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비망록 속으로

햇살마루 토마토가 영글어 간다

소설가 구경욱 2008. 8. 29. 20:29

햇살마루 토마토가 영글어 간다

 

 

폭설피해 딛고 다시서는 구경욱·안혜란 부부
농민소설가 그의 분노를 극복한 몸부림
2005년 03월 18일 (금) 00:00:00 공금란 기자 senongmin@hanmail.com

   
“분노는 자신을 망치는 칼이며 편경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다”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선뜩하게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올 3월4일에 남부지방에 폭설이 내려 많은 시설재배 농가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작년에도 3월4일 그날에 충청지방을 강타한 폭설로 비닐하우스며 축사들과 농심들이 내려앉았었다. 그 중에 구경욱(44), 안혜란(40) 부부의 삶의 터전도 끼어 있었다.

겨우내 가꾼 방울토마토에 붉은 빛이 돌기 시작해 갓 출하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폭설 직후 기자가 찾았던 이들 부부의 터전은 ‘처참’ ‘절망’ 이런 단어들만 생각나게 했다.

그 후, 1년이 지난 어느 아침, 폐허가 된 곳에서 나고 자란 문산면 은곡리 구경욱 부부의 새 비닐하우스 농장을 찾았다. 익살스럽게 ‘햇살마루 농장’이라 그려진 온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코끝에 풋풋하게 와 닿는 토마토향기.

   
이제 막 꽃자리에 열매가 영글어 가고 있었지만 토마토란 게 원래 열매보다 잎과 줄기의 향기가 더 싸한 식물이다. 토마토 농장은 반듯하게 정리된 고랑도 모자라 줄기를 끈으로 매달아 더욱 정돈된 이미지를 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구씨네 씨족마을 은곡리에 상이 났는지 마을입구에 상여가 와 있다. 경욱 씨 부부 역시 일손을 도우러 갔다가 어떤 이가 농장을 찾은 것을 보고 부리나케 달려왔단다. 

분노는 자신을 망치는 칼이라며 절망 속에서 헤어나려 몸부림 친 흔적은 여러 곳에 있었다. 이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기사 쓰려거든 기초단체도 농업재해지원조례 같은 것을 꼭 만들어 달라는 내용을 쓰시오” 농민소설가인 구경욱 씨의 주문이다. 무슨 재해가 있을 때마다 ‘농자금 얼마를 풀었네’ 하지만 알고 보면 빚 위에 빚이요. 기껏해야 종토세 면제가 아니던가.

혜란 씨는 결심 같은 말을 되뇐다. “일어서야지, 어려울 때 힘을 보태준 사람들한테 토마토 한 상자씩이라도 나눠주려면” 이들 부부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말이다.

이런 분노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구경욱 ·안혜란 부부는 기꺼이 다시 일어서 쓰러진 토마토 나무들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 이런 글을 적었다.

“아무리 지독한 눈보라 속이라 할지라도
 가끔은 문득 뒤 돌아 보자
 내가 세상에 남긴 흔적들이
 혹 짐승의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는지
입술 깨물며 반성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