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자웅눈이 삼촌
(2001년 서천신문)
천재(天才)의 지능 지수를 짓고땡 끗발로 매겨서 가보로 보고, 영재는 일곱 끗 정도로 하며, 어지간한 정도의 보통 사람들은 대충 다섯 끗이라 하자.
인간은 동물들과 다르게 영검스런 지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독수리처럼 힘찬 날갯짓이 없었으나 하늘을 날았고, 상어처럼 강건한 지느러미가 없었어도 바다 속을 가르고 헤엄쳤다. 또한, 사자처럼 날카로운 발톱도 강력한 턱과 송곳니가 없었으나, 만물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우수한 지능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잡인배들이 엉덩이에 곰팡이 피고 무릎 썩는 줄 모르고 하는, 한갓 노름에 지나지 않는 속칭 짓고땡 끗발에 이를 비교해 본 것은, 감히 존엄한 인간과 험한 시대를 살며, 한 시대를 풍미하고, 빛낸 위대한 두뇌들에 대해 모독이요, 사뭇 불손하기 짝없는 일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경하기 그지없는 짓고땡의 끗수를 빌려 화두를 꺼내 놓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기지우이며, 요즈음 인터넷 전자 상거래 사업으로 재계 관심의 초점인 모 벤쳐기업 이춘우 사장에게 영원히 삼촌이란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 자웅눈이 막내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바로 막내 삼촌의 지능 지수는 우리가 흔히 하는 아이 큐(IQ) 테스트로는 도저히 측정할 수가 없는 처지라서, 밤새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봐도, 짓고땡 끗발로 대충 계산할 도리밖에 없었다.
절친한 벗의 삼촌이라는 유다른 사실을 십분 감안하여 더할 나위 없이 후하게 끗수를 매겨 주려 했으나, 애당초 그렇게 염두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삼촌의 지능 지수는 겨우 삼팔 따라지에도 채 못 미친다는 불가 불의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 얘기는 춘우 나이 열 여섯, 그러니까 중 3년생이던 그가 여름 방학을 맞아 서천 고향집에 잠시 내려갔다가 보고 겪었던 일들이다.
"에그머니나, 캭...!"
춘우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천방산을 와르르 무너뜨릴 듯, 새벽 공기를 가르고 어머니의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고교 입시를 준비하느라 간밤을 꼬박 지새우고, 첫닭 울기 직전에야 겨우 잠들었던 춘우였다. 그러나 아무리 눈까풀이 감겨 온다 해도, 밖에서 들려 오는 어머니의 앙칼진 비명 소리에 피곤함을 핑계로 불효 막심히 모른 척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여, 여보! 도대체 무, 무슨 일이야?!"
놀란 것이 어디 비단 춘우뿐이랴. 이미 밖에선 어머니를 향해 그 까닭을 묻고 있는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잠들면 메고 가도 모르는 춘우가 이렇듯 놀라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보면, 이미 집안은 울안으로 호랑이가 뛰어 들어온 듯 발칵 뒤집혀졌을 게 뻔했다.
춘우는 본능적으로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팬티 바람쯤 아랑곳하지 않고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 앞에 서 있는 벽오동 나뭇가지 사이엔 어둠의 잔재가 채 가시지 않고 묻어 있어, 그 모습이 또렷하지 않은 때 이른 시간이다.
"요런 매가지를 비틀어 쥑일눔! 어제 그렇게 알아듣도록 단단히 타일렀거늘...!"
"퍼뜩, 그것 못 치워?!"
두 눈을 아래위로 부라리며, 버럭 고함을 질러 대는 춘우와 아버지의 어투가 사뭇 날 선 칼날처럼 섬뜩하고 험악했다.
쌀바가지를 팽개치고, 토방 위에 뒤로 나동그라져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머니가 이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질겁하며 비명을 토해 낸 이유를 춘우는 가까이 다가가 굳이 묻지 않아도 금세 알 것 같았다. 꼭두새벽부터 이렇듯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다름 아닌 자웅눈이 막내 삼촌이다.
춘우는 얼결에 밖으로 뛰쳐나오기는 했어도 삼촌 때문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바는 아니다. 그의 기억으로 이런 일은 수시로 일어나는 부지기수의 일이었으니까.
"헤헤헤... 춘우 조카, 장어 잡아왔다. 이히힛... 울 아부지 허구 큰 성님 줄려구. 이히힛..."
"이 눔이 그러니, 얼릉 치우래두?!"
사뭇 자랑스럽다는 양, 기괴한 웃음으로 안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어머니께 내밀고 있는 삼촌의 까마귀 같은 손에, 언뜻 보아 작대기 만한 구렁이가 들려져 보기에도 섬뜩하게 혀를 널름거리고 있다.
헝클어진 더벅머리에 어수선하게 묻어 있는 거미줄, 물에서 방금 전에 건져 놓은 듯 꼴사납게 젖어 있는 옷거리로 미루어, 삼촌은 새벽 찬이슬을 흠뻑 맞으며, 헛것에 홀린 개처럼 온 산판 후미진 고라당까지 샅샅이 들쑤시고 다녔을 게 뻔했다.
"얼릉, 비, 비키셔유... 사, 삼촌!! 여보, 뭣해욧?!"
춘우의 기억으로 어머니 목소리가 이처럼 새벽부터 담 밖으로 펄쩍 뛰어 넘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 해질녘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생들을 부를 때나 혹간 있을 뿐이다.
특히 "아침부터 여인네 목소리가 집밖으로 흘러 나가면 사내들 하는 일이 하루 진종일 재수가 없다."며, 언행을 살얼음 밟듯 했던 어머니였다.
그렇듯 정숙하기로 온 마을에 소문이 파다한 어머니였으나, 꼭두새벽부터 기절초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춘우는 백 번 납득이 간다.
