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내 소설 속으로

(구경욱 단편소설) 파적(破積)

소설가 구경욱 2008. 8. 27. 22:39

 

(구경욱 단편소설)            파적(破積)

 

                         (제8회 웅진문학상 현상공모 당선작)


좌수리 보건진료소는 새태골 산릉 아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시야 끝으로 건지산이 바라보였고, 마을 입구에 있는 범바위와 보호수림으로 지정된 느티나무,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 좌수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그 아름다운 전망이 더할 나위 없었다.


환절기의 편차 심한 일교차 탓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몰려든 감기 환자들이다. 아낙들은 진료를 마쳤는데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탓에 비좁은 진료실이 재래 시장처럼 어수선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을 즈음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일순간 진료실 안은 물이 써 버린 개펄처럼 적막마저 감돈다. 그때서야 나는 긴장감으로 잔뜩 움츠려 있던 정신과 육체가, 한여름 땡볕에 갱엿 녹듯 돌연 이완되는 것을 느낀다.

나는 습관적으로 가운의 단추를 풀었다. 옷 속으로 바퀴벌레라도 기어 들어온 양 허둥대며 벗곤 신경질적으로 옷걸이에 던져 건다. 끝내 가슴을 포승으로 결박된 듯한 압박감을 견뎌 내지 못해서였다. 그리곤 출입구 쪽 창 밖을 흘끔 내다본다.

소슬바람에 시누대 잎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고막을 간지럽게 갉아 온다. 파릇이 돋는 새싹들 위로 여지없이 바스러져 내리는 햇발이 싱그럽다. 그 아래 누런 황토가 을씨년스럽게 드러난 양달받이엔,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개나리가 진입로를 지키고 있다.

방금 전 이곳을 빠져나간 한 무리의 아낙들이 마을로 내려가고 있다. 그들은 요사스런 웃음을 잔뜩 흘리며 늙은 황소걸음이다. 나는 그들이 진지함 없이 흘리는 웃음소리가 자못 낯뜨거운 음담이 자아내는 것이란 걸 알 수 있었으므로,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미소 진다.

그들은 이곳에 있을 때부터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었다.

한편에서 콧물을 연신 훌쩍이며, 진료 순서를 기다리던 쌍둥이 엄마였다. 갑자기 곁에 있던 부녀회장을 팔꿈치로 툭치며, 군침이 가득한 혀를 산망스럽게 놀렸다.

“봐라 부녀회장. 늬 큰 코 가진 신랑을 둬설랑 매일 밤 시달리느라 얼굴 색이 그렇게 황달에 걸린 것처름 누리께 하구먼.” 했다. 그러자 뒤편에서 누군가 교성어린 어투로, “맞구먼. 그려서 두 눈이 그리 떼꾼헌 겨. 그나마 있는 힘 죄다 쓸데 �는 짓거리 허느라 소진 혀서 골다공증인가 뭔가에 걸린 겨.”했고, 또 다른 누군가, “그려서 요새 읍내 병원엘 다닌다믄서?” 하고 맞장구를 쳐 왔다.

그 소리에 부녀회장이 “성님들도 참···” 하며 얼굴을 붉힌다.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장댁이 입술을 이죽거리더니, “코만 크믄 뭐혀? 그리구, 날마다 집적거리기만 허믄 또 뭐허구? 괜히 귀찮기만 허지.”라고 메마른 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그 말에 빈약한 이장님의 코를 떠올렸고, 자칫 터져 나오려던 웃음을 급히 코웃음으로 절제했다.

이에 옆에서 잠자코 있던 과수원집 아낙이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이장댁을 거들고 나선다. “자고로 사내의 물건이란 말여, 암만 꽃 떨어진 꽈리고추처름 보잘 것 �다 혀두 다듬이 방망이같이 단단해야 하능 겨.” 했고, 잠시 입맛을 쩝쩝 다신 뒤 “잊을만 헐 때 혹간 옆구리를 찔러 온대도 건장마에 바싹 독이 오른 고추처럼 혼절할 만큼 매워야 제맛인 겨.”란 말로 키득거리며 마무리했다.

그러자 이장댁이 다시 나서며, “아무렴, 그 말이 맞구먼. 사내의 그건 말여, 물러 대드는 살무사 대가리를 보는 것처름 야무지게 생겨야 실속이 있는 것여.”라며 마뜩찮은 어조로 덧붙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패설들이다.

나는 드리없이 지껄여 대는 그들의 말에,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아뭇소리 못하고 얼굴만 붉혀야 하는 등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차별 공격하는 이같은 음담들이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류의 얘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다시 터뜨리는 그들의 웃음은,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이 확인되자, 나는 잽싸게 티셔츠를 반쯤 걷어올린다. 스멀스멀 가슴을 압박해 들어오던 브레지어를 능숙한 솜씨로 벗고는 내실 입구 쪽에 위치한 욕실 문을 열고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나는 진료실로 되돌아 와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곤 조금 전처럼 티셔츠를 걷어올린다. 군더더기란 찾아볼 수 없는, 엉덩이를 향해 유연하게 흘러 내려간 간결한 곡선이 드러난다. 우윳빛도 또렷한 싱싱한 젖가슴이 눈부시다. 마치 다투어 핀 꽃과 같았으므로, 맞은 편 언덕 위에 있는 교회 뜰의 흐드러진 벚꽃을 보는 듯 하다. 과히 사내라면 탐욕 어린 미소가 얼밋얼밋 흘러나올 수줍은 속살들이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거울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묘한 충동감에 사로잡힌다. 슬며시 젖가슴으로 손을 옮긴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튕기칠 듯한 탄력감으로 부끄럽게 느껴질 무렵, 나는 젖무덤에 비해 다소 작게 느껴지는 앵두 크기의 유두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듯 마사지를 한다. 이와 함께 거친 심호흡을 반복했을 땐, 한결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한다. 한껏 우지지며 허공을 깝죽깝죽 날아가는 종달새라도 된 듯한 느낌의.

나는 극히 단정해 보이는 외모와 달랐다. 브레지어나 거들, 또는 코르셋 따위들을 착용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아니 저주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전제주의 시절 노예들의 자유를 속박하기 위해 씌워졌던 굴레나, 죄인들에게 채워졌던 족쇄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게 아니라면 민초들을 무던히 핍박하던, 눈물이라곤 반푼 어치도 없던, 잔혹한 압제자의 피 묻은 손아귀가 변해 지금에 이른 것들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새롭게 돋는 풀잎 같은 여성들의 여린 속살들을 이처럼 가혹하게 구속할 리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늘 혼자 있을 때엔 이러한 것들을 벗어 던지는 것으로 억눌린 구속감을 떨치곤 했다.

갑자기 밀려드는 황홀감, 또는 사윈 긴장감은 곧 무력감으로 변해 전신을 점령당한다.

맨살에 또렷하게 났던 브레지어 자국이 지워질 무렵, 나는 무단히 진료실 안을 서성거린다. 한가해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 것이다.

