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베케트 (Samuel Barclay Beckett)
사망 - 1989년 12월 22일
출신지 - 아일랜드
학력 - 캠브리지트리니티대학
경력 - 파리 고등사범학교 영어교사
수상 -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
대표작 - 전정제, 첫사랑, 몰로이,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단편]추방당한 자
현관 앞의 돌 층계는 높지 않았다. 나는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 몇 번이고 이 층계를 세어보았는 데도 지금은 그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보도를 디딘 다리를 하나로 세고 첫째 층계에 걸친 다음 다리를 둘로 세어야 하는가, 아니면 보도는 이 숫자에 넣어선 안되는가 전혀 갈피를 못잡았던 것이다. 층계 위에 다 올라간 다음에도 나는 같은 모순에 부딪치곤 했다. 반대의 경우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별로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래서 나는 어느 것이 가장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완전히 다른 세 개의 숫자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숫자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할 경우 그것은 이들 세 개의 숫자 중의 어느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다. 설사 기억 속에서, 분명히 그 안에 있긴 하겠지만, 이들 세 개의 숫자중 어느 하나가 생각난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그것으로 그칠 뿐 여기서 나머지 두 개의 숫자를 연역해 내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비록 두 개까지 생각해낸다 하더라도 세 번째 것은 알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기억 속에서 세 개를 모두 생각해 내기 전에는 이 셋을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추억이란 참 성가신 것들이다. 그러니 어떤 종류의 일들은, 마음에 걸리는 것들은 생각해서는 안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하지 않고 있으면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재발견될 우려가 잇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흙이 뛰어넘을 수 없으리만치 이들을 온통 뒤덮어 버리기까지 매일 같이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한참 동안, 충분히 이것들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어쨌든 층계의 수와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마음에 유의해야 했던 것은 그 층계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아이로 치더라도 그것은 별로 높지 않았다. 매일처럼 오르내리면서 보거나, 층계 위에서 공기놀이며 지금은 이름조차 잊어버린 여러 놀이를 한 덕택에 잘 알고 있던 다른 현관 앞의 층계에 비해서. 하물며 성숙한 인간, 아니 너무나도 성숙해 버린 인간에게 있어서랴.
이런 까닭으로 낙상은 별로 심한 것은 아니었다. 떨어지면서도 나는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추락하는 사이에도 나에게 안도감을 가져다 주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지팡이를 든 주인에게 거리까지 쫓기어 통행인들의 눈 앞에서 지팡이로 얻어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에게 그러고 싶은 생각만 있었다면 그들은 문을 닫지 않고 그대로 열어 둔 채 현관에 모인 사람이 내가 봉변당하는 것을 즐기고 거기서 하나의 교훈을 끌어내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배수구 속에서 몸을 일으키기 전에 이런 추론을 제법 해낼 만큼의 여유를 가졌었다.
이런 조건 아래선 바로 일어나야 할 아무런 까닭도 없었다. 참 기묘한 기억이긴 하지만, 나는 보도에 팔꿈치를 짚고 손바닥으로 귀를 받치고서 나 자신의 입장을 물론 뻔한 입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 아까보다는 작은 소리였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소리에 나는 몽상에서 깨어났다. 이 몽상 속에선 이미 아가위나무며 들장미가 만발하는 아름다운 풍경, 꿈과 고운 풍경이 온통 구성되었던 것인데, 나는 두 손을 보도 위에 평평하게 놓고 무릎을 뻗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내 모자가 빙빙 돌면서 하늘을 날아 이쪽으로 떨어진 것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나꿔채어 머리에 썼다. 그들은 그들의 신의 뜻에 따라 아주 예의바르게 군 셈이다. 그들은 그러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면 이 모자를 자기들 곁에 잡아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었다. 그래서 돌려준 것이다. 그러나 저주는 중단되고 있었다.
