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내 소설 속으로

(구경욱 단편 소설) 잠들지 못하는 영혼.

소설가 구경욱 2008. 8. 27. 22:33

(단편 소설)      제목: 잠들지 못하는 영혼.

 

                     (2001년 서천신문)


 햇발은 날카롭게 허공에서 부서져 내린다.

 본디 시루봉이 이고 있는 하늘은 늘 그랬으나 오늘따라 유난히 눈부시게 드높았다. 그 빛은 시리도록 푸르렀으므로 치솟은 봉우리를 앙견하는 석현의 시신경은, 마치 모래라도 들어와 찔리는듯 따가웠다. 이에 눈살을 찌푸려 외면했으나 태클을 들어오는 레슬러처럼 집요하게 망막을 파고드는 가시광선이다.

 그 동안 기온은 목화 솜 이불 속같이 마냥 포근했었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발달해 철새들을 뒤쫓아 남하하는 한랭전선의 영향으로 수은주는 영하권을 향해 급격히 곤두박질칠 것이라 했고, 눈 또는 진눈깨비와 같이 궂은 날씨를 보일 것이라 예보했던 기상대였다.

 하지만, 터럭 만한 구름일 망정 한 점 없는 하늘은, 여봐라는 듯 푸르다 못해 짙은 남빛으로 비아냥거리고 있다. 기온은 예보했던 것처럼 싸늘했으나 하늘의 일기 사정은 전혀 빗나가고 있다. 춘 삼월을 연상케 하는 햇발로 시루봉 정수리를 향해 다면체 초자 알갱이를 흩뿌려 놓은 듯 반짝이며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늦가을 햇볕이라는 게 제아무리 따스해도 낙엽은 어김없이 지게끔 창조했던 게 조물주의 심오한 의지라 했던가. 여름 내내 에메랄드 빛을 자랑스러워하던 북풍받이 낙엽수들이지만, 그 꺽을 수 없는 의지대로 벌써 앙상한 자태를 드러내놓고 있다. 그나마 몇 잎 남지 않은 붉고 누런 단풍잎은,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에 옹골참을 잃고, 어김없이 회환을 반복하는 대자연의 불문율을 거스르지 못한 채 생기 잃은 대지 위로 흩날려 순응하고 있다. 이에 부끄러운 알몸을 드러낸 나뭇가지는 이쯤에 개으치 않고 불어오는 바람에 간지러운 듯 제멋대로 까불거린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며 나목들을 쓱 훑어보는 석현의 눈길이다. 그렇듯 주마간산으로 흘려 보는 눈길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이미 싸늘한 삭풍이고, 나목들은 간지러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산득함에 떨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정말 장난이 아니군···!

 석현은, 가팔막한 곶감재를 자전거를 끌고 터울터울 넘어섰다. 이십대 후반에 들어선 나이로 혈기가 하늘을 치받을 듯 펄펄 넘치는 총각 선생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학창시절 유성에서 계룡산 동학사까지 하이킹을 갔었던 이후, 거의 십 년만에 타보는 서투른 자전거 실력이었다.

 한 때 임금왕(王)자도 또렷한 복근이었으므로 미스터 코리아쯤 부럽지 않았으나 지금은 달랐다. 운동 부족으로 두툼해진 뱃살 속에 깊숙이 숨어 버린 배꼽이요, 불강아지 꼴로 야리해진 하퇴였다. 그런 탓에 이 정도의 운동량이라면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됐어야 옳았다. 그렇듯 마냥 질펀해야 할 이마였으나 땡볕에 흙먼지 퍼석퍼석 날리는 오뉴월의 운동장처럼 뽀송뽀송하기만 하다. 불어오는 삭풍 탓이었다. 덧없는 세월은 어느새 가을 모퉁이를 황망히 돌아 동삼(冬三)의 싸늘한 문턱을 슬며시 넘어 서고 있었고, 좋았던 시절은 서서히 휴지부를 찍어 가고 있었다.

 내가 너무 성급했었어. 휴···!

 석현의 입에선 넋두리와 한숨이 바람소리처럼 흘러나온다. 내리막길인가 싶더니 또 다시 가로막는 언덕 탓이다.

 자전거에서 내려서며, 한숨을 뿌리는 석현의 다리가 맥없이 후들거린다.

 석현은, 매일같이 지각하는 태호의 사정을 비로소 오늘에야 확연히 알 것 같았다. 사실 그는 두멍골로 가는 십오리 길이 이토록 험한 줄 몰랐었다. 비록 중앙선이 없고 비좁았으나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돼 있었으므로 감히 짐작치 못했던 부분이다.

 그런 사정을 몰랐던 석현은, 이 길을 오가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태호의 지각 사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보냈었다. 늘 늦잠에 허겁지겁 일어나 세수조차 못하고 등교하는 때문이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발등을 찍을 듯 학교까지 메달고 오는 바윗덩이 만한 눈곱이 그의 판단력을 흐려놓았던 것이다. 그 모습이란 가관이어서, 그 어떤 야젖잖은 변명 따위로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일 것이라 단정했고, 이는 태호의 둔팍한 게으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로 치부했던 것이다.

 녀석은 항상, 첫째 시간이 어중반할 무렵이 되서야 꼬질꼬질한 모습을 나타나곤 했다. 더구나 짭짤한 맛에 길들여져 콧구멍을 홀랑이질 치던 손가락을 여유작작 빨아가며 나타나 수업을 망쳐놓곤 했다.

 이에 가탈스레 가마 꼭지를 쥐어박아 가며 닦달했던 것은, 담임인 그가 취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석현에게 있어 이러한 일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지루하게 반복되는 학교 생활중 맥빠진 몸에 활력소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낙이요, 아침 교직원 회의처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는 규칙적인 일과로 자리 잡았다.

 석현은 씁쓸한 미소를 허공에 날린다. 이맛살을 구기며 구차하게 변명을 해 오던, 호두알같이 동긋한 태호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녀석의 말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무시하고, 어금니를 악물어 가학(苛虐)과 압제로 일관했던 자신을 생각하면 객쩍은 마음에 하릴없이 흐르는 미소였다.

 석현은 제대 후 삼 년여 동안을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구들장을 등지고 빈둥거려야만 했다. 그러던 지난봄 지금 몸담고 있는 이곳으로 발령 받아 내려왔다.

