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내 소설 속으로

(구경욱 단편소설) 기우제- 祈雨祭

소설가 구경욱 2008. 8. 27. 22:43

단편소설                 祈雨祭

 

                          (2004 월간 엽서문학)


                             1

 햇발이 드세다. 목마름에 지친 대지 위로,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내린다. 시기적으로 있을 법한 뭉게구름이다. 허나 한 자밤 크기만큼의 구름도 없었으므로, 방해 받거나 거칠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금세 모든 것을 녹여 낼 기세여서, 적진을 향해 뿜어대는 화염 방사기 같은 품새였다.

 김노인은 에굽은 등을 더욱 굽힌 채 부아티 고개를 오르고 있다. 여든을 넘어선 나이에, 숨이 턱턱 막히는 후터분한 날씨에, 가팔막한 고갯길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발걸음은, 보폭이 좁고, 새털처럼 가볍고, 매우 빠른 깡똥걸음이다. 이깟 고개쯤 대수롭지 않은 눈치다.

 운동화를 신고 있다. 인기 최고의 축구 스타가 TV에 나와 광고하던, 학생들이 즐겨 신는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이다. 낡아 신지 않는 것을 누군가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 그의 발보다 한 치수 컸으므로, 벗겨질까 끈을 질끈 졸라맸다. 하지만 여전히 헐렁해 보인다.

 옷차림이 우습다. 잠방이라 할까. 몸뻬라 할까. 허리통에 고무줄을 넣어 지은 모시로 된 칠부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한쪽을 무릎 위까지 걷어올렸으므로, 듬성한 털이, 설멍한 종아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손엔 조끼가 들려 있다. 역시 같은 피륙으로 된 것이다. 표백이 덜된 것인지, 땟물에 찌든 것인지 알 수 없는 누르께한 빛깔을 띄고 있다. 철에 제격인 모시옷이다. 허나 그마저 거추장스런 날씨여서 벗어 들었다. 따라서 땀에 흠뻑 젖은 러닝 셔츠 차림으로, 엉성궂은 어깨가 을씨년스럽게 드러나 있다.

 김노인은 검버섯이 곳곳에 핀 깨깨한 얼굴이다. 미간에 내천자(川)로 굵게 든 주름살이, 사납게 치켜든 눈꼬리가, 심히 신경질적인 성격을 소유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렇듯 뭔가에 필히 결벽 증세를 보일 것 같은 외모였다. 허나 깔끔하게 면도된 입가엔 미소처럼 잔잔하게 든 주름이 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일순간에 반전시킨다.

 김노인은 이마에 돋는 땀방울을 연신 손바닥으로 훑어 뿌리다가, 햇볕에 노출된 민머리가 따갑게 느껴졌다. 문득 머리에 모자가 씌워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봄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기념으로 사다 준 모자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만원권 지폐 한 장을 손에 쥐어 주곤 가을 소풍 때 효자손을 사왔던 사실이 떠올라, 행여 지난번츠름 쓰잘데기 �는 것 당최 사지 말어. 차라리 과잘 사묵그라. 묵능 게 남능 거여. 하며 신신당부했었다. 하지만 손녀는 부득부득 모자를 사왔다. 할아버진 대머리라서 모자를 꼭 쓰셔야 되요. 그렇잖으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데요. 하면서.

 김노인은 평소 모자를 즐겨 쓰지 않는다. 뭔가로부터 압박을 당하는 것 같아 싫었고, 괜실히 어딘가에 속박되어지는 느낌이 들어 그러했다. 좋지 않은 것들은 필히 우성과 열성으로 나타난다 했던가. 그 역시 부친을 닮은 것인지, 서른이 넘으면서 머리카락이 하나 둘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러더니 얼마 가지 않아 대머리로 변했다. 그래서 마흔 이후부터 시원스럽게 빡빡 밀어 버린 것도 그런 이유에 따른 것이다.

 그는 손녀가 사 온 모자가 맘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본 만화 주인공 케릭터가 새겨져 있어 품위가 상할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어린것 생각과 행동이 기특하고, 가상하게 느껴져 잠잘 때 빼곤 늘 쓰고 다니다시피 한다. 오늘도 집을 나설 때, 아내가 기둥 말코지에 걸려 있는 것을 챙겨준 기억이 퍼뜩 되살아났으므로, 분명 쓰고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노인은 손에 든 조끼를 바라보며, 아차 한다. 불현듯 마을 회관 앞을 지나다가 느티나무 그늘에서 이장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한해(旱害) 대책으로, 전액 국비(國費)를 보조 받아 대형 관정(管井)을 파던 지하수 개발 업자가, 결국 수맥을 찾지 못하고 철수한 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때 조끼와 모자를 벗었던 사실도 떠올랐으므로, 그제야 깜빡 잊고 그 곳에 모자를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김노인은 혀를 끌끌 찬다. 고개를 심하게 가로젓는다. 요즘 들어 정신이 혼미한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집중력은 완연히 떨어지고, 판단력은 물론 기억력이 까마귀 고기를 구워먹었냐 놀림을 받을 만큼 흐려졌다.

 김노인은 미간을 구긴다.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는 것이, 왠지 갈길 먼 나그네에게 밀려오는 먹구름만큼이나 불안하게 여겨진다. 모자뿐만 아니라, 물건을 손에 들고 찾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아내의 생일이 섣달 초사흘인지, 열 사흘인지 가물가물 했고, 자신의 나이는 손가락 셈을 한참 동안 하고 나서야 비로소 기억해 낼 수 있다. 또한, 하루에 일곱 차례 마을 앞을 지나는 버스 시간표가 바뀐 뒤부터 달력 밑단에 붉은 글씨로 적어 놓고 외우려 했으나 도통 머리 속에 입력되지 않는다. 이런 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상이다.