그 모자를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 또 뭣하러? 내 머리가 결정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최대한의 칫수에 달했을 대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아, 이리 와, 이녀석아, 네 모자를 사러가자. 그는 마치 내 모자가 오래 전부터 정해진 장소에 미리 존재해 있었던 것처럼 곧장 모자가게로 갔다. 나에겐 발언권이 없었다. 어느 모자가게로 가느냐에 대해서도. 아버지는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 의도는 없었으나 내가 젊고 아름다우며 좌우간 신선한 데 비해 자기는 나이가 들고 더럭더럭 살이 쪄 흉한 보라빛을 띠고 있음으로 해서 나를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고 종종 자문했던 것이다. 이날 이래로 아버지는 모자 없이 아름다운 밤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외출하는 것을 허용해 주지 않았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길에서 만나게 되는 같은 나이또래의 젊은이들은 나를 보고 비웃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러 주는 것이었다. 모자 따윈 하찮은 것이다. 그들은 다시 없이 기발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인양 이 모자를 가지고 우스갯거리로 만들려고 하는데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같은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세련됨이 없는가 언제나 통감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저 자기만을 갈구해서 영혼을 발버둥치게 하고 있는 나는.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손쉬운 것들, 꼽추가 자기 주먹코에 대해 농담을 하는 종류의 것이리라. 아버지가 죽었을 때 마음만 있었다면 이 모자를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때는 이미 하등의 저항도 느끼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묘사해야 좋을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다음 기회에.
나는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자기가 몇 살쯤 되었던가 이젠 까마득하게 잊어먹었다. 방금 일어난 일은 나의생애에서 어떤 시대를 그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보다는 그것은 너무나도 많은 다른 요람이나 다른 묘의 비석과 비슷했으므로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허나 나는 사나이로서의 한창 때였다. 분명 세상에서 자기 능력의 완전한 소유라고 불리우는 그런 나이였다고 말해도 과장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물론 그렇다. 이것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선 틀림없이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거리를 가로질러 방금 내쫓긴 집을 뒤돌아봤다. 지금까지 외출할 때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던 이 내가. 그 집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창가에는 제라늄 꽃이 놓여있었다. 나는 요 몇 년동안 제라늄위에 몸을 굽혔던 것이다. 제라늄은 심술궂었다. 허나 나는 마침내 이들을 온통 길들이고 말았던 것이다. 작은 돌 층계 위에 있는 그 집의 문, 나는 그것을 언제나 마음으로부터 감탄하고 있었다. 어떻게 묘사해야 좋을까? 그것은 묵직했으며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구멍이 뚫린 초록색과 백색의 줄무늬의 커버같은 것이 씌어져 그 구멍에서 우레같은 소리를 내는 무쇠 손잡이와, (먼지며 벌레, 참새를 막는 용수철달린 동판이 달린) 우편함에 대응하는 갈라진 틈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대충 이런 상태다. 그 집은 같은 갈색의 두 개의 잇대어 세운 기둥에 의해 측면이 보호되고 오른쪽 기둥에 방울이 달려있었다. 커텐은 다시 없이 확실한 취미를 엿보이게 하고 있었다. 굴뚝하나, 부엌의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조차 이웃집들의 연기보다도 훨씬 우수가 깃들어 줄곧 파랗게 퍼져 없어지는듯 보였다. 나는 맨 위층인 4층에 있는 자기방 창문을, 마치 모욕을 주는 듯 활짝 열려진 창문을 바라보았다. 한창 대소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몇 시간만 지나면 창문은 닫히고 커텐은 가려진 채 포르말린 분무가 행해지리라. 나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기꺼이 이 집에서 죽으려 했었는데도. 일종의 환시 속에서 나는 문이 열려 내 발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실컷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커텐 뒤에서 엿보는 따위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러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러나 나는 그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벌집의 작은 구멍에 돌아가서 각기 맡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긴 하나 나는 그들에게 아무짓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도시를 잘 알지 못했다. 자기가 태어나고 이생의 첫걸음을 내디딘 곳, 그로부터 내내 나의 발자취를 형편없이 서툴게 박엔 남기지 못했던 모든 종적이 남은 곳을. 