통해 흘러드는 달빛에 눈부시게 드러난다. 서로가 격정에 사로잡혀 한데 뒤엉킨다. 두 사람이 황홀함에 겨워 흘리는 혼탁한 비음이 거칠게 당집을 울린다. 구름 사이를 숨 가쁘게 오가던 만월이다. 구름 사이로 아예 숨어버린다. 뜨거운 사랑을 지켜보기가 쑥스런 모양이다. 질척한 사랑을 매섭게 노려보던 수호신의 초상 역시 이와 동시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랬으므로 그믐날과 같은 어둠 속의 당집은, 두 사람이 내뱉는 신음 섞인 숨결과 끈적한 땀 냄새가 전부였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만월이 다시 세상에 수줍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두 사람의 격정적 몸동작은 끝나 있었다.
“난 이제 어떻해야 하는 거야?”
“어떻하긴, 인애 넌 내 사람이 된 거지. 울지마 인애. 우린 서로 사랑하잖아? 우리의 사랑은 드디어 열매가 맺기 시작한 거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그저 꿈결 같은 행복뿐이라고···”
“하지만 우린 절대 해선 안될 짓을 한 거야 오라버니. 으흐흑··· 그것도 아주 몹쓸 짓을 한 거라고··· 어흐흑···”
“인애···!”
“오라버니··· 어흐흐흑···”
옷깃을 여며 주는 태규의 가슴으로 인애가 안겨 든다. 얼굴을 묻더니 서럽게 울음을 터트린다. 본능적으로 뜨겁게 부둥켜안는 태규는 알 수 없는 느낌에 진저리를 친다. 뭔가 단단히 잘못돼 간다는 느낌의 스산함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당집의 문이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활짝 열린다. 훤한 달빛이 눈부시다.
하지만, 이내 시꺼먼 그림자가 가로막는다. 이어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고함소리가 커다랗게 당집 안을 울린다.
“요런 빌어먹을 천하의 몹쓸 것덜!”
“헛! 아, 아버지···”
“다, 당숙 어른···!”
검은 그림자는 인애의 아버지이자 태규의 종숙이었다.
“망할 것덜! 금수 같은 두 년 늠덜이 시방 뭔 짓꺼릴 헌 것인지 알기나 허능겨?! 이것덜아, 늬늠덜은 불취동성(不娶同姓)의 불궤를 범헌겨! 드러운 상피가 붙은거라구?! 시방 우리 가문에 멸문지화(滅門之禍)나 진배웁는 역겨운 짓꺼릴 헌 걸 알기나 허능 겨 철딱서니 웁는 것덜아...?! 아이구 워쩔꺼나? 죽어 워찌 조상님을 뵐까···”
“당숙 어른!”
“당숙? 요런 망헐 것! 사촌 성님이 늬늠을 논 팔아 대처루 보내 큰 사람이 되거라 허셨는디 나가서 배웠다능 게 겨우 이건 겨? 근친상간(近親相姦)의 드러운 이 짓꺼리냐구 이늠아?!”
“······!”
종숙은 쌍심지를 거꾸로 세운 채 잠시 불규칙한 호흡을 하고 있더니 먹이를 발견한 배고픈 포식자처럼 당집 안으로 뛰어들어 온다. 태규가 팔을 벌려 급히 가로막는다. 그러나 태규의 보호 본능은 역부족으로, 후려치는 손바닥에 의해 힘없이 당집 안을 구른다.
태규가 정신을 가다듬었을 즈음, 인애는 광분에 겨운 손아귀에 귀밑머리가 잡힌 채 밖으로 끌고 나가고 었었다.
“요런 망헐 년아, 늬년이 애빌 향혀 목에 힘을 주구 말허던 신 여성이 바로 이런 것이던 겨?! 문중(門中)의 오라버니헌티 꼬릴 치는 거였냐구? 요런 잡어 쥑일 요망헌 지집년아?!”
“악···! 아버지 잘못했어요···”
“당숙 어른, 용서해 주세요!”
“악···! 오라버니! 제발 날 좀 살려줘···?!”
삽시간의 일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의 달콤함이 채 식기도 전에, 지옥의 뜨거움을 황망하게 맛 본 태규와 인애였다.
한박사가 긴 한숨을 내쉰다. 속절없음으로 머리채를 잡힌 채 성황당 고라당을 질질 끌려 내려가던 인애의 애처로운 모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가득히 고여 있던 눈물이 깊이 패인 주름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보게 태규, 증말루 미안허이.”
“그게 무슨 소린가···?”