잠시 후, 나는 할 일을 찾지 못하고 한편에 놓인 소파에 몸을 던진다. 그리곤 스스로 연출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아 자리잡고 앉는다. 이내 팔걸이를 베개 삼아 비스듬히 눕는다. 무의식중에 모색하는 보다 안락한 자세로의 전환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탁자에 놓인 일간지에 반쯤 가려진 시집을 발견하고 시선을 고정시킨다. 며칠 전 선배로부터 선물로 받은 사랑의 시 모음집이다.

나는 약간 몸을 비틀어 일으켰다. 그리곤 팔을 뻗어 시집을 집었고, 의식 없이 조금 전 위치로 되돌아 누우며 조심스럽게 겉장을 넘긴다. -그리움에 지친 Y로부터-란 문구가 눈에 들어와 금세 입가에 미소가 인다.

2년 연상인 Y는 시인을 꿈꾸는 중학교 국어 교사였다. 그 동안 멀게도 그렇다고 가깝게도 지내지 않았던 아득한 사이였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여고 시절이다. 우연한 기회에 공주 공산성 근처에 있는 조립식 건물로 된 조그만 개척 교회에, 여중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J로부터 소개받은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가 알게 됐다. 그는 늘 겨드랑이 사이에 시집을 끼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약간은 신비스럽고, 깔밋하게 가슴에 와 닿은 첫인상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런 Y와 특별히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질투라 할까. 아니면 시기라 할까. 어쨌든 시새워 하는 경계에 찬 남자 친구의 눈초리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학생회에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무신론자인 내가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갑자기 불붙은 신앙심이 아니라 순전히 Y때문이었다.

나는 남자 친구의 눈을 피해 간혹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보다 가까이 지내보려 노심초사하며 기회를 찾았으나, 결국 혼자만의 부질없는 가슴앓이로 끝이 났다.

요즈막 들어 Y를 생각하면 인연의 고리란 참으로 질깃한 낚싯줄과 같은 것으로 튼실하게 얽혀져 있고, 아교풀만큼이나 끈적하고, 그 모양새가 퍽 우스운 꼴을 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끝내 지울 수 없다. 당시 나를 교회로 찾아가게 만들었던 남자 친구는 그에게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Y와의 인연은 거미줄처럼 끊어질 듯 하면서도 십 여년 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고를 졸업하고 재수생이 되어 방황할 무렵, 사대에 진학했던 Y는 휴학하여 군에 입대했다. 그가 연무대로 떠나가던 날, 나는 시외버스 터미널 구석에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입영 전야를 J와 은밀하게 지새웠다는 게 몹시 실망스러웠고, 약간의 분노까지 슬며시 일었던 것이다.

재대 후 복학한 그는 남은 학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무렵 나 역시 대전 이모 집에서 보건대에 다니고 있었고, 그는 졸업 후 곧바로 교직에 몸을 담게 되어 공주를 떠나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교회에 나간다 해도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는 주말이나 방학중에 혹간 시외버스 터미널 등지에서 얼굴을 마주치긴 했지만, 서로는 특별히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더구나 결혼할 것으로 알았던 J와 결별한 터라, 이제와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 왠지 껄끄러웠다. 또한,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 목례 정도로 지나쳤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관계로 쉽게 전락해 버렸다. 나는 그런 Y를 시간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숱한 얼굴 중 하나일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해 버렸다.

이렇듯 소홀한 관계로 되버린 Y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 것은 한 달 전이다. 지난겨울 공주를 떠나 전혀 연고 없는 이곳으로 왔을 때, 읍내 중학교에 진작부터 근속해 있던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해 왔다.

나는 손바닥만한 지역 내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됐을 때, 굳이 필연일 것이라 의미를 커다랗게 부풀려 부여했다. 낯선 곳의 편편찮은 환경.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에 지쳐 있었고, 시리도록 고독한 시간들을 깨트려 줄 누군가를 절실히 필요로 하던 내게 때를 맞추어 나타난 것이 바로 Y였다.

서로는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까맣게 잊혀져 가던 학창 시절의 추억담을 핑계로 거의 매일 밤 만나게 되었다. 그런 이유가 우리들을 금강 하구둑 놀이동산이나,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동백정, 백제의 궁녀들이 망국의 한을 안은 채 삼천 개의 꽃으로 떨어졌던 부소산의 낙화암, 또는 무왕의 출생 설화가 서린 궁남지 등을 자연스럽게 오가게 했다. 일찍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Y와의 만남이었으나, 새롭게 시작되는 봄과 함께 화사한 여정을 같이하게 만드는 운명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널 생각하는 내 마음이, 이 안에 함축되 있더군.”

“선배도 참···”

특별한 관계로의 변화를 의식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수줍은 어조를 던져 오던 Y의 모습을 떠올렸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운 표정을 차마 감추지 못한 채 시집을 건네던 Y였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진지함보다도 조소에 가까운 웃음이 앞선다.

내 마음을 슬쩍 떠보기 위해 던져 온 이 같은 말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소녀 시절부터 꿈꿔 왔던 기발한 아이디어의 프로포즈는 아니었으므로, 나를 감동시켰다거나 사로잡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그 말이 갖는 속뜻을 인식치 못했다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거부감을 들게 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어색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미소로 얼버무리긴 했으나, 어쩌면 보다 적극적인 말을 확실하게 건네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Y는 만나면 헤어지기 싫고, 전화 벨이 울리면 얼굴이 퍼뜩 떠오르고, 둘만의 공간에서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싶은 사람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있었다.

엉뚱한 생각들을 지우며 맞은편 벽에 걸린 거울을 흘끔 쳐다봤을 때, 내 얼굴엔 약간의 홍조와 더불어 엷은 미소가 일고 있다.

왜, 얼굴을 그렇게 붉히는 거지?

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그 의미를 스스로에게 따져 묻는다. 순간, 얼결에 떠올린 것이 촉촉한 Y의 입술이었고, 뜨겁기 그지없는 육체였다. 비로소 어젯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모텔에서 있었던, 누가 알까 수줍고 비밀스런 일들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 일은 피처가 던진 공이 캐처의 글러브에 도달하는 시간만큼씩 짧게 도막져 있었다. 또한, 내 몸 구석진 곳에 눅눅하게 묻어 있었다. 나는 Y와 있었던 솜사탕같이 달콤한 기억들을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자만의 상상이나 꿈속에서 있었던 일로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지 않았던 당혹감이 심장을 두드려 오고, 얼굴을 더욱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어 손바닥으로 볼을 감싼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십 여년이란 긴 유예기간을 거쳐 어딘가에 깊숙이 예치해 두었던, 소중함을 잊은 채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었던, 또 다른 나를 비로소 찾아낸 것과 같은 느낌 때문이다.

시집을 대, 여섯 쪽쯤 넘겼을까. 날아온 화살에 가슴을 꿰뚫리는 듯한 아름다운 시구에 포근히 젖어들 무렵이다.

“요오런 쥑일 늠!”