나는 좀처럼 외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 창가에 서서 커텐을 걷고서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방 깊숙이 있는 침대 쪽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이들 모든 공기의 밑바닥에 잠기면 괜히 불안스러웠고 무수한 혼란된 광경의 입구에 서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런 심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아직 행동할 수가 있었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엔. 그러나 나는 먼저 하늘로 눈을 돌렸다. 그 유명한 구원이 찾아오는 하늘, 길이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아 사막 속처럼 자유롭게 방황할 수있는 곳, 어느 방향을 바라봐도 눈길닿는 곳 그 무엇도 가로막지 못하는 하늘로. 매사가 마음대로 잘 안되는 경우 나는 이처럼 하늘에 눈을 돌린다. 그것은 지루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잡답해서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는 도시며 전원, 대지로부터, 비록 구름에 덮이거나 남빛을 하고 있거나, 비에 싸여 있거나 간에 거기에 가로 놓여져 있는 하늘을 향해서. 젊었을 때는 나도 들판의 한가운데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뤼느부르의 황야로 갔었다. 들판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황야에 간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다른 황야가 있었는데도 어떤 목소리가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뤼느부르 황야랍니다. 나는 별로 나 자신에 대해서 버릇없는 말투는 쓰지 않았었다. 뤼느(달)라는 요소가 어떤 종류의 역할을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뤼느부르의 황야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전혀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실망하며 그리고 동시에 안도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렇지, 왠지는 모르지만 나는 동시에 혹은 바로 직후에 어길 수 없는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지 않고서는 결코 실망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엔 그런 일은 종종있는 법이었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참 꼴불견이었다. 하반신의 경직, 마치 자연이 양 무릎의 움직임을 거부한 것 같다. 걸음걸이의 축이 되는 양쪽발의 비정상적인 간격. 이에 반해서 몸뚱이는 그 결점을 뜯어메우기 위한 조작의 결과인 것처럼, 넝마를 되는대로 주워 넣을 푸대같이 연하게, 골반의 예기하기 어려운 급격한 불규칙 동작에 따라 동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이런 결정을 수정해서, 가슴을 똑바로 펴고, 무릎을 굽히며 두 다리를 번갈아 앞을 내밀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대여섯 번을 시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번히 마찬가지 결과로 끝나는 것이었다. 그 말은 목의 평형을 잃고 넘어지고 만다는 뜻이다. 마치 호흡을 할 때처럼 자기가 무엇을 하는가 생각하지 않고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걷는 경우엔, 나는 앞서 말한것처럼 걸어버리고 말았으며, 또 자기 자신에 주의하기 시작하면 두 서너 걸음은 꽤 멋지게 걷지만 이내 넘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나는 되는대로 내 버려두기로 결심했다. 이런 자세는 나의 생각으로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내가 지금껏 완전히 해방되지 않는 어떤 성향 때문이기도 하며, 내가 감수성의 강한 나이 때, 즉 성격의 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월이 이 성향에 이바지하였음은 물론이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의자뒤에서 최초로 넘어진 것과 고전학급 3년생 때와의 사이에 한없이 이어지는 어떤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나에게는, 반 바지 속에서 오줌을 싸거나 똥을 재리면서도, 이런일은 오전중, 10시나 10시 반경에 제법 규칙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그래도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실로 한탄스러운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옷을 갈아입거나, 틀림없이 기꺼이 거들어 주었을 엄마에게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것 따위는 왠지는 모르지만 생각하기조차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자리에 들때까지 작은 허벅다리 사이며, 궁둥이에 따끔거리거나 척척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배설의 결과를 말라붙게 한 채 뛰어다녔던 것이다. 여기서 생긴것이 이 두 다리의 조심스럽고 딱딱하며 크게 벌린 동작과 상반신의 절망적인 동요로서, 이것은 아마도 적당히 얼버무려서 상대방에게 나는 아무 근심없이 쾌활하며 원기 왕성하다고 믿게하여, 유전적인 류유마티스 때문으로 돌려버린 하반신의 경직에 관한, 자신의 설명을 진자처럼 그럴싸하게 보이려 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나의 청춘의 정열은 그것을 가짐에 따라 점점 닳아져 버려 나의 연령보다도 좀 빨리 우울해지고 의심많아져 조그마한 구석이나 수평의 자세를 열렬히 사랑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젊었을 때의 가련한 해결법, 그것들은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금도 삼가할 필요따위는 없는 것이다 태연스럽게 되지도 않는 이유를 늘어놓자 안개는 완강히 저항하겠지만.