 그가 교사로서 첫 부임한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백 명이 채 안되는 오지 학교였다. 태호는 석현이 담임을 맞고 있는 육학년 동몽(童蒙)중 가장 체구가 작았다. 겉모습만 봐서는 이, 삼학년생 아동과 전혀 구분이 안된다. 그런 조그만 체구였으므로 이름 대신 ‘쥐씨알’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두멍골은 호구 수가 불과 이십여 호 뿐이고, 다른 시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그곳 역시 노령화 된 마을이다. 그곳에 사는 태호는 입학하면서부터 줄곧 지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웃에 살던 같은 반 친구 영희 아버지가 3학년 초까지는 오토바이로 통학을 도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각 사태는, 농사를 짖던 영희아버지가 객지로 공사 현장을 찾아다니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렇듯 매일같이 지각하던 둘을 놓고 아이들은 틈만 나면 놀렸다.

 “월레 꼴레리··· 봐라 지각대장들. 아니, 두멍골 신랑 각시! 학교 오다가 곶감재서 뭘 허느라구 이제사 온 겨?”

 “씨부랄! 그렇쿰 놀리지 말랑게?! 그리구 난 영희한티 장개들라믄 차라리 머릴 빡빡 밀고서니 중이 될꺼구먼.”

 “칫! 쥐씨알. 누가 늬한티 시집 간댔냐? 웃기지 말어. 그럴려믄 난 츠녀 귀신이 될 거여.”

 “흥! 망헐 지지배. 맘대로 혀라.”

 “쳇! 바보! 멍충이! 늬나 맘대로 허렴.”

 둘은 아이들의 놀림을 피하기 위해 늘 이렇게 행동했으므로 학교에 나와서는 짐짓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나마 2년 전 영희네가 학교 앞으로 이사를 나오면서 지루한 신경전은 끝이났다.

 태호는 영희네가 이사를 오기 전날 밤 뒷동산에 있었던 일을 그리워 했다. 거북바위에 올라 어깨를 맞대고 앉아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눈물 콧물깨나 찔찔거렸던 일이다.

 허나 영희는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이같은 사실을 병설유치원에 다니던 남동생이 발설해 아이들이 모두 알게 되버렸므로, 더 이상 둘만의 비밀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 기억들을 일부러 지우게 만들어 놓았다.

 태호는 학교까지 먼 거리 탓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유일한 아이였다. 그렇듯 기동력이 전교생 중에서 으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은 채 노상 지각으로 일관하는 녀석의 통학 길을, 석현은 모처럼 한가로운 일요일을 맞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

 일학기 초, 다른 아동들 집에는 야짓없이 가정 방문을 했었으나 태호네 집만큼은 가지 못했다. 먼 거리를 핑계삼아 다음으로 미루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며칠 후면 종업식을 하게 될 것이고, 이내 졸업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태호가 오가는 길을 자전거를 이용해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석현이 두멍골에 가는 것은 물론 이런 사소한 이유도 있었으나 그 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따로 있었다.

 석현의 조부는 휴전선 이북에 위치한 개성 부근이 고향이다. 오늘같이 청명한 날 서부 전선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망원경에 의지하지 않고도 시야 끝에 드러오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현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나 부라질보다도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으므로, 눈앞에 보이는 달나라와 같은 곳이었다.

 조부가 고향을 떠나온 것은, 동란이 한창이던 1951년 1.4후퇴 무렵이다. 당시 핏덩이에 불과했던 부친을 이불로 씌워 안고, 눈보라가 기세 사납게 몰아치는 회삭의 어둠을 틈 타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을 피해 잠시 피난 내려온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 까닭으로 다른 집안과는 달리 이 땅에 선산이 없는 그의 집안이다. 사정이 그랬으므로 부친은 진작부터 적당한 곳에 가족 묘지를 세울 임야를 장만하리라 했었다. 그러나 조부는 이를 극구 반대했다. 머지않아 통일이 될 것이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에 한 맺힌 골육를 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완강히 반대하는 이유였다.

 지난여름이다. 조부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대한적십자사를 찾아갔다. ‘남북이산가족찾기신청서’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건아하게 취한 조부는 남과 북이 통일이라도 된 듯 더덩실 춤까지 추며, 그렇지 않아도 큰 입을 귀밑까지 찢어 놓고 좋아했다. 석현의 기억으로 그토록 좋아하는 조부의 모습은 처음인 듯 싶었다.

 조부는 틈만 나면 망연히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갈기갈기 찢기는 망향의 아픔을 짓씹었다. 조석으로 고향녘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또 그렇게 마무리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날아갈 듯한 심정을 어깨를 달막거려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조부의 기쁨은 그리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에서 날아온 소식은 북녘에 두고 온 부모 형제와 아내, 가까운 족인 모두가 사망했다는 심장을 에이는 듯한 소식이었다.

 지난날을 떠올리느라 비참하게 일그러지는 조부의 모습에, 온 가족은 저미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눈시울을 적셔야만 했다.

 조부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석현의 마음은 갈갈히 찢어진다. 언제였던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조부로부터 고향을 떠나오던 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더욱 그러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석현은 금세 가슴이 눅눅해진다.

 중공군의 집중 포화와 미 공군 소속 B-29의 융단 폭격에 아비규환의 고향 땅이었다.

 “내래 괜찮으니꺼니 애닳아 하지 말고서리 퍼뜩 가시라요!”

 “보라우 님자, 그딴 시살스런(어수선하고 뒤숭숭하다.) 소리 말고 힘내라우! 워찌 나만 살아보것다구 님잘 두고서리 내래 갈 수 있갔네?”

 “묻잖은 소리 마시라요. 내래 틀렸시유. 그러니까니 그냥 가시라요. 몰풍스레(볼꼴없게 아주 멋쩍거나 모양 사납다.) 그리 옴니암니(소소한 것까지 좀스럽다.)따지믄서 츠름츠름(그럭저럭 하는 사이에 시간이 흐르는 모양.) 하다간, 녕감이나 우리 얼라도 내 꼬락서니 되기 십상입네다.”

