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퇘지 두 마리
-구선희-
아버지는 어린 암퇘지 두 마리를 사 오셨다.
식구들도 먹을 게 없어
흰쌀 느루 먹으려고
시래기를 섞어 먹던 그 때에.
아버지 회갑이 있던 바로 전 해였다.
갖고 오시는 것은 없어도
줄 게 없어 걱정이던 아버지는
회갑 일에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배불리 먹이고 싶으셨나
그 동안 얻어 드신 술
돼지를 안주삼아 술잔 돌리고 싶으셨나
감꽃이 떨어지고
아버지의 웃음이 떨어지던 우리는
짓이겨진 돼지 똥보다
마른 검불이 깔려 깨끗했다.
돼지들은 살이 오르고
아버지의 소망도 물이 올랐다.
눈칫밥에 속도 없이 살 오른다고
돼지들은 무럭무럭 잘 컸다.
어린 자식 엉덩이 두드린 적 없어도
노상 돼지 엉덩이 치셔서
막내딸의 괜한 미움을 사신 아버지
어머니 생신날 아침
병이 나신 아버지께서는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돼지우리 청소나 밥 먹이는 일은
큰오빠와 내 차지가 되었다.
돼지우리는 똥과 냄새로 뒤범벅이고
떨어질 감도 없었다.
회갑일도 다가오고
돼지 뱃살은 자꾸 늘어져 가는데
가을걷이는 끝나가고
광에는 햇살 같은 쌀이 몇 가마 쌓이는데
서서 나가셨던 아버지는
끝내 도선장 배를 타지 못하시고
강경으로 돌아서 큰아들 따라
누워서 집에 돌아 오셨다.
결국 암퇘지 두 마리는
아버지 장례식에 오신
동네 어른들 술안주가 되었다.
그 뒤로 돼지는 키우지 않았다.
-서천주부독서회 글모음 제11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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