맑은 날씨였다. 나는 되도록 보도 가까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행길을 전진해 갔다. 막상 행동을 일으키는 판국이 되면 아무리 넓은 보도라도 나에게는 결코 지나치게 넓을 수는 없다. 그러면서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근심스러워 못견디는 것이었다. 경관이 나를 불러세우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차는 차도를, 보행자는 보도를. 마치 구약성서의 말귀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발발기는 것처럼 하면서 보도로 올라가 이루다 표현할 수 없는 잡도 속을 꼭 20보 걸어갔는데, 기필코 아이 하나를 짓밟을 듯하여 땅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잘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 아이는 방울이 여러 개 달린 작은 마루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 틀림없이 자 기를 망아지거나 페르슈말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안된다는 법이야 없겠지. 할 수만 있으면 기꺼이 그 아이를 짓밟았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아주 싫어했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그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보복을 두려워 한 것이다. 모두가 동포인 것이다. 이런 생각이 희망을 막아 버리는 것이다. 통행하는 거리에는 이런 더러운 작은 존재들의 전용도로를 설치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뚜껑덮힌 4륜마차며 굴림대의 림이며 외발 스케이트며 스쿠우터며 장난감이여 이형, 엄마나 유모, 공 따위, 뭔지는 몰라도 그들의 더러운 하찮은 행복을 위한 것들. 이렇게 해서 나는 넘어졌고 그 바람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 조각이며 레이스에 두루 싸인 노부인, 2백파운드나 무게가 나갈것이 틀림없는 노부인도 같이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비명으로 순식간에 산더미같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녀의 비명으로 순식간에 산더미같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뼈가 부러졌으면 했다. 노부인들은 걸핏하면 허벅지뼈를 부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 정도까지는. 그 혼란을 이용해서 나는 뜻모를 저주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살살 빠져 나왔다. 마치 내가 희생자나 되는 것처럼, 그리고 사실이 그러했다. 그러나 증명하려 해도 할 수는 없었으리라. 어린아이나 갓난 아기들은 결코 린치를 받지 않는다. 어떤 일을 저질러도 미리부터 결백하기 때문이다 나라도 기꺼이 그들에게 린치를 가했으리라. 내 손으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나는 깡패는 아니다.그런 짓을 않고 다른 녀석들을 부추겨서 일을 저지른 다음 그것이 끝나면 한 잔 사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뒷발치기와 절뚝거리는 사라반드춤을 재개하자마자 나는 두 번째의 경관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이 경관은 매사가 처음 경관과 꾹 같아서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보도는 만인의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마치 내가 그 족속에 들었지 않음이 명백한 것처럼. 그렇다면, 하고 나는 조금도 헤레크라테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나더러 개천속에나 떨어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어디라도 너 좋은데 떨어지렴, 하고 그는 말했다. 좌우간 같은 장소를 점령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의 웃입술을 노렸다. 그것은 적어도 3센티의 두께나 있었다. 나는 그 위에 숨을 내뱉었다. 분명 나는 꽤 자연스럽게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건의 잔인한 압박에 견디다 못해 깊은 한숨을 내뱉는 사람처럼. 그러나 그는 손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시체해부며 시체발굴에 익숙했기 때문이리라.
여느 사람처럼 걸어다닐 수 없다면 하고 그는 말했다. 집에 처박혀 있는게 좋지않으냐.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자택을 마련해 준다고 해서 과히 불쾌한 마음은 아닐 것이었다. 마침 그 때 장례식의 행렬이 지나갔다.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모자가 일제히 벗겨짐과 동시에 몇 천씩 되는 손가락이 움직였다. 나 개인으로서는 만일 십자를 긋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빠졌다면 제대로 하고 싶어 못견뎠을 텐데. 코 밑둥, 배꼽, 왼쪽 젖꼭지, 오른쪽 젖꼭지도. 그런데 그들은 수선스럽게 적당히 손을 가볍게 대고서, 당신을 십자가에 걸고 만다. 전혀 몸차림도 바르게 고치지 않고 두 무릎을 턱 아래에 놓으면서. 두손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가장 열성적인 사람들은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서 중얼거렸다. 경관은 어떤가 하고 보니 눈을 지그시 감고 한쪽 손을 경관모자에 대고서 가만히 있었다. 