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내 詩 속으로

누가 내 아내 좀 위로해 주지 않겠소? / 구경욱

소설가 구경욱 2008. 8. 27. 14:19

 

 

 

*** 누가 내 아내좀 위로해 주지 않겠소? ***

 

                          - 소설가 구경욱-

 

아내가 아침 일찍 외출을 했다.
워낙이 화장품에 욕심도 없고,
그나마 그림 실력이 제로이다보니

화장 솜씨라고는 더 더욱 없는 아내라지만,
여느때 같으면 제법 시간이 걸렸을 치장은 뒷전인 채
대충 고양이 세수하고,
대충 밥 한 술 떠 먹고,
뭔가 토라져 옆집에 따지러 가듯

대충 차려 입고 부랴부랴 문을 나섰다.
그래서 마치 집 나가는 여자 모양새.
서울에 간 것이다.
애초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라곤

반푼어치도 없는 여자이다.
신문은, 텔레비전 프로를 보기 위해 펼치기 일쑤이고,
텔레비전은, 9시 종합 뉴스가 시작되면

곧장 일어나 딴짓하는 여자이다보니
인기 절정의 [야인시대]와 [인어아가씨]밖에 보지 않는 여자이다.
그런 아내가,
개방 파고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비로소 본능적 위기감을 느껴

거리로 뛰쳐나갔다.
좋게 말해 농민대회.
다시 말하면
서러워 펑펑 목놓아 울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이다.
그것도 낯선 여의도까지.
농민의 아내란 것이 서럽고,
농촌에 터 잡고 산다는 것이 서럽고,
일찍이 대처로 떠나지 못한 것이 못내 서러워.
집중호우가 온 몸을 핥퀴고
태풍 [루사]가 뺨을 후려쳤을 때에도
조그만 체구답지 않게

까닥도 하지 않던 아내를
어느 놈이 거리로 뛰쳐나가 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바로 이 놈의 몹쓸 세상이 말이다.
내 이름에는 늘 그럴듯한 수식어가 붙는다.
농민 소설가
또는 작가 선생.
허나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무리 소설 속에 이상을 담고,
시에 부픈 꿈을 듬뿍 담은들
이미 죽어 쓰러져가는 고목에 앉아
정작 푸르름이 뭔지도 모른 채

울지 못하는 벙어리 매미인 것을.
방울토마토가 심겨진 하우스에서
날이 어둑어둑하여 들어오니
딸 아이가 그러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늦을 것 같으니 아빠하고 저녘밥 꼭 챙겨 먹으라 했다나?
이런 염병헐.
이런 씨부랄.
하루 진종일
먹구름 같은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생각하며,
내가 직접 서울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박박 기어 다녔는데.
밥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갈까봐?
그것도 아내를 거리로 뛰쳐나가 통곡하도록 해놓고서?
당신이라면 어떻하겠는가.
누군가가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의 뺨을 후려쳐 울려 놓았다면.
오늘도 선산을 지키는 이 못난 나무는
그저 뒤돌아 몰래 눈물을 훔칠 뿐이외다.
누가 못난 내 대신
여의도에서 펑펑 울다가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내 아내 좀 위로해 주시지 않으시겠소?
울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첨부파일 Pihasoittajat-WhenJohnnyComesMarchingHome.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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