별안간 팽개친 유리병이 바위에 부딪쳐 깨지는 듯한 소리. 또는 양철통이 바람에 굴러 찌그러지는 듯한 파생음이 진료소 담을 넘어 든다.

나는 척박한 그 소리에 놀라거나 긴장하진 않았다. 하지만, 담 밑에 있던 발바리가, 깜짝 놀라 꼬리와 두 귀를 쫑긋이 세운다. 그리곤 뒤란 쪽 허공을 향해 옹골차게 짖는다.

어수선한 그 소리들은, 비엔나 커피처럼 부드러운 봄볕과 함께 스텐레스 철선으로 된 촘촘한 방충망을 뚫고 실내로 날아 들어온다. 이내 다섯 평 남짓한 비좁은 진료실을 가득히 채운다. 마치 깊은 동굴 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양으로 울리고 있을 때, 나는 읽고 있던 시집을 덮었고, 짜증 섞인 어투와 함께 탁자에 던진다.

저런, 또 시작이군.

이맛살을 찌푸린 채 뒤편으로 나 있는 창문을 피뜩 쳐다본다. 순간, 평행선을 그리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치닫는 몇 가지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뇌리에 붙잡아 놓는다. 그리곤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잠시 망설였다. 믿어지지 않을 농담같이 우스운 얘기지만, 들려 오는 그 소리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고막을 제멋대로 걷어차는 광포한 소리들. 그칠 줄 모르고 심장을 치받는 그 소리의 발원지를 좇아 창 밖을 내다 볼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 외면해 버릴 것인지, 아예 창문을 닫을 것인지, 또는 계속해서 시집을 읽을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궁상에 가까운 내면적 갈등에 시달리는 일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퍽 우스꽝스럽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허나 나는 이 같은 일에 모순된 두 가지 이상의 명제를 내세워 괜실히 고민에 빠지길 좋아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몸에 벤 습관은 아니었으나, 이곳으로 발령 받아 내려온 이후 새롭게 생겨난 습관이다.

나는 이렇듯 괴이한 정신 상태에 곧잘 빠져 몇 시간 동안 우울해 하는 일도 있었으나, 조울증에 가깝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십 초 이내의 짧은 시간 안에 정확히 판단했고, 확실하게 행동했으므로, 특별히 신경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된다거나 요양을 해야 할만큼 크게 우려할 바란 없었다.

나를 이러한 갈등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험상하게 들려 오는 목소리였다. 그것도 교살 직전 목젖이 심하게 눌리는 듯한 여인네의 앙칼진 욕지거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복잡하게 어그러진 생각과 달리 의외로 단순하게 반응할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같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들었다면, 열 일 제쳐 두고 반사적으로 창가로 뛰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크게 마음에 담을 일이 아닐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으므로, 집요하게 뇌리를 헤집고 다니는 생각들을 일순간 지워 버린다.

생각이 이쯤에 다다르자 브레지어를 벗어 빨래통에 던져 넣을 때 느끼곤 했던, 해방감에 가까운 홀가분한 느낌이 들어 느긋하다. 하지만 이같은 얄따란 생각과 달리 험악한 어조로 들려 오는 여인네의 고함 소리란, 평범한 일상에서 가볍게 주고받던 언어들이 결코 아니다.

잠자고 있던 궁금증이 부스스 깨어난다. 잠시 모호한 표정으로 지칫거리던 나는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봄이 되니까 힘이 펄펄 나는가 보군. 이번엔 무슨 트집거리가 있기에,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우고 있담···?

독특한 억양으로 미루어 모시 밭을 사이에 둔, 진료소 뒤편 때찔레나무 울타리 안집 한산댁 할머니(나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욕쟁이 할머니라 불렀음.)가 분명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숱하게 들어왔던 터라, 이제는 이골이 났어야 옳았을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그 목소리를 듣기는커녕, 생각 자체만으로도 소름이 끼쳐 올 정도였다. 이내 온몸은 공동묘지처럼, 무수한 무덤 같은 것들로 뒤덮이고 있다.

누군가를 상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는 한산댁 할머니의 목소리를 떨치려 머리를 흔든다. 몇 번인가를 반복해 도리짓 하던 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노망기가 발동한 늙은이의 관능성의 정신 장애에 의해 그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허공에 욕설을 내뱉어 헝클어진 기운을 발산해 풀고 있는 것일 뿐이라 치부해 버린다.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또한, 한산댁 할머니가 벌이는 악다구니란, 사실 누가 보더라도 대부분 하잘것없는 일에 터무니없는 억지를 내세우기 일쑤여서, 과히 벽에 배설물을 쥐어 바르는 치매 노인의 정신 상태를 의심치 않을 수가 없다.

유별나게 호기심이 많은 나였다. 슬며시 머리를 드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이 창가로 다가선다. 망막을 파고든 햇살 때문인지, 거칠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때문인지, 약간의 현기증이 일어 몸이 미약하게 흔들린다. 나는 급히 창틀에 팔을 뻗어 기댄다. 하지만 금세 가라앉았고, 습관적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창 밖을 내다본다.

언덕 아래 연녹으로 채색을 시작한 엉버름한 때찔레나무 울타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로 한산댁 할머니 집 울안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곳에 왜소해 보이는 한산댁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일 미터 오십이 채 될까. 아담한 키에, 깡마른 체구였다. 그녀를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 눈에도 몹시 신경이 날카로울 것이란 차가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몹쓸 작것(잡것) 늬 오늘 된통 잘못 걸린 겨 이늠아?!”

“하, 할머니. 조용히 돌아갈 테니, 제발 이 손 놓으세요.”

입가에 허연 게거품까지 물고 있는 한산댁 할머니였다. 깔끔한 감색 양복 차림의 삼십대 초반쯤 돼 보이는 젊은 남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발광을 하며, 목이 터져도 좋을 양으로 고함을 지른다.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잡힌 멱살을 떼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여의치가 않아 보인다.

평소 한산댁 할머니는 여든으로 치닫는 나이를 무색케 했다. 호미질에 삽질은 힘께나 쓰는 젊은이들도 혀를 차게 만들었다. 박달나무나 대추나무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깐깐하고, 사뭇 꼬장꼬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넥타이를 오지게 부여잡은 손은, 남자의 거센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만치 않아 보일 수밖에 없다.

저런, 안됐군. 잘못 걸렸어. 어쩌자고, 하필이면 망령 든 욕쟁이 할머니한테 걸렸담. 억수로 재수가 없군.

나는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으나, 과연 무슨 일 때문일까? 하는 궁금증보다도 은근슬쩍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생각한 때문인지 남자에게 설핏한 동정의 눈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나는 한산댁 할머니에 대한 일방적인 감정들은, 편협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편견이나, 잘못 인식된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기존의 의식을 번복하는 새로운 견해는 금세 설득력을 잃고 사라진다.

한산댁 할머니에게 있어 이런 일은, 평소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예사롭게 웃어넘길 일에도 쉽게 흥분하는 그녀였으므로, 나 역시 몇 차례 직, 간접적으로 당해 본 경험이 있는 터였다.