장례행렬 속에서는 열심히 지껄여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틀림없이 죽은 남자나 여자의 생전의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 것일께다. 언젠가 영구차의 마구는 두 번다시 같은 것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듯하나 나에게는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말들은 마치 시장에 갈 때처럼 방뇨하기도 하고 똥을 싸기도 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그것은 빨리 지나가 버리고 만다. 최후의 나그네 길은 아무리 발리 걸어도 소용없다. 맨 끝의 근친자의 마차가 지나가면 휴식은 끝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되살아난다. 다시 조심하려무나, 이런 까닭으로 해서 나는 세 번째로 발을 멈췄다. 나 자신의 의지로, 그리고선 마차를 불러 세웠다. 방금 지나가는 것을 본 마차, 열심히 논의하는 사람들을 만재한 마차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검은 칠을 한 커다란 상자 모양의 마차로서 스프링 위에서 좌우로 흔들리며 창문은 작고 승객은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으며 사방 문이 닫힌 방과 같은 냄새를 풍겼다. 나는 모자가 천정에 닿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나는 앞쪽으로 몸을 굽혀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서 좌석으로 돌아와 등을 진행 방향 쪽으로 댔다. 마침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때 어떤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어마꾼의 목소리였다. 아마 그는 유리창 너머로 말을 걸다가 절망하고서 마차 문을 연 것일게다. 나에겐 상대방의 입 수염밖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죠?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어마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나는 벌써 꽤 멀리 와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기억속에서 어떤 거리나 어떤 기념비의 이름을 찾아내려고 생각해 봤다. 당신네 마차는 팔 것 아니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서 이렇게 덧붙였다. 말은 끼지 않고 말이야. 말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것보다도 마차는 어떻게 할 셈이니? 몸을 눕히기조차 가능할까? 식사는 누가 날라다 줄까? 동물원으로, 하고 나는 말했다. 너무 빨리 달리지 않도록 하라고. 그는 웃었다. 동물원으로 향하는데 서두른다는 암시가 그를 기쁘게 했음에 틀림없다. 마차를 없애 버린다는데 대한 전망에 대해 웃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만. 아니면 그저 나에게 이 나라는 인간, 마차속에 있는 나의 존재가 그의 성격을 일변시켜, 마침내 어마꾼은 얼굴을 천정 그늘에 가리고서 두 무릎을 유리창에 대고 있는 나를 보고서, 이것이 진짜 가지 마차인가 그것이 정말로 마차인가고 자문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는 당황해서 말을 보고 안심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가 어째서 웃는가를 알고있는 것일까? 어쨌든 그의 웃음은 짧았으며 나를 무죄로 만들어 준 듯했다. 그는 다시 문을 닫고서 어마대로 올라갔다. 잠시 후에 말이 몸을 움직였다.
물론 나는 그 당시 아직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임종시에 무조건 선물로 남겨준 얼마간의 금액, 나는 지금까지도 그 돈을 도난당한 것이 아닌가고 생각한다. 그 후로는 이미 한푼없는 빈털털이였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생활은 계속되었다. 게다가 내가 이해하는 한은 어느 정도까지. 물건을 산다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정의될 수있는 이런 상태의 커다란 불편은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문자그대로 빈털털이의 경우 가끔 자기가 처박혀 있는 집에 사람을 시켜 음식을 날라오게 하는 따위는 거의 없다. 따라서 불과불 외출해서 움직여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적어도 1주일에 하루는. 이런 조건 아래서는 별로 솜씨를 부릴 여지가 없다. 강제되는 것이다. 그 결과 자기에 관계되는 문제도 사람들이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간 지난 다음이었다. 어떤 경위였는지 지금은 잊어먹었다. 나는 신문을 읽지 않았으며 그 당시 아무와도 잡담을 했다는 기억도 없다. 아마 세 번인가 네 번 음식문제로 말을 한 것을 제외하고선. 좌우간 어떤 방법으로, 아마 풍문으로 귀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니디에 변호사 있는 곳에 뭣하러 출두했겠는가, 어떤 종류의 이름은 암만해도 잊어버리게 안된다는 것은 기묘한 이야기다. 게다가 그로서는 결코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리라. 그는 나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것은 꽤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었다. 