 김노인은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혹, 뇌졸중이나 침해 초기 증상은 아닐까. 아니면,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졌으므로, 육체에서 혼백이 슬며시 빠져나간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흥! 죽능 게 뭐 무서워 헐 일인가? 때가 되믄 다 가능 게지.

 그는 죽음에 대해 언제나 초연했다. 생명을 가진 것에게는 언젠가 필히 찾아오는 것이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던 진나라 시황제도 결국 피하지 못했던 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랬으므로, 죽음이란 존재에 대하여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거나 서러워해야 될 일이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노망으로 대, 소변을 구분 못하고 방에 갇혀 사는 건넌말 황면장을 생각하면, 등골이 싸늘해지고, 현기증이 휑하니 일었다. 일찍이 보통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그처럼 촌기가 좋은 이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종종 느꼈었다. 그런 그가 차츰 건망증이 심해지더니, 지난봄부터 유야무야한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황면장의 모습이 곧 닥쳐올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하자 끔찍했다. 그래서 진저리가 쳐진다.

 김노인은 요즘 들어 마음이 급하기만 하다. 해야될 일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좀체 알 수가 없다. 소소한 것은 모두 접어 둔다 해도, 조부 산소에 입석(立石: 비석을 세우는 일) 일은 필히 해야 되겠고, 이번 기회에 부친의 묘역도 파묘해 선산으로 면례를 해야만 마음이 개운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김노인은 이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넋을 어디에 빼놓고 다니는 것인지, 도대체 찬찬치 못한 일들을 연신 만들어 내는 행동거지가 스스로 생각해도 안쓰러울 뿐이다.

 김노인은 발걸음을 멈칫거리더니 되돌아선다. 마을 쪽을 내려다본다. 휘우듬한 길을 따라 시야 끝에 소야리 마을 회관이 들어온다. 아스라하다. 모자를 찾으러 갈까 망설인다. 허나 다시 뒤돌아 가던 길을 재촉한다. 발길을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까지 왔고, 수축해 들어오는 조급한 마음이 가던 길을 재촉하고 있었으므로, 발걸음은 생각만큼 무겁지 않다.

 휴...! 제미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옆발치로 펼쳐진 뙈기밭을 흘끔 훔쳐 본 뒤였다. 이른봄에 부쳐 놓은 고추 모종들이 뿌리를 잡지 못하고 역병에 든 듯 벌겋게 타들어 가고 있다. 방아다리 밑 굵은 대궁만이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말라 비틀어진 이파리가 패잔병의 어께나 비맞은 용대기 꼴로 늘어져 간헐적으로 이는 바람에 흉물스럽게 나풀거린다. 그러하긴 그 아래 엽연초 밭도, 이어지는 콩 밭과 참깨 밭도 마찬가지다. 나무 그늘이 닿는 곳에 몇 포기가 발아되긴 했으나 오갈병에 든 듯 베베 뒤틀려 있다. 간신히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생수받이는 물론, 황소가 빠져 죽었다는 수렁배미가, 거북이 등을 연상케 하는 실정이었으므로, 메마른 비탈밭 곡식들이 온전히 힘을 쓸 리 없다. 며칠 내로 비가 내리지 않는 한 도무지 수확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김노인은 황량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소름이 돋는다.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땅. 살아 있는 모든 생명력을 거부하고, 그들의 발걸음조차도 절대 배척하는 곳. 마치 음침한 죽음만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다.

 김노인은 잠꼬대하듯 불분명한 어투로 넋두리를 내뱉는다.

 내 평생 요런 늠에 가뭄은 츰이구먼. 생전 츰...

 김노인은 말라 오는 입술을 핥는다. 혀끝에 쓴맛이 묻는다. 갑자기 마을 구판장 냉장고의 탁주가 떠오른다. 마른침이 무의식적으로 넘어간다. 벌컥벌컥 한 사발 들이켰으면 좋을 상이다. 후터분하게 불어오는 염풍에, 누런 흙먼지만 거칠게 푸석거리며 흩날리는 뙈기밭에, 이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자니 목젖이 당겨 견딜 수가 없다.


                             2

 봉선지(鳳仙池)로 나 있는 농로에 접어들었다. 길가에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있는 곳이다.

 김노인은 버드나무를 힐끗 쳐다본다. 휘늘어진 가지가 무희의 현란한 몸동작처럼 체질을 하고, 윤락녀의 교소(嬌笑)처럼 유혹하고 있다. 오가면서 잠시 쉬어 가곤 했던 곳이다. 오늘은 이장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늦게 출발했으므로, 쉬지 않고 지나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길은 어느새 그늘로 들어서고 있다.

 김노인은 무너지듯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퀴퀴한 마른 흙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재채기를 몇 차례 한 그는 이내 긴장감으로 후들거리던 다리 근육이 이완되는 것을 느낀다. 벌써 보름째 매일같이 가슴 졸이며 오가는 길이다. 하지만 오늘은, 집을 나설 때부터 느낌이 다르다. 반가운 손님을 기다릴 때 느끼곤 했던 설렘이랄까. 좋은 일이 일어나기 전 일던 기묘한 예감이랄까. 아니, 어쩌면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다. 어쨌던 그런 류의 느낌에서 비롯된 긴장감이다.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 탓인지 골반 뼈가, 정강이뼈가, 덩치 큰 누군가로부터 작신 눌리거나 몰매를 맞은 듯 시큰거린다.

 머리 위에선 스르라미 소리가 앙칼지다. 무뎌진 청각이었으나 고막이 따갑다. 김노인은 의지와 상관없는 눈길로 버드나무 위를 흘끔 올려 본다. 생기 잃고 시득부득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사이를 낱낱이 더듬는 눈길에, 매미며 잠자리 잡는 것에 특출났던 어린 시절이 스친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 했던가. 벌써 이승에서의 한 세기가 십여년 앞으로 다가와 있다. 지난 시절이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도무지 믿기어지지가 않는다.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난 것 같다. 찰라란 말이 실감난다. 시력이 약해진 탓인지, 녀석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대신 태양이 솔개처럼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망막을 공략해 들어온다. 어지럽다.