미친둥이. 저능아. 멍텅구리. 칠푼이. 백치. 천치. 자폐아... 삼촌은 이런 류의 그 어떤 것을 골라 갖다 붙여도 그다지 틀린 표현이나 그릇된 판단이 아니다. 삼촌은 나사못이 풀려져 있어도 단단히 풀려져 있었고, 퍽이나 어긋져 삐걱거리고 있었으며, 애초부터 제멋대로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며 심하게 겉돌고 있는 정신 상태였다.
삼촌의 몸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특이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전신을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목수의 먹줄을 빌어다 튕겨놓고 볼 때, 우측에 비해 좌측에 있는 모든 것이 유별나게 컸다. 두상은 한쪽으로 심하게 비뚤어져 있었고, 자웅눈이란 별명답게 눈은 짝짝이였으며, 귀 역시 마찬가지여서 부처님 귀와 거렁뱅이 쪽박 귀를 함께 달고 있었다. 손과 발은 물론 팔 다리 역시 왼쪽은 항우 장사 부럽지 않게 튼실했으나, 오른쪽은 한 눈에 보아도 빈약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아지랑이같이 가물거리는 어릴 적 춘우의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사타구니에 있는 탱자 모양의 그것도 쭈그렁한 우측에 비해 왼쪽 것은, 뜰의 벽오동 나무에 매달린 하눌타리처럼 유난히 컸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그 우스운 모습을 마주 보기가 무섭게 키득거리며, 배꼽을 쥐어뜯기에 바빴다.
삼촌은 춘우와 동갑 나기였다. 더욱이 같은 날 같은 시에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세상에 태어났다. 삼촌은 안방에서 할머니의 배를 틀어 쉰둥이로 세상에 나왔고, 춘우는 별채에서 꽃다운 어머니 배를 어지간히 아프게 틀어 세상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런 탓에 춘우와 삼촌의 사주(四柱)는 틀림없이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팔자는 흑과 백, 하늘과 땅, 물과 불의 차이처럼 판이하게 달랐다.
춘우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젖을 움켜잡고 젖꼭지를 아귀차게 물어뜯으며 빨았던 탓에, 나날이 피둥피둥하게 자라났으나, 삼촌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삼촌은 일곱 이레가 지나도록 눈도 뜨지 못하고, 태어날 때 보다 오히려 더 우그러져 죽지 못해 거친 숨만 겨우 헐떡였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파고드는 춘우를 떼내고, 삼촌에게 젖꼭지를 물렸으나 간신히 들이킨 젖이나마 거지반 토해 내기 일쑤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삼촌이 이렇게 된 것을, 모두 개 부정이 들어서라 치부했다. 그들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 이웃 김서방네 집에서 지랄병으로 날뛰는 개를 몽둥이로 때려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할머니의 억지에 가까운 등쌀을 이겨내지 못한 이웃집은, 아뭇소리 못하고 건너 마을로 슬그머니 이사를 했다.
춘우 생각에 삼촌이 개 부정이 들어서 그렇다는 할머니의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다만 답답한 마음에 그냥 해보는 푸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건너 마을로 이사를 간 김 서방은 언제나 춘우네 가족을 만나면 괜스레 미안해하고 죄스러워 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춘우 또한 삼촌의 처지와 같았을 터였기에 아버지는 이사 간 김서방을 만나면 오히려 더 미안해하며 주막으로 끌고 가 됫술을 받아 주어야만 했다.
그런 탓에 춘우는 사주 팔자를 믿지 않았다. 행여 그것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의 운명이 이처럼 판이하게 다를 까닭이 없었다. 점쟁이들이 입에 거품을 가득 물고 장황하게 사주 팔자가 어떻다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지만, 한 날 한 시에 같은 사주를 갖고 태어난 두 사람의 팔자는 엇비슷하기는커녕 턱없이 다르기만 했던 것이다.
춘우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삼촌을 향해 "삼촌"이라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말을 하다가도 삼촌 호칭이 들어가는 말이 나오면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동갑 나기라는 나이 탓도 있었으나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은 까닭에, 볼썽 사납게 쩔뚝거리며 걷는 꼴 역시 싫었는데, 한 술 더 뜨느라 으그적대며 걷고 있는 팔자 걸음은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 해도 도무지 가관이다. 이러한 특수한 사항들이 삼촌 호칭을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았던 것이다.
동네 아이들은 그런 삼촌을 향해 "자웅눈이 바보" "쩔뚝발이 천치"라 함부로 놀렸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걸음 탓에 "열 한시 오십분"이라 놀렸다. 그럴 때면 춘우는 아이들을 나무라기는커녕 뒷전에서 고소해 하며 수수 방관하기 일쑤였다.
방과 후 춘우가 학교에서 돌아 올 때면, 언제나 동구 밖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는 삼촌이 몹시 창피해,
"바보야, 왜 여길 나와 기다리고 있능겨? 귀찮고 챙피허게 시리?!"
하며, 호되게 구박했다. 그렇지만 삼촌은,
"우리 춘우 조카 무거운 책 보따리 받아 줄려구. 나 아니믄 워떤 눔이 조칼 챙긴댜? 이히히힛..."했고, 자신이 그의 삼촌임을 은연중에 '우리 춘우 조카'를 말머리에 앞세워 강조했다.
춘우는 그런 삼촌을 피해 혹간 샛길을 통해 몰래 집으로 돌아오려 했으나, 그 때마다 삼촌은 어떻게 알았는지 걸쭉한 웃음으로 번번이 그 길을 지키고 있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동물적인 감각에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느 모로 보아도 삼촌의 짧은 지능만은, 모자라면 모자랐지 넉넉하게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코흘리개 삼척 동자도 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어제 아침에 개구리를 잡아다 방에 풀어놓고 놀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종아리 살갗이 터져 피가 줄줄 흘러나오도록 헌집 벽 털리듯 호되게 회초리 질을 당했다.