“그날 밤 말여. 자네 당숙이 날 다잡고 늘어질 때, 내 끝까징 입을 다물었어야 혔었구먼. 차마 당집 모탱이에 숨어 � 번인가 주둥아릴 후려치믄서 후회 헐 때 생각허믄, 차마 자넬 대할 면목이 웁으이.”
“그런 일이 있었나? 아닐쎄. 그건 자네 잘못이 아니야. 내 허물일 뿐이야.”
“태규, 그리 말을 혀주니께 몸 둘 바를 모르겠구먼. 고마우이.”
“고맙긴 이 사람··· 그런데 무덤은 어디에 있는 겐가?”
“이보게, 고게 무신 소린겨? 무덤이라니···?”
“인애의 무덤 말일쎄? 오십 여년만에 고향을 찾아 왔는데, 내 인애의 무덤에 술잔은 못 올리더라도 서럽잖은 눈물이라도 뿌려줘야하지 않겠는가?”
한박사의 갑작스런 말에, 최노인은 짐짓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우뚱히 기울인다. 몹시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이보게 그게 무신 말인 겨? 난 자네가 시방 허는 말이 무신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구먼? 인앤 아직두 버젓이 살아 있는디 말이여.”
한박사가 깜짝 놀란다.
“뭣?! 자, 자네 지금 뭐라 했는가? 인, 인애가 살아 있다고 했나?”
“그렇구먼. 자네가 여태꺼정 고걸 몰랐던 겨?”
“오, 이런··· 그럼···!”
한박사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꾸들꾸들 경직되어 갔다.
한박사는 몹시 혼란스럽다.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왔다가 또 다시 내�겨 되돌아서던 날이었다. 태규는 인애의 집에 잠시 들린 적 있었다. 종숙에게 불궤를 범한 포역한 죄를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태규는 눈길도 주지 않는 종숙에게서 하늘이 무너지는 또 다른 슬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열 여섯 꽃다운 인애의 죽음이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스스로 당집 대들보에 목을 메 세상을 등졌다는 엄청난 소식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불측한 관계를 씻을 길이 없어 명줄을 끊었다는 것이다.
젊은 날의 한박사에게는 정수리에 떨어지는 벼락과 같은 충격이었다. 그때 만약 아우 정규가 곁에 없었다면, 곧장 당집으로 뛰어가 인애의 뒤를 따랐을 것이었다. 원동 고갯마루까지 뒤따르며 울먹이는 아우 앞에서, 차마 흔들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한박사는 그날 이후 인애의 뒤를 따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끝없이 고뇌했다. 따라서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와 젊은 날의 추상 속 서글픈 이야기의 주인공 인애가 이 세상에 버젓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충격이었다.
넋을 잃고 앉아 있던 한박사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이보게 어서 말을 해보게, 인애가 어디에 있다는 겐가? 정말 살아 있긴 한 거야?”
한박사의 입술이 바싹 타 들어온다. 경련마저 일고 있다. 하지만 최노인은 차분했다.
“그럼, 증말이잖쿠. 허나 워디에 살고 있는 진 나 역시 모르이··· 그 일이 있구 이삼 년 쯤 뒤, 자네 당숙네는 여기를 떠 아예 연을 끊어버렸으니께···”
“그럼 만날 수 없다는 얘긴가?”
“허지만, 오늘밤 성황당 고라당에 있는 당집으루 가보게나, 거기에 가믄 인앨 만날 수 있을 거구먼.”
“그, 그건 또 무슨 도깨비 장난 같은 말인가?”
“벌써 쉰 해째 매월 보름이믄 어김웁이 당집을 찾아와 밤새 치성을 올리고 갔으이··· 자넬 위해서 말일세. 저번 달에두 왔다 갔구먼.”
“오, 세상에 이럴 수가······”
한 박사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황당하다는 듯 가로젓는 고개짓에 현기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장난 같아 혼란스럽다.
한박사가 갑자기 휘청이는 듯 하더니 최노인의 가슴으로 쓰러졌다. 죄책감에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황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는 견딜 수 없는 자책감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한박사가 눈을 떴다. 정신을 가다듬느라 고개를 몇차례 흔든다. 시선에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흔들리는 백열전구가 보인다. 고향집 사랑채였다.
한박사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아우의 모습이 보인다.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 부친상을 치르느라 피곤한 몸일 것은 뻔했다. 그러나 잠들지 못하고 곁을 지키고 있다. 한 손에 물수건이 들려져 있고, 한켠엔 풀라스틱 대아가 보인다.
