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제목 : 이어(鯉漁) 노인
(2001, 5 월간 문학세계)
창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메마른 죽음의 향기나 그에 따른 침체, 또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업과에 대한 신의 가차없는 형벌의 업고 만큼이나 묵직한 어둠의 세상이다.
며칠 전 대한(大寒)이 지났다. 밤의 길이가 전에 비해 다소 짧아지기는 했으나 어둠은 아직도 물러날 줄 모르고 그대로 버티고 서 있는 꼭두새벽이었다.
전화벨 소리가 어둠으로 가득한 침실을 울린다. 차가운 금속성 소리는 아니었으나 다소 경망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전자음이다.
아내가 깜짝 놀라 일어나 침대에 걸터 앉는다. 몹시 놀랐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더듬더듬 스텐드의 스위치 끈을 잡아 당긴다. 동시에 방 안을 장악하고 있던 어둠이 인기척을 느낀 새앙쥐처럼 잽싸게 어디론가 물러간다.
김사장은 눈이 부셨는지, 눈을 피뜩 떴다가 감는다. 이불을 감싸 안으며 돌아눕더니 요란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몹시 성가시다는 어투로.
“여보. 날 찾는 전화면, 어젯밤 집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지...” 한다.
김사장을 흘끔 쳐다보던 아내가, 하품을 하며 당신도 참. 한다. 그의 모습이 퍽 우스꽝스러웠던 모양으로, 부스스한 얼굴엔 어색한 미소가 시부저기 인다. 그렇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눈치였다.
김사장이 이처럼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난 며칠 동안 해외 바이어들과 힘겨운 씨름을 했었다. 피를 말리는 탐색과 간, 쓸개를 녹여내는 술수는 동원하지는 않았어도 모든 체력을 갈진시키기에 충분한 수출 계약이었다. 어제 낮에 서로가 싸인을 주고받으로 모두 마무리가 된 셈이다. 그래서 어젯밤, 그동안 애를 쓴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술자리는 자정이 넘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따라서 김사장은 인사불성의 몸이 된 채 집으로 돌아왔고,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랬으므로 모처럼 찾아온 한가로운 일요일을 누군가에게 빠앗기거나 반납하고 싶지가 않았다. 행여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해도, 그 동안 절대 부족했던 잠을 실컷 보충해 보리라 굳게 마음먹고 있었으니까.
아내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세요, 평동입니다. 네, 그런데요? 네··· 네? 어디라고요? 서대문 경찰서요? 글쎄요? 잠깐만요.”
잠이 덜깬 탓에, 몹시 가라앉아 혼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있던 아내였다. 경찰서라는 말에 다시 깜짝 놀라며, 어리둥절해 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의아해 하기는 모른 척 옆으로 돌아누웠던 김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지칫거리던 아내가 뒤돌아 본다. 김사장은 이미 긴장한 표정으로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 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어서 전화 좀 받아 보세요. 형사라고 하는데,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요? 때 이른 이 시간에 정신 나간 사람의 장난 전화는 아닐 테고, 대체 무슨 일이죠?”
“글쎄? 무슨 일 일까?”
김사장이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급히 수화기를 낚아 챈다.
“전화 바꿨습니다. 네, 제가 그 회사 사장 맞습니다만··· 뭐라고요? 행려 노인요? 그런데요?”
김사장의 얼굴이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심하게 일그러진다.
곁에서 의아한 눈빛을 발하고 있던 아내는 과히 좋지 않은 예감에 마른침을 삼킨다.
“글쎄요? 저희 집엔 그런 어르신이 안 계시는 데요. 네? 낚시 가방요? 미간에 콩알만한 무사마귀가 있다고요? 이, 이런···! 아, 알겠습니다.”
김사장은 얼결에 수화기를 받아 들었었다.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지껄여 대는 뜬금없는 말에,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낚시 가방이라는 말과 미간의 콩알만한 무사마귀란 소리에, 언뜻 뭔가가 집히는 구석이 있다는 듯 상기된 표정이다.
“곧 그리로 나가겠습니다. 휴···!”
김사장이 휘파람 소리처럼 긴 한숨을 내쉰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그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진다. 착잡한 심정의 명확한 표출임이 분명하다.
김사장이 침대 옆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무의식적으로 유리 탁자를 더듬어 담뱃갑을 집어든다. 밀려드는 긴장감 때문인지 손에 빼어 든 담배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나 다시 탁자에 담뱃갑을 던지듯 내려 놓고 일어난다.
“여보, 나 적십자병원엘 잠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병원엘요? 여보, 갑자기 병원이라뇨? 거긴 또 왜요? 난데없이?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행려 노인이라는 말은 또 무슨 얘기구요?”
아내는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가 갸우뚱 기운다.
“지난밤, 요 앞 지하도 공중전화 앞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방범대원이, 혹한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행려 노인을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겼는 데 곧 사망을 했다는군.”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왜 그런 일을 가지고 경찰서에서 우리 집에 전화를 했죠? 그것도 꼭두새벽부터?”
“그 노인이 주민등록증이나 무슨 신원을 알 수 있는 신분증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내 명함을 가지고 있었다지 뭐야.”
“명함요? 박람회 때 수천 장이나 뿌려졌던 그깟 명함을 행려 노인이 갖고 있다 해서 그렇게 난리를 펴요?”
“한긴 그렇군. 하지만, 그분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노인인 것 같아. 일단 병원에 다녀와서 얘기하리다.”
“여보···?”
말을 할수록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짖고 있는 아내에게, 김사장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서둘러 외출복으로 갈아입기에 바쁘다.
적십자 병원은 가까웠다. 도보로 십 분 남짓한 가까운 거리였다.