 김노인은 급히 고개를 떨구며, 눈꼬리를 구긴다. 바로 옆 길섶에 개구리가 있다. 녀석에게도 이번 여름은 잔혹해 보인다. 예년 같으면 인기척에 벌써 도망쳤을 일이지만, 녀석에겐 경계의 빛이란 조금도 없다. 입을 벌린 채 헐떡이고 있다. 왠지 측은해 보인다. 이 또한 가뭄 탓이리라. 허나 김노인의 입가엔 흡족한 미소가 인다. 오늘따라 드높은 하늘이, 이어지는 한발이, 여기에서 비롯된 폭염이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어서, 눈물이 다 나온다.

 김노인은, 다소 야비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 웃음소리를 끈적하게 흘리며, 으흐흐흐... 이늠아, 니늠은 저늠에 소리가 들리능 겨? 저 공중이서 햇발 부시러지는 소리 말여. 난 말여, 저 소리가 좋구먼.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서니 방으루 들어오려는 새샥시 발짝 소리만큼 된통 설레능구먼. 치맛자락이 보선(버선) 콧베기에 부딪쳐 사그락대는 소리만큼 달짝지근한 소리라구. 흐흐흐... 한다.

 김노인은 흔전하게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절제할 수가 없다. 계속되는 한발은, 누가 뭐라 해도 자신에게 주는 신의 선물인 듯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뭄이 이렇듯 계속될 리 없다.

 갑자기 웃음을 멈춘다. 울렁거리던 가슴 한편이 가위에 눌린 듯 답답하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자신도 평생 흙을 파먹고 살아온 농사꾼이란 사실을 끝내 떨칠 수 없다. 그랬으므로, 꿈에 보일까 심기 사납게 갈라진 논바닥에, 짜증 섞인 한숨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멀리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열기 속에 관정을 파고 있는 지하수 개발 차량이 보인다.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제각기 분주하다. 산 모퉁이 쪽에서 며칠 동안 작업을 했었는데 자리를 옮겨왔다. 결국 그곳에선 수맥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물꼬를 둘러보고 있는 촌부가 보인다. 늘어진 어깨를 한 채 건드렁히 들고 있는 삽이 무색하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 있을 수 없어 들에 나오긴 했으나 물꼬에 손 댈 일이란 없다. 혹여 보 밑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이라도 있었다면, 벌써 양수기를 설치했던지,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뛰어들어가 기를 쓰고 용두레질이라도 했을 일이다. 그러나 냇물은, 물기는커녕 뽀얗게 말라 버린지 오래였다. 두더지들이 이리저리 제 멋대로 뒤적이고 다니다가 그곳에 버젓이 보금자리를 틀고 새끼들을 퍼질러 놓은 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물이 있음직한 냇물 바닥을 포크레인으로 십여 미터 이상 파 내려가 물을 끌어쓰던 조촐한 재미도 만만치 않았으나 이제는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은, 최소한 한 달 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 가뭄의 끝은 오로지 하늘, 곧 신(神)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씁쓸하다.

 이내 불이 붙을 듯 뜨겁게 달궈진 대지를 바라보던 김노인은, 굵은 주름 골을 더욱 깊이 파 놓는다. 어느 넋이 나간 농심인들 즐겁고 편하랴 싶어 입안엔 육모초를 씹고 있는 것처럼 쓴맛이 그들먹하다. 하지만, 가뭄은 계속 되야 한다는 것에 이견을 보일 순 없는 일이다.


                             3

 산 모퉁이를 돌아서자 봉선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어제보다 물이 곱절은 빠져 있다. 얕은 곳은 벌써 쩍쩍 갈라졌고, 검게 농익은 진흙이 물을 대신하고 있고, 깎아지른 부엉바위 발치께만 물이 남아 있다.

 김노인이 멈춰 선다. 봉선지를 훑어 본다. 물속엔 사람들이 분봉을 시작한 벌떼처럼 바글거린다. 자동차 바퀴에서 빼낸 튜브를 타고 있는 이도 있고, 알몸으로 뛰어든 이들도 볼 수 있다. 수심이 얕아진 틈을 타 후릿그물(저인망)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이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 반 고기 반인 이 호기를 민물고기 좋아하는 이들이 놓칠 리 없다. 이쪽저쪽에서 연신 환호성이다. 대어가 잡힌 모양이다. 그들 사이로 무언가 눈에 띈다. 물위에 떠 있는 조각배 같다.

 김노인의 미간이 좁아진다. 급히 눈을 씻는다. 돋보기 안경을 고쳐 쓰는 손길이 미세하게 떨린다.

 저, 저건...?

 물위로 드러난 것은 분명 돌무덤이다. 김노인의 얼굴이 거푸집을 제거한 콘크리트처럼 굳어졌다. 뭔가가 쉬이익 소리를 내며 머리 위로 날아가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번 했다.

 잠시 돌무덤을 침묵으로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던 김노인이 일렁인다.

 그려, 틀림 �어. 으흐흐... 뵌다! 으하하핫... 드디어 뵌다고...!

 김노인은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가까이엔 아무도 없다. 허나 곁에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울먹임에 가까운 대화조로 또 다시 소리친다.

 하하하...! 이보게덜, 염병헐 늠에 봉선지가 기어이 말라붙었어! 돌무데기가 뵌다고... 기어이 아번님의 돌 묫똥이 뵌다고!

 해망하기 이를 데 없다. 물 속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을 흘끔거리더니 수런거린다. 필시 정신을 놓아 버린 늙은이로 이해하는 듯.