한박사는 자신의 이마에 물수건이 얹혀 있는 것을 느낀다. 정황으로 미루어 쓰러진 자신을 간호하다가 지쳐 벽에 기대어 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박사는 가슴 한편에서 언떤 감정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전혀 외롭지 않은 든든함이다. 그렇지만 아우를 흘끔 바라보고는 눈빛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한박사가 기억을 더듬는다. 산에서 최노인의 말을 듣고 비척였다는 것까지는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전혀 기억이 없다. 누군가가 이곳으로 옮겨 온 모양이다. 허나 그에겐 지금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거나 커다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머릿속은 온통 인애의 풋풋한 모습으로 점령되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 박사가 황급히 몸을 일으킨다. 노곤함이 온몸을 짓밟고 있다. 하지만 그대로 쓰러져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성황당 고라당에 가야만 했다. 오늘밤 당집에 인애가 다녀갈 것이라던 최노인의 말이 뇌리를 섬광처럼 스쳤기 때문이다.
아우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성님 괜찮응규?”
인기척을 느낀 모양이다. 이내 잠이 몰려오는 듯 긴 하품을 한다.
한박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뗀다.
“그래, 고단할 텐데 자리 펴고 편히 쉬지 않고서?”
“난 괜찮아유. 월매만에 성님을 다시 찾았는디··· 워쨌든 성님이 마을 사람덜헌티 업혀 들어올 땐, 참말루 간이 콩알만 혔었구먼유. 성님이 워떻게 되는 줄 알구 말유.”
한박사는 그제야 마을 사람들에 의해 이곳으로 업혀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놀란 최노인이 산을 뛰어 내려왔을 것이고, 그들을 불러왔을 것이었다. 기억이 없어 알 수는 없었으나 모두가 적잖이 놀랬으리라.
“저런, 아우에게 계속 폐만 끼치는구만.”
“그런 소릴랑 지발 허덜 말어유, 폐를 끼치다뉴? 당찮아유. 근디 그 몸으루 워딜 가려구 그러시능규?”
“그저··· 속이 답답해서, 바람 좀 쐬일까 하고···”
“바람유? 바깥 바람이 싸늘허더구만, 그냥 누워 계시잖쿠서유?”
“난 괜찮아. 잠시 바람을 쐬이고 나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질 꺼야. 비 온 뒤 하늘처럼 말이야. 그러니 걱정 말아.”
한박사는 감정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인애를 만나기 위해 당집에 가려한다는 것을 차마 말 할 수는 없었다. 아우에게 또 다시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 해도, 자신을 향해 파렴치하다 욕하지 않을 것이란 것쯤 알 수 있었다. 지난 날 매몰찬 부친을 향해 허물을 대신 사죄하던 아우였다. 또한 모든 것을 망가트려 놓을 것처럼 눈 감고 휘두르는 부친의 몽둥이 세례를 온몸으로 막아 주던 눈물겨운 아우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미안하고, 조심스럽다.
앙상한 느티나무 가지에 달이 걸려 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다. 무척이나 포근해 보인다.
그러나 밤 기온은 몹시 차갑다. 이미 겨울의 문턱을 넘어선 탓에, 겉옷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가 심장까지 스미는 듯 하다.
한박사는 초조했다. 종종걸음이 그 증거였다. 과연 이런 날에 인애가 궁벽한 당집에 나타나 줄 것인지 의문스럽다. 괜한 기우이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
옷깃을 여미는 한박사의 손길이 몹시 떨린다. 오한이 아닌 설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십 여 년 전, 이곳을 남 몰래 오가며 느꼈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전율에 가까운 그런 설렘이었다.
달 그림자를 즈려 밟으며 당집으로 오르는 후미진 산길은, 한박사의 착잡한 심정만큼이나 몹시 적요하다. 발 밑에서 들려 오는 낙엽 밟히는 소리가 풀벌레 소리조차 없는 적막함을 간신히 달래 주고 있다.
이윽고 한박사가 낯설지 않은 당집에 도착했다. 잠시도 잊은 적 없는 추억의 고가였다. 조금 전까지의 가슴을 조여 오던 긴장감은 일순간 맥없이 풀어진다. 인애가 와 있었다면 불빛이라도 흘러 나와야 했다. 그러나 당집은 고즈넉하다. 불빛은커녕 아무런 기척도 없었던 것이다.
당집 모퉁이에서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스산하다. 비좁은 마당의 잡초들을 흔들어 놓는다. 을씨년스럽다 못해 삭막하다.
한박사는 당집 모퉁이를 살핀다. 옹십 년 전 두성이가 숨어 있던 곳이리라. 지금도 누군가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한박사가 당집 문을 연다. 혹시나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세 평 남짓한 비좁은 실내는 적막과 어둠뿐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그래서인지 신음소리가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다.