나는 모자 안쪽에 붙어있는 금속제의 이니시얼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아무 증명으로도 되지는 않았으나 확률은 높여주었다. 서명하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원통형의 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소라도 때려죽일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셈을 하십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어떤 젊은 여자가, 아마도 매춘부이겠지만 이 회견에 열석했다. 다분히 입회인의 역할이었으리라. 나는 돈다발을 호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좋지 않구료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가 서명시키기 전에 셈을 끝내도록 요구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편이 한결 분명했었을 것이리다. 당신은 어디서 뵐 수 있읍니까? 하고 그는 물었다. 만일의 경우에는? 계단 아래서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잠시후 나는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 그에게 이 돈이 어디서 왔는가를 물어보고 나에게는 그것을 알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떤 여성의 이름을 말했으나 잊어먹고 말았다. 아마 그 여성은 아직도 산의를 입고 있을때 나를 무릎에 안고 나는 그녀에게 사랑의 말을 속삭였으리라. 때로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산의를 입었을 때의 이야기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이미 실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말에 관해서는. 이런 까닭으로 해서 그 돈덕택에 나에겐 아직도 약간의 돈이 있었던 것이다. 극히 적은 것이지만. 그것은 장래의 생활에 의해 분할되어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하긴 나의 이 예측이 염세주의에 의해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고서지만. 나는 모자곁의 칸막이, 나의 계산이 옳다면 어마꾼의 등 그 자체를 쾅쾅 쳤다. 쿳션에서 먼지가 보얗게났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마차가 정차할 때까지 그 돌로 두드렸다. 대개의 마차가 서기전에 보이는 그런 속도의 감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마차는 갑자기 정지했다. 나는 기다렸다. 마차는 진동하고 있었다. 어마꾼은 높은 좌석 위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눈 육안으로 보듯이 말을 응시했다. 말은 불과 얼마 안되는 휴식에 의해서도 의기소침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양쪽 귀를 꼿꼿이 세우고 주의 깊은 태도였다. 나는 창문으로 바라봤다. 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또 한 번 정차할 때까지 칸막이를 두드렸다. 어마꾼이 욕지거리를 하면서 어마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그가 문을 열지 못하도록 창문 유리를 내렸다. 더 빨리, 더 빨리, 그의 얼굴은 새빨갛다 못해 보라빛으로 되었다. 분노, 혹은 주행중의 바람. 나는 오늘 온종일 그를 고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3시에 장례식이 있다고 대답했다. 아아, 사자들. 나는 이젠 동물원엘 가기 싫다고 전했다. 동물원엔 가지 말기로 하자고 나는 말했다. 어디를 가건 마찬가지다. 하긴 동물이 있으니까 너무 멀어선 곤란하지만 하고 그는 대답했다. 미개인들의 언어의 특수성에 관해서는 많이 이야기 들은 바가 있다. 나는 그에게 레스토랑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덧붙여 말했다. 당신도 같이 먹는거야. 그런 장소는 단골손님과 동행하는게 십상이다. 정확히 같은 길이의 두 발 짜리의 자를 측면에 늘어놓은 길다란 테이블이 있었다. 이 테이블 넘어로 그는 자기의 생활이며 처에 관한 것 동물에 대한 것 그리고 떠 이어서 생활이야기 특히 그의 성격으로 인한 궁색한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나에게 제아무리한 날씨 때에도 밖에 나와 있다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이해하느냐고 물었다. 지금도 주차하고 있는 마차속에서 온기를 취하면서 하루를 지내며 손님이 깨워 일으켜 주기를 기다리는 어마꾼들이 있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옛날이라면 그런 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엔 생활의 마지막에 지출분을 되찾고 싶으면 달리 방법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자신의 입장, 내가 잃은 것과 찾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줬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이해하기 위해 설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온갖 짓을 했다. 그는 내가 방을 잃었으므로 다른 방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했으나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구가 달린 방을 구한다고 멋대로 생각하고서 이젠 그 무엇으로도 그의 머리에서 이것을 씻어 낼 수가 없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어제것, 아니 어쩌면 그저께 치의 석간신문을 꺼내어 3행 광고를 훑어보기 시작하였고 장차 경마에 이길 말 위에서 떨던 것과 작은 연필로 그 중 다섯 개나 여섯 개 아래에 선을 그었다. 