한산댁 할머니가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지르는 이 같은 일은, 오늘도 벌써 두 번째 일어나는 일이었다.

살풍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새벽녘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둠이 장악했던 세상이 한산댁 할머니의 앙칼진 고함 소리와 그칠 줄 모르고 울려 대는 자명종 소리에 화들짝 놀라 열리고 있다. 물론 세상은 질겁이라도 한 듯 온통 푸른색이다.

나는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으나 미동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아니,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 사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다이어트 중인 나는 새벽녘이면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1km쯤 떨어진 초등학교까지 뛰어가 운동을 했다. 줄넘기, 또는 철봉, 운동장을 십여 바퀴 이상 뛰는, 나름대로 강도 높게 행하는 아침 운동이다.

내가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뚜렷하게 있었다. 올 여름 비키니 차림의 자태를 마음껏 뽐낼 것이었다. Y는 내 허리 곡선을 따라 썬 크림을 바르며, 손끝에 전해지는 감미로운 촉감에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시인을 꿈꾸는 대쪽같은 마음은 연체 동물같이 흐물흐물 변한 것이며, 내게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소중한 사람으로 변할 것이었다. 나는 이같은 전제하에 가냘픈 육신를 처절한 사투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랬던 나를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이 만든 것은, 늘 들어온 한산댁 할머니의 고함소리라는 것을 확인한 때문도 있었지만, 다름 아닌 목덜미를 모지락스럽게 짓누르고 있는 숙취 때문이다.

나는 지난밤 읍내에서 있었던 보건진료소장들의 모임에 참석해 술에 취해 곤죽이 된 몸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서른의 나이에 여태껏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애초부터 술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사회 생활이 시작되면서 술자리에 앉아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나 도무지 고역스런 자리일 뿐이었다. 더욱이 부모 곁을 떠나 객지에 나와 있다고는 하지만, 읍내에 나아가 술을 마시느라 승용차를 놓고 돌아와야 한다는 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또한, 정신을 가다듬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실 정도의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어젯밤의 어이없는 일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랬던 내가 이렇듯 술에 취해 택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 역시, 바로 눈앞에서 남자의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데치고 있는 한산댁 할머니 때문이다. 그 때를 떠올린 때문인지 또 다시 진저리가 훑고 지난다.

“보그라 샥시. 내 급살맞을 눔의 고뿔에 걸린 모양인디 어여 주사나 한 방 놓그라. 그래야만 수요일까지는 뚝 떨어질 모양이니께.”

“할머니 여기가 무슨 술집 인줄 아세요? 오실 때마다 색시 색시 하시게요?”

“비러머글. 후딱 주사나 놓으라는디, 뭔 늠에 술집 타령인 겨?”

“할머니, 전 이곳 진료소 소장이에요. 아시겠어요?”

“얼어 뒈질 소장은···? 그 건 나도 아니께 퍼뜩 주사나 놓그라.”

“아시면서 그러세요? 그리고, 주사 처치를 하든, 약을 처방하든 그것은 제 고유 권한인데, 그렇게 다짜고짜 주사를 놓으라 함부로 명령하시면 안되죠? 일단 진찰부터 받으신 다음에, 제가 알아서 적절하게 처방할 테니 어서 의자에 앉으시기나 하세요.”

이것이 발단이었다. 진료소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몸뻬를 내리고, 가죽만 남은 누르퉁퉁한 엉덩이를 들이미는 한산댁 할머니의 볼썽 사나운 태거리가 내 미간을 심하게 구겨 놓았던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마음을 비틀어 놓았던지, 한산댁 할머니의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검버섯 사이 창백한 볼에 경련이 일었다.

“뭐시 워쪄? 주살 놓으라믄 놓능 게지, 뭔 늠에 잔소리빼기 허느라 그렇쿰 이빨 빠지능 겨?! 써글 년아?!”

“하, 할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과격하게 하세요? 전 단지 목에 염증이 없는 이상 괜히 항생제에 불과한 주사를 맞아 보았자 몸에 좋을 것 하나도 없다는 얘긴데···”

“집어치지 못허능 겨?! 요런 베락을 맞아 뒈질 년!!”

갑자기 가운 앞자락이 낚아 채이는가 싶더니 특유의 험상한 욕설이 한여름 소나기처럼 세차게 퍼부어졌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까닭 없이 몇 차례 경험한 바 있었지만, 이렇듯 옷깃을 잡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진료소장의 하찮은 권위나 긁힌 자존심 따위들을 추스를 겨를 없이, 한산댁 할머니의 매운 손맛에 눈물을 찔끔 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진료소 입구에 있는 마늘밭을 둘러보고 있던 마을 이장님이 그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그리곤 상기된 표정으로 장황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내게 눈웃음을 던진다.

“이 보슈 소장님. 엔간허믄 주살 놔 드리는 게 워떻것슈? 그렇잖았다간 욕쟁이 할머니 사나운 소갈머리에 망신살은 뻔할 테니께 말유.”

하며 만류하고 나섰고, 당혹해 하던 나는,

“그, 그게 좋겠네요.”

하며, 잽싸게 느슨해진 손을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가 주사용 증류수를 가지고 나와 처치하는 얄팍한 수를 썼다. 그때서야

“허어 션(시원) 허구먼. 진작시 그럴 일이지, 쥑일년.”

하며,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양 시침뗀 얼굴로 현관문을 나섰던 한산댁 할머니였다.

이 같이 씁쓸한 마음으로 모임에 참석했고, 연거푸 들이킨 소주 몇 잔에 몽롱한 상태였다. 모임이 끝났을 때, 나는 술김에 Y를 한산 모시관 근처 주점으로 불러냈다. 그리곤 백제의 혼이 담겼다는 한산 소곡주와 파전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고, 겨우 마신 한 잔 술에 거의 혼수상태가 되버렸다. 그 후로 다시금 번복할 수 없는 일을 얼결에 저질렀다. 그 기억들은 모두 조각나 있어 흩어진 편린들을 주어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Y가 스스로 말해 주지 않는 이상은, 그 기억들을 겨우 추측으로 꿰맞출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앉은뱅이 술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소곡주의 위력을 감히 과소 평가한 것이 실수였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한산댁 할머니의 목소리에 짜증이 앞섰다. 그렇지만, 더 이상 침대에 누워 있지 못하게 만든 것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깨갱거리는 발바리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가 뒤편 모시밭 쪽에서 들려 오고, 가족이나 진배없는 우리 발바리가 아픔을 견디다 못해 지르는 절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 이를 어째?”

뒷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무시하고, 커튼을 젖혀 밖을 내다 봤을 때. 나는 간밤에 마신 술이 확 깨는 것과 동시에 전율마저 느꼈다.

“엠병헐 늠에 종자들, 예가 워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이렇쿰 마구 뒹굴믄서 치대능 겨! 치대긴···?! 허이구, 이를 워쩔까나? 옴방지게 삐지는 우리 모시 수냉이 죄다 뿌러지네?! 저런 씨오쟁이를 뽑아 버릴 종자, 저 가지랭이를 찢어 쥑일 씨알 �는 진료소 가이새끼 땜에···!!”