 “그렇티만, 기동조차 허질 못 허는 님잘 두고서리 워찌···”

 “일 �습네다. 보시라요, 녕감. 엔간티 잔정 두지 말구서리 퍼뜩 가시라잖습네까. 녕감 따라서 못 가는 내래 더 애간장 오리가리(여러 갈래로 찢어지다.) 하구, 증말루 피탑네다.(몹시 애타고 절절하다.) 녕감이 떠나지 않겄다믄 내래 혓바닥 콱 깨물어 버릴겁네다. 아시갔습네까?”

 “알갔으니까니 그리 혼쌀(되게 혼나는 것.)하지 말구 고정하라우. 하여간 기운 차리믄 아바이 계신 해주 성님네로 가 있기요. 그렇잖음 얼라 외하내비네로 가 있든지?”

 “내래 어련히 처신할까 참견입네까?”

 “님자···! 내래 이늠에 난리가 즘즛하던지(좀 뜸하다) 판가리(이기고 지고 결판내는 것.) 나믄 단걸음에 뛰어 올꺼니끼니, 그때까장 죽잖쿠 모질게 살아설랑은 기다리구 있으라우. 알았찌비?”

 “고렇케 하것씁네다. 요년 걱정일랑 마시고서리, 녕감이나 험한 시절 몸댕이 성하시라요.”

 “님자. 훗날, 꼭! 살아 웃으믄서 보자우.”

 “그럽시다래 녕감. 내래 �드래두 천금같은 우리 얼라 폐롭다 하지 말고서리 끝까장 잘 보듬어 주시라요.”

 “님자, 어흐흑···!”

 “보기요. 그렇게 즈분대지 말고서리 퍼뜩 가시라요! 이러다가니 죽습네다!”

 조부는 폭탄 파편에 피투성이가 된 채 꼼짝도 못하는 아내를 집에 홀로 두고 매정히 길을 떠나야 했었다.

 무심히 사지를 빠져 나와 얼어붙은 임진강을 하염없는 눈물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건넜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가히 짐작했던 일이며 크게 기대했던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필히 재회할 수 있을 것이라 오십년 동안 실낱 같이 이어오던 믿음이요, 기대였다. “내래 집에 돌아가서리 님자한티 가락지 끼워 줄꺼야.” 하며, 진작에 맞춰 놓은 닷 돈짜리 금반지가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실가락지처럼 닳아버렸다.

 백순이 넘은 노친네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꽃다운 아내와 혈친들은 혹여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부픈 기대가 일거에 휘휘 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몹시 낙담하는 조부의 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어린 시절 조부가 들려주시던 이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석현은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또한, 조부가 꿈을 꾸며 헛소리를 할 때면 이같은 기억들에 가위눌림을 당하고 있음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친족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고희를 훌쩍 넘긴 조부는 기력이 눈에 띄게 쇠약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달포 전쯤 자리를 깔고 누워 문 밖 출입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버렸다.

 조부는, 꼼짝도 못하는 아내를 사지에 몰인정하게 팽개쳐 두고 떠나왔다는 눈에 밟히는 죄책감에 차마 재혼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렇듯 평생을 홀로 외롭게 살아온 통한의 세월을 떠올리면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심장이 곤두 서 피가 거꾸로 흘렀을 조부였으리라.

 조부는 본래 인정 많고 부지런 했던 농부였다. 그 습성은 아직도 남아 있어 아파트 단지 옆 공터에 무와 배추, 시금치, 상추와 같은 푸성귀를 심어 놓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망향의 시린 한이 대추나무 방망이같이 단단했던 몸을 일결에 쓰러뜨려 놓았다.

 지난 일요일 대전 본가에 들렸을 때, 조부는 이미 곡기를 놓아 버려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링거액과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질곡한 삶을 연장하고 계셨다.

 사정이 그랬으므로 부랴부랴 가족 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이번 기회에 가족 묘지를 만들 임야를 구하자는 것이었고, 부친은 “어디 적당한 산혈을 알아보능 게 좋겠다.”며 이지러진 표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석현은 그 순간, 며칠 전 생활 정보지에 실렸던 ‘두멍골 후록 명당 터 영혼계원 선착순 10명 모집’이라는 생경하기 그지없는 제하의 임야 매물 광고를 떠올렸다. 처음 접하는 이색적인 광고여서 유심히 보았기 때문에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더욱이 그 광고를 생활 정보지에 의뢰한 사람이 다름 아닌 태호 아버지였기에 그러했다.

 석현은 곧장 두멍골로 전화를 걸었다.

 -선상님이 워쩐 일루 전활 다 느셨대유? 우리 태호 그 작것이 핵교서 넘이 물건을 함부루 걸터듬다가 잽히기라두 혔남유?

 “아닙니다. 사실 임야 매물 광고를 보고서 전화를 한 겁니다.”

 -그랬슈? 난 또··· 근디 쬐끄메만 늦었으믄 낭팰 볼뻔 혔구먼유. 땅댕이를 쉰 평씩 분할 측량혀서 열 개루 쪼개 놨는디, 죄 다나가구 젤루 좋은 산혈이 딱 한자리 남았시유. 그랴서 금새가 쬐메 때까허긴 허지만서두, 다시 �는 명당임은 분명허구먼유.

 “그렇게 좋은 자린가요?”

 -그야 두말 허믄 잔소리잖구유. 워쨌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혔는디, 전화상이루 너저분허게 이러실 게 아니구, 한번 들르셔서랑 워떻게 생겼능가 휘익 둘러 보시구랴 선상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영혼계원 모집’이란 말은 무슨 뜻이죠.?”

 -아, 그거유? 말 그대루유. 영혼지를 하냥 헐 사람을 모집 헌다능 거구먼유. 시상 살다보믄 친한 사람끼리 뫼서 의형제지나 친목지두 허능 거구, 더군다나 같은 산릉에 한 번 유택을 정혀 뗏장 덮구서 누우믄 영원헌 이웃인디...

 “그래서요?”

 -허이고 선상님두 깝깝스럽긴, 그래서랴뉴? 옛날 으른들이 말씀 허시길, 길 가다가 두루매기 끄트머리만 슬쩍 스쳐두 끊지 못헐 인연이라 혔시유. 헌디 백골이 진토 될라믄 � 백 년은 족히 걸릴 텐디, 그 때까장 혼백끼리 같은 산판이 하냥 묻쳐서 이웃허구 있다능 게 워디 여네 인연허구 같것슈? 안 그려유?