"늬 또 다시 이런 이상한 짓꺼릴 허는 날이믄 천방산으로 끌고 가 바위 틈새에 고려장을 헐꺼구먼! 알아 들응겨 이놈아?"
"아랐�, 큰 성님! 헤헤헤..."
삼촌은 이렇듯 대답만큼은 항상 한여름 소나기 바람 불어오듯 시원스러웠다. 언제나 동짓달 언 엿가락 부러지는 소리에, 예배당 종 치는 소리보다도 커다랗게 대답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채 종아리 상처에 딱지가 지기도 전에 또 다시 팔에 칭칭 감아 들고 온 구렁이로 미루어, 내일에는 분명 호랑이라도 잡아 버젓이 코뚜레를 해 타고 들어온다거나, 우리가 여태껏 상상도 못해 본 또 다른 생딴전으로 집안 식구들을 화들짝 놀라게 만들 것이라 추상케 했다.
점심 무렵이었다.
뒤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대낮에 도둑고양이는 아닐 것이고, 삼촌이 또 다시 해괴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춘우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으나 자꾸만 들려 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절로 신경이 쓰인다. 삼촌이 하는 일은 아버지 말처럼, "씨알 떼기 �는 일."에, 또한 "일 할 머리 �는 짓거리." 뿐이다. 춘우는 지금도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 일 것이라 짐작했다.
괜한 궁금증에 당장 뒤란 쪽 들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볼까 했으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게 하는 불볕 더위는, 그것마저도 사뭇 귀찮아지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들려 오는 그 소리가 자꾸만 귀에 거슬려 공부가 될 리 없다.
춘우는 이맛살을 구기며, 기어이 들창 문으로 다가갔다. 짜증스런 심사를 삼촌을 향해 시원하게 고함을 질러 톡톡히 화풀이를 해 볼 속셈이다.
들창을 통해 진녹으로 채색된 뒤란 뜰이 빤히 내다보인다. 궁금증을 유발시킨 소리는 장독대 뒷편에 서 있는 제법 높다란 복숭아나무에서 들려 왔다.
그림자 하나가 나뭇가지 사이를 원숭이처럼 제법 날렵하게 건너다니는 모습이 어뜩 보였다. 짙푸르게 우거진 나뭇잎에 가려져 얼굴은 확연하게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삼촌인 것은 손금 보듯 뻔하다.
다람쥐 같은 삼촌을 제외하고, 복숭아나무에 올라가 이처럼 위험한 곡예를 펼칠 사람은 이 집 울안에는 아무도 없다. 어린 동생들이 있기는 했어도 춘우처럼 생겁 많은 녀석들이라서, 감히 사다리 없이 나무에 오를 재간이 없다. 또한 녀석들은 이렇게 푹푹 찌는 더위에 바보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마을 앞개울에 나가 시원스레 물장구를 치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부분 휘두르는 장대 물매질로 복숭아를 땄고, 이깟 복숭아에는 관심도 없었다.
"땡볕에 뭣 하는 거야? 쓸데없이?"
춘우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 척, 다소 짜증 섞인 어투로 말을 건넸다.
"이히힛! 조카, 복숭아! 헤헤... 조카, 요것 줄까? 이히힛..."
나뭇가지 사이로 누런 이를 드러낸 삼촌이 얼굴이 보였다. 이내 그 특유의 괴상하고 걸쭉한 웃음을 잔뜩 흘리며, 춘우를 내려다본다. 표정만큼은 정녕 천진스런 모습이다. 항상 그랬듯이 삼촌은 누가 조카 아니라 할까 여전히 '조카' 소리는 입에 꿰맨 듯 달고 다닌다.
"흥! 누가 그깟 맛없는 복숭아 먹고 싶댔나? 나는 수박이나 포도가 더 좋던 걸!"
춘우는 미간을 좁히며, 짐짓 퉁명스럽게 한 마디 쏘아 붙였다. 그것은 뒤란 복숭아가 맛이 없다거나 먹기 싫어서 하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춘우는 삼촌의 옛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청개구리 같은 습성을 누구보다도 익히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틀림없이 그의 몫을 챙겨서 웃으며 다가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 개만 줄래?"하며, 성급하게 애걸복걸했다가는, 오히려 누런 이를 드러내 놓고, 약을 바싹바싹 올리며, 어디론가 도망갈 것이 뻔했다.
춘우는 진작에 새콤달콤한 뒤란 복숭아 맛을 알고 있다. 그 맛은 보기보다 일품이다. 이내 입 안 가득히 신맛이 돋고 군침이 그득하게 넘어간다.
"에헤헤... 조카, 쪼매만 기다려... 에헤헤... 여기 복숭아 잔뜩 땄다! 이히히..."
아니나 다를까. 춘우의 추측대로 삼촌은, 자신의 흐뭇한 표정으로 배를 어루만지더니 이내 두드려 보인다. 새끼줄로 허리를 질끈 동여맨 셔츠 속에는 먹음직스런 복숭아가 가득히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촌은, 껄끄러운 복숭아 털쯤 애당초 아랑곳하지 않았다. 욕심껏 따 넣어 배불뚝이 모습이 맹꽁이를 보는 것 같아 절로 웃음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후후, 그럼 그렇지' 춘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냉담할 뿐이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언제 어떻게 뒤바뀌어질지 모르는, 한 여름 소나기같이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삼촌의 뻔한 소갈머리였다. 엊그제 산딸기를 따왔을 때에도 그러했고, 설익은 머루를 지천으로 따 가지고 왔을 때에도 그러했다. 춘우는 잘 알면서 당해 본 이력이 손가락으로 꼽아 일일이 헤아리지 못할 만큼 무수했다.
삼촌이 복숭아나무를 황급히 내려오려 할 때였다.
"얼렐레...?"
"어...엇! 조심해!!"