원초적인 본능을 누가 만류할 수 있으랴. 암컷인 우리 발바리와 수컷인 부녀회장네 황구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뒤엉켜 있다. 녀석들은 새벽부터 모시밭에서 만나 돋아나는 새싹이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한산댁 할머니의 까탈진 성격에 모시밭이 망가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 만무하다. 분별력 잃고 마구 휘두르는 부지깽이에, 황구와 발바리는 온통 피투성가 되어 깨갱거린다. 그렇지만, 두 마리의 개는 이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만 종자 번식의 본능이 이끌어 내는 처절한 의식을 끝까지 거행할 뿐이다. 그것도 사뭇 장엄하게.

새벽녘에 있었던 일을 뇌리에서 떨쳤을 때, 나는 뒤돌아 서 있었다. 시선 끝은 어느새 담 밑의 발바리에 고정되어 있다. 녀석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바들거리며, 슬금슬금 눈치만 살핀다. 족히 자신의 몸집의 서너 배나 되는 커다란 황구와의 끔찍한 경험도 있겠지만, 쩌렁쩌렁 울려오는 한산댁 할머니의 목소리에 조건 반사를 보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발바리와 한산댁 할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닫아 버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가 어지간히 지쳐 보였고, 꽤 많은 마을 사람들이 때찔레나무 안집으로 모여들어 웅성거릴 즈음이다.

흥! 괜한 일에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할 까닭이 전혀 없지.

나는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데다가 망령 들린 시골 노인네의 까다로운 행동에 괜실히 신경만 거슬릴 뿐이라 생각했으므로, 아예 커튼까지 내린다.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모텔 주차장에 있던 차를 끌고나와 Y의 하숙집 앞 공터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은 세상을 단 입에 삼켜 버린 뒤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로등이 무척 외로워 보이던 골목길이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알 수 없는 느낌이 흐른다. 아늑하고 묘한 느낌의.

나는 주위를 몇 번인가 훑어본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허나 분명 달랐다. 무엇이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으나 확연히 달라 보인다. 똑 같은 환경에도 느낌이 이렇듯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이 간사한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짐작해 볼뿐이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휴대 전화기를 꺼내 들었고, Y를 공터로 불러냈다. 여느 때 같았으면 하숙집으로 직접 찾아가 약간의 푼수 기를 발동해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젯밤 기억이 자꾸만 몸을 움츠려 들게 만든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Y가 뛰다시피 고샅길을 내려온다. 가슴이 떨려 온다. 반가움 반, 두려움 반이다.

“왔으면 하숙집으로 들어오잖고서?”

“못 보던 운동복이네요?”

“몸은 괜찮아? 어젯밤 무척 취한 것 같던데.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어머, 제가 그랬어요?”

나는 어젯밤 일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양 엉뚱한 말로 시침을 뗀다. 그러나 오히려 쑥스러워 하는 것은 나보다도 Y였다. 그 역시 잠재된 어젯밤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그 기억들은 분방하게 살아온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게 구속하고 있다. 그런 이유가 일상에서 쓰는 의례적인 인사말 몇 마디 이끌어 내고 있을 뿐이어서,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고 싶게 만든다.

“오늘 낮에 피곤한 일이 있었어요. 그냥 가기 뭐해서 전화했어요.” 라고 한 것은 나였고, “왜, 그냥 가려고? 안으로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하잖고서?”라고 한 것은 Y였다. 내가, “다음에 다시 전화할께요.” 하며, 급히 차에 오르려는 할 때. Y가 급히 팔목을 잡으며, “잠깐만, 네게 할 말이 있어.” 했다. 나는 멈칫 고개를 돌리며, “뭔데요?” 했고, Y는 잡았던 손을 슬며시 놓으며, “그, 그게 말이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말을 꺼내 놓기가 어색했던지, Y는 미소를 싱겁게 던져 온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나 역시 덩달아 미소를 짖는다. 잠시 망설이던 Y가 용기를 얻었는지,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모래가 일요일인데 시간 좀 낼 수 있겠어?”

“시간요? 무슨 일인데요?”

“······”

Y는 여전히 난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나는 그 모습에 대해 비웃을 생각은 없었으나, 자칫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선배도 참··· 무슨 일인데 그렇게 망설이는 거죠?”

“사실, 본의 아니게 일이 우습게 되버렸어.”

“우습게 되버렸다니요? 뭐가 요?”

반사적으로 되묻는 내게서 시선을 슬며시 옮겨 주위를 살피는 Y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나는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는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나를 뚫어질 듯 바라본다. 나는 그 시선 끝을 피하느라 급급했다. 술에 취해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막무가내로 매달리던 내 모습이 스치고 있어 당혹스럽다.

“부모님께서 널 좀 만나자는 군.”

“저를 요···?”

“그래, 아침에 어머니께서 학교로 전화를 했더군. 모래 맞선을 봐야 한다면서, 집에 꼭 와야 한다고 말이야.”

“맞선?”

“그래 맞선.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우스꽝스런 만남 말이야.”

“그, 그래서요? 그, 그렇게 하기로 했나요?”

Y를 피뜩 쳐다보는 나는 여느 때 같지 않게 침착성을 잃고 있다는 것을 더듬거리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머리 속엔 무슨 말이 어떻게 꺼내질 것인가를 추측하느라, 느긋했던 상상력을 부지런히, 그리고 차분히 동원하고 있다.

“아니. 하지만··· 이미 한 달 전에 있었어야 할 맞선이었는데, 널 만나면서 온갖 변명으로 여태껏 미뤄 왔어.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됐어. 얼마나 잘났기에 그러느냐며,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시간 약속을 해 왔다는 군.”

나는 약간 격앙됐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 어조로 또다시 되묻는다.

“그래서, 뭐라고 했죠? 그렇게 하겠다고 했나요?”

“아냐. 그 게 아니라는 데도.”

“그럼?”

“그래서 성급하게 네 얘길 꺼냈어.”

“제 얘길 요? 그랬더니 뭐라셨죠?”

“어머니께선 앞 뒤 사정 볼 것 없이 일요일에 널 만나 보자고 하시더군.”

“어, 어머···!”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잠시 시선 끝을 어디에 두어야 옳을지 몰라 머뭇거리던 나는 뜨거운 눈빛을 던져 오는 Y의 눈망울을 바라본다. 그리곤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금 제게 청혼을 하는 것인가요?”

“청혼···?”

“네. 그 말은, 곧 그런 뜻이 아니던가요?”

“그게 그렇게 되나?”

“그렇잖고요?”

“그렇군. 결국 그렇게 되버렸 군. 찾아보면 더 멋진 말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아···!”

내가 가느다란 비음을 흘리고 있을 때, Y는 얼굴을 옆으로 돌린다. 잠시 지칫거리던 그가, 약간 조바심 어린 어투로 물어 온다.

“어때? 그렇게 해 줄 수 있겠어?”