김사장은 자동차 키를 꺼내 들었다가 다시금 코트 호주머니 속에 슬그머니 밀어 넣는다. 오늘따라 왠지 그냥 걷고 싶다.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운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던 그는 열 발자국 이상 걷는 일이라면, 언제나 습관적으로 승용차를 이용했었다.
삭풍이 차갑다. 인왕산과 안산 사이 무악제를 넘어 독립문을 무너트릴 듯 자못 험악한 기세로 휘몰아친다. 간헐적으로 눈발까지 섞어 콧날을 물어뜯고 있다.
김사장은 코트깃을 세운다. 턱과 콧날을 움츠려 묻는다. 손이 시렵다. 구두를 신으면서, 신발장 위에 장갑을 놓고 나왔다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다. 뒤돌아 가지고 나올까 생각했으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골목길을 걸어 나온다.
가로등조차 바들바들 떨고 있는 골목길이었다. 무척 적요하다. 물론 평상인이 활동하기엔 때 이른 시간이었던 탓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 놓은 막바지 강추위가 수은주를 연일 영하 18도 이하로 끌어내리고 있어 그러하리라. 살을 에이는 듯한 한파가, 연말 연시의 들떠 있던 기분까지 완전히 잠재워 놓은 듯 출, 퇴근 길에 흉허물 없이 보아 오던 더펄머리 떠돌이 개들의 모습조차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갑작스런 혹한을 피해 어느 쓰레기통이나 후미진 곳에서 코를 묻고 잠이 들었을 것이리라.
골목길은 잘 연출된 어느 영화의 한장면처럼 삭막하다. 너부러진 신문지와 비닐 봉투가 몰아치는 바람결 따라 어수선하게 나뒹굴고 있다. 김사장의 헝클어진 마음을 더욱 산란하게 비틀어 놓기라도 하려는 듯이.
하지만, 한길로 나서면 괜찮아지겠지. 한다.
뚜벅뚜벅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섬뜩하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길다란 그림자 역시 기분 나쁘다.
김사장은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와 탁 트인 의주로로 접어들었다. 쓸쓸하긴 골목길과 매한가지였다. 여느 때 같으면 강물처럼 넘실거려야 할 자동차 헤드라이트 물결이었다. 행인들 역시 바쁘게 오갔으므로 가뜩이나 주눅들게 만들었을 훤출한 길이다. 그렇지만, 간혹 질주하는 차량 몇대가 눈에 띈다. 영하 삼십도를 밑도는 체감온도와 일요일. 경제 위기에, 국제구제금융을 지원 받은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70년대의 거리처럼 몹시 한산하다.
김사장은 자신의 기분을 이처럼 울적하게 만들어 놓은 전화 상의 일들이 믿기지가 않는다. 따라서 전혀 사실과 다르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다. 또한, 그 행려 노인이 자신이 알고 있는 윤노인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자꾸만 또렷하게 뇌리를 헤엄치는 인영을 떨치려 짐짓 도리질하곤 한다.
“분명 아닐 꺼야. 그분이 이 삭막한 대도심의 모퉁이에서 쓸쓸히 객사할 아무런 까닭이 없지.”
허연 입김과 함께 넋두리를 주절주절 뱉어낸다. 마치 몸유병 환자나 정신 이상자의 모습과 흡사 다를 바 없다.
종종걸음으로 서대문 네거리를 돌아 설 무렵이다. 갑자기 멈춰서며 어색한 미소를 허공에 흘린다. 길 건너편 영화관의 대형 포스터 때문이다. 반쯤 벗어버려 흐벅진 속살들을 그대로 드러내 놓은, 오늘같이 살을 에이는 혹한과 삭풍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혹간 텔레비전 쇼 프로에서 얼굴을 몇 번 본 기억은 있었지만,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신인 여배우였다. 윙크와 함께 요염한 미소를 마치 자신을 향해 던지는 듯한 모습이다.
김사장은 흐흐흐 소리를 내며 웃는다. 반나(半裸)의 여배우에게 마음을 앗긴 때문이 아니었다. 울적한 마음을 떨칠 요량이었다. 그랬으므로 거칠고 황량한 도심 한복판을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 뿐이다.
손가락을 태울 듯 시뻘겋게 타 들어오는 담배를 연신 초조하게 빨아 대며, 김사장이 적십자 병원의 정문을 들어선다.
두 사람이 만나기로 약속했던 별관 앞에는, 가죽 점퍼 차림의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다. 짧은 상고머리에, 훤출한 키의 깔밋하게 생긴 삼십대 초반의 남자였다.
김사장은 그 남자가, 숙취가 모지락스럽게 짓누르는 자신의 새벽잠을 깨워 놓고도 모자라 이곳까지 허겁지겁 나오도록 만들어 놓은 전화 속 청량한 목소리의 주인임을 알 수가 있었다.
남자는 목소리만큼 시원한 외모였다. 그래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게 만들고 있다. 남자는 흔히 형사 하면 연상되는 모습이 아니었다. 불량배 몇 놈쯤은 한꺼번에 때려눕힐 우락부락한 얼굴에 다부진 체격. 남의 속마음까지 꿰뚫을 듯한 날카로운 눈빛을 갖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남자는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얼핏 보기에 유명 브랜드의 신사복 모델쯤에 적격일 그런 모습이었다.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조은물산 김사장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영광은요.”
“그런데 어떻하죠?”
“어떻··· 하다니요? 뭐가 말입니까?”
“이처럼 사나운 날씨에, 더구나 새벽부터 괜한 일로 번거롭게 이곳까지 나오시라 해서요.”
“아,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어쨌든 죄송하게 됐습니다. 절 따라 오시죠.”
이형사는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와는 달리 직업은 속이지 못하고 있었다. 형사 특유의 사무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상투적인 어투였다. 그래서 왠지 뭔가를 잘못해 연행되 가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든다.