 “아, 그렇군요.”

 -그러니께 일찌감치 사렀을 때부텀 구면으루 만나설랑은 서루 성님 아우 허믄서, 시상살이 고달플 때믄 주욱 뫼서 쐬주 한잔 거허게 주거니 받거니 위로두 허구, 세상사 존 일 있을 땔랑 기쁨을 하냥 나누믄서 흐뭇허게 살다 밍줄 놓으믄 두멍골서 만나자는 얘기쥬.

 “저런,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기발하기 그지없는 이야기가 수화기에서 주저 없이 흘러나왔다.

 얼큰히 취해 어눌한 어조로 장황하게 늘어놓는 태호 아버지의 괴변이다. 석현은 꽤 오랜 시간 인내를 가지고 묵묵히 듣고 있어야만 했다.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튀는 침에 손수건 하나쯤 넉넉히 적셨을 언변이다.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기도 하네요.”

 -저시상이서 이웃헐 사촌덜을 시방부텀 만난다니께, 땅댕이 보러 온 사람들이 죄다 입 찢어지게 좋아혔시유.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겠군요.”

 -풍수 한가닥 헌다는 지관 어른 허시는 말씀이, 증승 판서가 수두룩허니 나올 터라 허니께, 우짰튼 한 번 들러 구경이나 혀보슈. 선상님이 둘러보시기 전까장은 워느 늠이 암만 큰돈을 쥐어 준다 혀두 내 마다헐 테니께 말유. 허허허...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워디 여부가 있것슈.

 “그럼, 근일간 들리겠습니다.”

 결국 언제 끝날지 모를 태호 아버지의 말을 석현은 짐짓 잘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언제까지라도 좋았을 그였다.

 그러나, 일주일 내내 교육청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시간에 쫓겨 방과후에도 도무지 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런 연유로 석현은 사환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오늘은 겸사겸사 지난봄부터 벼르던 길을 나섰던 것이다.

 석현은 하숙집 문을 나설 때, 쥐씨알 요녀석 내일부터는 입이 열 개래도 할 말이 없겠지. 후후후... 하며, 베실거리는 미소와 함께 혼잣말을 지껄였었다. 월요일에 또 다시 지각한다면 이번만큼은 꼼짝도 못하게 잡아 놓고, 마치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두 눈을 한껏 부라려 녀석의 간담이 서늘하게 동갈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던 석현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이미 무너져 오간 데 없다.

 “흐흐··· 두멍골루 가는 길이 그리 만만찮을 텐디유?”

 “이군아, 그런 건 네가 염려할 게 아니야. 내가 이래 뵈도 군대에 있을 땐 완전 군장으로 하는 십 키로미터 구보에서 늘 일등으로 들어와 포상 휴가는 내 차지였거든...”

 쓴웃음 끝에 짐짓 표정을 바꿔 심각하게 건네오는 사환의 절실한 충고였다. 하지만 석현은, 자신에게는 전혀 해당되는 바 없는 일이라 흘려들었다. 두멍골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하더라도 밤톨 만한 태호가 엉덩이를 씰룩거려 가볍게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길이라면, 건장한 성년인 자신은 세 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왕복하고 남을 것이라 섣불리 추측했었다. 그러나 심한 착각이었음을 실감한다.

 말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지 실상 끌고 온 거리가 거지반이 넘는다. 이미 페달을 밟는 다리에 쥐가 오르는 듯 뻣뻣이 경직 되가는 느낌이여서, 성급히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던 것이 몹시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험할 줄 알았더라면 택시를 대절했던지, 아니면 조석으로 오가는 오지버스를 이용했을 것이다. 허나 때늦은 후회요, 부질없는 일이다.

 도대체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거야...?

 거리 개념 없는 촌노들이 대충 어림잡아 말하는 두멍골 십오리 길은 퍽 멀고 험했다. 석현은 길에서 마주치는 촌노들께 두멍골 가는 길을 수시로 물었다. 그때마다, “쬐끄메만 더 가믄 돼야 젊은 냥반... 대략 십리쯤 말여.”라 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여전히 같은 대답만 되풀이해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벌써 용트림하듯 구불텅한 길을 따라 6km는 족히 온 것 같았다. 그러나 이쯤에 있어야 했을 두멍골은 여전히 시야 끝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가팔막한 곶감재를 넘어 서면 조그만 방죽이 나타날 것이고, 그곳을 지나 커다란 왕 소나무가 서 있는 모퉁이를 돌아서면 두멍골이 보일 것이라 했던 태호 말을 얼핏 떠올려 볼 때, 멀 찌거니 야트막한 방죽 둑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두멍골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석현이 헐떡이는 가쁜 호흡으로 방죽 옆을 지나칠 무렵이었다.

 ‘빠, 빠아...앙...’

 뒤쪽에서 자동차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 오는가 싶더니 경적을 요란스럽게 울린다.

 석현은 반사적으로 자전거에서 내려 길섶으로 황급히 비켜섰다. 미간을 좁혀 흘끔하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영구 행렬이었다.

 누굴까...? 이 적적한 계절에 서러운 저승길을 말없이 떠나가는 불귀의 나그네는...?

 지나쳐가는 영구차의 행렬을 바라보는 석현은 조용히 넋두리를 주절거린다. 그 모습이 사뭇 을씨년스러웠던 것이다.

 석현은 차량들의 번호판이 대부분 서울인 점으로 미루어 객지에 나가 있다가 고향을 찾아오는 주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두멍골 영혼계원이라서, 산 설고 물 설은 이곳을 찾는 서러운 망자일 것이라 짐작했다.

 서글픈 곡소리처럼 경적을 길다랗게 울리며 두멍골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가는 영구 행렬을 바라보던 석현은, 알 수 없는 착잡한 심정에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문다.

 휴......!

 한숨을 섞어 파르스름한 연기를 허공에 내뱉는 석현은, 온몸을 짓누르는 노곤함을 잊은 채 인생의 무상함을 잠시 곱씹고 있었다.


 석현이 가던 길을 또다시 멈춰 선 것은, 허무한 마음을 추스려 두멍골 동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앞 서 마을로 들어왔던 영구 행렬이 더 이상 장지를 향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대형 트랙터와 경운기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안두멍과 바깥두멍으로 가는 갈림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지...?