발을 헛딛어 미끈덩 하는가 싶더니, 나뭇가지에 걸려 옆으로 두 세 바퀴쯤 빙그르 돌았다. 제 딴에는 그 순간에도 떨어지지 않으려 허공에 팔을 벌려 허우적대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미 균형 잃은 삼촌은, 마파람에 호박 떨어지듯, 커다란 '쿵' 소리와 함께 뒤란 땅바닥으로 어이없이 굴러 떨어졌다. 순식간의 일이라서 곁에 춘우가 있었다 하더라도, 전혀 손 쓸 겨를 없이 벌어진 급작스런 일이다.
"괜찮아?! 안 다친 거야?!"
춘우는 비좁은 들창을 통해 뒤란으로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세월아 네월아'하면서 방문을 통해 나가 마당을 한바퀴 돌아가 여유를 부리며 살펴볼 상황이 아닐 성싶다.
"얼레? 이를 어째...? 바보야, 퍼뜩 정신차려?!"
삼촌의 뒤집어진 자웅눈에는 검은 눈동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전혀 안 보인다. 실룩이는 눈두덩 사이에는 희끄무레한 흰자위만 가득하다. 경련으로 전신을 파르르 떨며, '켁켁' 거리는 호흡은,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만 같았다. 누런 이가 드러난 입가에는 게 거품이 그득히 북적거리고 있고, 간질 발작을 하고 있는 듯한 꼴이 마치 홧김에 땅바닥에 메친 개구리 형상과 흡사했다.
잠시 후, 심하게 경련으로 떨고 있던 삼촌의 몸이 맥없이 축 늘어지더니 거친 숨만 겨우 껄떡인다.
춘우는 겁이 덜컥 났다. 얼마 후 삼촌의 호흡이 그만 딸깍하고 멈출 것만 같았다. 이런 일은 춘우가 난생 처음 지켜보는 끔찍한 일이다. 지난번 반하를 먹고 속이 아리고, 쓰리다며, 팔짝거리며 나뒹굴 때와는 경우가 사뭇 달라 보였다.
"얼랠래...? 아이고! 여기 사람 죽네! 엄마! 아버지!"
춘우는 얼결에 목청껏 고함을 지르며, 부엌으로 달려갔다. 마땅히 그 곳에 있어야 할 어머니의 모습은 안 보인다. 헛간 뒤 텃밭에 있을까 단걸음에 뛰어 갔으나, 그곳에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은 그림자도 안 보였다. 아무리 사방을 휘둘러 봐도 오늘따라 강아지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춘우는 헐레벌떡 대청으로 뛰어 올라갔다. 열려진 방문을 통해 몸져누운 할아버지가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춘우는 할아버지께 반사적으로 물었다.
"엄마는요?"
"글쎄다...? 그런디 왜, 이리 인공 난리가 난 것 모양으루 호들갑을 떨고 그러능 겨? 사내놈이 점잖지 못허게?"
"삼촌이 복숭아나무에서 떨어졌어요! 눈알을 희읍스레 뒤집은 걸 보면 기절한 모양이에요!"
"뭐시 워쪄구 워쪄?"
춘우의 말에 당황해 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이내 혈색이 가셨다. 몹시 충격이 크신 모양이다. 춘우에게는 손톱 밑 땟자욱같이 별 볼 일 없는 존재의 삼촌에 불과했지만, 할아버지에게 있어 늦둥이 삼촌은 신주 단지보다 귀한 존재였으니 이렇듯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저, 저런! 그러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얼릉 바가지에 물을 떠다가 얼굴에 끼얹어! 퍼뜩?!"
"아, 알았어요 할아버지."
춘우는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누워만 계시는 할아버지께 괜한 얘기를 했구나 싶었다. 그가 할아버지께 이런 일로 호들갑을 떨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서 아시게 된다면 어지간히 억장 무너지는 한숨을 내쉬며 호되게 지청구를 해 올 것이다.
춘우는 이 짧은 순간에도 '워낙이 다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하며, 변명하리라 핑계거리를 짜내고 있었다.
다시금 밖으로 뛰어나온 춘우는, 곧장 우물로 달려가 조롱박 바가지에 물을 가득히 떠 가지고 뒤란으로 급히 뛰어가느라 허둥댔다. 급한 걸음 탓에 물은 거지반 업질어졌고, 바지는 오줌을 지린 듯 축축하다.
"얼레...?"
뒤란으로 뛰어온 춘우는 또 다시 놀라며 엉거주춤했다. 장독대 옆에 측은히 늘어뜨려져 누워 있어야 할 삼촌이 안보였기 때문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삼촌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는 복숭아만 수북히 쌓여 있을 뿐, 거친 숨을 할딱거리며 다 죽어 가던 삼촌의 모습은 오간 데 없다.
춘우는 머리를 갸웃하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좀처럼 삼촌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순간, 머리 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후드득거리며, 복숭아가 춘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미간을 좁혀 나무 위를 퍼뜩 치보았다.
"저런, 세상에...!"
감쪽같이 사라졌던 삼촌이 그곳에 매달려 또 다시 다람쥐처럼 나뭇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춘우가 맨발로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 어느새 깨어나 또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간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춘우는 긴장이 가신 탓에 일순간 맥이 탁 풀어져 다리만 후들거렸다.
"에헤헤... 춘우 조카."
삼촌은, 어안이 벙벙해 하고 있는 춘우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베실거리며 땅으로 뛰어 내려왔다.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원숭이처럼 능숙한 몸놀림이다.
걸쭉한 웃음을 흘리던 삼촌은, 알도 굵고 잘 익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복숭아 하나를 셔츠 속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엉덩이 쪽에 쓱쓱 문질러 닦더니, 어이없어 하는 춘우를 향해 내밀었다.
"이히히... 춘우 조카 요것 먹어. 헤헤헷..."