두 사람은 곧장 행려 노인의 사체가 안치된 영안실이 있는 별관 지하로 향했다. 초면에 두 사람이 머릴 맞대고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있다 해도, 새벽부터 희멀건 너스레를 늘어놓을 만큼 들뜬 기분이거나 그럴 만한 자리 역시 못되었다.
사체가 안치된 영안실로 들어갔던 두 사람이 다시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십 분이 채 안 걸렸다.
지하실 안은 크레졸 특유의 냄새가 칙칙했다. 장례식장에서 풍기는 무거운 향불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영안실만이 갖고 있는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들이 뒤엉켜져 있었다.
김사장은 그렇지 않아도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탓에, 쓰릿하게 울렁이는 속이 겉잡을 수 없이 뒤집혀 와 서둘러 영안실을 도망쳐 나왔다.
김사장은 곧장 화장실로 뛰어갔다. 위부를 맴도는 내용물을 모두 토해내고, 차가운 바깥바람을 쐬이자 광란처럼 뒤집혀 오던 속을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이맛살은 여전히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김사장은 부들부들 떨었다. 집을 나설 때 설마 했던 실낱같은 기대는 산산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변사자의 싸늘한 모습을 보는 순간, 이미 각오는 했으나 소스라치게 놀랠 수밖에 없었다. 사체는 윤노인이 분명했다. 예전의 인자하던 얼굴이 텁수룩한 수염으로 흉물스럽게 덮혀 있었다. 지난날의 모습을 찾을 길은 없었어도, 그가 서천 봉선지에서 잉어낚시를 즐겨하던 윤노인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이형사가 담배를 권하며 묻는다.
“어떻게, 김사장님께서 아시는 분이 맞습니까?”
“네. 알고 있죠. 하지만...”
김사장은 기억 저편을 더듬으며 습관적으로 호주머니를 뒤적여 라이터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리곤 파르스름한 미명으로 밝아 오는 남산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 역시 자세히 알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노인장의 성씨가 윤씨이고, 충청도 끝자락에 위치한 서천의 천방산 아래 조그만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밖에는... 그리고 부엉바위가 있는 봉선지에서 잉어 낚시를 즐겨 해서 이어노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었다는 것이 전붑니다.”
“서천의 이어노인이라··· 서천··· 봉선지··· 부엉바위··· 잉어 낚시를 좋아하는 이어노인이라··· 윤노인···”
이형사는 김사장의 말을 되뇌며, 수첩을 꺼내 이를 메모하느라 시린 손을 허연 입김을 토해 녹여 내기에 바쁘다.
뭔가를 끄적이고 있던 이형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나지막이 내뱉는다.
“그래서 그러고 있었나?”
김사장이 반사적으로 묻는다.
“무슨 뜻이죠?”
“아, 예··· 노인장을 처음 발견한 방범대원이 그러는데, 콘크리트 바닥에 낚싯줄을 던져 놓고, 마치 고기를 낚으려는 자세로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런, �쯔쯔···”
혀를 차는 김사장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쨌든 김사장님 덕분에 노인장의 신원을 금세 파악하게 돼 무척 다행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저희들에겐 골칫거리죠.”
“골칫거리라뇨?”
김사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묻자, 이형사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사뭇 멋쩍은 미소를 흘린다.
“대게 이런 일은 신원 파악이 어려워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지 못하고 대충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대충 처리를 하다뇨?”
“그, 글쎄요. 거기 까진 제 소관이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려면야 유가족들처럼 정성껏 장례 절차를 밟기야 하겠습니까?”
“······!”
김사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묻지 않은 채 고개만 간신히 끄덕인다. 며칠 전에 읽은 신문기사가 떠올라서 였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 행정 처리되는 행려자 시신에 대한 기사로,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용 시신이 부족한 까닭에, 웃돈을 주고, 은밀히 뒷거래를 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이형사가 얼버무리는 부분이, 아마 그런 뜻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을 가눌 수 없다.
“어찌 됐던, 새벽부터 남의 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참, 윤노인의 유족과 연락이 되면, 제게 꼭 전화를 주시죠. 만나서 조의를 표해야 마음이 개운할 것 같아요. 꼭! 부탁 드립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다음에...”
이형사와 헤어져 병원 문을 걸어나오는 김사장의 마음은 몹시 착잡했다. 이미 날은 훤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하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처럼 우울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김사장이 초췌한 얼굴로 현관문을 들어선다.
아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짜고짜 물어 온다.
“여보, 그 행려 노인이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던가요?”
김사장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아내에게 건넨다. 외면한 채 입술조차 떼지 않고, 낮은 비음으로 짧게 끊어 응. 하고 대답한다. 짧은 단답형의 대답이었으나 몹시 떨렸다. 내제된 슬픔의 표출이었다.
“그분이 누군데 그래요?”
김사장은 대답 대신 소파에 몸을 던지곤 두 눈을 감아 버린다.
아내는 그런 모습이 몹시 얄망궂다는 듯 다소 짜증 섞인 어투로 되묻는다.
“여보, 그분이 누구냐고 물었어요?”
김사장이 묘한 느낌의 미소를 흘린다. 그러나 이내 억색해 하는 표정으로 뒤바꾸며 말을 꺼낸다.
“그분이 누구냐고? 글쎄···? 누구라고 해야 하나···?”
그가 끝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기어이 끈끈이주걱처럼, 끈적하게 다그쳐 물어 올 아내의 성격이었다.
김사장은 평소 활달한 성격답지 않게 자꾸만 아래 입술을 깨물며 뜸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내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른겠다는 눈빛이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나와 당신, 그리고 유주와 상민이··· 우리 네 식구의 행복을 오늘날까지 이어지도록 만들어 준, 우리 가족에겐 정말이지 한량없이 고마우신 분이지.”