 김노인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즈음, 벌써 주름을 타고 묽은 액체가, 땀방울과 범벅되 흐른다.

 오, 오 아번님...

 김노인의 뇌리엔 어느새 부친의 마지막 모습이 스치고 있다.

 그의 부친은, 봉선 앞 들녘에 옥답 열섬지기를 가진 근동 제일의 부자였다. 극진한 효심에, 후덕한 인심에, 높은 인격 탓에, 멀리까지 칭송이 자자했다. 더구나 그는 대쪽같은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왜경(倭警)의 눈에는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왜정의 일이라면 비협조적일 뿐만 아니라, 은밀히 독립군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공공연히 나돌고 있어 더욱 그러했다. 실정이 그렇다 보니 주제소장 마쓰이에게는 요주의의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불 붙은 폭약 창고처럼,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존재였으므로,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서너 명의 인력을 동원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도록 했다. 그렇듯 긴장을 늦추지 못하였으나 상부로부터의 질책은 끊이지 않았다. 독립군과 접촉할 것이라는 첩보가 들어왔다느니, 이미 접촉해 자금이 그쪽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소문이 나돈다느니 하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걸핏하면 본서에 불려갔다. 이어지는 문책에 그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급기야 주제소장의 권위란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홧김에 부친을 주제소로 출두시켜 다잡았으나 물증도, 증인도 없었으므로, 괜한 헛수고일 따름이었다.

 마쓰이는 궁리 끝에, 그를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쫓아낼 묘책을 찾아냈다. 그의 옥답이 있는 봉선 들녘에 저수지를 만들려는 발상이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엉바위 허리를 오십여 미터만 막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생각이 이쯤에 다다르자, 이를 상부에 건의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천수답이 대부분인 식민지 조선 들녘에 수리 시설을 적극 설치하고 있던 왜정은, 곧장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고,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윽고 토지 매입이 시작됐다. 시가와는 거리가 먼 토지 보상이었다. 이백여 마지기의 보상가가 채 열 마지기도 구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허나 막강한 공권력을 이용해 밀어붙이는 왜정의 서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대대로 물려져 내려오는 가옥과 옥답을 어이없이 강탈당하고 있었지만, 대동아(大東亞)전쟁이란 미명으로 일어선 시퍼런 총 칼 앞에, 저항이란 이란격석(以卵擊石)과 같은 일이었다. 국권조차 강탈 당한 처지에, 개인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 곳은, 이 땅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봉선지가 완성되고, 수문이 닫히던 날이었다. 부친은 물막이 행사가 진행되는 현장으로 뛰어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이를 저지했다. 허나 조롱거리만 되었다. 순사들의 발길질에 피투성이가 됐을 뿐이다.

 억색해 하던 부친은 부엉바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는, 난 이 땅에서 단 한 걸음도 물러날 수 없다. 하며,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어린 김노인이 소식을 듣고 뛰어갔을 땐, 부친은 피투성이가 된 채 거칠게 단말마를 내뱉고 있었다. 잠시 후 부친은, 조상 님의 발자취가 서린 옥토에 날 묻어 다오. 란 유언을 겨우 남기곤 숨을 거두었다.

 하늘이 동한 것일까. 천방산 대가리에 먹구름이 윤무하더니, 뇌성벽력으로 울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해무 속 같은 폭우였다. 어린 김노인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시각각 물이 차오르는 부엉바위 앞 그의 옥답에 서둘러 부친의 으스러진 시신을 수습해 매장한 후, 그 자리에 돌무덤을 쌓았다. 그리곤 목까지 차오르는 흙탕물을 서러워하며, 마지막 인사도 올리지 못한 채 황급히 빠져나와야만 했다.

 김노인이 몸을 떤다. 볼엔 경련이 일었고, 전신에 마비가 오는 듯 뒤틀린다. 뇌리에 지난 세월이 무잡하게 스치고 있다. 명절이면, 이웃들이 조상의 묘역을 찾아 산허리를 오르내릴 때, 봉선지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려야 했던 기억들이다. 물에 퉁퉁 불어 버린 채 썩지 않는 육신으로, 냉혈에 누워 떨고 계실 것 같은 부친이다. 또한, 엎어지면 코 닿을 지척이었으나 여태껏 한 번도 성묘를 못했던 부친의 묘역이었으므로,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아번님, 쬐끄메만 참으시유. 암만 떨이가 나셔두 말유...

 김노인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신음 같은 넋두리엔 후회가 잔뜩 어린다. 아무리 부친의 유언이라곤 하지만, 그때 시신을 수습해 양지바른 곳에 모시지 않고, 왜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인지,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왔다. 김노인은 그것이 서러워 눈물이 솟구친다.

 김노인은 시려 오는 무릎을 어루만진다. 쉰 줄에 들어서면서부터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다리였다. 하지만 시린 통증이 관절염 때문이 아니란 것쯤은 금세 알 수 있다.


                             4

 김노인은 부아티 고갯마루를 넘어오고 있다.

 핏빛 석양을 밀어내고, 이내가 피어난다. 세상이 온통 푸른빛으로 물든다. 그 기운에 눌려 진종일 뜨겁게 불던 염풍도 잦아든다. 염록소가 파괴될 때 풍겨나는 풋내를 잔뜩 머금었던 바람이다.

 그러나 이내가 장악하고 있는 세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어둠이란 거대한 존재가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 하늘엔 금세 별들이 촘촘하다. 멀리 보안등 하나가 시선을 잡아 끈다. 외로워 보인다. 소얏골 회관 앞에 있는 것이다.