“선배, 어젯밤 그런 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우린 아직까지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하긴 그래.”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나는 흔쾌히 그러마 할 수도 있었으나 거절하는 양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내숭이다.

“역시, 내가 성급했어. 그렇지? 안되겠지···?”

“갑작스런 일이라서 무어라 대답하기가···”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미간을 좁혔다. 일렁이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심장이 터지고, 숨이 막힐 듯한 벅찬 느낌의.

“미안해. 괜한 얘기로 당혹스럽게 만들어서 말이야. 너무 내 생각만 했나 보군.”

“아니에요. 하지만, 좀 더 신중히 생각을 해보고··· 전화할께요.”

“그래, 그게 좋겠어. 성급하게 서두를 문제가 아니니까. 하여튼 전화 기다릴께.”

“······”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둘러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그리곤 급히 골목길을 빠져 나오려 할 때, Y가 갑자기 뛰어 오더니 차창을 두드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차를 세운다.

나는 차의 윈도우를 내리며, “무슨 일이죠?” 하며, 고개를 갸웃이 기울였고, Y는 “아직 할 말이 남았어.” 했다. 내가, “무슨 말인데 그래요?” 했을 때. 갑자기 Y가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돌연 거친 숨결과 함께 뜨거움이 입술을 덮어 온다.

나는 볼에 부딪는 까칠한 수염 흔적에 움찔했으나 피하진 않았다. 아니 피하기엔 이미 늦었고, 또한 비록 술에 취해 정신을 가눌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몸까지 허락한 터에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랑해··· 벌써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널 사랑한다고···”

“···!!”

나는 얼굴을 붉힐 사이 없이 그의 포로가 된다. 낯선 체취가 때를 같이해 폐부를 파고든다. 쌉쓰름한 쑥냄새 같기도 하고, 새콤한 자두향, 또는 레몬향 같기도 한 Y의 체취였다.

Y는 달콤한 언어들을 끊임없이 흘리며, 나를 끈적하게 탐해 온다. 입술에 전해지는 촉촉한 느낌은 심장까지 스민다.

모든 것이 Y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약간의 진저리가 일 무렵, 나는 그 자리에 꾸들꾸들 응고된다. 골목길을 총총걸음으로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 때문이다.

그 소리는 적막을 깨트리며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으나 불협화음을 내며 들려 오는 파생음으로 미루어 두 사람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하나는 여자의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 또 다른 하나는 남자의 둔탁한 구둣발자국 소리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들이 우리와 같이 은밀한 사이이거나 부부일 것이라 추정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겹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정한 속도로 다가올 리 없다.

발자국 소리는 우리들 곁에 이르러 잠시 멈춰서는 듯 하더니 남자가, “참 좋은 때 군. 안 그래?” 했고, 여자는 대답 대신 키득거리는 소리를 남겨 놓고 고샅길로 총총히 사라져 간다.


차는 안개가 모시 올처럼 아늑하게 깔리기 시작한 한산 모시관 고갯길을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뒤편에서 119구조대 차량이 울려 대는 요란한 싸이렌소리에, 나는 음찔하며 길을 양보한다.

나는 비로소 몹시 흥분에 겨워 넋을 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팔이 겉잡을 수 없이 떨려 온다.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다리가 새벽 운동을 마친 직후처럼 후들거린다.

나는 차를 급히 모시관 주차장 쪽으로 진입시켰다. 잠시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시간이 얼마쯤은 필요할 것 같아서 였다. 읍내에서 어떻게 차를 몰고 이곳까지 왔는지 기억조차 없었으므로, 도중에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 적잖이 안심이다.

주차장은 지난 일요일 Y와 함께 왔을 때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한적하다. 띄엄띄엄 열 대 남짓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어 더욱 넓어 보인다. 아직은 밤 기온이 차가운 탓이리라.

나는 점퍼 깃을 세우며, 차 문을 열고 내려서려 하다가 급히 문을 닫는다. 문을 열었을 때는 Y와 새롭게 만났던 신석초 시비까지 걸어 볼까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모시관의 전통 가옥 쪽에서 팔짱을 깊숙이 낀 한 쌍의 연인이 주차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어 포기해 버린 것이다. Y와 함께라면 몰라도 혼자서 그들 앞을 을씨년스런 그림자를 이끌고 걷기가 왠지 그랬다.

나는 흘끔흘끔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 오디오에 CD를 밀어 넣는다. 그들 눈엔 내가 시련이라도 당해 혼자서 밤거리를 방황하는 서글픈 여인이라든가, 아니면 누군가를 유혹해 지폐 몇 장에 정조를 팔기 위해 거리에 나선 헤픈 여인으로 비쳐질지 모른다는 괜한 자괴심 때문이었다.

나는 볼륨을 올린다. 이내 Y가 좋아하는 정지용의 시에, 완만한 능선을 보는 듯한 선율로 곡을 붙인 ‘향수’가 흘러나온다. 이내 시인의 고향으로 가는 오솔길에 서 있는 느낌이다. 황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도랑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들이 전신을 핥는다.

나는 거장들의 손끝에 의해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시원스런 선율로 되살아나는 고전 음악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러나 Y를 만나게 되면서,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 있다는 것에 스스로 놀란다.

왜, 거기까진 생각지 않았을까?

이 말은, 지금까지 Y를 만나면서 결혼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했으므로, 자신에게 던진 의문이다.

나는 평소 연애와 결혼은 개연성이 전혀 없는 별개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 동안 Y를 만나면서 결혼에 대해 한 번쯤 생각했어야 옳았다. 동백정에서 수줍은 동백의 꽃망울을 보았을 때, 우리의 손은 맞잡고 있었다. 짙푸르게 펼쳐진 서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땐,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것은 진작의 일로 벌써 한 달 전 일이다.

금강 하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는 어떠했던가.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던 Y를 한 시간 이상 기다렸을 때에도 짜증보다는 설렘만 가득했었다. 더구나 어젯밤은 어떠했던가. 결정적으로 서로는 모든 것을 주고받은 은밀한 사이임을 부정할 순 없는 일이다. 비록 술에 취해 정조에 대한 가치, 또는 존재 의식이나, 기분에 따라 함부로 육체를 팽개친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위들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로 행해진, 단지 혼자만의 자위행위로서 해결 못할 욕정 분출의 의미 없는 행동일 뿐이긴 했지만.

어쨌든, 세모에 야간 열차를 타고 해 돋는 동해를 향해 여행을 같이 떠나고 싶은 사람. 이별만 아니라면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사람. 언제까지 오솔길을 따라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멀리까지 걷고 싶고, 첫눈이 내리는 겨울 바다에서 만나기를 한여름에 미리 약속하고 싶은 사람. 설령 슬픈 삼류 영화라 할지라도 비련의 주인공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Y였다.

정말 모순된 일이야.

나는 그런 Y를 두고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스워 결국 고개를 흔들며 씁쓸한 미소를 흘린다.