“무슨 대답이 그렇게 밑둥이 없어요?”
“당신 혹시, 지난 십 년 전 기억이 나겠지?”
“십 년 전···? 갑자기 십 년 전 일이라뇨?”
“왜 있잖아, 우리 회사가 부도를 맞아 어찌할 방법이 없어, 내가 유서를 써 놓고 집을 뛰쳐나갔던 일 말이야?”
“당신도 참! 새삼스럽게 그 아찔했던 얘길 왜 꺼내 놓고 그래요.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현기증이 일어요”
“그래? 그렇겠지! 바로 그때, 날 사랑하는 당신과 아이들 곁으로 무사히 되돌려 보내 주셨던 분이 바로 그분이었어.”
아내가 깜짝 놀란다.
“여보, 그럼···! 그분이 언젠가 어뜩 말해 줬던 서천의 이어노인이었어요?”
“그래, 맞아. 이어노인.”
“어머나, 이를 어째···?”
“당신도 그분에 관한 얘길 아직도 기억하고 있군.”
언제까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질 것만 같았던 아내였다. 별안간 침묵한다. 고개를 간신히 끄덕일 뿐이다. 몹시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아내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간다.
김사장은 만감이 어그러진 자신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아내는 궁금증이 많았다.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함이 없이 열어 버릴 아내였다. 그러나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했던가. 김사장을 심사를 헤아려 배려하는 마음만큼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감히 따르지 못할 그녀였다.
우울한 심경을 입술을 곱씹어 나타내고 있던 김사장은 몸을 일으킨다. 팔짱을 낀 채 창 밖을 내다본다.
앙상한 목련나무가 보인다. 삭풍에 몸부림치 듯 떨고 있다. 그 너머로 도심의 울창한 콘크리트 숲이 차갑게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몹시 답답하다.
“아······!”
김사장의 입술 사이로 탄식을 흘린다. 지난 시절 까맣게 잊고 지냈던 이어노인의 인영이, 빛 바랜 흑백 영화처럼 그의 뇌리에 순서 없이 휘젓고 있다. 그것들은 벌써 십 년 전의 오련한 기억들이었다.
김사장이 안면 부지 낯선 서천 땅을 밟게 된 것은, 그때 마침 서울역을 출발하는 장항선 비둘기호 열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시간에 경부선이나 호남선, 혹은 경의선이나 전라선 열차가 있었다면, 그의 운명은 완전히 백 팔십 도로 뒤바뀌었을 것이었다.
동업자인 이사장은, 철썩 같이 믿었던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 동기였다. 그런 그가 그토록 가증스런 사기꾼이었다는 것이 부도가 되어 돌아오는 약속어음이나 당좌수표 따위들보다도 참을 수 없는 분노였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란 뼈아픈 고통이었다.
배신자가 되 버린 이사장과는 십오 년 이상을 쌓아 온 우정과 신의였다. 헌데 하루 아침에 이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모든 것을 챙겨 혼자 잘살아 보겠다 잠적한 것이다. 배신감이, 몰려드는 빚쟁이들의 살벌한 멱살잡이나 욕지거리 보다도 더 김사장의 가슴을 저미는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눈물로 뒤척이다 잠이든 만삭이 된 아내의 머리맡에 두서없이 유서 한 장 달랑 써 놓고 집을 나섰을까.
절규하는 마음처럼 열차는 경적을 울리며, 눅눅한 새벽 공기를 갈랐다. 자살 여행인 셈이었다. 능곡지변(陵谷之變)의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려 정리하여 적당한 사지를 찾아 발길 닿는 대로 미끄러져 내려온 것이 바로 서천이었다.
기차가 서천역 플랫폼에 멈춰섰다.
김사장은 우르르 몰려 나가는 가벼운 옷차림의 피서객들의 뒤를 따라 의식없이 걸어 나온다. 늙수그레한 역무원이 함박 웃음을 잔뜩 흘리는 개찰구에 다다르기 전까지, 사실 그는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옹송망송한 상태였다.
역무원은 기차표를 확인하더니,
“얼랠래...? 손님, 종착지 장항역이믄 더 내려 가시야 허셨는디 잘못 내리셨꾸먼유, 여기는 서천역이구먼유.”
하며 도중 하차 하였음을 알린다.
애당초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았으므로, 자상하게 말을 걸어오는 역무원 앞을 그저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리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서둘러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그에겐 역무원의 우려와는 달리 이곳이 어느 곳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역전통은 몹시 어수선햇다. 열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택시 기사들이 낯선 지명을 외쳐 댄다. 합승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열띤 목소리가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 버릴 듯 내려 쬐이는 땡볕보다 뜨겁다.
“춘장대 해수욕장 가실 분! 춘장대요!”
“마량 동백정!”
“장구지나 송림 백사장 가실 분 일루 오슈!”
비좁은 역전 통은 이내 열차에서 내린 승객과 그들의 목소리가 뒤엉켜 마치 재래 시장의 어수선함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돈을 주고도 택시 잡기 힘든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정겨운 풍경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머뭇거리고 있는 김사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십 여대의 택시의 순번 중 맨 끝자리에 위치한 노란색 개인 택시였다. 몹시 어수선한 분위기였으나 차의 양쪽 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는 운전기사의 모습이 유독 그의 눈을 잡아 끌었다.
김사장은 그가 어쩌면 자신이 찾고 있는 조용하고 적당한 곳을 안내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한다. 그래서 코까지 곯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운전기사를 굳이 흔들어 깨웠다.