 폭염을 피해 음습한 곳에 바짝 옹크리고 숨어 있던 생명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슬을 차는 발자국 소리에, 먹이를 찾아 나선 개구리가 깜짝 놀라 뛴다. 허공에 종작없는 곡선을 긋고 있는 것은 반딧불이고, 푸드득거리며 하늘을 배회하는 건 박쥐였다. 앙칼진 청개구리 울음 소리 너머에선 소쩍새가 슬피 운다. 풀섶에선 여치가 불협화음에 끼어들고 있다.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한여름 밤이다.

 심한 일교차 탓일까. 김노인의 이마엔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으나 약간 서늘하게 느껴졌다. 깨어나는 술기운 탓일 수도 있었다.

 김노인은 옷깃을 여미며, 동녘을 흘끔 쳐다본다. 새벽 미명처럼 훤하다. 달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덜 찬 상현달이다. 보름이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떠오르기 시작한 달은 한치도 물러설 것 같지 않던 어둠을 몰아내고 있다. 달은 이 세상의 또 다른 소유자였다. 김노인은 잇따라 뒤바뀌는 세상의 주인들에,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인지 두려움 같은 것이 가슴을 압박해 온다. 돌연 소름이 돋는다.

 김노인은 갑자기 손자의 축구공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발에 머물 것같은 공은, 어디론가 채어 탄성의 법칙을 적용 받으며 튀어나가고, 또 다시 누군가의 발길에 의해 가속이 붙은 그 것은, 멈추지 못하고 어딘가를 향해 계속 진행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에겐 소유와 무소유의 반복이, 약육강식의 법칙이, 이에 따라 살같이 흐르는 굴절된 세월이 그렇게 느껴졌다.

 김노인의 그림자가 휘청인다. 손에 들고 있는 숭어 꾸러미도 함께 흔들린다. 아직도 술에 취해 있음이 확연하다.

 김노인은 정오 무렵, 봉선지에서 곧장 한산으로 달려갔다. 마침 장날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일 새벽녘이면, 봉선지 물이 모두 빠져나갈 것 같았으므로, 부친의 묘를 파묘해 선산으로 이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물 좋은 젯거리를 올려놓고 성묘부터 하기 위해 한산장 골목들을 부지런히 휘젓고 다녔다. 그 결과 다소 잘긴 해도, 어뜩 보기에 살지고, 싱싱한 숭어 몇 마리를 구할 수 있었다. 삼복 더위에 이처럼 싱싱한 숭어를 구하기란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랬으므로 김노인은, 기껏 값을 깍아 놓고, 팁을 후하게 주고서 그것을 쌌다. 이 또한 자신에게 이어지는 행운일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시장통을 빠져나오던 김노인은, 시간이 이른 것 같아 잠시 주가(酒家)에 들렀다. 목젖을 쥐어트는 갈증만 해소하려 했던 것이었으나 어이없이 취해 버렸다. 그는 평소 시장 바닥이나 주가 문턱을 기웃거리며, 괜한 너스레나 떨고 있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렇듯 우유 부단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일찌거니 집으로 돌아와 텃밭에 나아가 잡초 하나라도 쥐어뜯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누구라도 붙잡고서, 내일이면 물 밖으로 완전히 드러날 부친의 묘역에 대한 얘기를 언제까지 늘어놓아도 좋을 성싶었다. 그 상대가 낯을 모르는 상대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 그를 마주치는 주붕(酒朋)들이 그대로 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이보게 선친 묫똥이 있는 봉선지가 말랐다믄서? 이렇게 좋은날 워찌 그냥 말까. 하며, 건네 오는 술잔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술에 형편없이 취해 버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면 훤한 한낮에 도착했을 것이다. 허나 그의 발길은, 마법사의 마력이나 무당의 주술에 걸려 든 듯 봉선지로 돌려졌다. 그가 다시 그곳에 갔을 땐 부친의 묘역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김노인은 돌무덤을 바라보며 울다가 웃고, 다시 울며, 넋을 놓고 여지껏 앉아 있었다. 그래서 한 여름의 길고 긴 해가 서산으로 떨어져 날이 저무는 것도 몰랐다.

 얼쑤! 절쑤! 어기차, 지화자... 하하하......

 김노인의 달 그림자가 넘치는 술잔처럼 출렁인다. 어깻죽지가 들썩이는 듯 하더니 황진이의 시조 가락이 구성지게 흘러나온다.

 청산리 벽개수야 수위감을 자랑말라......

 노인 대학에서 배웠던 것이다. 김노인은 스스로 의아해 한다. 노래나 창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위기 탓일까. 술기운 탓일까. 배울 땐 그토록 되지 않던 시조 가락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색해 남들이 들을까 속으로 흥얼거리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자신도 모르게 구성진 가락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별스런 일이다.

 김노인이 멈칫한다. 누군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아번님.”

 “할아버지, 술 마신 겨?”

 달 그림자 속에서 반갑게 말을 건네 온 것은 며느리와 손녀였다. 달빛에 드러난 얼굴이 어지간히 일그러져 있다.

 “날도 뜨거운데 약주는 조금만 하시잖고서요.”

 몹시 걱정됐다는 눈치다.

 김노인은 시침뗀 어조로 며느리의 눈길을 피한다.

 “한산장에 갔었구먼.”

 “얘기 들었어요. 봉선지 시할아번님 묘역이 드러난 것도요.”

 김노인은 시장에서 만났던 옆집 새댁을 퍼뜩 떠올렸다. 그녀가 말을 전했으리라.

 김노인이 숭어꾸러미를 내민다. 받아든 며느리의 얼굴이 돌연 찌푸러진다.

 “아번님, 숭어가 상했나 봐여? 날씨 때문에...”

 “그, 그려...?”

 김노인은, 아차 했다. 폭염에 이리저리 끌고다녔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하지만 더 이상 후회하거나 건망증을 탓하지는 않는다. 어딘가에 놓고 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워쨌든 집으루 가져가려므나. 젯상에 못올리게 생겼으믄 개라도 주게끔 말여...”