하지만 미소는 의외로 짧게 끝이 났다. 비록 Y와 헤어져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 J라고는 하지만, 매 달 모이는 여고 동창 모임에서 얼굴을 마주해야 된다는 사실을 상기했던 것이다. 또한,  젊음이란 미명 아래 자유 분방하게 만났던 숱한 얼굴들이 반공에 긴 포물선을 그리며 교차하고 있어 바짝 긴장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내 육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을 남긴 채 바람처럼 사라져 간 얼굴들이다. 돌이켜볼 때, 결코 자신에게조차 감추고 싶은 미망의 늪에서 만났던 남자들이다. 그들 속에는 J로부터 소개받았던 첫경험의 남자 친구도 보인다. 재수생으로 방황하던 시절, 한잔의 생맥주에 대한 대가로 손쉽게 내 청바지의 지퍼를 내릴 수 있었던 중년의 남자도 끼어 있다.

나는 얼굴을 붉힌다. 오늘 같은 날 갑자기 요요한 그들의 얼굴을 왜, 떠올려야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Y가 J와 그렇고 그런 사이란 이유가 화가 났고, 언제까지나 간직해야 될 순결을 진실 없는 남자 친구에게 보아란듯이 헌납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 낼 수 있어 숨결이 거칠어진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든다. 허공을 맴도는 얼굴들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신과 육체의 근본적 가치관, 또는 고통스런 죄책감이나 말초적 감동도 없이 단순히 의미 없는 시간을 깨트리기 위해 모순 속을 헤맸던 자책감은 차마 지울 수 없다.

나는 거칠게 키를 비틀어 차에 시동을 건다. 그리곤 황급히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자랑스럽지 못한 과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이.


마을 입구 저수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나는 급히 차를 세운다. 제방 아래엔 119구조대 차량이 세워져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다. 모시관 언덕길에서 추월해 갔던 차량인 듯 싶었다.

무슨 일일까? 나는 제방 위를 흘끔 쳐다본다. 한 무리의 마을 사람들 모여 있다.

별빛만이 녹아 내리는 허공이다. 그들이 휘두르는 랜턴 불빛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치 축제를 위해 레이저 쇼를 벌이고 있는 듯 길다랗게 뿌려지고 있다. 하지만 나의 푼수 없는 생각을 비웃듯 그들은 긴박한 목소리로 웅성거리고 있다.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불안감에 사로잡혀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제방 위를 향해 급히 올라간다.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흐르는 긴장감에 온몸이 파들거린다. 하지만 발동한 호기심에 뛰다시피 였다.

지난겨울 이곳으로 발령 받아 내려온 이후 처음으로 올라 보는 제방이다. 예민한 감성을 자극할 아름다움이 가득할 것만 같아 한 번쯤 Y와 함께 올라오리라 했던 곳이다. 그러나 막상 올라 와 보니 그렇지가 못하다. 긴박한 분위기 때문이리라. 그런 탓에 온몸은 어깨 근육으로부터 연속적으로 수축되 들어왔고,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통증에 뒤덮인다.

나는 모여 있는 사람들 어께 너머의 상황을 살피느라 발돋음을 한다. 잠수복 차림의 구조 대원들이 검은 물살을 헤치고 바삐 자맥질하는 모습이 눈에 드러온다. 누군가 물에 빠졌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이미 오르면서 짐작했던 바 였다.

나는 앞에 있는 아낙이 쌍둥이 엄마라는 것을 알았고, 어수선한 상황을 묻기 위해 어깨를 잡아끌었다.

“아주머니, 도대체 무슨 일이죠?”

초조함을 견디지 못한 채 발을 구르고 있던 그녀였다. 갑작스런 내 손길에 깜짝 놀라며 뒤돌아본다.

“소장님.”

쌍둥이 엄마는 평소 수다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어지간히 상기된 표정이다. 그녀는 대답 대신 내 손목을 덥석 잡는다. 조여 오는 가슴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는 몹시 떨고 있었다. 그 진동은 곧 잡힌 손목을 통해 전해졌고, 저수지에 은빛으로 일고 있는 파문처럼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여느 때 나는 그녀의 입술에 이는 미소를 퍽 곱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찾을 길 없다. 미소가 사라진 그 자리가 경련으로 실룩거려지는가 싶더니 금세 울음을 터트릴 듯한 격한 목소리였다.

“하이고 워쩔까나, 소장님 일 났유. 그것도 뻑쩍지근 허니 된통 큰일 말유.”

“아주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큰일이라뇨?”

“할머니가 물루 뛰어 들었시유.”

시설스럽기 짝없어 언제나 장난스럽게 느껴지던 그녀의 말투였다. 하지만 사뭇 비통한 어조였다. 나는 말라 오는 목젖을 적시느라 침을 삼킨다.

“할머니라뇨? 누가요?”

“그야 누군 누구것유? 때찔레나무 안집 욕쟁이 할머니지유.”

“예엣···?! 한산댁 할머니가요?”

“그렇구먼 유.”

“얼마나 됐죠?”

“벌써 한 시간이 다 되가능구먼유.”

“한 시간? 어머, 이를 어째···?!”

나는 짐짓 놀라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비로소 깨닫는다. 하지만 어금니를 깨문다. 한낮에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던 한산댁 할머니의 얼굴이 짜증스럽게 떠올라서 였다. 또한, ‘망령든 노인네 기어이 쓸데없는 일을 저질렀군.’ 이란, 전혀 급박한 상황에 걸맞지 않는 모순된 언어가 스멀스멀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올 듯 맴돌고 있어서였다.

나는 냉혈동물의 체온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왜, 물에 뛰어든 거죠? 그 나이에 얼마나 더 산다고 바보같이···?”

“다 그 잘난 잡것 때문여유.”

순간, 멱살을 잡혔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잡것···?”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되묻는다. 그러자 곁에 있던 이장댁이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나선다.

“집으루 찾아온 그 잘난 국회의원 나리 보좌관인가 뭔가 하는 고 싹둥백이 �는 늠 말유! 그늠이 그렇잖아두 오그라질 대로 오그라진 욕쟁이 할머니 가슴팍에 못을 친 거유. 고것두 아주 빼지 못할 대못을 말유.”

“그럼, 낮에 찾아왔던 젊은 남자가 국회의원 보좌관이었어요?”

“맞아유. 그늠이 웃돈을 줄트니께 선물헐 모시를 팔으라고 혔다능구먼유. 욕쟁이 할머니가 째고, 삼아서, 짜는 세모시가 한산 최고품이란 건 워떻게 알았는지 원···”

“선물할 세모시···?! 최고품···?”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으므로 이장댁과 쌍둥이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전 이해가 안돼네요? 그렇다고 왜, 멱살을 잡아야 했죠? 제가 생각하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못되는 것 같은데? 더구나 집에까지 찾아와 웃돈을 주고 모시를 사려던 걸 보면, 그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어 기분이 좋았을 일일 텐데···?”

“그건 소장님이 몰러서 허는 소리여유. 휴···!”

이장댁은 일고 있는 내 궁금증을 더욱 자극이라도 하려는 듯 긴 한숨 뒤에도 잠시 동안 침묵이다. 그리곤 시집와 시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토를 달더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사실들을 간략하게 꺼내 놓기 시작한다.