“어이쿠, 미안헙니다 손님. 아하···! 어젯밤 부엉바위 이어노인 낚시 판에 놀러 갔다가, 꼬박 날밤을 지셌댕 나른 허니 잠이 쏟아지능 게 꼭 빙든 빙아리 모양이루 당최 사족을 못쓰것구먼유. 세상이서 젤루 일할머리 �는 눔이 뒷전이서 장기 훈수 허는 눔 허구, 넘 낚시 허능 거 두 눈 희멀건히 뜨고 구경 허구 자빠져 있는 눔이라 혔는디, 지가 바로 그꼴이구먼유. 헤헤헤··· 근디 워디루 뫼실까유 손님?”
“그곳으로 갑시다.”
“예···? 워디라구유?”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그곳 말입니다. 부엉···?”
“아! 부엉바위유? 왜? 손님두 잉어 낚시 한 번 혀보시게? 헤헤... 좋츄. 뭐니 뭐니 혀두, 잉어 낚신 그저 봉선지가 으뜸이쥬.”
김사장에게 부엉바위니 봉선지니 하는 지명은, 처음 마주하는 택시 기사의 얼굴 만큼이나 낯선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을 그곳으로 끌어당기고 있음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택시는 봉선지 입구 초라한 마을 구판장 앞에 그를 덩그러니 떨쳐 놓고는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질주해 왔던 길로 사라져 버렸다.
택시 기사가 되돌아가며, 손가락으로 짚어 밤섬이라 가리켜 준 곳에 그의 발길이 머물렀을 때, 봉선지에 발을 담그고 무거운 인고의 세월을 버텨 온 부엉 바위가 탁 트인 시야 끝으로 들어왔다.
산정 호수의 아름다움이나 아기자기함은 아니다. 침묵의 가슴앓이로 부엉 바위를 베고 누운, 봉선지만이 갖고 있는 절대 화려하지 않은 고침단금(孤枕單衾)과 같은 모습이, 미련 없는 삶을 속절없이 탈출하려 몸부림치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호젓해서 좋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잠시 봉선지를 침묵으로 쓱 훑어보던 김사장은, 이곳에 들어 올 때, 마을 구판장에서 사가 지고 들어왔던 2홉들이 소주 세 병을 들어붓듯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는 서둘러 오늘 여행의 최종 목적을 위해 궂은 세상을 질곡하게 함께 뛰었던 정든 구두를 벗었다.
이내 봉선지의 맑은 물이 간지럽게 발가락을 핥았다. 부질없는 삶의 고뇌에 찬 세월들이 출렁이는 물살에 녹아 내리는 느낌이다. 두 눈을 지그시 감아 버린 그는, 기껏해야 오 분 정도만 참아 낸다면 지난 시절 온몸을 짓누르던 어려움도 함께 끝이 날 것이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여보시게 젊은이.”
“······?”
목까지 물이 차 오를 무렵,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김사장은 반사적으로 멈칫했다. 그 소리는 상류 쪽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훈풍이었다.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굵직한 목소리에, 그는 또 다른 세상으로 굴러 떨어질 기로에서 질곡한 이 세상으로 황급히 되돌아섰다.
그가 두 눈을 떴을 땐,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장을 볼 수 있었다.
노인장은 꿈속에서 그려보는 외할아버지나, 행여 신선도(神仙圖)에서 익히 볼 수 있었던 후덕한 얼굴의 낯익은 모습이다.
노인장은 다짜고짜 말을 건네 왔다.
“이보오 젊은이, 자넨 저기 뵈는 부엉 바위가 보름달을 이고 있는 모습을 본 적 있능가?”
“······?”
난데없는 말이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 노인장이 말하고 있는 부엉 바위가 이고 있는 보름달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백발의 노인장이 택시 기사가 언뜻 말했던 이어 노인이라는 것을, 미간 사이의 콩알만한 무사마귀를 보고 금세 짐작할 뿐이다.
“잔잔허게 피어나는 물안개가 말여,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봉선지에 황홀 허니 일어 너울너울 춤을 출 때쯤이믄, 거울 같은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달 그림자를 밟고, 부엉 바위를 향해 미친 듯이 달음질쳐 가도 좋을 성싶은 고놈에 야릇한 심정을 자네는 혹여 알기나 할까?”
“······?”
“그보다도 달을 향해 힘차게 뛰어 오르는 잉어 떼의 도약하는 소릴 자네가 행여 들어보기나 했을까···? 고놈들의 잔치가 오늘밤에 열린다네··· 오늘이 바로 음력 칠월 보름이거든···”
“······!”
“특이나 말여, 일년에 단 한 번 그 멋진 자태를 겨우 뵈주는 고놈을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지... 자질구레한 두 세 척(尺)의 희뿌연 잉어가 아닌, 다섯 척이 훌쩍 넘는 황금빛도 찬연한 진짜 이어가 무지갯빛 물보라를 일으키믄서, 용이 돼 승천하듯 보름달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멋들어진 모습에 미쳐··· 내 벌써 사십 년이 화들짝 지나도록 여지껏 낚싯줄을 잡고 있다네.”
“······!”
“자, 물 밖으로 얼릉 나오시게나... 오늘밤에 펼쳐질 이어들의 잔치에 자넬 내 초대함쎄··· 옷을 입고 물에 뛰어든 걸 보니께 이승에 미련이 �는 모양인데, 그런 일이야 그리 촌음을 다투는 화급한 일은 분명 아닐 테고, 그들의 잔치가 끝나는 새벽녘에 뛰어든다 해도 전혀 늦지는 않을 테니께 말여··· 자, 얼릉···”
“아···!”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내미는 이어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잔잔한 봉선지의 물결처럼 미소가 일었다.
