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한실 이야기]/**** 한실 소개

한실의 두레 - 문산면 은곡리

소설가 구경욱 2010. 4. 12. 20:16

한실의 두레 - 문산 은곡리

 

  한실은 아직까지 전통적 두레가 이어져 오고 있다. 무와 배추 채종포 정식 및 수확을 할 때 두레를 조직해 작업을 한다. 한실의 두레는 전통 방식을 그대로 한다. 두레가 시작되면, 작업조와 식사 당번조를 정하는데 작업조는 공동 작업을하고, 식사당번조는 마을 회관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세참을 준비는 등 작업을 뒷바라지 한다. 두레 작업이 마무리되면, 각 집의 경지면적과 노동력에 따라서 임금을 결산하여 주고 받는다.

 

  두레는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마을·부락 단위로 둔 조직이다. 조선 후기 이앙법 보급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자영민의 감소로 차츰 소멸되었다. 상호부조·공동오락·협동노동 등을 목적으로 마을 단위로 조직되었다. 농사철에는 서로 협조하여 농사에 힘썼고, 기쁜일이 있을때에는 여러가지 놀이를 하며 함께 즐겼다. 조선 후기 이앙법이 전개되면서 보편적인 농민생활풍습으로 정착되었으며 농민문화의 풍물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두레에는 여성들의 길쌈을 위해 조직된 ‘길쌈두레’와 남성들의 삼(대마) 농사를 위한 ‘삼 두레’가 있다. 두레는 마을의 모든 농민이 그 마을의 경작지에 대해 자타의 구별 없이 일제히 조직적으로 집단작업을 하는 조직이며, 각 집의 경지면적과 노동력에 따라서 나중에 임금을 결산하여 주고 받는 공동노동의 형태이다. 이와 같이 협업(協業)의 성격을 띤 공동노동은 한국에서 장기간에 걸쳐 농촌경제를 지배해 왔던 노동조직이었다. 한국의 고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두레가 대내적으로는 노동단체·예배단체·도의단체·유흥단체의 의의를 가졌었으며, 한편 대외적으로는 군사단체로 동지동업(同志同業)의 순수한 결사의 뜻을 가졌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농촌의 민간에만 잔존하여 여러 가지 민간 협동체를 파생시킨 것이다. 두레는 또한 공동노동 조직임과 동시에 일종의 오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마을의 농악대(農樂隊)와 그들의 농악연주 및 무악(舞樂)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두레와 농악 및 공동노동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 채종 농가 두레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