"이런...! 누가 이깟 더러운 복숭아 먹는댓어?"
춘우는 삼촌이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돌아다닌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괜한 부아가 먼저 치밀었다.
아랫입술을 질끈덩 짓씹던 춘우는, 순간 복숭아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철퍽' 소리와 함께 복숭아는 박살나 산산이 흩어졌다. 그는 걱정스런 마음에 혼자서 이리 저리 호들갑을 떨며, 미친 듯이 집안을 뛰어 다녔던 것이 몹시 속이 상했던 것이다.
이내 뒤란은 복숭아 특유의 새콤 달콤한 향으로 진동한다. 춘우는 토라진 심사를 이맛살을 심하게 일그러뜨려 나타내며, 다시는 삼촌을 보지 않을 것처럼, 휭하니 뒤돌아섰다. 삼촌의 꼴이 차마 보기조차 싫었다.
물론 삼촌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일부러 그 높은 복숭아나무에서 굴러 떨어져 기절한 척 장난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춘우도 잘 알고 있다. 그 높다란 곳에서 굴러 떨어졌다면, 뼈마디 한 곳 정도는 으스러지고 남았을 높다란 복숭아나무였다.
그러나 그는, 무사히 깨어나 또 다시 나무에 올라간 삼촌에게서 괜실히 속았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춘우는 기분 같아선 히쭉거리는 얼굴을 향해 복숭아를 던졌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순 없는 일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어울려 개울에 멱감으러 갔다가 위쪽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는 삼촌이 얄궂어, 홧김에 알밤 쥔 주먹으로 슬쩍 정수리를 건드렸던 적이 있었다. 춘우 생각에 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그 정도에 울음을 터트릴 정도는 아닌 듯 싶었으나, 삼촌은 목청껏 울음보를 터트렸고, 그 소리를 듣고 집안 식구들이 그 곳으로 뛰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날 어머니께 호되게 꾸중을 들었던 이후로 삼촌의 털끝은 커녕, 차마 그림자조차 함부로 밟지 않는 춘우였다.
"그 복숭아 맛나 보여 조카 줄려구 여태껏 안 먹고 아껴 둔 건데, 맛나게 먹잖쿠서..."
"흥! 맛있긴, 개뿔이 맛있을까?!"
춘우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집 모퉁이를 돌아 설 즈음, 삼촌의 조용한 넋두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춘우는 코방귀로 이를 짐짓 흘려 버리며, 괜실히 속상해 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오늘은 춘우를 비롯한 온 가족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우려했던 별종맞은 삼촌이 벌이는 생급스런 일은 모처럼 만에 없었다.
어쩌면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던 새롭고 생게망게한 일을 가뜩이나 기대하고 있었던 춘우였다. 후유 하는 마음보다 오히려 아쉽고 실망스러웠던 것이 생딴전에 길들여진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더구나 기상천외하기 그지없는 발작에 가까운 수작으로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던 삼촌의 모습이 오늘 아침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춘우를 자못 궁금하게 만든다.
"울안이 왜 이리 조용해요?"
정적에 가깝게 쥐죽은 듯 조용한 집이 왠지 어색해 춘우는 부엌 안을 기웃하며 세상 별 일이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침밥을 짖고 있던 어머니의 뱅긋이 미소진 얼굴이 그에게로 환하게 돌려졌다. 춘우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 어머니는 금세 알아 차렸다는 눈치다.
"삼촌이 아버지 따라 아랫말에 내려갔거든."
"아랫말?"
"그래."
"꼭두새벽부터 아랫말엔 왠일로요?"
"풍수 하시는 정선생님을 만나 뵈려구."
"정선생님?"
"응…"
"그분은 또 무슨 일로요?"
"선산에 할아버지 유택을 미리 잡아 놓으시려고…"
"유택?"
"그래, 할아버지 묏자리 말이다."
"그걸 왜 벌써부터 정해 놓아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도 않았는 걸요?"
"미리 정해 놓아야 오래 사시거든."
"정말요?"
"그럼, 정말이잖쿠. 내가 왜 널 붙들고 괜한 소리를 할까?"
"……!!"
언제까지 말꼬리를 끈덕지게 물고늘어질 것 같았던 춘우는, 대청마루 쪽을 힐끗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조석으로 얼굴을 배알할 때마다 자꾸만 수척해지는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춘우는 울적한 마음에 이맛살을 구겼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미리 묏자리를 잡아 놓으면 무병 장수한다는 속설은 그도 어른들이 모여 나누시던 얘기를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머지않은 시기에 닥쳐올 큰 일을 진작에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춘우는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새벽같이 아랫말에 가셨던 아버지와 삼촌이 정선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것은 늦은 아침 무렵이다.
정선생은 춘우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르침을 받아 천자문을 공부했던 일이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그에게는 첫 스승인 셈이다.
읍내에 학교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정선생의 휘하에는 문하생이 백여명에 달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를 찾는 문하생은 없었고 풍수지리를 하는 덕에 묏자리를 잡아 달라 청하는 이들이 혹간 찾을 뿐이다.
춘우는 마당으로 들어서는 정선생을 향해 맨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스승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였지만, 아버지와 자별하신 어르신을 맞이하는 집안의 가풍이다.
정선생은 환한 미소로 춘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고놈 인물 한번 탐난다. 내 쬐맨헐 때 진작 알아봤지만, 인물 한 번 좋게 커가능구만. 이보시게 이형."
"왜 그러시오 정형?"