김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이어 노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주름뿐인 손을 잡는 순간, 그의 운명은 변덕스럽게 뒤바뀌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김사장을 깨운 것은 타는 듯한 갈증이었다. 진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빈속에, 들어붓듯 마셨던 소주 세 병은 지난 며칠간 고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들어 놓았던 세상일들을 까맣게 잊게 만들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땐 이어 노인의 게딱지같은 군용 텐트 안이었다. 다 낡아빠져 헤어진 틈새로 푸른 별빛이 은은하게 새어들었다. 벌써 밖은 어둠이 깔린 모양이다.
김사장이 몸을 일으켜 벙긋한 텐트 밖으로 목을 내밀어 주위를 훑어보았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 삼켜 무겁게 침묵하는 봉선 지였다.
건너편 물가를 따라 낚시꾼들이 켜 놓은, 깜박이는 카바이트 간드레 불빛이 김사장의 초점 잃은 시야에 아른아른 들어왔다. 덜 깬 술기운 탓이었다.
네온사인이 휘황 찬란하게 남실거리는 도심의 야경에 익숙한 서울 깍쟁이인 김 사장이다. 그러나 무거운 정적 너머로 와스스 쏟아지는 별빛에 두견이의 애절한 속삭임, 아울러 개구리와 풀벌레의 달콤한 노래 소리는 숨가쁘게 고투하며, 힘겹게 살아왔던 그의 세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색 다른 세상임이 분명했다.
코앞으로 이어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 놓은 방울과 견지틀을 앞에 두고, 무상 무념으로 좌선하듯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이어 노인의 뒷모습이 퍽이나 신비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혹간 볼 수 있었던 도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김사장은 몸을 일으켜 급히 텐트 밖으로 빠져 나왔다. 역한 카바이트 냄새를 내뿜으며, 희미하게 깜박이는 간드레 불빛에 물통이 보였기 때문이다.
김사장은 허겁지겁 물통을 집어들어 타 들어가는 혀를 적셨다. 갈증을 탈출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 자넬 깨우려던 참이었으이.”
“어르신···”
김사장의 인기척에 이어 노인이 말을 건네 왔다. 반사적으로 힐끗 이어 노인을 훔쳐보았다. 여전히 부동의 양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다.
“젊은이 일루 오셔 앉으시게... 머잖아 보름달이 떠오를 걸쎄.”
“···!!”
김사장은 왕골 돗자리에 참선하듯 앉아 있는 이어 노인의 곁으로 멈칫거리며 다가가 앉았다. 틀림없이 그에겐 대인 공포증이나 기피증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괜실히 서걱서걱 얼어붙는 느낌이다. 용기 없는 추레한 꼴을 보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잠시 어둠만큼 무겁게 흐르던 침묵은, 생그레 미소 진 이어 노인의 입술이 열리며 깨졌다.
“달뜨기 전까지 부엉 바위에 얽힌 서글픈 얘기 하나 들려줄꺼나?”
“···!”
“요 안 동네에 윤초시라고 있었지··· 그런디 어진 덕업 만큼 박복혀서 그들 내외에겐 불혹의 나이 다 가도록 시하에 손(孫)이 없었꾸먼··· 그래 생각다 못해 대(代)라도 이을 요량에, 질메다리 밑에 버려져 울고 있는 주먹댕이만헌 얼라를 주워다 호적에 올리고, 가세(家勢)가 기운 양반 가문에 금지 옥엽(金枝玉葉) 같은 쬐끄만 방구쟁일 쌀가마니 꽤나 들여서 민며느리까지 버젓이 들여놨지··· 거깃까진 좋았는디 말여, 고놈이 커 가면서 문제가 생겼어··· 휴···!”
갑작스런 한숨에, 김사장은 이어 노인을 힐끗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의 얼굴에 잔잔하게 흐르던 미소는 이미 가셔져 있었다. 하지만 이내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놈을 이쁜 야옹개비로 알고 잘 키워 놨더니만, 알고 보니께 삵쾡이였거든··· 윤초시 나이 환갑 무렵엔 고놈은 이미 돌이킬 수 �는 오사리잡놈이 되어 있었다네 그려··· 고놈이 커가믄서 제일 먼저 배운 게 뭔지 아능가?”
“······?”
“오입질에 투전질이었으니께 제 아무리 기둥뿌리 튼튼헌 윤초시네 집구석일 망정 결과는 뻔한 일이었구먼. 결국, 양부모 방에 뛰어 들어가 있는 땅 문서 죄다 뺐어 들구 나가 질펀허니 탕진 허구 뒤늦게 맘잡고 살아보리라 집에 들어와 보니께, 폐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구먼... 고놈의 불쌍헌 양부모는 울홧병에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고, 그의 어여쁜 아내는 이미 투전빚 백 원에 팔려 간 뒤였어···”
“휴··· 저런···! 쯔쯔쯔···”
이어 노인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김사장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근디 고놈에 오사리잡놈이 퍽이나 가관이었지··· 제놈이 뭘 잘했는진 몰라도, 세상 살아보니께 바둥거리믄서 살게 못된다고, 명줄 끊으려 부엉바위로 달려왔지··· 그런데 고놈 참, 이곳에 왜 왔는지 고걸 망각 허고, 아름답게 쏟아지는 달빛에 취해 넋을 잃고 매가리 �이 앉았는디, 그때 여기서 본 게 뭔지 자네는 혹시 아능가?”
“어르신, 이어였나요?”
김사장의 성급함에 이어 노인이 고개를 조용히 가로 저었다.
“아닐쎄··· 물위에 둥둥 떠 댕기믄서 쪼개지는 달 그림자에 치맛폭을 뒤집어쓰고 뛰어드는 아릿따운 여인네의 모습 였구먼.”
