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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과원(果園)에서 - 시인 구재기

소설가 구경욱 2009. 1. 23. 00:05

 

 

♣겨울 과원(果園)에서♣


-시인 구재기-


겨울 과원에서

 
올곧게 자라나지 못하고

 
이리비틀 저리비틀어져

 
허리 굽은 과일나무들을 보았다


지난 가을, 그 달콤하고


붉은 단장의 과일이 달린 자리에


어쩌면 저리도


허리 굽은 고통이 져며 있는 것일까


긴 겨울의 바람이 지날 때마다


온몸을 으스스 떨던 할머니가


술에 젖은 아버지의 나이를 꾸짖을 때


겨울과원, 과일나무 한 그루는


허리 굽은 몸뚱이를 지탱하지 못한 채


내려앉은 새의 깃털에도


온몸을 할머니처럼 떨고 있었다


겨울내내 아내의 심한 입덧이


입술을 고슬리면서


과일나무를 닮아가고 있었다.

 

 

 

 

(수필) 부처님과 욕설

 

구재기

 

의사 수필가 K씨는 곧잘 나를 향하여 운전을 하면서 사람 참 많이 변했다고 말하곤 한다. 서슴없이 뛰쳐나오는 욕설이 나로 하여금 변했다는 말을 듣게 한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나의 입으로부터 자동적으로 흘러나오는 거친 욕설은 나 스스로도 막을 수 없는 나의 새로운 버릇이 되고 말았다. 그러하거니와 몇 번의 실수는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

그 날의 실수는 한창 시간에 쫓기고 있는 아침 출근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쫓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히 연락할 사항이 있어 친척집으로 향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으니, 얼마나 급하였겠는가?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무슨 놈의 신호등은 마냥 붉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지, 가는 곳곳마다에서 신경질만 복돋워 주었다. 겨우겨우 마지막 신호등만 지나면 이제는 제 속력을 찾을 수 있으련만 그 마지막에서 만난 것은 또 여전히 부릅뜨고 있는 붉은 두 눈알! 좌회전과 직진이 동시신호로 되어있어 우회전을 할 수 있도록 2차선을 비워둔 채 직진을 하고자 1차선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정지선 맨 앞을 차지하고는 초조하게 신호가 떨어지기를 대기하였다. 드디어 붉은 눈알이 사라지고 파란 불이 들어왔다. 앞으로 힘차게 달렸다. 그러나 아뿔싸! 이게 웬 일인가! 2차선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 한 대가 직진을 하고 있는 나에게로 바짝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뒤따르던 차들도 일순 멈추어 섰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오른쪽 차창을 내리고는 밖을 향하여 나만이 가진 욕설을 마음껏 퍼부었다.

그런데 욕설을 퍼부으면서 상대를 바라보니, 어디서 참 많이도 본 얼굴이 아닌가! 이미 나로부터 달아나 상대의 가슴에 찍히고 만 나의 자동화된(?) 욕설! 그것을 내던지고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면서 나는 나의 욕설을 아낌없이 받아준 그 사람이 누구일까를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차! 바로 그 사람! 언젠가 받은 직무연수의 바로 그 강사님!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의 등뒤에서는 식은땀이 절로 흘러내렸다. 영 흐린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를 어찌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이요, 날아가 버린 품안의 새 한 마리.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상대의 얼굴을 나의 뇌리에서 지워내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나 지워지기는커녕 점점 확연히 드러나는 얼굴. 나는 그 얼굴 앞에서 조용히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교통법규가 어떻고를 따지기 전에 거침없이 흘러가 버린 나의 욕설을 어떻게 거두어들일 수 있단 말인가!

잠시 후 감았던 두 눈을 뜨는 순간 절로 가는 길의 입구에 매달린 연등이 보였다.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간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했는데, 부처님의 말씀은 소롯이 살아올라 나를 꾸짖고 계셨다. --- 네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상대에게 주었을 때 아니 받으면 그 물건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바로 네 것이 되지 아니하느냐! 욕설도 이와 마찬가지이거늘, 네 입에서 나온 욕설도 상대가 아니 받으면 바로 네 것이 되느니라! --- 그러면서도 부처님은 여전히 다정하신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지, 연등 너머로 보이는 대웅전의 처마 끝이 연꽃을 닮아 있었다.***

 

 

 

 시인 구재기

 

충남, 서천 출생, 충남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현대시학]에서 시부문 추천 완료(전봉건 시인 추천)로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제 2회 충남문학상, 충청남도 문화상 문학부문, 제 6 회 시예술상 수상 시집으로는<농업시편><바람꽃> <아직도 머언 사람아> <삼 십리 둑길> <둑길行> < 빈손으로 부는 바람> <들녘에 부는 바람> <정말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 속의 날 지우는 일이다> <겨울은 옷을 벗지 않는다.> <콩밭 빈 자리> <千房山체 오르다가> <살아갈 이유에 대하여> <강물) 등이 있고 현재 충남시인협회 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