아마도 그는 만일 자기가 나의 입장이라면 언더라인을 쳤음에 틀림없는 것, 혹은 동물을 위해 같은 지구에 대응하는 것에 언더라인을 쳤으리라. 특히 가구에 관해서는 방에는 침대밖엔 인정치 않는다는 것, 내가 들여놓기로 동의할 때까지는 모든 가구는 물론 나이로 테이블까지도 제거해야 한다고 내가 그에게 말해줌으로써 분명 그의 마음을 혼란시키는 데 그치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3시경 우리들은 말을 일으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그가 언더라인을 쳐 준 주소를 순서대로라고 생각하면서, 차례차례로 방문했다. 짧은 겨울의 하루는 종말에 가까와 오고 있었다. 때로 나는 이들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나날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리고 유독 그 중에서도 그 매력적인 순간, 밤의 말살이 거기서부터 태어나는 그 순간이. 그가 언더라인을 쳤다기보다는 차라리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흔히 하듯이 십자 표시를 친 몇군데 주소를, 그는 그것들이 못쓰겠다고 판명됨에 따라 사선으로 지워갔다. 후에 그는 이 신문을 나에게 내밀면서 이미 알아봤으나 쓸모가 없었던 곳을 두 번 다시 찾지 않아도 되도록 내가 잘 보존해 두라고 권했다. 닫혀진 창문유리며 마차의 끽끽거리는 소리, 왕래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높은 어마대 위에서 혼자 노래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장례식보다도 나를 택했던 것이다. 이것은 영구히 계속될 듯한 일이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젊은 영웅이 잠든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이 문귀뿐이다. 정차할 때마다, 그는 어마대 위에서 내려서 내가 내리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나는 그가 지시한 집의 방울을 울리고 때로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 지금껏 잘 기억하고 있는 데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난후 자기 주위에 또다시 집안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몹시나 괴상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보도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또 마차에 타는 4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어마꾼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또 어마대 위로 기어올라가고 그리고 차는 다시 출발했다. 이윽고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차를 세웠다. 나는 졸음을 뿌리치고서 내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는 문을 열어 내 팔을 잡아주러 오지 않았다. 그는 호롱에 불을 붙였다. 나는 석유 호롱불을 좋아했다. 설사 양초 호롱불이라도 그리고 내가 안 최초의 빛인 하늘의 별을 제외하고서는. 나는 그에게 두 번째 호롱에 불을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처음것은 그가 자기 손으로 점화했기 때문이다. 그가 성냥갑을 넘겨주었으므로 나는 경첩이 달린 둥글고 작은 유리를 열고 점화하자 이내 닫았다. 바람이 심지에 닿지 않게 그리고 작은 집 속에서 조용히 밝고 따뜻하게 타듯이. 나에겐 다음과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이 호롱불의 빛으로는 우리들은 말의 희미한 형태 이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은 멀리에서 두 개의 노란 반점이 각기 독립해서 흔들리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는것이다. 마차가 거리를 둘 때 경우에 따라서는 빨갛게 되기도 하고 초록색으로 되기도 하는 하나의 눈이 보였다. 그림 유리 속처럼 말고 끝이 뾰족한 불록꼴의 마름모 무늬.
마지막 주소를 찾아본 다음에 어마꾼은 낯익은 호텔로 안내하겠다고 제의해 왔다. 거기라면 안정이 될 것이다. 착실한 어마꾼, 호텔-이것은 정말이리라. 그의 소개라면 아무 걱정도 할 필요도 없으리라. 설비는 갖춰있읍죠 하며 그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말했다. 분명 이 대화는 방금 들어갔다 나온 집 앞의 보도에서 주고 받은 것으로 안다. 나는 상기한다. 호롱불 불빛아래서 말의 움푹 조인 옆구리 그리고 문의 손잡이 위에는 어마꾼의 양털장갑을 낀 손. 나는 마치 지붕보다 머리길이만큼 키가 켰다. 나는 그에게 한 잔 하자고 제의했다. 말은 하루종일 마시지도 먹지도 않았다. 이 점을 어마꾼에게 지적하자 그의 말은 외양간에 돌아가서가 아니면 아무것도 먹이지 않는다는 대꾸였다. 만일 작업중에 아주 사소한 것, 가령 사과하나, 설탕 한 덩어리라도 먹이면 말은 배탈이 나서 복통을 일으켜 이 이상은 전진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치명적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그는 어떤 이유로 말에서 눈을 돌려 볼일을 볼 때마다 통행인들의 선의로 괴롬을 당하지 않도록 가죽끈을 써서 턱을 묶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 석잔 마시자 어마꾼은 제발 자기와 자기의 처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그의 집에서 자고 가도록 부탁했다. 