“아, 저런···”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 속에 빠져든 김사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고놈은 죽는 마당에 좋은 일이나 한 번 혀볼까 하고, 물에 뛰어들어 자맥질 허고 있는 여인넬 끄집어 내보니께, 투전빚 백 원에 팔려 간 그의 꽃다운 아내 였더라네...”
“저런, �쯔쯔··· 어르신, 그래서요?”
“더구나 알고 보니께 고놈의 여편네는 홀몸이 아니었어··· 뱃속에 고놈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능겨··· 눈물을 머금고 얘기를 들어보니께 고 잡놈의 억장이 무너져 내릴 일이었구먼··· 아무리 투전 빚에 팔려 갔다 한들, 하늘이 있는 한 차마 두 서방을 섬길 수 없다믄서 정조를 지키려다 뙈놈 같은 새서방 놈의 몰매에 견디다 못해 자살을 결심 허구 부엉 바위에 뛰어왔던 거였구먼··· 그놈은 아내를 끌어안고 첫 닭이 울 때까지 꺼이꺼이 목을 놓아 울었지··· 그래 고놈 궁리 끝에, 뙈놈 같은 새서방을 찾아가 사정을 혔지··· 결국, 머슴살이 삼 년 혀주고 여편네를 다시 돌려 받기루 작정 허구, 하늘에 속죄하는 맘으루 징역살이 같은 세월을 죽은 듯이 지내게 됐으이··· 이윽고 삼 년이란 세월은 살같이 흐르고, 그 집을 나와 새로이 출발하는 맘으루 신접살림을 꾸몄지··· 근디 채 한 달도 못되서 그것도 복이라구, 고놈의 아내는 세상을 등진 겨··· 투전 빚에 팔려 가 정졸 지키겠다고 버티다가 죽어라 얻어맞아 골병이 들었든 게 끝내 화근이었지··· 하늘이 무너지는 비통한 마음에 뒤따라 죽을 결심으로 또다시 부엉바위에 달려왔지만, 고놈은 끝내 물 속에 뛰어들지 못했다네. 왜, 그런 줄 아능가?”
이어 노인의 이지러진 눈이 김사장에게로 굴러 왔다.
“그, 글쎄요···?”
“고놈의 품안에서 꼼지락대고 있는 강아지 같은 새끼 때문일쎄··· 그래 행여 고놈의 몹쓸 잡놈이 자넨 누군지 아능가?”
“···?”
또다시 물어 오는 이어 노인의 얼굴이 순간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고놈에 오색잡놈이 바로 날쎄. 날벼락에 맞아 뒈질 천하의 몹쓸 것이 요놈에 늙은이란 말여··· 먼저 간 여편네 생각나믄 이렇게 부엉 바위를 들락거린 게 어언 사십 년이 넘었구먼. 어언 사십 년···”
“아···!”
이어 노인의 눈동자가 멀리 부엉 바위 머리 위로 고개를 내미는 보름달에 반짝였다. 두 눈에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흘러내렸다. 진한 회한의 눈물이었다.
순간, 물안개 피어나는 잔잔한 봉선지의 물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물보라가 일었다. 낮에 노인이 언뜻 말했던 이어의 도약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도약이 아니라 분명 희망을 안고 솟구치는 용솟음이었다. 부엉 바위가 이고 있는 보름달을 향해 힘차게 뛰어 오르는 황금빛 찬연한 자태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
그러나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이를 지켜보던 김 사장은 짐짓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만삭인 아내의 얼굴과 갖난둥이 유주의 얼 굴이 보름달에 이지러진 모습로 스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 밖을 내다보며, 잊고 있었던 지난날들을 회상하고 있던 김사장은, 3박 4일의 백일몽(白日夢) 같은 봉선지에서 다시금 세상 속으로 되돌아 올 때, 재생 지은(再生之恩)의 윤노인이 건네준 이어 비늘이 떠올라 급히 지갑을 뒤적였다.
주민등록증 크기의 셀룰로이드로 잘 코팅된 커다란 이어 비늘이 보였다. 지난 십 년간, 그가 가는 곳이면 언제나 같이했던 부적과 같은 존재다. “자, 이걸 받으시게나... 가슴에 품고 다니믄 자네에게 행운이 있을꺼구먼.”하며, 손에 쥐어 주던 이어 노인의 모습이 무잡하게 뇌리를 스친다.
윤노인에게 건네 받은 후, 신주 단지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던 이어 비늘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것을 몸에 지니고 다닌 후부터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했던 김사장이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쓰러졌던 사업이 다시 번창한 뒤 서천을 찾았을 때, 여전히 부엉 바위를 지키고 있던 이어 노인에게 어떻게든 보은하려 했었다.
그러나 빙그레 웃으며, 굳이 이를 거절하던 윤노인의 미소가 또다시 울적하게 김사장의 가슴을 비틀었다. 그날 서울로 돌아오면서 “혹여 제가 도와 드려야 될 일이 있으시면 꼭 연락 주세요”하며, 건넸던 명함을 가슴에 품고, 이어 노인이 대도시 서울로 마지막 나들이를 떠나야 했던 알 수 없는 이유가 김사장의 가슴을 저민다.
따르릉··· 따르르릉···
울적한 심정도 모르고, 주책없는 전화 벨이 무척이나 요란스럽게 거실 안을 울렸다.
“예, 평동 입니다.”
“접니다, 서대문 경찰서 이형삽니다.”
“아, 이형사님.”
“윤노인의 연고지인 서천 경찰서에서 조금 전 연락이 왔는데, 그곳에 그분의 유가족이 전혀 없다는군요.”
“네···? 유가족이 없다뇨? 그것이 무슨 말씀이죠?”
전혀 예기치 않았던 말에, 김사장의 얼굴엔 긴장감이 가득히 감돌았다.