 잠시 멋쩍어 하던 김노인이 화재를 재빨리 바꾼다. 갑자기 연수 교육을 떠난 아들이 생각났다는 듯,

 “아범은 원제 돌아오기루 헌 겨?”

 “다음주 토요일에 온댔어요.”

 “젠장할, 하필 이럴 때 무신 늠에 교육이람. 암만 승진도 좋지만서도...”

 짜증 섞인 표정을 짖던 김노인은, 눈길을 손녀에게로 옮긴다. 미소가 앞선다. 손녀가 모자를 내밀고 있다. 말은 없었으나 언짢은 모습이 역력하다.

 김노인은 객쩍은 모습을 감추기 위해 시침뗀 어조로 입을 연다.

 “할애비가 걱정되서 마중 나온 겨?”

 “아니.”

 어투가 생각지 않게 냉랭하다. 골이 났다는 증거였다. 느티나무 아래에 버려졌던 모자 때문이리라.

 김노인은 의아하다는 듯 시침을 떼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이 또한 미안함을 감추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그러믄...?”

 “할아버지가 어디 나 같은 어린애인가?”

 “요런 영악한 것.”

 김노인은 손녀를 품에 끌어안는다. 그리곤 볼에 연신 입을 맞춘다. 김노인의 얼굴이 웃음으로 일그러진다. 때를 같이해 손녀에게선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튀어나온다.

 “이 할애비가 코흘리게츠름 집을 못 찾을까 걱정스럽던?”

 “아니.”

 “또, 아니여? 그러믄...?”

 “초컬렛 사가지고 오시나 하고요.”

 “쪼꼴렛도? 떽끼, 욘석이... 행여 이 할애비가 걱정시러 나왔다믄 워디가 동티라두 나능 겨? 이 할아빌 그렇게 놀려대게 말여? 요런 망할 것! 하하하......”

 손녀와 난생 처음 주고받는 멋쩍은 객담이다.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부아티 고갯마루가 울린다.

 손녀가 손을 맞잡아 온다. 며느리가 팔짱을 낀다. 김노인은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5

 김노인 일행이 소얏골 동구에 들어설 때였다.

 댕그랑... 두둥 두둥둥...

 동라와 쇠북치는 소리였다.

 김노인은 반사적으로 그 소리를 좇는다. 당산 쪽이다. 허공을 가르는 렌턴 불빛이 어지럽고, 수십 개의 횃불들이 일시에 봉우리를 밝히고 있다.

 “저, 저 게 왠 소란들인 겨? 때 아니게 횃불덜은 또 뭐구?”

 김노인은 갑작스런 일에, 짐짓 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며느리와 손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기우제를 올리기로 했대요.”

 “기우제? 하하하...”

 김노인이 콧웃음을 터뜨린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금세 얼굴이 굳어진다.

 “흥! 얼어 뒈질 것덜. 시방이 워는 땐디 기우제여.”

 김노인의 눈길이 당산 쪽으로 옮겨간다. 매몰찬 어투가 튀어나온다.

 “염병헐 것덜... 기우젤 올려서 비가 올 것 같응 겨? 그럴라 쳤으믄 벌써 하늘이 와직끈 내려 앉잤을 것이구먼! 요참에 기우젤 올리는 동네가 워디 한두 군데였었나? 시방 시대가 워느 때여? 토끼 잡으러 달나라를 갔다가 온 시상인디... 미련헌 늠덜... 그깟 우스운 짓꺼리를 헌다고, 구름 찾아다가 종자하려고 눈 씻고 봐두 한점 �는 이 밤에, 저런 갖잖은 지껄이 헌다고 비가 오실리라구? 흥...!”

 “아번님...?”

 김노인의 시선이 며느리에게로 옮겨간다. 상기된 표정이다.

 “워째, 내 말이 틀린 겨?”

 “가뭄이 이대로 계속 되다가는 들녘에 남아날 곡식이 하나도 없을 꺼예요. 농삿꾼의 살길은, 오직 비가 내려야만 하는 일이예요. 그런데 답답한 심정으로 기우젤 올리는 농심들을 어찌 미련헌 지껄이에 불과하다고 탓할 일이겠어요?”

 김노인이 찔끔한다. 언제까지나 쌍심지를 곤두세우고 있을 것 같았던 그였다.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이고 있다.

 “허긴...! 니 말이 백 번 맞구먼. 비도 오시긴 허얄 일이지. 이 가뭄에 비단 곡식덜만 타들어 갈까. 반갑게 내리는 감우에, 고것덜이 목을 축이고, 다시 푸릇푸릇허니 생기를 찾으야만, 숯검댕이 같은 우리 농삿꾼들의 심사도 풀릴트니께 말여. 휴...! 이 가뭄에 비가 오잖아 좋아헐 너갱이 빠진 늠이 세상에 워떤 늠이 또 있을까? 망령든 요놈에 늙은이 빼놓곤... 휴...!”

 한숨을 내뱉는 김노인의 어깨가 힘없이 늘어진다.


                             6

 진한 쑥냄새가 울안을 진동한다. 마당에 지펴 놓은 모깃불에서 피어나고 있다.

 김노인은 마당 한가운데에 놓인 대나무 평상에 앉아 있다. 모깃불에도 불고하고 여전히 우왁살스럽게 몰려드는 물것들이다. 부채를 부지런히 휘두른다. 그것도 잠시 뿐이다.

 김노인은 평소 같으면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일이다. 언제나 저녁 밥술을 내려놓고 벽에 기대기가 무섭게 스르르 곯아떨어지던, 유난히 초저녁잠이 많은 그였다. 허나 그렇지가 못하다. 들뜬 마음으로, 서울과 수원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부친의 묘소를 면례할 것이니 당장 내려오라는 일방적 통보였다. 또한, 면사무소 계장으로 있다가 승진해 연수 교육을 받으러 간 막내 아들에게도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한참을 통화했다. 아들들에게 먼저 전화를 한 것이 처음 있는 일로, 그만큼 들떠 있다는 증거였다.