 석현의 고개가 갸웃이 기울었다. 세워진 차량들 앞쪽에서 마치 아귀다툼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오고 있어서였다.

 석현은 몹시 기진한 상태였다. 도무지 이런 일에 신경 쓸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그였으나,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에 대해 후들거리는 다리도 달랠 겸, 조용히 사태 추이를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요런 대갈백이를 붙들어 바싹 비트러버릴 무녀리 자슥아! 후딱 돌아가라구 허잖능가 말이여?!”

 험악한 고함소리가 섬뜩하게 들려 온다. 석현은 자신도 모르게 앞쪽을 향해 고개를 흘끔 내밀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백발이 성성한 촌노였다. 얼핏 겉모습으로 보아선 퍽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가졌을 법한 인자한 모습이다. 하지만, 촌노의 표정은 그런 이미지를 스스로 지우고 있다. 그 뒤에는 대, 여섯의 노인장들이 있었고, 십 여명의 할머니들이 역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얼굴을 붉히고 있다.

 초췌한 얼굴의 상제(喪制)가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표 격인 촌노를 향해 애원조로 말을 건낸다.

 “어르신, 제발 길을 터 주세요. 부탁입니다.”

 “이늠아, 내 일 �다구 혔잖여?!”

 “어르신, 여기까지 아버지의 주검을 뫼시고 와서 그대로 되돌아갈 순 없잖습니까?”

 “뭐셔? 요런 간댕이를 끄내서랑은 잘근잘근 씹어 묵어두 션찮을 늠! 내 원제 늬늠 보구서 오라구 사정났던? 저번에 왔을 적이, 내 진작시 말 혔잖여?! 텍두 �는 소릴랑 허덜 말라구···?!”

 경련으로 씰룩거리던 촌노의 입술이 상제를 향해 열리더니 난생 처음 듣는 험악한 욕지거리가 섬뜩하게 튀어나왔다. 순간, 사위스러움이 석현의 전신을 오싹하게 핥는다.

 얼굴이 파리해진 상제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기어드는 목소리로 촌노에게 또다시 통사정을 한다.

 “어르신 고정하세요.”

 “괴정? 이늠아, 괴정은 뭔 얼어 뒈질 괴정이여? 이 늙다리 눈구녕에 흙떼알이 드러가기 전까장은, 어림 반 푼어치두 �는 일이라 혔잖능가 말여?!”

 분위기가 생각지 않게 험악했다. 맏상제인 듯한 중년의 사내를 향해 작대기를 꼰아든 촌노들의 표정이 비장하다 못해 살벌하다. 그러나 이지러진 얼굴의 상제는 어찌할 바를 몰라 난감해 하고 있을 따름으로 대책이 없다는 표정이다.

 잠시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상제가 꼬리 내린 강아지 꼴을보이며, 비통한 어조로 입을 연다.

 “어르신들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때가 어느 때입니까?”

 “이늠아, 아무려믄 내 때를 모를까미 같잖게시리 때 타령인겨?!”

 “어르신, 제 말은 그게 아니고, 지금은 대통령이 휴전선을 넘어 평양 땅을 허물없이 밟고 다니는 평화로운 시절이란 말이에요.”

 “핑화? 흥...! 난 배우잖은 무식쟁이라 시방 와서 그따우 게 무신 소용인지 몰러?! 나랏님이사 핑양 땅을 밟구 댕기든, 양코배기를 만나겄다구 짠물을 건너 가든, 이 늙은이가 허거라 말거라 참견허구 나설 바 아니잖여?! 허지만, 암만 아츰 해가 서편으루 뜨구, 시상이 두집어져 꺼꾸로 도라간다 혀두 빌어먹을 늬 애비늠 �장만은 절대 이 두멍골엔 못 들여놓는구먼! 내 숨줄이 끊기잖구, 염통이 이렇게 빨딱거리는 한은 말여?!”

 “어르신 이러지 마시고, 차분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너갱이 빠진 똥가이 보름달 보구서 강그러지게 짖는 너저분헌 소리 허덜 말구, 어여 느이 애비늠 냄시나는 �장 후딱 가동쳐서 돌아가지 못허능겨? 퍼뜩?!”

 “어르신, 제발···”

 도무지 대화 내용만으로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언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주검을 앞에 두고 하는 험악한 촌노의 욕설이 석현의 신경을 사뭇 거슬리게 했다.

 “육씨렬 늠! 예가 워디라구 저녀리 작것을 끌고 들어온나 이따우 띵깡인 겨?! 무신 늠에 낯판떼기루 말여?!”

 순간, 석현은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 곡하느라 목은 쉬어 있고, 눈두덩이 말벌에 쏘인 듯 퉁퉁 부어 있는 맏상제였다. 그런 상제를 뒷전에 묵묵히 서 있던 촌노가 욕설을 퍼부으며 앞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상제의 멱살을 움켜잡곤 아스팔트 위에 메치려 했던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해 뒤편에서 얼굴을 붉히고 있던 다른 촌노들과 할머니들 역시, 초췌한 얼굴빛의 상제를 향해 물매를 칠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몇은, 작대기를 휘둘러 영구차의 앞 유리를 깨트릴 기세였다.

 담배를 꼰아 물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중년의 운전 기사가 갑작스런 일에 거칠게 욕설을 내 뱉으며 밖으로 뛰쳐나온다.

 “아니, 이런 씨이팔. 망령이 들었어도 유분수지, 왜 죄없는 차는 때려부수려고 난리들이야?!”

 “뭐시 워쩌? 씨이팔?! 염병헐 늠에 후레짜슥 같으니! 늬늠일랑 얼릉 차나 돌리지 못허능 겨?!”

 “어, 어···? 그러니···”

 기세 좋게 뛰어나온 운전기사였으나, 촌노들이 휘두르는 작대기 세례를 피해 가을걷이가 끝난 논으로 황급히 몸을 피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느 한 곳쯤 요절났을 터였다.

 삽시간에 벌어진 악다구니였다. 두멍골 동구는 금세 단오 난장의 휘청거리는 뒷골목처럼 되버렸다.

 장묘 문화가 세계에서 으뜸인 동방 예의지국인 이 나라에서 도저히 상상도 못해 본 상황이다.