애당초 인애가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이런 일이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밤이 지새고 나면 머나먼 이국 땅으로 또 다시 날아가야만 한다. 이제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서러움이 격랑처럼 밀려와 목이 메인다.
한박사가 힐끗 손목시계를 본다. 이제 막 아홉 시를 넘어 서고 있다. 시간이 궁금해서 시계를 들여다 본 것은 아니었다. 평소의 습관이다. 초조하다거나 당혹스러울 때 보이는.
잠시 머뭇거리던 한 박사가 당집 안으로 들어선다. 종숙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 나간 기약 없는 이별이었으므로, 오늘밤 분명 인애와의 약속은 없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야속하는 느낌이 가슴을 흔들고 있다.
순간, 야속한 자신을 평생 기다렸을 인애를 떠올린다. 그녀의 아픔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느껴 보고 싶다. 그래서 제단 위에 놓여진, 반쯤 타다가 꺼진 촛에 불을 밝힌다. 인애가 자신의 안녕을 기원하며 눈물로 밝혔을 촛불이었다.
빛바랜 탱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늠연한 수호신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다. 한박사가 움찔한다. 그 앞에서 저지른 불궤의 포역한 죄에 대한 가책 때문이었다. 이내 저주를 내릴 것만 같다. 섬칫하다.
한박사가 슬며시 고개를 떨군다. 동시에 한줄기 눈물이 차가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한스러운 자성의 눈물이었다.
한박사가 수호신의 초상에 재배를 올린다. 누구보다도 착실한 크리스챤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찾아와 오매불망(寤寐不忘) 자신을 위해 촛불을 밝히며 안녕을 기원했을 인애를 생각하니 어딘가에 있을 그녀의 안녕을 빌고싶었다.
짧지만 지루한 밤이었다.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 기다림에서 오는 초조.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섣부른 좌절감에서 오는 불안. 죄책감과 그런 류의 가책들. 이런 것들이 혼란스레 어그러진 밤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한 박사의 이 밤은, 오십년 세월의 무게 만큼 착잡하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 왔다. 바람소리인가? 벽에 기댄 채 처량히 쪼그리고 앉아 무아경에 빠져 있던 한박사가 급히 눈을 뜬다. 촛불은 이미 다 타버려 꺼져 있다. 바라지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 달빛은 한 발자국 옆으로 옮겨가 수호신의 제단을 슬금슬금 기어내려오고 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을 알 수 있다.
“성님, 혹 여기 와 계시능규?”
아우의 목소리였다. 한박사가 급히 몸을 일으킨다. 당혹스럽다. 모두가 잠들었을 늦은 이 시간이었다. 피곤하기 짝이없을 아우에게 괜한 행동거지로 이곳까지 올라오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죄스럽기까지 하다.
“그, 그래 아우··· 나 여기 있었네.”
한박사가 당집문을 열고 나온다.
“아우가 예까지 왠일이야?”
떨리는 목소리처럼 돌연 몸서리가 일었다. 오십 여년 전의 충격이 떠오른다. 아직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었던 당혹스런 조건 반사임을 알 수 있다.
“서울서 손님이 찾아왔슈. 성님을 찾는 반가운 손님들이···”
아우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서울에서 날···? 누가?”
아우의 그림자 너머로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가 보인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의 사내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사내가 한박사를 향해 다가온다. 달 그림자에 얼굴이 묻혀있어 자세히 볼 수가 없다. 사내가 다짜고짜 맨 바닥에 엎드려 한박사에게 절을 한다.
“아니, 이보시게, 왜 이러시나?”
한박사는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급히 몸을 낮추어 사내를 일으켜 세운다. 사내가 고개를 든다. 달빛에 얼굴이 드러난다. 번짝이는 눈시울을 붉다. 처음 보는 이였다. 어찌된 일인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사내가 한박사의 손을 힘껏 잡는다. 이내 볼멘 소리였다.
“저는 서울연구소장으로 있는 한태인이라고 합니다. 아버님의 함자에서 태(泰)자를, 어머님의 함자에서 인(仁)자를 물려받았습니다.”
한박사 말을 더듬는다.
“그, 그렇다면, 자넨···? 서, 설마···?!”
“그렇습니다. 자랑스런 한태규 박사님이 저의 부친이십니다.”
“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한박사가 휘청인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 탓인지 이내 진정된다.
“이 같은 사실을, 저도 불과 몇 시간 전에야 외삼촌의 전화를 받고 알았습니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난데없는 소리에, 저 역시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언제나 외로웠던 저에게도 하늘 같은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이 말입니다. 저에게도 남들처럼 살가운 혈육이 버젓이 있었다는 것이 그저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지난 시절, 제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면서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 가장 부러웠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바로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세상에 단 한 분 뿐인 아버지였습니다. 정말이지 단 한 번만이라도 제 상상 속에 꼭꼭 숨어 계셨던 당신을 향해 목청껏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가슴 벅찬 아버지란 호칭을요... 아버지!!”