"자제 잘 거둬 뒷바라지 허시오. 내 보기에 훗날 과히 인물값을 톡톡히 헐 것이니께! 허허허…"
"정형, 그리 미쁘게 봐주니 정말 고맙소. 하하하…"
호형호제하는 아버지와 정선생 사이였다. 객담과 간담, 또다시 이어지는 격담과 한담이다. 언제나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도 없이 흐뭇한 두 분이다. 그런 만큼, 때늦은 조반 자리는 무던히도 길었다. 여느집 새참 광주리 이고가는 아낙의 얄쭉거리는 모습이 들녘에 나타날 무렵이 돼서야 조반상은 겨우 물려졌다. 오늘은 선산에 용무가 있었던 탓에 그나마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행여 주안상이라도 느긋하게 마주하는 날에는 기나긴 동짓달 그믐날 밤도 아쉽고 짧았을 터였다.
입시 공부와 더위에 지쳐 있던 춘우는 선산을 오르는 아버지와 정선생의 뒤를 삼촌과 함께 따라나섰다. 객지에 나가서 공부를 하느라 할머니 묘역을 찾았던 것도 벌써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없었던 터라, 성묘를 겸해 유산(遊山)가듯 따라 나선 것이다.
할머니는 춘우 나이 일곱 살에 세상을 뜨셨다. 삼촌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할머니는 북풍 한설을 마다 않고,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천 일(千日) 치성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과로로 쓰러졌고, 그 후 근 한 달 여를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삼촌을 걱정하며 한 많은 이 세상을 등지셨다.
그런 탓에 삼촌은 아버지 형제분들로부터 본의 아니게 살모사와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 천덕꾸러기였다.
선산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동구 모퉁이를 돌아서면 이내 보이는 양지바른 천방산 자락이다.
녹음이 짙푸르게 바람을 타고 흐르는 산에 오르자, 이내 확 트인 화양 들녘과 용트림하듯 구비치는 금강 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장항 제련소의 우뚝 솟은 굴뚝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서해의 푸르름이 작은 춘우의 가슴으로 훈풍과 함께 시원스레 안겨 든다.
춘우와 삼촌은 할머니 산소에 큰절을 올렸으나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해야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삼촌을 상대로 닭싸움, 또는 허리춤을 붙들고 씨름이라도 한판 벌렸으면 싶은 잔디 좋고 터 넓은 할머니 묘역이다.
그렇지만 진지하게 할아버지의 유택이 들어설 자리를 살피느라 심각한 표정을 짖고 있는 아버지와 정선생이었기에, 춘우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러하기는 삼촌 역시 마찬가지여서 모처럼 철이 든 듯 진지한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 몹시 우스꽝스럽다.
"이형, 자네 부친은 모친 곁에 뫼시는 게 이곳 지세로 보아 제일 좋을 성싶으이."
"자네도 그렇게 생각허능가?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네."
두 분이 나누는 대화에 춘우는 몹시 실망스러웠다. 어린 소견에도 할머니 곁에 모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 싶다.
춘우는 집을 나설 때, 정선생이 명당 혈을 찾아 감격하는 장면이라도 목격할지 모른다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춘우는 당연한 얘기에 다소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참으로 아까우이."
"그런데 말이야... 참으로 아까우이."
실망스런 마음에 짐짓 뒤돌아 섰던 춘우의 눈이 정선생에게로 황급히 옮겨갔다. 그러하긴 아버지와 삼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형, 뭐가 그리도 아깝더란 말인가?"
"이 터 말일세."
정선생은, 고개를 갸웃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할머니 산소에서 대여섯 발치 옆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쇠(나침반)를 들고 서 있는 정선생의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춘우의 얼굴엔 사뭇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하긴 삼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정 선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이 터가 어떻다는 겐가?"
"자네 모친을 이곳에 뫼실 때에도 그걸 느꼈지만, 내 글깨나 읽고, 풍수깨나 한다는 놈이 아니던가? 아무리 다시 와 훑어봐도 도무지 아까워서 하는 소릴세. 지난번 자네 모친을 예 뫼시고 산을 내려가 며칠 동안 밤잠을 못 이루었으이.... 너무도 아까워서 말일세."
"아깝다니? 이 사람아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서론이 그리도 긴 겐가? 얼릉 본론이나 꺼내 보시게."
"이보게나, 이 산혈이 말일세. 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보고, 또 다시 살펴봐도 분명 가문에 부귀 영화가 발복할 터인데 말이야."
"그래...? 그렇게 좋은 터라면, 왜? 우리 모친을 진작 이 곳에 뫼시지 않고서 저쪽 혈을 유택으로 잡아줬더란 말인가?"
"그래서 아깝다 하능 게야. 지금 자네 모친이 바라보는 앞을, 이곳에서 금강 하구로 앞을 두고서 유택을 앉히면 필히 발복해 가문이 걷잡을 수 없이 흥할 터인데... 바로 저기, 저 아래 보이는 신작로가 후손의 혈을 끊고 있어 이곳에 묻히는 이의 자손이 끊길 터거든. 그러니 내 풍수를 한답시고 숱한 산혈을 찾아 나돌아 다녔지만, 이것을 내 아까워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모르겠으이..."
"이 사람아, 무슨 말이 그리 복잡하더란 말인가? 그래 명당이란 말인가 그렇지가 않다는 말인가?"
"그야 물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명당이지. 허나, 가문이 비록 흥할 망정 정작 이곳에 묻히는 이의 대가 끊기게 될 이 혈에, 이를 알고서 자신의 골육을 묻을 얼간이가 세상에 어느 누가 있을까? 그러니 안타깝게 자네 모친을 이곳에 뫼시라 하지 못하고 저쪽으로 뫼시고, 다음에 부친 역시 그리 하라 할 수밖에 없었으이."
"말을 듣고 보니 정형 말이 맞군! 집안의 우환을 막고 자손 발복을 위해 명당 혈을 찾는 것인데, 정작 묻히는 이의 대가 끊긴다면 문제가 있지."