“자식 내외는 젊어 교통 사고로 여위고, 축산업을 하고 있던 손자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던 모양인데, 파산이 된 것 같아요.”
이형사의 설명을 숨소리를 죽여 듣고 있던 김사장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는 듯 하더니 이내 사색으로 창백해졌다.
“파, 파산···? 파산이라뇨?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윤노인의 손자에게 시설 원예 업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시설비와 경영비에 허덕이다 지난가을 야반 도주를 했고, 그 친구의 수 천만 원대의 채무 관계에 연대 보증을 서 준 것이 잘못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축협 빚이 연체되어 쪼들리고 있는 실정에, 그 친구의 농협 채무까지 떠 안게 된 모양이에요.”
“저런, �쯔쯔··· 그래서요?”
“그래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되버리고 법원의 압류로 모든 재산이 경매에 들어가 무일푼이 된데다가, 손자에게 연대 보증을 서 주었던 또 다른 피해자가 본의 아니게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져, 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버리는 파산 도미노 현상이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저런··· 그렇지만, 유가족이 없다뇨?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함께 살았던 손자 내외는요?”
전화를 받고 있는 김사장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에, 식은땀이 이마에 후터분히 돋아 이를 쓱 훔쳐내는 손길에 현기증이 일었다.
“일이 걷잡을 수 없는 그 지경이 되버리자, 광분한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윤노인 집으로 몰려들어 손자에게 야반 도주한 그 친구를 찾아내던지, 아니면 자신들이 연대 보증을 섰던 채무 관계를 하루 속히 청산해 줄 것을 요구하며, 안하무인격으로 달려들어 몰매를 쳤던 모양이에요.”
“저, 저런, �쯔쯔··· 그, 그래서요?”
“모든 책임을 물으며, 험악하게 달려드는 그 같은 악다구니에 손자가 견디다 못해 경솔하게 칼을 휘두른 모양입니다.”
“예···엣?! 뭐, 뭐라구요? 칼을 휘둘러요? 저, 저런··· 카, 칼부림이 벌어졌다면···? 그럼, 설마?”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정겹게 지내던 이웃간에 어이없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 거죠.”
“사, 살인···?!”
“네.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버린 손자는 경찰에 쫓기게 되고, 이를 비관한 그는 죄책감에 못 이겨 뒷산으로 올라가 스스로 목을 메 자살을 했답니다.”
“예···엣?! 자, 자살을요?!”
“그렇습니다. 김사장님.”
“그, 그럼, 윤노인의 손주 며느린요?”
“지난가을 그런 일이 있은 뒤 핏덩이 어린것을 데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뒤 연락이 끊겼답니다.”
“저런, �쯔쯔···”
연신 혀를 차는 김사장의 얼굴에 파르르 경련과 함께 심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수화기에선 김사장의 가슴을 칼로 저미게 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일이 그 지경이 되버리자 마을에서 살 수가 없게 되고, 갑자기 오갈 데 없이 된 윤노인은, 결국 정든 고향 땅을 등지고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녀야 하는 가여운 신세가 되버린 모양입니다.”
“오, 이런, 어찌 이런 일이···”
“김사장님, 어떻하죠?”
“그, 글쎄요. 어쨌든 수고하셨소. 내 빠른 시간 내에 연락을 드리리다.”
“알겠습니다. 그럼.”
“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뱉는 김사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며칠 전부터 전화 벨이 울리고 받으면 대답 없이 끊겨지는 괴이한 일이 있었지만, 어느 정신나간 사람의 장난 전화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김사장이다.
그는 혹한에 오갈 곳 없는 이어 노인이 어젯밤 결국 자신을 찾아 한길의 지하도까지 왔었음을 그때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어젯밤 술좌석에서 자꾸만 울려 대는 휴대폰이 귀찮아 스위치를 내려놓았던 기억이 가슴을 저미는 아픔과 함께 뇌리를 스쳤다.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바라며, 꽁꽁 언 손을 내밀었을 윤노인의 인영이 떠올라 갈갈히 찢기는 무거운 마음에, 짐짓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여보···”
“······!”
김사장의 목젖이 심하게 떨려 올 즈음, 뒤쪽에서 따스하게 감싸 안는 아내의 부드러운 손길이 아니었다면, 금방이라도 흐느낌을 토해 냈을 그였다.
“그, 그게 말이야···”
사뭇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까지 있었던 이형사와의 통화 내용을 어눌한 어조로 설명해 나가는 김 사장의 얼굴이 무던히도 애처로웠다. 이어 노인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죄책감으로 그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진저리가 일었다.
이를 조용히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내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여보, 그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럴까···?”
“그럼요. 그건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는 우리 농촌의 처참한 현실이 빚어낸, 겨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암울한 이 시대의 비극일 따름이에요.”
“······!”
“여보, 이어 노인의 유해를 당신이 거두어 화장해서, 그분의 눈물과 한이 서려 있는··· 당신 마음의 고향인 서천의 부엉 바위가 있는 봉선지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무척이나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를 쓰고 있는 아내였다. 그러나 두 눈엔 이슬이 촉촉하게 맺혀 흘렀다.
“그래. 내 생각에도 그게 좋겠어.”
“여보, 이어 노인을 그곳에 모시면, 그분은 틀림없이 이어로 환생하시겠죠?”
아내의 말에, 김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조용히 열었다.
“그렇겠지... 그것도 황금빛이 찬연한 비늘을 가진 으뜸 이어로 말이야··· 그리곤 음력 칠월 보름이면 부엉 바위가 이고 있는 둥근 달을 향해, 멋진 자태로 힘찬 도약을 할 것이고··· 질곡한 세상살이에 지쳐 버린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는 김사장의 볼엔, 한줄기 눈물이 촉촉이 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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