“아···!”
일찍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상상도 못해봤을 뿐만 아니라 홀로 황량한 삶을 살아오면서 난생 처음으로 살갑게 들어보는 가슴이 저미는 호칭이었다.
한박사의 표정이 험상하게 변한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버지란 호칭에, 그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부르고 싶었고,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란 언어에 목마른 사바나의 짐승처럼 비틀거리며 살아왔었다.
“오, 하나님···”
한박사는 목이 메였다. 그저 우두망찰할 뿐이다. 고개를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떨어진다. 아비없는 그늘진 세상에서 당당하게 자라 준 아들이었다. 그래서 고마움보다 사무치는 뭔가를 느낀다. 불고 염치로 달려들어 부등겨 안고서 꺼이 꺼이 목을 놓아 대성통곡을 터트려도 좋을 성싶다. 하지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체찍으로 변해 가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다.
한 박사는 비통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보게나. 난 자네에게 그런 과분한 호칭을 부여받을 자격이 없으이··· 난 말이야, 자네와 자네 어미에게 덧없는 세월과 참담한 세상··· 그리고 헤어날 수 없는 불행만을 안겨 줬을 뿐이고··· 그 무엇으로도 도저히 씻을 수 없는 크나 큰 업과만을 남겼을 따름일쎄. 거두시게··· 정녕 자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업만을 겨우 건네준 내겐··· 너무도 무겁고, 참으로 버거운 아비의 자격이라네.”
갑자기 한박사의 볼에 경련이 일었다. 어떤 감정인가를 억눌러 참아내기 위한 고통임이 뚜렷하다.
“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누가 뭐래도 당신은 저의 자랑스런 아버지이십니다. 저에게 단 하나 뿐인··· 그토록 귀중한 생명을 불어 주신 당신은, 저에겐 너무도 떳떳하고, 당당한 아버지예요.”
“하지만···”
“정녕 꿈에서조차도 뵙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한박사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술 뗐다가 다문다. 연신 윷짝 가르듯 아버지를 외치며 우악하게 끌어 안는 아들 때문이다. 한박사는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이질감보다는 물보다 진한 같은 피의 동질성을 어뜩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끈끈한 혈육이라는 것을 머리를 가로저어 부정한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인 듯 싶었다.
한박사가 어눌한 울먹임을 토할 때였다. 누군가 옆에서 감싸 안는다. 고개를 돌린다. 눈물 때문에 어떤 사물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 그만 우시고 눈물 닦으세요.”
한박사는 아들과 함께 온 아가씨가 자신의 손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온다. 손길이 따스하다.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일까. 인애에게서 물려받은 듯 손녀의 곰살궂은 미소가 상큼하다. 잊었던 인애의 미소가 되살아 난다.
“할아버지, 눈물을 아끼셔야죠. 산밑에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셔요. 가슴이 저려 오고, 설레여 차마 걸음을 못 걷겠다 하셨거든 요. 할머니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에요. 그렇게 수줍어 하시는 모습은요. 어서 내려가셔서 할머닐 만나 보셔야죠. 그리고 저희 엄마도 보시고, 내일이면 사법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오빠도 만나셔야 될꺼고요. 할머니가 틈만 나면 그러셨어요. 저는 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닮았고, 오빠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쏙 빼닮았다고요. 할아버지!”
“아···!”
한박사가 신음소리를 흘린다.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과분한 행복감 때문이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헌데 휘청거릴 수가 없다. 아들과 손녀가 흔들리도록 놓아주지 않는다. 난데없이 풀 코스를 완주한 마라토너를 떠올린다. 어떤 목적지에 비로소 도달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 동안 홀로 외롭게 고뇌하며 걸어온 자신의 인생이 황막한 푸서리였다면, 여기가 그 끝이리라 느낀다.
한박사가 아들과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산을 내려온다. 아우가 길을 열기라도 하듯 앞장서 가고 있다. 종숙에게 귀밑머리 잡힌 인애가 서럽게 절규하며 내려갔던 천방산 길이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몸부림치던 인애에게 아무런 것도 해 줄 수 없던 태규가 오열로 뒤따르던 한맺힌 성황당 오솔길이기도 했다.
한박사는 보름달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도, 또한 그 어떤 사물도 볼 수가 없다. 인애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의 눈물보다도 질척한 회한의 눈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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