과히 멀지는 않았다. 예의 그 유명한 후퇴의 은혜를 이용해서 잘 반성해 보니 그는 요컨데 그 날은 자기 집 주위를 빙빙돈 데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느 안뜰 깊숙이 있는 마구간 위에 살고 있었다. 아주 멋진 상황이었다..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엄청나게 엉덩이가 큰 처에게 나를 소개하자 그는 우리들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나와 단 둘이 되어서 그녀는 멋적은 듯했다. 그것은 잘 알수 있었다. 그녀의 기분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나는 그런 경우라도 태연했다. 그것을 그치게 하건 계속 그렇게 만들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럼 그치게 하자. 나는 마구간으로 내려가서 잘 테니까 하고 말했다. 어마꾼은 항의했다. 나는 버티었다. 그는 처의 주의를 내 머리 정수리에 생긴 부스럼 쪽으로 돌렸다. 나는 예의상 모자를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짜내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어마꾼은 무척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의사, 그의 변비를 제거해 준 의사의 이름을 대주었다. 꼭 마구간에서 나고 싶다면, 하고 처가 말했다. 마구간에서 재우면 되지 않아요. 어마꾼은 테이블 위의 호롱불을 손에 들고서 처를 깜깜한 어둠 속에 남겨둔 채 마구간으로 통하는 계단이라기보다는 사닥다리 앞에 서서 안내했다. 그는 한쪽 구석 토방 볏짚 위에 말을 덮어주는 덮개를 깔고 어둠 속에서 뭔가를 볼 필요가 생길 경우를 위해서 성냥갑 하나를 남겨주고 갔다. 그동안 말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다. 어둠 속에 누워있자 말이 물을 마실 때 내는 소리, 이것은 아주 특수한 것이다. 쥐들이 갑자기 닫는 소리, 그리고 머리 위에서 나를 멋대로 비평하고 있는 어마꾼과 처와의 은은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성냥갑을 손에 쥐고 있었다. 대형의 스웨덴 성냥이다.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 한 개피를 그어봤다. 짧은 불꽃에 의해서도 마차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마구간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마차를 찾아서 문을 열었다. 쥐가 튀어나왔으나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에 앉자 마차는 이젠 수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굴대가 땅바닥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편이 훨씬 좋았다. 덕택에 나는 두 다리를 머리보다도 높이 상대편 좌석 위에 올려놓고서 멋지게 몸을 눕힐 수가 있었다. 밤중에도 몇 번이고 말이 창문으로 들여다 보았으며 그 콧김을 느꼈다. 수레에서 풀어낸 말은 마차에 있는 나의 존재를 이상하게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덮개를 씌울 것을 잊어먹었기 때문에 나는 추웠다. 허나 그것을 찾으러 갈 만큼 춥지는 않았다. 마차의 창문에서 보니 점차 환하게 마구간 창이 보이게 됐다. 나는 마차에서 밖으로 나갔다.
마구간 속은 전처럼 어둡지 않고 구유통, 마초 시렁, 매달려 있는 마구, 나아가서는 물통이며 솔 따위가 희미하게 보였다. 문있는 데까지 갔으나 열리지가 않았다. 말은 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도대체 말들은 전혀 잠을 안자는 것일까? 어마꾼은 말을 붙들어 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가령 구유통 앞에. 이런 까닭으로 해서 나는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손쉽다는 것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두 손을 편편하게 안들 땅바닥에 짚었으나 허리는 창틀에 끼어서 아직껏 몸부림치고 있었다. 몸을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서 두 손으로 풀수풀을 움켜쥐고 잡아당겼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외투를 벗어 창문으로 던진 것 같은데 그것도 아울러 생각해야 하리라. 앞뜰로부터 나오자 나는 뭔가를 생각했다. 피로. 나는 성냥갑 속에 지폐 한 장을 집어넣고서 앞뜰로 되돌아와 방금 빠져나온 창가에 그 갑을 놓았다. 말은 창가에 있었다. 그러나 거리에 나와 잠시 걷다간 나는 다시 안뜰로 되돌아가 지폐를 꺼냈다. 성냥은 그냥 남겨두었다.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은 여전히 창가에 있었다. 이 말에도 이젠 진절머리가 났다. 밤이 부옇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되도록 빨리 햇볕에 쬐이고 싶다고 생각하고 무턱대고 해뜨는 동녘을 향해 갔다. 수평선이거나 사막의 지평선이었으면 좋았을걸. 아침에 바깥에 있을 때 나는 태양을 마중하러 간다. 그리고 저녁 때 밖에 있을 때는 태양의 뒤를 따라간다. 사자들이 있는 곳까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련만. 아마 다음 기회에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리라.
인간들이여, 이것들이 서로 잘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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