사뭇 의아해 하던 아버지의 고개가 조용히 끄덕여졌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산혈을 살피고 있던 정선생이 시야를 멀리 푸른 서해로 던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휴...! 정말 아까우이. 저 신작로만 없었으면 내 평생에 다시 못 볼 더할 나위 없이 길한 터인데 말이야. 쯧쯧쯧... 아까워... 좌청룡 우백호 뚜렷하고, 학이 한껏 날개를 펴며 한가로이 나는 듯한 지세에, 거기에 덧붙여 여인네의 보드랍고 아늑한 자궁과 같은 명당 혈인데 말이야. 정말이지 가문을 위해서라면 내 당장이라도 광중을 파고 들어가 스스로 코를 묻고 자진해 묻히고 싶도록 그 욕기가 불기둥처럼 치솟는 명당 기지인데 말이야...."
"이보게 정형, 이 곳이 그리도 좋더란 말인가?"
"그럼, 더할 나위 없지. 내가 풍수를 제대로 한다면 말일세."
이지러진 얼굴로 혼잣말을 주절거리며, 고개를 가로 젖고 있는 정선생의 얼굴이 무던히도 딱해 보였다. 명당 기지를 찾아 놓고도 그곳을 유택으로 정해주지 못하는 정선생의 고뇌하는 마음을 춘우는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집 앞뜰의 벽오동 나무에 길다란 장대를 이용해 안테나를 세워 듣는 고물딱지 삼 석 라디오는 도무지 믿을 것이 못되었다. 아침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목에 잔뜩 힘을 주며 구름 한 점 없는 불볕 더위가 이어질 것이라 했었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하늘에 먹구름이 서서히 밀려들더니 급기야 장마철처럼 구저분하게 비를 뿌렸다.
"왜, 하필 여기에 와서 저러고 있담?"
춘우는 마루 쪽을 흘끔하며 푸념을 내뱉었다. 마루에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벌렁 누워 세상 근심 하나 없이 코를 드르렁거리며 낮잠을 즐기고 있는 삼촌 때문이다.
삼촌은 안채 대청마루를 아버지와 정선생에게 술자리로 내준 탓에, 춘우의 공부방이 있는 이곳 별채에 내려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처마 끝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사실 더 크고 소란스럽게 들려 왔다. 그러나 불규칙하게 들려 오는 삼촌의 코고는 소리가 춘우에게는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커다랗게 들려와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렸다.
춘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책을 덮었다. 되지 않는 공부에 책을 붙들고 있다가는 짜증스럽기만 할뿐이다. 이럴 때에는 삼촌처럼 세상이 어찌되던 개의치 않고, 한숨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수였다.
춘우는 책상으로 쓰던 교자상을 구석으로 물렸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공부에 죽을 맛으로 덤비느니 잠깐 눈을 붙인 뒤 밤늦게까지 공부할 심사였다.
"왜, 그래...?"
언제까지 세상 모르고 낮잠을 즐길 것 같았던 삼촌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곧장 헛간으로 달려가더니 삽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춘우는 의아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물었다.
"이 빗속에 낮잠이나 자잖코서 어딜 가려고?"
춘우의 물음에 삼촌은 잠시 멈칫하더니 전에 없이 비장한 표정을 던져 왔다. 섬뜩한 느낌에 춘우는 몸서리가 일었다. 여태껏 삼촌에게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차가움이 전해져서였다.
"춘우 조카, 나 가문을 위해 죽으려고. 조카를 위해서 말여."
삼촌의 어투는 사뭇 진지하고 요연했다. 춘우를 향해 주고 있는 날카로운 시선에는 숙연함까지 잔뜩 배어 있다.
"그, 그게 무슨 망측한 말이야? 날 위해 죽으려 하다니?"
춘우는 삼촌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어 급히 되물었으나, 그 대답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삼촌은 이미 대문간을 빠져나가 빗속으로 황망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삼촌의 이같은 행동거지에 춘우는 그다지 크게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것은 삼촌의 또 다른 생퉁스런 짓에 불과할 뿐이라 치부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시던 정선생이 아랫말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선 것은, 들녘에 마지막 새참을 내어갈 무렵이다. 아버지는 질척하게 내리는 비를 피해 하룻밤 묵어 갈 것을 권하며, 서운한 기색으로 정선생의 옷깃을 잡았다. 그러나 정선생은 내일의 바쁜 일을 핑계로 굳이 사양하느라 무던히도 진땀을 흘렸고, 춘우의 삼형제를 비롯한 온 집안 식구들이 나와서 그를 배웅 하느라 대문간은 저잣거리처럼 어수선하기만 했다.
그 때였다. 누군가 고함을 질러 대며, 헐레벌떡 빗속을 뛰어오고 있었다.
"추, 춘우야, 크, 큰일났어!"
"헉... 춘우 막내... 삼촌이... 산에서 묏자리를 파, 파고 있어요."
석배의 말에 일순간 대문간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버지는 한 걸음 다가서며, 머리를 갸웃이 기울여 석배에게 되물었다.
"묏자리를 파다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여? 이놈아 차분히 말을 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집에서 천방산을 올려다보니께 누군가 춘우 할머니 묘소 옆에서 급히 삽질을 하고 있었구먼요. 그래 단걸음에 올라 가보니 자웅눈이… 아니, 막내 삼촌이었구먼요. 그래 뭐하는 짓이냐 했더니 하는 말이, 그곳에 광중을 파고 들어가 죽으려 한다면서 자기가 그렇게 하면 가문이 발복하게 된다나요? 제가 아무리 말려 보았지만 막무가내였구먼요."
"뭐, 뭐라고? 석배야 그, 그게 참말이야?"
춘우는 앞으로 나서며, 석배와 마주섰다. 이마에 진땀이 돋는다.
"그럼, 참말이잖쿠..."
춘우의 뇌리에 삽을 들고 급히 집을 나서던 삼촌의 얼굴이 스쳤다. 빗속으로 사라져 가면서 했던 삼촌의 말뜻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춘우는 질척한 빗속을 뛰었다. 따갑게 후려치는 빗방울이 눈으로 흘러들어 아려 오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개의치 않고 뛰었다.
