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한실 이야기]/** 한실은 지금

인심이 살아 있는 마을 은곡리

소설가 구경욱 2009. 2. 26. 17:31

♡♡♡ 인심이 살아 있는 마을 은곡리 ♡♡♡

 

 해가 오르고, 방울토마토 온실의 환기창을 열자마자 큰집이 있는 박상굴로 향합니다.

 지난 토요일 이내가 깔릴 무렵입니다. 아버지께서 낙상 사고를 당해 대퇴골이 골절되 대전의 모 대학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셨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지극히 달리는 기력에, 수술이 맘과 같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따라서 현재 온갖 검사를 마치고 수술 날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동안 형님이 병원에 가 계셨는데 어젯밤 늦게 제 아내와 교대해 집에 오셨습니다. 병원에 가 있는 아내를 통해 상황을 전해 들어 대충 알고는 있지만, 이것저것 궁금한 마음에 불과 몇 백미터 거리가 천리길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온실에 작물이 들어 있으면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게 시설원예입니다. 아버지가 병원으로 후송 됐는 데도 가보지 못하는 맘 착잡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만감이 교차해 한숨이 나옵니다.

 

 큰집에 도착해 보니 텃밭에 있는 육묘장이 들썩합니다. 고추묘 가식을 하느라 그런 모양입니다.

 

 형님이 집을 비운 사이 온도 관리가 안 돼 고추묘가 이렇듯 훌쩍 웃자라 버렸습니다. 물론 원래 육묘에 소질이 없는 형님인지라 집에 계셨어도 별 수 없었겠지만...

 

 

육묘장이 들썩한 이유가 다 있었네요. 갑작스런 사태에 고추 가식이 늦어지는 것을 미리 아시고, 동네 어르신들이 찾아 와 일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누가 시키지도, 그렇다고 누가 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렇듯 우루루 몰려와 일손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집안 어르신이 병원에 계신 우울함을 날려 주시느라 이야기 꽃도 활짝 피워주시면서.  

 

 

 

 

 

 

 

 

 

 

 

 

여럿이 달려들어 일손을 나누니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 듯 고추 가식이 뚝딱 끝이납니다. 눈 뜨고 있는데 코 베가는 무서운 세상에, 정말 보기 드문 우리 동네 인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