 석현은 촌노들이 마지막 길을 가는 망자를 앞에 두고 무가내로 벌이는 행동거지에 알 수 없는 부아가 치솟아 온몸을 바르르 떨린다. 촌노들이 벌이는 이 같은 일방적인 행동이 너무 과하다 싶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전 후 사정이야 어찌됐던, 상대는 아비를 잃어 슬픔으로 가득한 상제가 아니더란 말인가. 상제는 험악한 손길에 멱살이 잡혀 이리저리 이끌리고 있을 뿐, 어찌된 영문인지 반항할 기색은커녕, 이제는 구구 사정조차 없었다. 그러하긴 뒤쪽에 서 있는 나머지 상제와 상복 차림의 여인들도 마치 일반으로 서러움을 삼키고 있을 뿐이다.

 최소한 비라리치는 소극적인 자세라도 보여야 했으나 상제는 물위에 떠 있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을 뿐이어서, 이를 지켜보는 석현은 오히려 속이 상했다.

 알 수 없는 일이야...? 석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촌노들이 분노하고 있는 까닭과 상제들의 가증스런 자세가 자못 의문 투성이였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극심한 우려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예로부터 객지의 망자가 마을 안 길로 들어오는 일에 대해 흉흉한 액운을 몰고 온다 생각했던 것은 석현도 잘 아는 바였다. 민간 신앙이 뿌리 깊은 시골에서는 특이나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이를 구실로 장례 행렬을 가로막는 일은 지금에도 종종 볼 수 있는 예사로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에 이르러 이런 일은, 결국 퍽 인심 쓰듯 길을 터주는 조건하에 푼돈을 뜯어내려는 어설픈 장난으로 그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뜯어낸 돈은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막걸리 값에 만족하게 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구 행렬을 두고 촌노들이 벌이고 있는 이 같은 행동거지도 틀림없이 그런 이유에서 시작됐을 것이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리라.

 생각이 그랬던지라 촌노들이 벌이는 이같이 해망한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과격한 모습이다. 더욱이 상제들의 소극적인 자세 역시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객지에서 들어와 망자를 모셔 놓고 떠나야 하는 그들로서는 두멍골을 위해 기부금으로 몇 푼 내놓는 것도 그리 무리가 아닐 성싶었다.

 석현은 휴대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더 이상 무의미한 소모전을 그대로 지켜 볼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이 그대로 진행되다가는 결국 유혈이 낭자한 투견판처럼 될 것이라 판단됐고, 이쯤에서 경찰의 협조를 구해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석현의 신고 전화를 받은 것은, 같은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허물없이 지내고 있는 동갑나기 최순경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김선생?

 “여기 두멍골인데, 급히 이곳으로 와야 할 것같아. 이유는 와서 보면 금방 알겠지만, 매우 다급한 상황이야.”

 전화 통화를 마친 석현은, 또 다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두멍골에 가족 묘지를 만들려 했던 일은 필히 재고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이렇듯 인심 사나운 마을에 선영을 마련했다가 훗날 이 같은 낭패를 보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요란스런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파출소 순찰차가 두멍골에 나타난 것은, 석현이 전화로 신고한지 불과 십 여 분 남짓 지난 후였다.

 순찰차에서 내려선 최순경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연신 고개를 가로 젓는다.

 “어떻게 된 거지?”

 “난들 알겠어?”

 “하긴...!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

 최순경은 의미 모를 미소를 남기고, 상제의 멱살을 잡고 밀치락거리고 있는 촌노들에게로 향했다.

 “자, 자! 진정들 하세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최순경의 어조에는 특유의 단호함이 잔뜩 배어 있다. 그러나 촌노들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으나,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험악한 악다구니를 계속한다.

 보다 못한 최순경이 그들 사이에 끼어든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격분한 촌노들을 달래기에는 도무지 역부족이다.

 “물리적으로 이러실 것이 아니라, 대화로 해결하세요.”

 석현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최순경마저 험악한 악다구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오히려 이리저리 떠밀리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몸싸움은 오래가지 않아 끝이났다. 석현과 최순경의 만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촌노들이 제풀에 지쳐서 였다.

 잠시 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아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촌노를 향해 최순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는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토록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신 거죠?”

 “무신 늠에 일이냐구? 이 보시게 순경 양반. 시방 저 작것덜이 떼메구 온 �장이 뭐 허던 늠인줄 행여 아시기나 허우?”

 “그걸 제가 어떻게...?”

 “다람쥐 상수리 까먹다가 방구 뀌능 것츠름 생퉁맞게 묻는 소릴 아실 텍이 �지···”

 “······?”

 “지지리 못살었어두 근심 만큼은 코딱지만큼두 �었던 두멍골이었다우. 고런 이 부락에 청상 과부를 열밍이나 맨들어 놓구, 고것도 모지라서 쵱각 귀신 열 닐곱이나 맨들어 놓은, 사지를 죙이 모냥으루 갈기갈기 찢어발겨 불댕이에 던져 태운들 분통이 안풀릴 웬수늠이라우.”

 턱으로 영구차를 가리키며, 흘끔 하는 촌노의 눈길이 시퍼렇게 번뜩였다. 섬뜩한 살기였다.

 알 수 없는 촌노의 말에, 석현은 반사적으로 묻는다.

 “어르신, 그게 무슨 뜻이죠?”

 “휴...!”

 눅눅하게 한숨을 뿌리는 촌노의 미간이 비참하게 일그러지며, 시선이 먼산바래기로 던져졌다. 입술은 심한 경련으로 씰룩인다. 거칠게 일렁이는 속마음을 다스리려 무단히 노력하고 있음이 한 눈에도 쉽게 엿보인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차갑게 불어와 얼굴을 싸늘하게 핥고 스치는 삭풍이었다. 긴 휘파람 소리를 을씨년스럽게 내며, 차가운 정적을 깨고 있다.

 석현과 최순경은 얼마 동안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망념에 사로잡혀 아랫입술을 짓씹는 촌노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상념에 잠겨 있던 촌노의 눈에 이슬이 맺혀 주름살을 타고 흘렀다. 이를 급히 손으로 훔쳐내며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격앙된 어조로 연다.

 “제미랄느므 것, 고게 워떻게 된 거냐믄 말여··· 인공 때 일이었으이.”