춘우가 선산에 뛰어 오른 것은 삽시간의 일이다. 그가 도착했을 땐, 정선생이 손가락으로 짚으며 명당이라 했던 산혈이 파헤쳐져 누런 황토가 어수선하게 드러나 있었다.
춘우는 사뭇 떨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가가 광중안을 들여다보았다. 보기에도 그럴 듯한 광중이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있어야 할 삼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으..."
추적한 빗소리 사이로 어디에선가 끊어질 듯 가느스레한 신음소리가 들려 왔다. 춘우는 고개를 들어 얼굴에 흐르는 빗물을 훔쳐내며, 날카로운 시선을 휘둘러 사방을 훑었다.
잠시 후, 할머니의 봉분 옆에 찌푸린 시야를 고정시켰다. 황톳물이 누렇게 들어진 옷자락이 어뜩 보였기 때문이다.
춘우는 급히 그쪽으로 뛰어갔다. 할머니 무덤을 끌어안고 엎어져 거칠게 호흡하고 있는 삼촌의 뒷모습이 퍽이나 측은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측은함도 잠시, 춘우는 짐짓 부아가 일었다.
"이런 바보야, 이게 무슨 짓이야? 도대체 이게 무슨 도깨비 장난 같은 해괴 망측한 짓이냐구?!"
춘우는 어이없어 하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는 삼촌의 엉덩이를 세차게 걷어찼다.
물컹해야 할 삼촌의 엉덩이는 춘우의 발끝에 둔탁한 느낌으로 부딪쳤다. 죽는시늉으로 나뒹굴 줄 알았던 삼촌은 간신히 신음만 토해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얼래...?"
춘우는 좋지 않은 예감에 삼촌을 서둘러 끌어안았다. 이내 섬뜩함이 가슴에 전해진다.
"오, 세상에... 바보야, 퍼뜩 정신 차려?!"
혈색없는 창백한 삼촌의 얼굴이 춘우의 가슴으로 굴러 들어올 즈음, 그는 앙칼진 비명과 함께 울먹임을 터뜨렸다.
삼촌의 유혈이 낭자한 입술에서 핏덩이가 잔디 위로 떼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잘려진 혀끝이었다. 삼촌은 스스로 혀를 깨물었던 것이다.
울부짖는 춘우의 뇌리에 정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심각하게 귀 기울이던 삼촌의 모습이 무잡하게 스쳤다.
"삼촌! 삼촌...!"
춘우는 난생 처음 삼촌을 부르면 뼈가 으스러지도록 힘껏 끌어안았다. 집안의 천덕꾸러기였던 터라, 푸대접으로 일관되게 삼촌을 구박했던 부끄러운 춘우의 가슴이 뜨겁게 저며 왔다.
집으로 업혀 온 삼촌은 춘우의 긴밤을 지새우며 돌보는 지극한 간호에 그런 일이 있은지 삼일 만에야 겨우 기운을 차릴 수가 있었다.
춘우가 여름 방학을 마치고 집을 떠나 상경할 때에는 대문간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그를 배웅할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눈물이 글썽이며 멀어져 가는 춘우에게 삼촌은 잘려 나간 혀 때문였던지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여 갈 무렵이었다.
보충 수업으로 기진 맥진해 학교에서 돌아온 춘우에게, 하숙집 뚱보 아주머니가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고향에서 날아온 속달 편지였다.
"무슨 일일까? 어머니가 직접 편지를 다 쓰시고...?"
춘우는 방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안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사뭇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 겉봉을 급히 찢었다.
이내 단출한 내용의 편지지가 드러나고, 춘우는 한 눈에 읽어 내려갔다. 편지 내용을 읽고 있던 춘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지는가 싶더니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춘우 보거라.
무더위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몸 건강히 잘 있을 줄 믿는다. 아버지는 입시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고 머리가 몹시 무거울 것이라면서 심란스럽게 뭐하려고 편지를 쓰느냐 하셨지만, 결국 너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두서없는 편지 몇 자 적어 보낸다.
지난 음력 팔월 초하룻날. 네 막내동생 춘석이와 석배 동생 정배가 마을 앞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가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이 있었단다. 그곳에 동네 어른들도 몇이 있었으나 감히 아무도 뛰어들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애태우는 일이 벌어졌었단다. 익사 직전, 때마침 어디선가 막내 삼촌이 나타나 물에 뛰어들어 춘석이와 정배를 구사일생으로 구해 내기는 했지만, 삼촌은 불행히도 심장 마비로 유명을 달리하는 일이 벌어졌단다. 그래서 삼촌을 거두어 할머니 곁에 후히 모셨단다.
삼촌의 명복을 빌어주렴.
-서천에서 어미가-』
춘우는 눈물로 얼룩진 어머니의 편지를 채 끝까지 읽어 가지 못하고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오, 삼촌...!"
춘우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가느스레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깨가 심하게 달막거렸다.
두 눈을 지그시 감아 버린 춘우의 뇌리에는 어느새 웃음진 삼촌의 얼굴이 스쳤다. 분명 여느 때 보아오던 기괴한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었으나, 가슴속에 처음으로 살갑게 그려지고 있었다.
춘우는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저 한없이 울었다. ***
'[나의 이야기] > 내 소설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경욱 단편소설) 이어(鯉漁) 노인 (0) | 2008.08.27 |
---|---|
(구경욱 단편 소설) 잠들지 못하는 영혼. (0) | 2008.08.27 |
(구경욱 단편 소설) 감자 수제비 (0) | 2008.08.27 |
(구경욱 단편소설) 迷路엔 비상구가 없다. (0) | 2008.08.27 |
(구경욱 단편소설) 악몽에 사로잡힌 남자 (0) | 2008.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