 당산이 요란스럽다. 기우제가 무르익는 모양이다. 그 소리도 몰려오는 잠을 �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또한, 오늘따라 한껏 목청을 돋구고 있는 청개구리가, 싱싱한 숭어가 상해 버린 것이 왠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 느낌은 부친이 부엉바위에서 뛰어내리던 전날 밤에 느꼈던 기묘한 것이다. 그때도 오늘처럼 곳곳에서 기우제 봉화가 올랐었다. 그랬으므로 이렇듯 밖에 나와 사납게 달려드는 모기떼와 힘겨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콰르릉...

 김노인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시선을 허공에 던져 휘두른다. 요란한 징소리와 뒤섞여 들려 온 것은, 틀림없는 천둥소리였다. 허나 잘못들은 것일까. 달빛만이 곱게 쏟아지고 있을 뿐 구름 한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엌에서 시루떡을 하고 있던 아내와 며느리가 마당으로 뛰어나온다. 그들 역시 그 소리를 들은 모양으로, 초조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영감, 쪼메 전 그 소린...?”

 “제미럴? 천둥소리구먼.”

 “이를 워째...? 허지만 영감, 그렇게 걱정허지 마소. 마른번개 치는 소릴 게유.”

 “암만, 그럴 테지. 요런 건장마에, 여태껏 오잖던 비가, 오늘밤에 내릴 까닭이 �지. 저리 달도 밝은 이 밤에 말여. 안 그런가 임자? 응?”

 김노인은 오만상을 찌푸린 아내에게 굳이 대답을 요구한다. 밀려오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짐짓 여유로운 미소도 흘린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먹빛 그늘이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다.

 콰르르릉... 쿵... 쾅...

 또다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전보다 가까이에서 들린다. 김노인은 불안한 마음를 억누르지 못하고 당산 쪽을 피뜩 쳐다본다. 눈초리가 쏘아대는 불화살처럼 뜨겁고 섬뜩하다. 눈두덩을, 입술을, 사납게 실룩거린다.

 “요런 육씨렬 것덜. 허구헌 날 빤히 놨두고 자빠져 있다가서, 왜 하필 오늘밤에 당산에 올라가 비를 부르고 지랄덜인 겨! 뭣땜에?”

 천둥소리에 힘입은 것인가. 쇠북 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김노인의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조금 전까지 그의 입가엔 여유로운 조소가 흔연히 흘렀었다. 그렇듯 전혀 신경도 안 쓰이던 기우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보다도 커다랗게 심장을 후려치고 있다.

 김노인의 가슴에 독기를 머금고 고개를 드는 살모사처럼 분노가 치민다. 짐짓 태연하려 애를 쓴다. 허나 격해지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을 끌어당기기엔 너무 멀리 물러나 있다.

 “요런 잡것덜을 당장에...!!”

 김노인이 평상에서 뛰어 내린다. 맨발이다. 헛간으로 곧장 달려간다. 뭔가를 급히 찾더니 마당으로 뛰어나온다. 그의 손에 낫이 들려 있다. 뼛속에서 출렁거리는 분노만큼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당산으로 뛰어올라 갈 요량이다. 그런 다음 기우제 젯상에 올려진 돼지머리를 찍어내릴 작정이다.

 “아번님!!”

 “영감. 왜 이러시유?”

 며느리와 아내가 깜짝 놀라 달려든다. 거친 호흡으로 낫을 들고 있는 김노인의 팔을 잡는다. 필사적이다. 김노인은 이를 뿌리치려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김노인의 앞을 가로막는다.

 “할아버지.”

 방에서 잠을 자던 손녀였다. 새파랗게 질려 파들파들 떨고 있다. 어깨를 들먹인다. 이죽거리는 입술 사이에서 울음이 비어져 나오고 있다. 손녀가 김노인의 허리를 와락 끌어 안는다. 그리곤 울음소리와 뒤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연신 뱉어낸다.

 김노인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내 손녀의 모습이, 아내와 며느리의 모습이 일그러지며 어디론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시에 몸에서 모든 힘이 서서히 소멸되는 것을 느낀다. 며느리의 손으로 낫이 옮겨간다.

 김노인이 무너지듯 마당에 털써 주저앉는다. 부친의 모습이 스친다. 수면 위로 드러난 부친의 묘역이 어른거린다.

 “오, 아버지. 어흐흑...”

 김노인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흐느낀다. 기우제를 올린다고 아니 올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느 누구보다도 흙을 살붙이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황무지로 변해 가는 들녘을 바라보며, 심술궂게 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스스로에게 변명한다. 다만, 숱한 세월 지척에 두고서도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한을 풀고 싶을 따름이다. 이 밤이 지나면, 그 한 맺힌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 질 것이고, 그 다음에야 하늘이 두 쪽이 난들 상관없다. 하지만, 그런 심사도 모른 채 천둥소리와 더불어 고막을 터트릴 듯 어지럽게 들려 오는 동라소리가, 김노인의 마음을 힘껏 비틀고 있다. 갑자기 서럽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그러나 무엇이 그토록 서러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여지껏 참았던 김에 제발 내일까지만 참아 주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를 주관하는 옥제님께 비나이다.”

 김노인이 고개를 돌린다. 장독대 쪽이다. 아내와 며느리가 그곳에 있다. 장독 위엔 어느새 정화수가 올라 있다. 촛불도 밝혀 있다. 연신 굽씬거린다. 손녀도 그곳에 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주일 학교에 한 번 거르지 않고 나가면서 세례까지 받은 손녀였다. 맹목적으로 따라하고 있다.