 “인공 때라면···? 육이오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쿠먼. 까마득헌 옛적 일이지··· 허지만 말여, 엊그제 일츠름 아직두 생생헌, 내 하두 기가리가 콱 맥혀 이 자리에 털썩 고꾸라져 뒈질 일덜이기두 허구···”

 촌노는 기억 속에 흩어져 있던, 지난날에 있었던 그늘진 시간의 편린들을 주어 모으고 있는 듯 했다.

 잠시 후, 촌노는 짐짓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우리 두멍골에 황부자라구 있었잖였겄어? 헌디 고집 머슴늠덜 중에 근력께나 쓰던 갑생이라는 늠이 있었다우. 하지 안 올모가 워떻다는니 따지믄서, 구저분허게시리 내리는 장마 비 맞으믄서 보리 끝 마른갈이에 물 붙들어 놓구, 사내 아낙덜 헐꺼 �이 들루 나와선 늦모를 심느라구 새는 밀대접사리에 고쟁이 속 사타구니 젖어 불어터지는 줄두 모르구 바쁠 때였어··· 댕그렁 허구 징이 깨트러지는 소리가 울리더니만, 동구에 있든 솟대에 조잡시럽게 그린 츰 보는 뻘겅기가 올라 너털댔는 디, 낭중에 알구보니께 그거이 인공기라 허더구먼. 갑생이 늠이 내걸응 겨... 그 담부턴 고늠이 두멍골 인민위원장인가 뭔가라구 허믄서, 시퍼렇게 젊은 늠이 핼애비 뻘 되는 노인네들헌티 ‘동무 동무’ 허더니만, 이제부턴 지늠이 두멍골 좌상이라 허더구먼. 그늠 허구댕기는, 풍신 쥐어 발르는 꼬락서니가 당최 마뜩찮였지만, 우리덜은 말여 아뭇소리두 헐 수가 �었으이. 휴...! 쌀가마니를 한 손으루 드렀다 내렸다 허는 곰만헌 등치두 등치였지만서두, 죽창에 낫가락 흔들믄서 동네방네 후적대는 그늠 끗발이 짓고땡이루 따지믄 장땡에 가까웠으니, 너 나 헐꺼 �이 뒈지잖을라믄 고분고분 허란데루 허야만 혔지. 서슬 시퍼런 허기가 왜정(倭政)순사 늠덜은 모기 다리에 워카만도 못혔으니께, 그만허믄 말 다 헌 거 아니겄어?”

 “예, 짐작할만 합니다.”

 “그늠이 씨부렁대는 한 마디믄 두멍골 사내덜은 보급대루, 인민의용군으루 착출되 갔으니께 말여. 고늠 말이 곧 두멍골 벱인 시절였으니께 알쪼 아니겄어? 제미랄 것! 그늠 두터비같은 손모가지에 멕살을 잽혀 의용군으루 복날 똥가이츠름 끌려간 게 두멍골서 나까징 스물 여덟이나 됐으이... 휴...!”

 한숨을 길게 내쉬던 촌노의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지난 일들이 그의 가슴을 거칠게 치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잠시 억색해 하던 촌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잇는다.

 “그렇게 강제루 착출된 젊은이덜이 읍내 국민핵교 운동마당에 묏는디, 한나절 남짓 쵱알 제구 쏘는 시늉만 겐신히 일러주댕 해 떨어진 야음만을 골라갖구 워디론가 끌구갔지... 하늘이 떠 있는 빌(별)을 보니께 남으루 남으루 끌구간다능 건 알았지만서두 정작 워디루 가는 겐진 아무두 몰랐으이. 읍낼 떠난지 닷새만에 우리덜이 도착헌 건, 낙동강 건너루 왜관땅이 바라뵈는 곳이였구먼. 즌쟁은 증말루 격렬혔지. 낮 밤 가리잖구 콩 �는 듯헌 쵱소리에 쏟아지는 쵱알이 한여름 쏘내기 오능 거 같었으니께 말여... 견디다 못허구 슬쩍 줄행낭 놓기 전까징 열흘 남짓 게 거기 있으믄서, 차마 못 볼 꼴 숱허게 봐야혔구먼. 시방두 그 때 일덜이 꿈이 뵐까 끔찍허이... 휴...!”

 촌노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몸서리였다. 그때의 처절했던 잔상들이 아련히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고갤 드는가 싶더니만, 모가지가 워디룬가 단박에 널러간 모과나무 안집 이서방. 아랫두리가 도망가 쥑은 건넌말 최서방네 막내. ‘쿵’허구 베락 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허공으루 �어진 사쵠 아우 빙출이. 댄추 떨어져나간 앞지락에 간댕이를 드러낸 채 쥑어 간 첫머리집 숙이오래비··· 이보게덜, 난 말여 거기서 절규허는 무간지옥을 봤구먼. 지옥 중이서두 무섭기가 질루 무섭다는 무간지옥 말여··· 결국이 해가 시번 뜨고 지니께 두멍골서 하냥 끌려갔던 붕우(朋友)덜은커녕, 읍내서 뫼갔던 낯익은 이는 아무두 �었으이··· 죄다 쥑응 겨··· 이튼날 그 자린 딴디서 우리덜츠름 끌려온 젊은이덜루 채워졌으이··· 우린 참호에다 대가리를 바짝 쳐박구서, 쵱구녕만 밖으루 내놓구 허공이다 대구 마구 쏴댔지···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께 지발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신호일 뿐이였어···”

 “저런···!”

 “열흘 째 되든 날, 난 말여 쵱 놓는 소리가 꺼끔헌 틈새를 타서 하늘의 빌을 보구 서북쪽으루 뒈지믄 말지 허구 내뺐지. 거기서 의미 �이 가이 죽음을 당할 순 �는 일이었으니께 말여. 그래 김천 쯤에 이르러 풀섶에 오그리구 잠들었다우. 비록 새우잠이긴 혔지만, 고향 뜬지 보름만에 넋 빼놓구 자보는 달짝지근함이란 뭘로두 표현 못헐 일이었구먼. 월매나 잤을까, 그런디 난 군시런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어. 그리곤 손으루 얼굴을 훔쳐 닦다간 허기를 떼우려 묵었던 솔낭구 껍질을 죄 겨내야 혔어. 그래 잠든 날 깨운 게 뭔지, 행여 자네덜은 상상이나 허시것능가?”