한산댁 할머니는 열 여섯 꽃다운 나이에 일제에 의해 남양 군도로 끌려갔었던, 속칭 섹스 특공대라 불렸던 위안부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혼례를 보름 앞두고 끌려가 매일 같이 많게는 일흔에서 여든, 적게는 서른에서 마흔 명에 이르는 색욕에 굶주린 금수들을 알몸으로 처절하게 사투를 벌였다는 가슴 저미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장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사실들 앞에 초연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곤 매주 수요일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진료소 앞에서 첫차를 탔던 그녀의 외출이, 서울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시위에 참석키 위한 것이란 사실을 알았을 땐 감히 숨소리조차 함부로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섯 해를 보내고서니 해방되 집으루 왔을 땐, 샅이 죄 물러 터져 피고름이 찌걱찌걱 흘러나와 송장이나 진배�었데유.”

이장댁의 눈이 반짝인다. 쌍둥이 엄마의 어깨가 들썩인다. 울고 있었다. 하지만 이장댁의 입에선 가슴아픈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근방의 용허다는 의원들 죄 뫼셔왔지만 모두 포기헌 터라, 아궁이 불도 안 닿는 차디찬 골방에다 방치혀 놨두고서니 이제나저제나 숨만 떨어지기만 기다렸었다능구먼유. 헌디, 암만 파리 목숨만도 못헌 게 사람 목숨이라곤 허지만, 그 워떤 것보다도 모진 게 또한 사람 목숨이라 혔구먼유. 어찌어찌 허다 보니께 하늘이 도운 겐지 꾸역꾸역 생기를 되찾능가 싶더니만 살아난 거여유. 기적이 일어난 거유. 그리고 징용으로 끌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여태 돌아오잖는 사내, 사진 한 장 �어 얼굴조차 몰르는 약혼잘 눈 빠지게 기다리믄서 살았던 거구유.”

“아······!!”

나의 입술 사이에선 기어이 긴 신음 소리가 새어나온다. 그것은 분명 한산댁 할머니의 질곡한 삶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뿐만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그 소리는 자신이 젊음을 빙자하고, 자유로운 성을 표방하며 보낸 방종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내는 소리였다. 바로 자성의 소리가 무의식중에 비어져나오고 있었다.

“할머닌 그 때 얻은 속병을 삭히느라구, 허구헌 날 앞니를 세워 모시 가닥을 물어뜯었던 거구유. 평생을 두고 삭히지 못헐 그 한을 달래려구, 틀니를 숱허게 갈아 끼우믄서 모시를 째고 삼았던 거여유. 그렇게 하잖았으믄 벌써 대들보에 목이라도 맸을 거구먼유.”

나는 말을 잃고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 한산댁 할머니가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괜한 트집거리를 찾고 있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짜증스럽기 그지없었던 그녀의 속된 언어들은, 가슴속에 암종의 뿌리처럼 단단하게 자리한 적병을 파적키 위해 뱉어 내는 외침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끄덕이던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리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왜, 모시를 사기 위해 집까지 찾아온 남자를 그렇게 박대한 거죠?”

“그 몹쓸 것이 글쎄 말유······”

이장댁이 갑자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가슴이 무너진다는 듯 쓸어 내린다. 그녀가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뒤편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던 쌍둥이 엄마가 답답했던지 대신 입을 연다.

“내 참 기가 맥혀. 지난번에 자매결연 맺은 일본 시(市)를 국회의원 나리가 방문하게 됐는 디, 거기 시장한티 할머니 모시를 가져다 선물을 할거라고 혔다나유.”

“그, 그럼···!”

“예. 맞아유. 그래서 한산댁 할머니가 그랬던 거유. 무지렁이 같은 백제의 아낙네들이 전쟁터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낭군을 기다리믄서, 그 한을 달래려 짓씹어 찢어 삼던 한산 모시란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여유. 그러니 아무나 함부로 입능 게 아니라고 절규할 수밖에 �었던 거구유. 거기다 명성황후가 즐겨 입던 세모시를 왜늠들한티 입힐 순 �다믄서, 끓는 분에 그렇게 죽자살자 멱살잽이를 혔던 거구먼유.”

“저, 저런···!”

“근디, 고 잡것이 한산댁 할머니 비틀린 심사도 모르고, 고까짓 상판때기 쬐매 긁어 놨다고 자발�이 쪼르르 파출소루 달려가 폭력 협의루 고소를 혔던 거여유. 그려서 순경이 사건 처리하러 나왔는디, 한산댁 할머닌 옛날 자신의 머리첼 잡아 질질 끌고 갔던 왜늠 순사로 착각헌 거구유. 그래 저수지 둑성이로 도망가 마른 풀 속에 숨어 있다가··· 두려움을 겨디지 못허구 결국 물 속으루 뛰어든 거유. 난 죽어도 다시는 그곳엔 안 끌려간다고 고래고래 울부짖으믄서 말유.”

“아···!!”

나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린다.

그때였다. 저수지 가에서 서성거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자, 자, 조심해. 천천히···”

나는 반사적으로 그 소리를 좆아 고개를 돌린다. 한산댁 할머니의 시신이 인양되고 있다. 가슴속에 그득하게 쌓인 한 만큼이나 무겁게 물 속으로 가라앉았던 한산댁 할머니였다. 그러나 구조대원들에 의해 새털처럼 가볍게 물 밖으로 끌어올려지고 있다. 결국 죽음에 입을 맞춤으로 평생을 두고 앓았을 속병이 깨끗이 파적됐기 때문이리라.

나는 치받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황급히 뒤돌아 섰다. 차마 감지 못한 한산댁 할머니의 칼날 같은 눈초리가, 내 심장을 찔러 오는 듯 해서였다.

나는 도망치듯 제방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구르다시피 였다.

순간 호주머니 속에서 강렬한 진동이 울려온다. 감전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휴대 전화기로부터 발산되는 진동이었다.

나는 발신자 추적 장치에 의해 찍힌 번호를 확인한다. 가지런히 배열된 숫자들은, 이미 내 머리 속에 입력되 있는 눈에 익은 숫자들이다. Y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가움이 심장을 두드려 올 전화였다. 내게 청혼에 대한 확답을 묻기 위해 전화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받지 않는다. 아니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달콤한 Y의 목소리 대신 한산댁 할머니의 절규가 흘러 나와 귓불을 물어뜯고 있는 환청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정신없이 제방 아래로 내려 왔을 때, 나는 가슴을 움켜쥔 채 건지산 쪽을 쓱 훑어본다. 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온다. 몹시 허허롭게 양볼을 핥는다. 나는 현기증에 휘청였다. 그 것은 심장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별빛에 한산댁 할머니의 파적소리가 소용돌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황급히 점퍼의 지퍼를 열곤 티셔츠를 걷어올린다. 그리곤 짓밟아 오는 구속감을 떨치기 위해 브레지어를 벗어 허공에 던진다. 하지만 더 이상의 해방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