 한줄기 광풍이 불어온다. 후덥지근한 바람이다. 울타리 밖 오동나무의 마른 이파리들이 떨어져 무질서하게 휘날리고, 을씨년스럽게 피어오르던 모깃불 연기가 어지럽게 흩어진다. 동시에 정화수 앞에 밝혀 놓은 촛불도 쓰러져 꺼져버린다.

 김노인은 습기가 잔뜩 머금어진 바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곤 고개를 떨군다.

 망할 늠에 바람. 요늠에 바람이 기어이 내 염장에 불을 지펴 놓능구먼. 한 맺힌 요늠의 가슴팍에 말여.

 김노인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한스러운 신음 소리가 타래실 풀리듯 흘러나온다.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와 함께 대지를 난타하는 순간이다.

 와! 비가 온다.

 당산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려온다. 절규에 가깝다.

 세상에 이럴 수는 �는 거여? 망할 것덜...! 망할 늠에 비...!


                             7

 황급한 발소리가 대문 쪽에서 들린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였다.

 김노인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마당 한가운데에 넋을 잃고 서 있다. 곁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던 며느리의 날카로운 눈빛이 손자에게로 날아간다. 이내 볼멘소리가 튀어 나온다.

 “내가 뭐랬니? 기우제 올리는 당산엔 절대 가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 죄송해요. 전 단지 구경만 했을 뿐이예요.”

 손자가 어지간히 난감해 한다.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손가락만 매만진다. 그를 향해 며느리의 입에선 호된 지청구가 이어진다.

 “철없는 것. 네가 할아버지 가슴에 또 다시 못을 친 걸 알기나 하는 거니?! 앞으로 무슨 낯으로 할아버지를 뵐꺼니? 낮도깨비 같은 그놈의 두꺼운 상판때기를 어찌 죄스러워 들이 밀거야?! 네 놈만은 한 번쯤 되돌아 할아부지의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서러움에 겨운 그 아픔을 헤아렸어야 했어?! 숱한 세월 한스러움으로 꼭꼭 점철된... 골육이 으스러지고, 갈갈히 찢기는 할아버지를 통한의 아픔을 말이야?! 뜨거운 심장에 섬뜩하게 돋아날 서릿발 같은 한 맺힌 가슴앓이를 말이야. 어흐흐흑......”

 등골을 타고 녹아져 내려가는 얼음덩이 같은 며느리의 울부짖음이다. 칼날처럼 손자의 가슴으로 던져져 심장을 도려낸다.

 김노인이 무겁게 고개를 든다. 며느리를 바라본다. 그녀의 분노가 손자 때문이 아니라 무심한 하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침묵하던 김노인이, 뭔가 또 다시 질책하려는 며느리를 손사래질로 막는다.

 “어멈아, 냅두거라. 그냥 귀경(구경)을 간 거라구 허능구먼. 그렇게 탓헐 일이 아니구먼.”

 손자와 며느리의 이지러진 눈빛이 동시에 김노인에게로 옮겨온다. 김노인의 턱 끝으로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진한 액체를 볼 수 있다.

 비는 어느새 폭우로 변해 있다. 빗소리는 들녘에서 들려 오는 청개구리 울음소리를 지워버린다. 낙숫물이 마당에 흥건하다. 이내 도랑을 이루어 너저분한 티끌들을 부여잡고 흘러간다.

 김노인이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인지 움직인다. 대문 쪽으로 발걸음을 황급히 옮긴다.

 “할아버지! 이 어두운 빗속에 어딜 가시려고요? 할아버지, 가지마세요. 제발...”

 손자가 황급히 김노인을 가로막는다. 부엉바위로 뛰어가 통한의 울음을 터트릴 할아버지가 몹시 안타깝다.

 김노인이 멈칫하더니 손자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표정이 손자의 우려와 사뭇 다르다.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손자는 그 평온해 보이는 미소가 과연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억지로 자아내는 가식 어린 미소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빙그레 미소를 짖던 김노인은, 손자를 향해 가볍게 도리짓하며 차분히 입술을 땐다.

 “이늠아, 그게 아니구먼. 이 할애빈 말여, 니늠 생각츠름 부엉 바위로 갈려능 게 아니구먼.”

 “그럼요?”

 손자는 반사적으로 물으며, 고개를 갸웃이 기울인다.

 잠시 뜸을 들이듯 침묵하고 있는 김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다. 표현 못할 스산한 표정이다.

 “이 할애빈 말여, 명줄 놓아 뗏장 덮고 한객이 되어 잠들기 전 까장 빼도 박도 못허는 농삿꾼이구먼. 나는 시방 논에 나가능 거여. 지난 가뭄 동안 욕심껏 꽉꽉 틀어막았던 물꼬를 터 주려구... 그러야 맴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여...”

 “하, 할아버지......!”

 손자가 울음을 터트린다. 며느리도, 아내도, 손녀도 어깨를 들먹거린다.

 김노인이 입술을 깨문다. 부친의 모습이 현실처럼 또렷하게 스치고 있다. 가뭄에 타 들어가던 곡식들도 보인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전신을 짓눌러 와 견딜 수가 없다.

 김노인은 헛간 앞에 세워진 삽을 집어든다. 그리곤 종종 걸음으로 대문을 빠져나간다. 먹빛 어둠이, 세찬 빗줄기가, 그의 뒷모습을 지운다.

 손자는 뭔가로 호되게 머리를 맞은 듯한 얼녹은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얼굴을 후려친다. 따가웠다.

 할아버지. 내일은 부엉바위에 무지개가 걸릴 꺼예요. 그것도 예쁘게...

 잠시 후, 폭우 속 김노인의 집에는 어둠을 뚫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발걸음들이 가볍지 않다. 가뭄으로 애태우던 때 보다 더 어두운 낯빛들이다.***(200자 원고지 105.9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