 “그, 글쎄요...?”

 “휴···! 손바닥에 묻어난 건 말여, 딴 게 아니구 고자리떼였구먼. 봉우덜의 핏물허구 살댕이가 튀어 붙었든 게 썩구 있었던겨. 잠든 새 쉬파리가 거기다 알을 퍼질러 놨구, 고자리덜이 고 걸 뜯어먹느라 꾸물거리구 있었던 거구먼...”

 “저, 저런··· �쯔쯔···”

 혀를 차는 석현은 촌노의 과거 속으로 빨려 드는 느낌에 온몸은 바들거렸다. 끔찍해 하기는 최순경은 물론 그곳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였다.

 순간, 촌노의 눈에선 질퍽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가슴을 치받는 울분 때문이었다. 촌노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여짓거리던 입술을 기어이 질끈덩 깨문다. 그리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몸서리를 친다. 뒤편에서 할머니들의 조용한 흐느낌이 들려 왔던 것이다.

 묵묵히 촌노의 말을 듣고 있던 최순경이 이지러진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영구차에 실려 있는 망자가···?”

 “왜 아니겄어. 저기 실려 있능 게 갑생이 고늠이구먼. 지늠 상전인 황부잘 읍내 학살장이루 끌구가 쥑게허구, 저 불쌍헌 할망구덜을 청상 과부루, 생때같은 두멍골 젊은이덜을 의용군으루 내몰아 쥑게 맨든 늠··· 나랏님에 불충혔다는 이유루 여적까징 지사가 돌아와두 젯메 한 술 떳떳이 못 �어 묵구 있는, 차디찬 구천을 통곡허믄서 헤매는 고혼으루 맨든 늠이 바루 저기 영구차에 실린 늠이란 말여. 저 사지를 찢어발겨 솟대에 걸어 까그매 마시를 줘두 션찮을 늠이··· 바루 저 영구차에 실린 갑생이 늠이라구!!”

 또 다시 격분하는 촌노의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석현이 고개를 갸웃뚱히 기울이며, 차분히 물었다.

 “그런데 갑성이란 분은 어떻게 여태껏 살아 남을 수 있었죠? 수복 후 전범들 역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하던데요?”

 “그렇긴 헌디, 갑생이 저늠만은 운 좋게시리 살아 남을 수 있었어. 학살장이루 끌려가던 안면 자별한 순경을 저늠이 인정상 인민군 몰래 살려줬다나? 수복헌 뒤 토벌대를 조직혀 뻘갱이들을 죄 붙들어다 놓구 공판헐 때, 고걸 이유루 그 순경늠이 나서서 저늠을 살려 놓응 겨. 베락을 맞아 뒈질 늠이 아뭇것두 몰르는 겉만 뻘겋구, 속은 흐연헌 뻘겅무라구 허믄서 말여. 그 뒤루 갑생이 늠은 두멍골을 떠났구 여태껏 안�었지. 태호아범이 두멍골 영혼지를 맨들기 전까징은 말여.”

 “아...!”

 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촌노들이 욕식기육(欲食其肉)의 험악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길을 막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한편에서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던 상제가 촌노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못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들의 가슴 아픈 상처를 또다시 건드려 놓아서 말이에요. 하지만 저희 아버님 역시, 그 때 그 일로 평생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한 채 고뇌하며, 오늘날까지 질곡한 삶을 사셔야 했어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술주정뱅이로 휘청휘청 흔들리다 가셨죠. 제 기억으로 술에서 깨어 있었던 모습이라곤 고작 운명하시기 전 일주일뿐이었으니까요. 저는 다만,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시면서 ‘내 고향 두멍골에 가고 싶다’ 했던, 그 한 맺힌 마지막 소원을 풀어드리고 싶었을 따름이에요. 죄송합니다.”

 상주가 촌노들에게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순간, 끈적한 액체가 아스팔트 위로 떼구르르 굴러 떨어지는 것을 석현은 볼 수 있었다. 눈물이었다.

 촌노들은 짐짓 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상제가 촌노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굽실거렸다. 그리곤 비통한 표정으로 두멍골을 몇 번인가 반복해 훑어보다가 풀기 없는 걸음으로 영구차에 올랐다.

 “자, 어서 갑시다. 화장장으로···”

 잠시 후, 영구 행렬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왕소나무 모퉁이를 돌아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멍골 촌노들은 입술을 깨무는 침묵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선생,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해?”

 “그냥, 마음이 착잡해서...”

 최순경이 석현에게 담배를 권해 온 것은 촌노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두멍골 동구는 스산하게 불어오는 삭풍만이 아스팔트 위에 낙엽들을 굴리고 있을 때였다.

 “김선생, 오십 년이란 세월이 까마득히 흘렀는데, 정녕 메울 수 없는 깊은 골일까?”

 “그렇겠지. 처절했던, 그 참혹한 현장에 직접 서 있었던 그들에게는··· 아무리 최고 통수권자가 휴전선을 넘나들며 웃고 악수를 한다 해도··· 그들의 마음 속 깊은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을 거야. 휴···!!”

 석현은 뿌연 담배 연기를 허공에 한숨을 뒤섞어 내뱉었다. 소 떼가 판문점을 넘고, 위정자들이 평양 거리를 거닐며, 오늘도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남쪽의 관광객들이 희희덕거리며 오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녕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의용군이란 미명하에 의미 없이 산화한 수많은 영령들을 위해 초라한 위령제조차 떳떳하게 올릴 수 없는 모순된 평화가 왠지 불안해 보였고, 석현의 마음을 우울하게 비틀고 있었다.

 석현은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휴···! 세월이 까마득히 흘러 구천을 떠도는 한 맺힌 넋들이 분해되고, 냉혈에 거꾸로 묻힌 백골들이 모두 진토 된다면 모를까··· 어쨌든 그 억울한 주검들을 위로해야 하는 건, 평화로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전후(戰後) 세대들의 몫이겠지···”

 “......!!”

 넋두리를 주절거리는 석현의 시야가 시루봉으로 옮겨갔다. 조금 전까지 시리도록 푸르던 그곳엔, 울적한 심정만큼 무거운 먹장구름이 미친 듯이 윤무하고 있다. 잠들지 못하고 서럽게 떠도는 영혼들을 위해 한바탕 눈물이라도 흘려주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